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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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파리 방문 중 아내는 거기서 한국으로 갔기에, 저는 11월 15일에 집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지금까지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아내가 집에서 하던 일이 아주 많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매년 연말이 되면 목회 일정이 상당히 바빠지는데, 원래 하던 목회 일을 감당하는 동시에 안 하던 집안일까지 하다 보니 무척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 12월 19일에 아내가 돌아오게 되는데, 그때까지는 계속 이런 식으로 지낼 것 같습니다.
요즘은 요리를 잘하는 남자들도 많지만, 저는 애초에 요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래서 만들 줄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라면 끓이는 것과 전기밥솥으로 밥하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파리로 떠나기 전에 아내가 몇 주 치 음식을 미리 해서 냉동실에 넣어 놓았는데, 제가 요리는 못해도 만들어놓은 음식을 차려 먹을 줄은 알기에 지금껏 아내가 만들어놓고 간 것을 잘 먹었습니다. 이제는 미리 해놓은 음식이 거의 다 떨어졌는데, 감사하게도 중간중간 음식을 해다 주신 분들이 계셔서 덕분에 계속 잘 먹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만들어놓은 음식을 차려 먹는 것이라 해도 끓이거나 볶는 데 시간이 들어가고, 또 다 먹은 후에는 설거지까지 해야 하니 이전에 비해 시간이 훨씬 많이 들어갑니다. 전에는 식사 시간이 되어 집에 들어와서 밥 먹고 금방 다시 일하러 나가면 되었는데, 지금은 식사 준비와 설거지 및 정리까지 하느라 훨씬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제가 또 손이 느려서 남들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집에 반려견 한 마리가 있어서 돌보는 데에 시간이 꽤 들어갑니다. 아침과 저녁에 한 번씩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용변을 보게 하고, 집에 들어오면 더러워진 발을 씻기며, 점심때와 밤에 자기 전에도 잠깐 나갔다 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데 아주 오래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맞춰서 해주어야 하기에 은근히 까다롭습니다. 특히 요즘 겨울이 되어 해가 빨리 지기 때문에,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전에 나가기 위해 시간을 맞추려고 하다 보니 거기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됩니다. 특히 저녁에 삶 공부나 모임이나 수요예배가 있으면 더 바빠집니다.
이런 내용을 보시며 웃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매일 이런 식으로 지내다 보니 이전에 비해 하루가 정말 후다닥 지나감이 느껴집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하루가 휙 지나가 버렸다는 느낌이 드는 날이 많습니다. 그렇게 목회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의 양은 그대로이거나 더 바빠지는데, 거기에 더하여 평소에 안 하던 일까지 하다 보니 말 그대로 정신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감사하고 좋은 점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개를 데리고 매일 두 번씩 돌다 보니 규칙적인 운동이 됩니다. 아무리 동물이라도 반려견을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요즘 많은데, 매일 데리고 다니다 보니 정말 가족처럼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또 이전에는 일이 있어도 ‘나중에 하지’ 하며 미룰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미루게 되면 일이 너무 많이 쌓이게 되기 때문에, 매번 바로바로 처리하게 됩니다.
이렇게 지내고 있는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음식을 챙겨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개를 종종 돌보아주는 분들도 계시며, 많은 분이 제게 잘 지내느냐고 물어봐 주십니다. 이런 일들을 통하여 제가 사랑받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