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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17일 수요예배

이단 돌발 질문에 대한 답변 26

약속의 성취 2

(요한복음 1031~36)

 

[질문 1]  주기도문의 참 뜻을 아는가?

 

1)  주기도는 예언의 말씀이다?

2)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3)  하나님의 나라

 

지난주에는 위의 세 가지를 살펴보았고 오늘은 네 번째를 살펴보겠습니다.

 

4)  일용할 양식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6:11)

 

신천지는 주기도문에 나오는 양식이 영적 양식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양식은 썩지 않는 양식으로서, 사람이 먹으면 그 사람을 영원히 살게 하는 양식이며, 이 양식은 곧 말씀이기에 우리가 먹어야 할 양식은 육적 양식이 아니라 영적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양식은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즉 자기네 교주 이만희 총회장이 주인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나눠주는 양식으로서, 이것이 곧 일용할 양식의 참된 의미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교주 이만희의 가르침이 이 시대의 영적 양식이며, 예수님은 이 양식을 구하라고 예언하셨다는 것입니다. 참 말이 안 됩니다.

 

신천지는 이런 해석을 바탕으로 육적 양식을 구하는 것을 죄악시하며, 영적 양식을 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래서 자기네 신도들이 일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죄악시합니다. 하지만 헌금은 온갖 명목으로 열심히 거두어들이니까 말이 안 맞습니다. 돈을 벌지 못하게 하면서 돈은 내라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딘가에 가서 뜯어오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신천지의 주장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첫째, 예수님이 구하라고 하신 것은 일용할 양식입니다. 일용할 양식의 기원은 출애굽 때의 육적 양식인 만나입니다. 만나가 일용할 양식인 이유는 하루가 지나면 벌레가 생기고 상한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고(16:20), 그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일 광야로 나가서 만나를 거두라고 하셨습니다(16:21).

 

예수님이 구하라고 하신 양식은 이러한 일용할양식입니다. 영적 양식이라면 굳이 일용할 양식이란 말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영적 양식은 영원히 썩지 않기에 한 번 받아두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고, 오랫동안 저장해 두어도 됩니다. 따라서 이 일용한 양식은 영적 양식일 수가 없습니다.

 

둘째, 주기도 전체(6:9-13)의 구조와 흐름으로 보면 일용할 양식이 육적 양식을 뜻한다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주기도는 크게 당신청원으로 구성된 전반부와 우리청원으로 구성된 후반부의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먼저, 전반부는 세 개의 당신청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국어 성경에는 당신이란 말이 나오지 않지만, 원문과 영어 성경에는 이것이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hollowed be Your name)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Your kingdom come)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Your will be done)

 

당신은 하나님을 높이는 2인칭 극존칭이며, 이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청원입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우리청원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제자들의 삶에 대한 청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6:11-13)

 

이처럼 주기도에는 하나님을 향한 당신청원과, 신자들의 현실적 삶에 대한 우리청원이 함께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이 주기도를 가르쳐주시기 전에 하신 말씀(6:7-8)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성도들의 현실과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6:7-8)

 

여기서 예수님은 이방인과 같이 자기 필요만을 중얼중얼 요청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모두 아신다는 사실을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먼저 당신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9-10), 그다음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11-13). 또한 주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마무리하신 후에 예수님은 이러한 주기도의 내용을 또 요약해서 말씀하십니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6:31-33)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것은 육적 양식을 구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이것은 우선순위의 문제로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그다음으로 우리의 필요와 양식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의 모범이 되는 것이 바로 주기도입니다.

 

따라서 주기도는 초월적인 하나님 나라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적인 필요도 동시에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것은 영의 양식을 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필요한 양식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신천지는 일용할 양식의 문제를 무시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만 달려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직장인은 직장을 그만두게 하고, 학생은 학업을 포기하게 하며, 오직 영적 양식을 위해서만 살 것을 요구합니다. 생계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하는 신도들에게 눈치를 주며 지금이 육적 양식을 위해 일할 때냐고 다그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믿음을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라고 통렬히 꾸짖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지체들의 일용할 양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질문 2]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사흘 동안 어디 가서 무엇을 하셨는지 아는가?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벧전 3:19)

 

신천지는 이 구절을 근거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지옥에 가서 믿지 않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이들을 구원하셨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신천지는 이순신 장군은 구원받았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러한 주장은 신천지 사람들에게 144천 제사장의 꿈을 더 열망하게 해줍니다. 제사장이 되면 지옥에 간 가족에게까지 예수님이 가셔서 다 구원해 주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구절을 인용합니다.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벧전 4:6)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이러한 그들의 주장을 어떻게 반박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예수님이 영으로 갔다는 것은 성령또는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셨음을 의미합니다. 3:19 바로 앞 절인 3:18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살리셨음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벧전 3:18)

 

둘째, ‘옥에 있는 영들은 지옥에 있는 불신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벧전 3:20)

 

그들은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복종하지 않던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는 1세기 유대인들에게 꽤 익숙했던 에녹1서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에녹1서의 표현에 따르면, 이들은 하늘에서 타락하여 땅으로 추방된 타락한 천사들로 예수의 이름으로 결박된 사탄과 그의 졸개들의 세력입니다(에녹112:4).

 

셋째, 이전 개역한글에 전파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케뤼소, 정확히 번역하면 선포하다라는 뜻이며, ‘복음을 전파하다라는 뜻의 헬라어 유앙겔리조와는 다른 단어입니다. 개역개정이 잘 번역한 겁니다.

