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특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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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5일 금요찬양집회

사랑이 모든 것이다

(로마서 138~10)

 

오늘 첫 금요찬양집회에 오신 여러분을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찬양집회로 모이는 거라서 원래는 찬양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찬양이란 무엇이고 예배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중에, 결국 예배는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배하면 여러분은 어떤 것이 생각나십니까? 어쩔 수 없이 와야 하는 것? 지겨운 것? 한 시간 꾹 참아주는 것? 그런데 예배가 사랑이라면 어떨까요?

 

 

1.   예배는 하나님 사랑이다

 

무엇보다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예배를 통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외아들을 그 끔찍한 십자가 죽음에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그렇게 비참한 죽임을 당했어야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요한일서에서 요한이 잘 설명해줍니다. 같은 로마서 5장에서 바울도 그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제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의인을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더욱이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감히 죽을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5:6-8, )

 

이처럼 자격 없는 자를 사랑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격 없는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하나뿐인 아들(외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무자격자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 외아들을 죽게 내어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갰습니까?

 

아주 흉악한 범죄자가 있는데, 그 범죄자를 살리기 위해 내 외아들을 내어준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아주 위대하신 분을 위해서 내 외아들을 내어주는 것도 할 수 없는데, 아주 흉악한 범죄자나 테러리스트를 위해서 내 아들을 내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아주 착하고 의로워서가 아니라, 형편없는 죄인인데도 외아들을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상할 수 없이 큰 사랑이고, 최고의 사랑입니다. 그런 최고의 사랑을 베풀어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것, 그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리며 나아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2.   예배는 이웃 사랑이다

 

예배는 얼마든지 개인적으로 집에서 할 수도 있고, 이렇게 공 예배로 함께 모여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 특히 공 예배는 이웃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사랑이고 둘째는 이웃 사랑이며 첫째와 둘째의 순서는 있지만, 둘이 똑같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8) 하고 말씀합니다. 사랑만 하면 율법 전체를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음, 살인, 도둑질, 탐심 등을 하지 말라는 것이 십계명 안에 다 있지만,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9) 하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0)

 

이웃을 사랑하면 이웃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웃을 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웃의 유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최선의 것을 내어주고 싶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10). 그러니까 사랑은 모든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가 어떻게 이웃 사랑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예배가 하나님 사랑인 것은 이해가 가는데, 예배가 어떻게 이웃 사랑입니까?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게 아닙니까? 맞습니다. 기본적으로 예배는 하나님을 향해 나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공 예배는 그러한 하나님 사랑이 이웃 사랑을 통해 나타나는 시간입니다. 공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까?

 

1)  예배를 위한 기도를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 지휘자, 반주자들, 성가대, 대표 기도자, 미디어 팀, 예배위원들, 옆에 있는 다른 성도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2)  예배 시간에 지각하지 않고 일찍 옴으로써 우리는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사실 늦게 들어오면 다른 예배자들에게 방해가 됩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문에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조용히 기도할 때 문을 열고 들어오면 삐걱거리는 소리 때문에 들어오는지 다 압니다. 그래서 되도록 기도할 때는 안 들어오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걸어오는 소리도 들리고, 자리를 찾느라 여기저기 가면 예배하고 있는 다른 분들을 방해할 수가 있습니다.

 

또 일찍 와서 기도로 예배를 준비할 때 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고 교회를 위해서도 좋습니다. 일찍 오기는 왔는데 잡담을 하면 다른 분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나는 피곤해서 별로 가고 싶지 않아도 가는 게 중요합니다. 주일예배는 크리스천으로 가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런 주중예배(수요예배나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이웃을 위한 배려가 됩니다. 특히 직분자들이 그렇습니다. 직분을 맡는다는 것은 다른 성도들에게 본이 되겠다고 헌신한 것인데, 다른 성도들에게 본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분들을 격려하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3)  기도에 집중하며 아멘으로 화답하기

 

개회기도나 대표기도 때 중간중간 아멘으로 화답하며 나도 그 심정이며 똑같습니다.’라는 의미로 아멘할 때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기도하는 사람도 힘이 납니다.

 

 

4)  찬양할 때 최선을 다해 노래하며 다른 사람들도 잘할 수 있게 용기를 주기

 

물론 불협화음(?)으로 너무 크게 하면 방해가 될 수 있지만, 그래도 크게 찬송을 부를 때 옆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워줍니다.

 

 

5)  성가대 찬양 시 아멘으로 화답하기

 

성가대가 찬양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다른 생각을 하거나 딴 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가사에 집중해서 들으며 하나님, 저도 똑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내 마음을 함께 실어서 성가대의 찬양과 함께 나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것도 이웃 사랑이 됩니다.

