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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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우리 교회에서 4년 만에 가정교회 집회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우철 목사님께서 시간마다 너무나 귀한 말씀을 전해주셔서 큰 은혜와 도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번 집회를 위한 강사로 이우철 목사님이 확정되신 후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예닮교회에서 매주 쓰시는 ‘목회자 코너’ 글들을 읽어보았습니다. 모두가 아주 귀한 내용이었는데, 그중 특히 제 마음에 와닿는 글을 보고, 오늘은 이우철 목사님의 그 글을 여기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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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키우다 보면, 사춘기를 지나면서 ‘COOL’한 것을 강조하기 시작합니다. 헤어스타일이나 옷도 자기 맘에 드는 ‘COOL’ 한 것이 좋다고 고집부리기도 하고, ‘COOL’ 하게 행동하는 것을 멋이라고 생각합니다. COOL 하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사전을 찾아보니, ‘COOL’ 이란, ‘어떤 경우에도 냉정함과 자기조절 능력을 잃지 않기, 너무 열렬하거나 친근한 모습 보이지 않기, 감정의 기복을 절제하기’ 등으로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COOL’한 삶이란, 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고, 솔직하고 깔끔하게 살아가는 것, 남에게 손해는 입히지 않지만 철저하게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볼 때 ‘COOL’은 현대인들, 특별히 요즘 MZ세대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COOL’한 삶의 패턴이 교회에서도 나타납니다. 싫다는 사람 굳이 붙잡지 말고, 목장도 원하는 방식대로 하게 하고, 삶 공부도 원하지 않으면 놓아두고, 심한 경우 교회를 옮기기를 원하면 ‘COOL’하게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도 긴 설교나 반복되는 찬양을 하지 말고서 짧고 ‘COOL’하게 인도하며, 교회소식 같은 것은 ‘COOL’하게 주보로 대신하라고 요청합니다. 설교도 구질구질하게 죄, 회개, 헌신 같은 것은 강조하지 말고, ‘COOL’하고 기분 좋은 주제의 이야기만 하라고 부탁합니다.
물론 ‘COOL’은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지나친 관계와 과장과 명분을 강요당하던 지난 시절과 달리 ‘COOL’은 합리적이고 실리적입니다. 그러나 ‘COOL’은 그리스도인들이 경계해야 할 세속적 사고방식입니다. ‘COOL’은 개인주의를 토대로 자라나기 때문에 기독교가 추구하는 공동체성을 약화시킵니다. ‘COOL’은 '너는 너 나는 나,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 그래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외면하게 만드는 냉소주의를 부추깁니다. ‘COOL’은 끈끈한 정과 사랑으로 서로 감싸주는 기독교 공동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집단해체 정신을 만들어 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원하는 우리는 ‘COOL’한 것을 권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랑을 권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그러나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주제넘은 집요함이나 지나친 방관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COOL’한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