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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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간으로 지난 수요일(16일) 아침, 한국의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라는 여객선이 침몰하여 이 시간까지 46명이 죽고 256명이 실종되었으며 174명만 구조된 상황입니다. 특히 실종자 대다수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슬프고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금요일과 토요일에 우리 교회 청소년들을 보면서, 저들과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이 지금 물속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또 '내 아들이 거기 갇혀 있다면 나는 어떨까?' 생각해보았는데,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선지 지난 며칠간 이 사건이 제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울분을 토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굉장히 화가 날 만합니다. 애초에 충분히 대피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이 나가는 바람에 수많은 학생들이 선실에 그대로 갇히게 되었고, 게다가 선장과 선원들은 사람들을 배에 남겨둔 채 가장 먼저 탈출해서 자기들만 살아났고, 구조작업은 아무 소득 없이 너무 느리게 진행되고 있고, 정부는 탑승 인원이나 실종자나 사망자 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무엇보다 먼저, 지금은 실종자들과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한국의 대통령과 정치 지도자들과 구조 담당자들이 대책을 잘 세우고 구조작업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기를 위해서도 기도해야겠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같이 휩쓸려서 비난과 조롱의 대열에 함께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습니다. Facebook이나 Twitter 등의 SNS를 하는 분들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에 대해 무조건 "Like"를 누르거나 "Share"를 하는 것을 자제해주시고, 그런 글들을 볼 때마다 기도해주십시오. 지금은 구조작업이 잘되기를 위해 마음을 모을 때입니다.
지금 온 나라가 구조작업을 위해 마음을 모아도 충분하지 않은 때에, 서로 비난하고 조롱하고 분열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려고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정말 참담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마음이 무거운 상태에서 부활절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겠는가?' 하고 누군가 질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지금 이러한 상황보다 더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이 애통과 고통의 시간에, 우리의 이웃들 특히 아이들이 깊은 암흑 속에서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절망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 있을 때, 그래도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부활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오래 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절망, 죽음, 비통, 흑암, 혼돈, 고통의 시간을 지나면서 눈을 지그시 감고 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고백했던 바로 그 고백입니다.
"죽음도 생명도 그 어느 것 하나도 내 것이 아닙니다. 죽음과 생명은 나의 신실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이 세상을 견디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위로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제 1 조항)
바로 이러한 믿음으로 우리는 오늘도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면서, 슬픔과 고통 가운데에서도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힘차게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