 

 

6)  설교 때 졸지 않고 열심히 듣기

 

설교 때 졸지 않고 열심히 들으면 설교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졸고 있거나 눈 감고 있으면 설교자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힘이 빠집니다. 그런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보고 있으면 정신 차리고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7)  헌금을 통해 교회 사랑을 실천하기

 

헌금, 특히 십일조에 걸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해야 하는 것을 아는데 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십일조는 율법의 계명이 아닙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 신약시대, 성령의 시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원래 십일조는 옛날 구약 시대 때 레위인들에게는 기업을 안 주셨기 때문에 레위인들을 위해 십일조를 함으로써 그들이 먹고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레위인들을 지금의 목회자로 보기도 하는데, 목회자가 아니라 교회로 보는 게 더 맞습니다. 레위인들이 성전에서 종교적인 일들을 감당했고 또 각 도시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 걱정 없이 사역을 잘할 수 있도록 십일조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곧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곧 레위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사역을 재정의 부족함 없이 마음껏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헌금이고 십일조입니다.

 

이제 새 영어권/청소년 교역자가 청빙위원회의 수고로 정해졌습니다. 이전에도 우리 재정이 계속 적자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을 모아 십일조를 제대로 하고 헌금생활을 잘한다면 재정 문제가 다 해결되고, 교역자뿐 아니라 주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특히 선교지의 필요가 얼마나 많습니까? 선교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우리가 마음을 모을 때 그것이 가능합니다.

 

 

8)  다른 사람의 실수를 용납하는 이웃 사랑의 실천

 

혹시 예배 중 설교자가 잘못 알고 틀린 정보를 줄 수도 있고, 대표기도자가 잊어버리고 앞에서 한 말을 또 할 수도 있습니다. 성가대도 음이 틀리거나, 파워포인트도 하다 보면 가사가 틀리거나 순서가 틀리는 등의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화를 내거나 짜증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열심히 수고하시는 분들이 있구나하고 오히려 용납해주며,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혹시 들으셨을 수도 있는데, 옛날에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 같은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교회에 초보 전도사가 있었는데, 교육부서 담당이라 보통 때는 교회에서 장년 설교를 하지 않았는데 마침 한 주에는 어떤 사정이 있어 주일예배 때 장년 설교를 맡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성인 대상으로 설교를 잘할 수 있을지 굉장히 긴장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주에 그 동네 다른 교회에 유명한 설교자인 어떤 목사님이 집회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 내가 저 집회에 참석해서, 유명한 목사님이니까 들어보고 어떻게 설교를 하는지 배워야겠다.’ 하며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강사 목사님이 이렇게 설교를 시작합니다. “여러분 제가 이제까지 안아보았던 여자 중에 가장 가슴이 따뜻한 여자는 다른 남자의 아내였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저런 부도덕한 목사가 다 있나?’ 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 순간 그 목사님은 그 여자가 누구냐 하면.... 바로 저의 어머니입니다.”라고 하니까 다들 아, 역시!하며 감탄했습니다. 이 초보 전도사도 , 역시! 저렇게 하는 거구나!’ 했습니다. 그 후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서 쭉 설명을 하셨고, 그는 그것을 잘 배워서 돌아갔습니다.

 

그 초보 전도사는 주일이 되어 설교를 하게 되었고, 며칠 전 들었던 강사 목사님의 설교대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제까지 안아보았던 여자 중에 가장 가슴이 따뜻한 여자는 다른 남자의 아내였습니다.” 그랬더니 교인들이 모두 아니,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전도사가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라고 하며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지고 경악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권사님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긴장감을 느끼던 초보 전도사는, 얼음장 같은 분위기가 된 데다 교인들의 그런 반응을 보니까 너무 당황해서 그 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참 머뭇거리다가 할 수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습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 여자가 누군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완전히 설교를 망쳤습니다.

 

, 이런 실수를 한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용납해주어야겠습니까?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합니까? , 다시 기회를 줄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나름대로는 잘해보겠다고 한 것인데, 당황했고 경험이 없어서 저지른 실수이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에게 사과하게 하고, 이게 뭐였는지를 설명할 수 있도록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믿어주면 다시 회복되고 성장합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세 번 부인했으니까 세 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래서 충성스런 사역자가 되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용납해주고 다시 기회를 주며 믿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다 실수하고 주님을 다 거부한 적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용납하시고 자녀로 삼아주시고 사랑해주시고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결국 사랑이 모든 것입니다.

 

이처럼 예배 가운데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 순간에도 옆 사람을 배려하는 것,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것 등의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매번 예배 때마다, 개인예배뿐 아니라 공 예배 때에도 항상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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