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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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는 저를 비롯하여 모태신앙내지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닌 분들, 또 오래 믿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비신자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 성인이 되어서야 예수님을 믿고 늦게 목사가 되신 휴스턴 서울교회의 이수관 목사님이 최근에 자신의 비신자 시절 경험을 나눈 글을 쓰셨는데, 그 내용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겠기에 정리하여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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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늘 신심(神心)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절에 소풍을 가면 불상을 보고 절하기도 했고, 정월 대보름에는 달을 보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속에서 필요할 때 찾는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셨습니다. 언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제 안에 들어왔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대입시험이나 입사시험을 앞두고, 또는 그 외에 저에게 급한 일이 생겼을 때, 하나님은 늘 제가 찾던 제 기도의 대상이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하나님이 썩 편한 분은 아니셨습니다. 편하다기보다는 도리어 두렵고, 늘 피하고 싶은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은 늘 저의 죄를 지적하시는 것 같았고, 실수라도 할 것 같으면 비웃으시는, 그리고 제가 죄를 지을 때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시는 그런 하나님으로 느껴져서, 교회에 나가기보다는 늘 그늘 뒤로 숨고 도망을 다녔던 것 같습니다.
왜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했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제가 가지고 있던 도덕관입니다. 저의 도덕기준을 저 스스로 못 따라가니까 그것이 늘 제게 실패감을 주었고, 또 하나님은 나를 싫어하신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를 두렵게 했던 것은, 제가 반복해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저도 당시에 뭔가 끊임없이 하나님과 약속을 했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다시는 하지 않겠다든지, 이렇게 해주시면 교회를 다녀보겠다든지, 그렇게 제가 제시하는 약속과 조건에 대해서 하나님은 늘 잠잠히 계셨지만 저는 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그것이 반복되다보니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더 커져 갔던 것입니다.
이처럼 신심이 있으면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두려운 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심이 있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도덕성은 있는데 그것을 지켜낼 능력이 없으니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발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먼 길을 돌아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비로소 저에게는 말할 수 없는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풀려서 좋았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도덕은 결코 지킬 수 없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과 함께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알고 평안해졌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언제든지 마음 놓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교회를 안 다니는 분들 중에 어릴 때의 어떤 기억으로 하나님을 아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어쩌면 저처럼 하나님을 찾고 있지만 동시에 이유를 알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불편함을 갖고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그것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해 생기는 두려움이고, 피하기보다는 교회에 나와서 그분을 만날 때 사라진다는 것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어쩌면 내가 평생 시달리면서도 원인을 알지 못했던 죄의식과 불편함이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