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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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큐티 본문이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인데, 이전에는 주로 의미 중심으로 묵상했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의 삶>과 이전 주일설교 시 사도행전 강해 등을 통해 그 배경을 살펴보았기에, 여기 이 말씀이 어떤 상황 속에서 쓰였고 사도 바울이 어떤 심정으로 이런 말을 적었을지 생각하며 읽으니까 더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때 실라와 같이 1차 때 복음을 전했던 갈라디아 지역(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을 다시 방문하는데, 그때 루스드라에 살던 디모데도 선교 팀에 합류시켜 같이 갑니다. 이때 원래는 아시아(지금의 터키)에서만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성령께서 길을 막으셔서 헤매다가 북서쪽 해변에 위치한 드로아에 도착하게 되고, 거기서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본 후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확신하면서 원래는 계획에 없었던 유럽으로 향하게 됩니다.
마케도니아 첫 성인 빌립보에서 루디아가 복음을 듣고 믿게 되지만, 귀신 들린 한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냈다가 그 주인들의 고소로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서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는 상황 속에 간수와 가족들이 모두 믿고 세례를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다음으로 방문한 도시가 당시 마케도니아 지방의 행정 수도이며 전략적 요충지였던 데살로니가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그의 장군 중 하나였던 카산더가 마케도니아 왕이 되는데, 그는 알렉산더의 이복누이 ‘테살로니케’와 결혼하는 동시에 마케도니아에 항구도시를 건설하면서 그녀의 이름을 따 ‘데살로니가’라고 지었습니다. 발칸반도를 동서로 관통하기 위해 로마가 건설한 에그나티아 대로(Via Egnatia)의 중심부에 위치한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의 풍성한 농산물을 육로와 해로를 통해 수출하여 경제적으로도 풍요를 누리던 도시였습니다.
데살로니가는 BC 42년 빌립보 전쟁에서 옥타비아누스(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티누스)를 지원한 공로로 자유시가 되었는데, 바울이 방문했던 AD 50년경에는 현지인 출신인 다섯 명의 ‘읍장들’(politarch, 행 17:6)이 자치 통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 중심 도시였기에 큰 규모의 유대인 공동체와 회당이 있었고, 바울은 3주에 걸쳐 그곳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합니다(사도행전 17장).
그 결과 많은 경건한 그리스 사람들과 귀부인들이 믿었는데, 그 중에는 데살로니가에 온 바울 일행을 자기 집으로 맞아들인 ‘야손’이 있었고, 제3차 전도여행 때 바울과 동행했던 ‘아리스다고’와 ‘세군도’도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사도행전이나 바울 서신들에 등장하는 여러 이름들을 볼 때 그냥 빨리 넘겼었는데, 그들 모두가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았던 소중한 동역자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다시 읽으니, 그 이름들을 통해 정말 큰 감동과 도전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을 보고 시기한 유대인들이 불량배들까지 동원하여 소요를 일으키는 바람에, 바울 일행은 즉시 그곳을 떠나 다음 도시인 베뢰아로 가게 됩니다. 폭동 때문에 급히 데살로니가를 떠나야 했기에,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초신자로서 박해의 위협 아래 놓여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염려되어 바울이 그들에게 연달아 쓴 편지가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성경을 읽으면 더 잘 이해가 되고 더욱 깊은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