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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2일 수요예배
✦ 이단 돌발 질문에 대한 답변 18 ✦
재림의 징조 1
(마태복음 24장 1~8절)
수많은 사이비 이단들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하여 잘못된 해석이나 주장을 해 왔습니다. 신천지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들은 마태복음 24장을 ‘주 재림과 말세의 징조’를 예언한 소계시록으로 보면서 매우 중요하게 다룹니다. 그들은 마태복음 24장이 예수님께서 장차 이루실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고, 이긴 자는 계시록 전체를 통해 마태복음 24장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증거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신천지에게 마태복음 24장은 신천지식 계시록 해석의 성경적 토대를 제공하는 본문이 되기에 아주 중요한 장입니다. 신천지는 마태복음 24장에 대해 그렇게 왜곡된 해석을 하면서 자기들의 계시록 해석이야말로 2천 년 전 예수님이 예언하신 말씀을 성취한 실상의 증거라는 그릇된 정당화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왜곡하고 있는지, 성경을 제대로 살펴보며 그들의 질문에 답하기를 원합니다.
[질문 1] 마태복음 24장은 주님의 재림 시기와 계시록 성취를 예언한 것일까?
신천지가 마태복음 24장을 들고 와서 질문을 던질 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마태복음 24장이 무엇을 가리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해야만 나머지 질문들에 대하여 보다 적절하게 답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마태복음 24장은 예루살렘 성전의 앞날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21장 23절부터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해야 합니다. 24장은 예수님이 헤롯 대왕이 증축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시다가(마 21:23), 말씀을 마치고 ‘나와서’(24:1)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에 들어가셔서 무슨 말씀을 하셨기에 마태복음 24장의 말씀이 이어지는지 그 문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마 21:23)
(혼인 잔치 비유를 가르치신 이후)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마 22:15)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마 22:23)
“그(바리새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마 22:35)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마 23:1)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마 23:13, 15, 23, 25, 27, 29)
이러한 말씀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마 23:36)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마 23:37-38)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1-2절)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대화하시며 논쟁을 벌이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박살 내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들이 박살 당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의혹을 제기했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며 거부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의 그런 모습을 보시며 성전에서 그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십니다. 그것도 아주 심한 말로 질책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그동안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그들을 회개시켜 하나님께 돌이키려 했지만, 예루살렘이 그것을 원하지 않고 거부한 것으로 인해 탄식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선언하십니다.
둘째,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세대(마 23:36)’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모여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과 메시아를 배척하고 죽인 데 대한 책임과 대가가 반드시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시고(23:36), 24장 34절에서는 그 일이 바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한 번 더 강조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마 24:34)
또한 예수님은 ‘이 세대’가 모이는 성전을 ‘너희 집’(23:38)이라고 부르시고, 성전에 모인 자들을 ‘예루살렘’(23:37)이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은 모두 예수님을 배척했던 당대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자신을 배척한 이 세대와 이 세대의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성전의 모든 것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임을 선언하십니다. 이것을 누가복음 병행 구절과 함께 보면 그 의미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2절)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눅 21:6)
넷째, 주의 임하심과 세상의 종말은 성전 멸망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 멸망에 대해 충격적인 선언을 하시자 제자들은 예수님이 성전 맞은편에 있는 감람산으로 가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 예수께 조용히 묻습니다(막 13:3, 마 24:3). 성전이 멸망한다는 것은 유대인으로서 감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불경스럽고 충격적인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두 가지를 묻습니다.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3절)
이것을 누가복음에서는 좀 더 단순하게 표현합니다.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눅 21:7)
마태복음이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의 징조’라고 한 것을 누가복음은 조금 더 단순하게 ‘이런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물론 ‘징조’와 ‘이런 일’ 둘 다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은 왜 성전의 무너짐을 주의 임하심과 종말의 징조로 진술한 것입니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the end of the age)’이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세상 끝’은 온 세계(world)의 최후가 아니라 한 ‘시대(age)’의 끝, 곧 성전 시대의 끝을 말합니다. 성전 시대의 끝이라는 것은 율법과 제사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멸망하면 더 이상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고, 율법을 기초로 한 시스템은 그 기능을 멈추게 됩니다.
둘째로, ‘주의 임하심’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주의 임하심’을 헬라어로 ‘파루시아(παρουσία)’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뜻할 수도 있지만, 당시 제자들의 상황을 볼 때 재림의 뜻으로 사용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는 물론이고 부활도 제대로 믿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파루시아’는 ‘부재’라는 단어와 반대되는 ‘임재’ 또는 ‘현존(presence)’을 뜻합니다. 이 단어는 왕이나 고관이 다른 고관이나 지방을 방문하여 행차하는 것과 연관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즉 여기서 ‘파루시아’는 예수님이 성전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왕으로 임하실 것을 말합니다. 제자들이 기대한 것은 예수님이 무력으로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땅을 되찾고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제2의 출애굽을 일으키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일으키신 출애굽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시는 역사였습니다. 이 영적 이스라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포함하는 새로운 이스라엘, 즉 교회입니다. 성전의 멸망은 예수님이 영적 출애굽, 곧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온 세상의 왕으로 등극하셨음을 입증하는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24장에서 말하는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은 성전 시대의 종식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영적 출애굽의 구원 시대가 시작되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신천지가 말하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질문 2]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간에 일어나는 전쟁이 진짜 전쟁일까?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7-8절)
신천지는 예수님의 초림 이후 2천 년 동안 이 세상은 수많은 전쟁의 연속이었는데,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아직까지 오지 않으셨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에베소서 6장 12절을 보면, 마태복음 24장의 전쟁은 실제 전쟁이 아니라 ‘종교 전쟁’이나 ‘교리 전쟁’임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럼에도 기성교회 목사들은 이것을 육적 전쟁이라고만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또 요한계시록 12장을 보면 전쟁의 장소가 하늘 장막(계 13:6)이라고 했고, 이 전쟁에서 하나님의 군대와 사탄의 군대가 싸운 결과 용이 쫓겨나고 하나님의 군대가 승리하게 되는데, 이때 하나님의 군대가 사용한 무기가 어린양의 피인 예수님의 말씀과 증거하는 말인 진리(계 12:11)라고 했으니, 말세의 전쟁은 영적 교리 전쟁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신천지가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전쟁을 진짜 물리적 전쟁이 아닌 ‘교리 전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24장 전체를 해석할 때 전쟁 용어를 사용하여 자기네가 구원자라고 주장하는 교주 이만희와 멸망자인 청지기 교육원 간의 교리 충돌과 갈등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신천지의 그런 주장은 말이 안 되고 문제가 많습니다.
