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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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부친께서 돌아가신지 어느덧 1년 3개월이 되어 갑니다. 아버지는 생전에 너무 고지식하다는 말을 들으셨을 정도로 무엇이든 원칙에서 벗어나거나 편법을 쓰는 것을 아주 싫어하셨으며, 언제나 법과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고 애쓰셨습니다.
아버지는 육군 대령 시절 진급 대상자로 대통령 책상에까지 이름이 올라갔는데, 그때 대통령 측근이자 정치군인으로 유명했던 상관에게 인사(?)만 한 번 했으면 별을 달고 장군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뇌물 바치기를 거부하며 원칙을 고수하다가 결국 진급에서 탈락하고 군복을 벗으시게 되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어머니가 아버지의 고지식함을 탓하며 한탄하셨던 어린 시절 기억이 가끔 생각납니다. 물론 나중에는 어머니도 또 저와 동생도, 편법을 통한 출세를 거부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끝까지 원칙을 지키며 정직한 길을 걸어가신 아버지를 모두 자랑스러워하게 되었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기억에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는 사진 찍는 것이어서, 휴일에 가족이 함께 고궁이나 놀이공원에 갈 때마다 사진을 찍으셨습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 가족이 함께 놀러다니기도 했지만, 중학생이 된 후로 아버지와 따로 대화를 나눈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다음부터는 합께 하는 시간이 더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저 역시 원칙에 벗어나는 일을 보면 불편했고 편법을 쓰는 경우를 보면 분했습니다. 많은 대화가 없었어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평소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저도 모르게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은 신앙생활에서도 나타났는데,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때 교회 안에 잘못된 모습이 보이게 되면 분개하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목회자가 되면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올바른 목회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성경대로 따르며 신약교회 회복을 위해 애쓰며 나아가는 가정교회를 선택하고, 지금까지 우리가 그것을 함께 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릴 때 저와 동생에게 아버지께서 항상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던 교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정직’입니다. 손해를 봐도 좋으니 언제나 정직하라고 하셨고,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반드시 돌보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아버지는 정직하게 사시면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례를 치르기 위해 갔을 때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버지께서 오래 전 노트에 가훈을 써놓으신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정직’만 있던 것이 아니라 모두 세 가지로, ‘겸손, 절제, 정직’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신앙인으로서 정직과 더불어 항상 겸손하고 절제하라는 말씀도 자주 하셨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지금 휴스턴에서 대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는 아들 은우가 며칠 전 문자를 보냈는데, 자기가 공부도 잘하고 있고 원하던 일도 잘 풀렸다고 기뻐하며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기쁘고 감사하다. 잘나갈수록 더 겸손해라.’ 하고 말해주었더니 금방 답이 왔는데, 그 글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먼저 당연하다고 하면서 그 다음에 ‘겸손, 절제, 정직 – 할아버지’라고 한국어로 써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믿음의 기초 위에 세우신 가훈이 손자에게도 잘 전수된 것을 보며 감사했고, 그 순간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면서 그런 아버지를 주신 것에 감사했습니다. 계속해서 대대로 겸손과 절제와 정직의 가문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