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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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코로나바이러스 이야기만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서 오늘은 다른 주제를 다뤄보려고 생각했는데, 마침 국제가정교회사역원장 이수관 목사님(휴스턴서울교회 담임)이 한국 종교와 제사에 대해 글을 쓰신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기에, 그 글을 여기에 요약 정리하여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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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는 유교에서 나온 것으로, 유교 사상에 의하면 사람이 죽은 뒤 몸과 혼이 분리되어 혼은 저 세상을 떠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손이 제사를 지내주면 혼이 돌아오고 육체와 결합해서 자손과 다시 만난다고 믿기 때문에, 유교에서는 화장이 있을 수 없고 그 대신 뼈를 잘 보관합니다. 심지어 전통 유교는 제사 때 해골을 상에 올려놓았었고, 그것이 흉하다고 생각되어 지금의 신주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유교에서는 저 세상을 떠돌던 혼이 돌아와 신주와 만나서 다시 살아난다고 믿기 때문에, 자손과 그 자손이 지내주는 제사가 일종의 영생의 방법이며, 근본적으로 효도는 제사를 잘 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 세대에는 자손이 많은 것, 대를 잇는 것, 장남이 제사를 드리는 것이 그토록 중시되었던 것입니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윤회설을 믿습니다. 사실 부처는 힌두교의 많은 부분을 부정하며 불교를 만들었는데, 특히 힌두교와는 달리 인간의 자아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은 허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죽음 후에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는 힌두교의 윤회설과는 정면으로 반대되는데, 그럼에도 윤회설은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윤회설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 이후 다른 존재로 태어나는데, 그 대기 시간이 49일입니다. 따라서 다음 생이 결정되기 전에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지내주면 좋은 존재로 태어날 수 있다고 믿어서 ‘사십구재’를 지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교의 개념이 불교로 들어와 혼합된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불교에서 49일 이후의 제사는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그 사람의 존재는 사라졌고 지금은 다른 어떤 것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믿는데, 그를 위한 제사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만약 하루살이로 환생했다고 하면 1년에 적어도 일곱 번은 다른 존재로 살고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에 비해서 도교는 답을 자연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인간의 유한함에 비하여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는 신적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에 도교는 자연과의 연합을 중시했습니다. 그렇게 자연을 힘입어 늙지 않고 영원히 사는 불로장생을 꿈꾸었고, 그러다보니 풍수지리와 묏자리가 중요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유교이든 불교이든 상관없이 모두 풍수지리와 묏자리를 중요시하니, 이것도 혼합된 모습입니다.
이런 모든 것은 죽음 이후에 인간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궁금증과 불안함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자신에게 분명한 해결책이 없으니, 각 종교에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다 모으고 합쳐서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 이후를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든 해결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침이고, 예수님께서 부활로 그것을 증명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비로소 인간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며, 그런 두려움이 사라질 때 마침내 죽음이 극복되고 삶이 자유로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