첫째,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전쟁은 분명히 실제 전쟁입니다. 전쟁의 현장이 성전이라고 해서 이것이 일종의 영적 전쟁, 곧 종교 전쟁이나 교리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로 군대가 성전을 침범하는 사건을 뜻합니다. 이방 군대가 성전을 침략한 일은 유대 역사에 이미 몇 번이고 일어난 바 있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멸망시키고 성전을 파괴한 것 외에도 성전이 침략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주전 167년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는 군대를 대동하고 예루살렘 성전에 침입했고, 번제단 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돼지 피를 뿌려 제사를 지냈습니다.
주후 40년에는 로마 칼리굴라 황제가 예루살렘 성전에 자기 동상을 세우도록 명령했습니다(유대고대사 18.8). 당시 시리아 총독 페트로니우스는 그것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이 대규모 폭동과 반발을 일으킬 것을 우려하여 군대를 끌고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으로 갔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황제는 명령 시행 하루 전날 암살당함으로 명령이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후 67~70년 유대인 열심당 폭도들을 진압하기 위해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고, 유명한 티투스 장군(훗날 황제가 된 사람)의 지휘 아래 예루살렘 성이 무너졌으며, 그때 성전도 무너졌습니다. 마태복음 24장과 같은 예언을 기록한 누가복음 21장은 이 사건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눅 21:20)
이처럼 예수님은 분명히 예루살렘이 군대에 에워싸이는 실제 전쟁을 예고하셨습니다.
둘째, 역사상 수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신 전쟁은 성전 멸망과 관련된 특정한 전쟁을 가리킵니다. 왜 성전 멸망과 관련한 전쟁을 말씀하셨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본문 바로 앞인 23장 마지막 부분에 선지자와 메시아를 배척한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예고하셨기 때문입니다.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마 23:37-38)
더 나아가 예수님은 성전 멸망 이후 자기 몸으로 새로운 성전을 세울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2:19, 21)
즉, 예루살렘 성전 함락과 파괴는 구원 역사의 새로운 단계의 시작을 위한 사건임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셋째, 마태복음 24장의 전쟁과 요한계시록 12장의 전쟁은 분명히 다른 전쟁입니다. 먼저 마태복음 24장의 전쟁은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무너뜨리는 전쟁을 예고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고 우시며 이렇게 예고하셨습니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눅 19:43-44)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눅 21:20)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눅 21:24)
여기서 이방 군대는 로마 군대인데, ‘군대들’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예루살렘 함락을 위해 동원된 로마 군단은 5, 10, 12, 15군단의 연합군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동쪽으로 기드론 골짜기가 있고, 남쪽으로는 힌놈 골짜기가 깊이 형성되어 있는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그런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기 위해 로마 군대는 흙과 돌로 북서쪽 구석, 북쪽, 그리고 서쪽에 토성을 쌓아 올렸습니다.
토성을 쌓아 공격하는 전략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함락 이후 피신하여 끝까지 항거했던 마사다 전투에서도 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마사다는 유대 광야 동쪽에 해발 450m로 우뚝 솟은 천혜의 요새였는데, 로마 군대는 마사다의 험난한 지형 때문에 3년 동안 고전한 끝에, 마사다를 공략하기 위한 거대한 토성을 산의 서쪽에 쌓아 올려 마침내 안식일에 마사다를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는 달리 요한계시록 12장은 악한 사탄의 세력이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는 현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하늘’이란 표현이 무조건 하늘의 영적 전쟁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계 12:1)
요한계시록 12장의 무대가 여기서 ‘하늘’로 소개되지만, 이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늘(Heaven)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태양이 떠오르는 하늘(sky)도 아닙니다. 이 하늘은 지상의 교회를 상징하는 여인이 있는 무대이자 묵시문학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처럼 계시가 펼쳐지는 세계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새로운 계시의 내용이 펼쳐질 때 ‘하늘에 ~이 보인다’와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는 표현인 것입니다.
반면 12장 7절에 일어난 전쟁은 하나님이 계신 천상에서 일어난 사탄과 미가엘과의 영적 전쟁이며, 이 전쟁에서 사탄은 패배하여 이 땅에 내쫓기게 됩니다.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계 12:7-9)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계 13:6)
여기서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은 지상의 교회를 뜻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을 믿는 사람들이며,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거하는 장막인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하늘’은 이처럼 문맥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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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주님은 언젠가 반드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날까지 우리는 신실하게 믿음을 지키며 주님이 주신 사명대로 살아가야겠습니다. 매일 주님이 주신 그날의 복을 누리고 그날의 사명을 다하면서 그렇게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