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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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어머니 장례와 집 정리를 잘 끝내고 8월 말에 이곳 집에 도착해서 보니, 지하 물탱크로부터 물이 새서 온 바닥을 다 적셔놓은 걸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보험 회사를 통해 이런 일을 처리하는 서비스 회사에 연락하자 직원들이 금방 나와서 물에 젖은 바닥 카펫을 다 뜯어내고 손상된 벽도 잘라서 버렸습니다. 그리고 물에 젖은 가구의 다리들을 약품으로 처리하고 잘 문질러서 말려놓았습니다.

 

대부분 가구는 괜찮았는데, 지하 서재에 있던 책장들은 물에 손상되고 곰팡이까지 나서 버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직원들이 책장들을 버리고 그 안에 있던 책들은 박스에 넣어 차고로 옮겨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버릴 것이 있으면 지금 다 버리라고 하며 아주 튼튼하고 큼직한 비닐 백을 여러 개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난 몇 년 동안 정리하지 않고 있던 제 서재를 싹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서재 한구석에 신발 박스들이 여럿 쌓여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서류들을 담아서 넣어둔 박스들이었습니다. 겉에 써 놓은 날짜를 보니 대부분 10년이 훨씬 넘은 것들이었는데도 그동안 거기에 그냥 놓아두고 있었던 겁니다. 개인 정보 때문에 잘 보관해야 한다고 놓아두었던 것인데, 대부분 10년이 넘었고 어떤 것들은 20년 가까이 되어서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소중한 물건인 것처럼 보관하고 있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구석에 있던 서류들뿐 아니라 다른 위치에 있는 박스들에도 서류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전혀 돌아보지 않은 것들인데, 이번 기회에 싹 정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대로 가차 없이(?) 다 버렸습니다. 특히 서비스 회사에서 모두 버려주겠다고 하는 이번 기회에 그냥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이 준 쓰레기봉투에 오래된 서류들을 닥치는 대로 넣어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방이 텅텅 비고 깨끗하게 정리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이사 와서 지난 20년 가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쌓아놓았던 것들이었는데, 이제 보니까 그중 진짜로 중요한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전에 중요한 자료들을 저장해놓았다고 하며 고이 모셔놓았던(?) CD들과 DVD들도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들 중 쓸만한 것은 정말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며 허탈했습니다. 심지어 디스켓(diskette)들도 많이 있는 것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지금은 그런 디스켓들을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조차 없어진 지 오래인데, 그때는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는지 참 우스웠습니다.

 

이번에 보니까 정말로 중요한 것들은 아주 조금이고, 대다수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는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이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쓸모없게 되었거나, 더 이상 중요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쓰레기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정도를 넘어, 사실은 진작 버려야 했던 물건들인데 그런 것들을 중요하다고 여기며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 참 어리석습니다.

 

이번에 낡은 서류와 물건들을 버린 일을 통해, 지금 내 삶에 필요 없는 쓰레기는 잘 찾아서 버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잘 보관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물건만이 아닙니다. 지금 자기 인생에서 필요가 없거나 해가 되는 것은 붙들고 있고,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오히려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봐야겠습니다. 그러려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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