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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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저는 ‘자유케 하는 삶’이라는 과목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원래 한국에서만 제공되던 삶 공부였는데, 강사이신 김영주 목사님(전주 기쁨이넘치는교회 담임)이 10년 만에 미국에 오셔서 인도해주신 삶 공부였습니다.
사실 우리와 같은 장로교회에서는 ‘악한 영’, ‘귀신’, ‘악마’, ‘축사’와 같은 단어들은 많이 사용되지 않는 말이고, 자꾸 그런 말을 듣게 되면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탄과 그의 졸개 귀신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을 아주 많이 쫓아내셨고, 사도들도 주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들을 했습니다.
‘새로운 삶’ 공부에서도 언급하는 것처럼, 영국의 크리스천 지성인이던 씨에스 루이스(C. S. Lewis)는 사람들이 귀신에 대해 갖고 있는 두 가지 극단적 편견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귀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두려워하는 것이고, 둘째는 귀신의 존재를 아예 무시하며 믿지 않는 것입니다. 둘 다 위험한 편견입니다.
이번 ‘자유케 하는 삶’ 공부는 저에게 아주 유익했습니다. 강사님도 장로교 목사로서 원래 이런 방면으로는 전혀 관심도 없고 거리가 멀었던 분인데, 목회를 하는 가운데 실제로 귀신 들린 사람들을 접하게 되면서 축사 사역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공부를 하면서 다시금 확인 한 것은, 귀신들은 우리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서 벌벌 떠는 무력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며 담대히 나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악한 영들이 지금도 이 세상에서 역사하고 있으며, 그들이 역사하게 되는 주요 통로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상처나 쓴 뿌리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귀신들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면 우리 안에 있는 내면의 상처와 쓴 뿌리를 치유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자유케 하는 삶’ 공부의 핵심은 귀신을 쫓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상처와 쓴 뿌리를 치료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이 거하시는 크리스천이 귀신 들릴 수가 있느냐?’ 하고 혹시 의문을 제기할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도 감기에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 속에도 악한 영들이 들어와 역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이 계시는 우리의 영에는 못 들어오고, 다만 우리의 혼(지정의)과 몸에 들어와 장난을 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감정적 상처를 통해 역사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내용의 강의를 들으며 저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에베소서 4:26-27, 새)
화를 낸다고 다 죄는 아니지만, 분노를 해결하지 않은 채 오랫동안 계속해서 품고 살면 사탄에게 틈을 주게 되어, 바로 그것을 통로로 해서 귀신들이 들어와 우리를 괴롭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마음이 늘 괴롭습니다.
쓰레기가 있는 곳에는 쥐와 벌레가 몰려듭니다. 마음속에 분노, 미움, 원망, 비난, 서운함, 음란, 시기, 질투와 같은 감정적 쓰레기를 해결하지 않은 채 계속 품고 살면, 그것을 먹기 위해 악한 영들이 들어와서 장난을 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세로 그런 쓰레기를 치워버리고고 해결하면 더 이상 악령들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아직 치우지 않은 감정적 쓰레기, 즉 상처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빨리 해결해야겠습니다. 그럴 때 엄청난 기쁨과 참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