 

따라서 베드로전서 3장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탄의 세력을 깨뜨리고 승리하셨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악한 영들도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 꿇고 그분이야말로 온 세상의 참된 주님이심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2:9-11).

 

넷째, 베드로전서 46절의 죽은 자들은 전후의 문맥을 살펴볼 때 예수를 신실하게 잘 믿다가 죽은 성도들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죽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사는 동안 믿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죽은 성도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벧전 4:6)

 

이들의 육체는 땅에 묻혔지만, 그 영혼은 구원을 얻었고, 또한 장차 성령의 능력으로 일어날 온전한 육체의 부활을 기다리게 됩니다.

 

다섯째, 이순신 장군의 구원에 대해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모든 인류는 구원에 관한 한 아담 안에서 이미 파산하고 흑암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 선조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탄생 이전 사람들이나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공의의 하나님께서 분명히 선하게 처리하셨을 것임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조들에 대한 구원의 가능성을 생각하기보다, 영적 흑암 가운데 구원의 가능성이 없던 우리에게 복음이 전해져서 우리가 믿고 구원받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흑암 가운데 있던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기 위해 오셨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여섯째, 따라서 신천지인이 갖는 144천 제사장의 소망은 결코 가족 구원을 보장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은 각각 자기의 죄로 심판받을 뿐입니다(왕하 14:6, 대하 25:4, 31:29-30, 18:2-4). () 보좌 심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종말에 있을 최후의 심판 때는 각 사람이 각각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받게 됩니다(20:13).

 

 

[질문 3]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를 신이라고 한 것을 아는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4-35)

 

신천지는 이 구절들을 근거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고 하셨으니,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그 사람이 신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 논리에 근거하여 신천지는 계시의 말씀을 받아 증거하는 약속의 목자인 자기네 교주를 하나님께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는 5,700년 동안 봉함되었던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의 말씀을 받고 예수님의 영과 하나 된 신적 존재, 즉 더 이상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 신인합일을 이룬 존재라는 겁니다.

 

더 나아가 이런 특별한 약속의 목자가 증거하는 말씀을 받은 신천지 신도들도 스스로가 하나님께 선택받은 특별한 선민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신천지 신도들은 이 말을 붙들고 장차 자기들도 약속의 목자와 같이 신인합일하여 신처럼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이들은 이 구절이 신천지를 약속대로 이루어 가는 출발점이라고 믿는 겁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과연 그러할까요? 먼저 예수님이 인용하신 시편 826절을 보십시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82:6)

 

그런데 바로 그다음 구절을 보면 이 신들이 평범한 인간을 가리키는 표현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82:7)

 

그렇다면 너희는 누구이며 왜 이들을 신들이라고 부른 것입니까? 시편 821-2절을 보면 너희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2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82:1-2)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재판장들이며, 불공평한 재판을 하고 악인의 편을 드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율법 위에서 공의로 재판해야 할 이들을 신들지존자의 아들들이라고 높여 부르며 존귀하게 대하셨지만, 불의를 행하는 재판장들은 신이 아니라 결국 죽게 될 나약한 인생이며, 높은 자리에 앉았다가 하루아침에 쓰러지는 고관처럼 될 거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 시편을 인용해 말씀하신 것은 수전절에 성전에 계실 때였습니다(10:22-39). 이때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만약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아)라면 그 사실을 밝히 말해달라고 요청합니다(10:24). 그러자 예수님은 이미 자기가 누구인지를 말했음에도 그들이 믿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자신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시는 일들이 예수님을 증거한다고 하십니다(10:25). 그러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자신을 아들로 표현하시며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선언하십니다(10:30). 그다음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31-33)

 

이때 예수님께서 너희 율법에 이라는 단어를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한 예가 있지 않냐?”라고 물으십니다(34).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이 사람들을 신들이라고 하고 지존자하나님의 아들들로 칭하는 것이 과연 신성모독인가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아 그것으로 재판하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이라고 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한 예가 시편에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여 세상에 보낸 성자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일컬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고 해서 이것을 신성모독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시편 82편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고 한 것은 그들이 실제로 신이란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신과 같이, 또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존귀하게 여기고 높여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으로 재판하는 자를 하나님의 아들과 신이라고 하시며 존귀하게 높여주셨다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 가운데 오신 성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신이라 부르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1034-35절을 따로 떼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가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악마의 편집에 해당합니다. 전형적인 짜깁기입니다. 왜냐하면 34-35의 말씀은 36절의 결론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36)

 

성경을 읽을 때는 항상 읽고 있는 구절 전후의 문맥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덮어 놓고 믿기보다는 그 말씀을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를 이렇게 가르칩니다.

 

베뢰아의 유대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 사람들보다 더 고상한 사람들이어서, 아주 기꺼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17:11, 새번역)

 

베뢰아 유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간절한 마음으로 받되, 이것이 사실인지 날마다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 ‘상고하다라는 헬라어 단어는, 주의 깊게 연구(careful study)하고, 의구심을 품으며 질문하고(question), 꼼꼼히 전후 문맥과 오류를 조사해보고(examine), 다른 사례를 살펴보고(hear a case), 판단하고(judge), 분별하는(discern) 작업을 통틀어 말합니다.

 

우리에게 바로 이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성경의 전후 문맥을 살피고, 문장의 전체 흐름을 살핀 후, 단어 하나하나의 뜻도 살피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로 성경을 연구하려면 공동체가 함께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삶 공부가 필요한 것입니다.

 

열심히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또 삶 공부를 통해 함께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더욱 확장되고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충만해지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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