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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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이하 SNS)'라는 것을 많이 사용합니다. SNS는 사용자 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 정보의 공유, 그리고 인맥 확대 등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강화시켜주는 인터넷 상의 교류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이러한 서비스들이 너무 많지만, 그 중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페이스북(Facebook)과 트위터(Twitter)입니다. 저도 몇 년 전부터 이 두 서비스의 계정(account)을 만들었는데, 페이스북을 통해서 오래 전 헤어졌던 친구들이나 선후배들과 인터넷 상으로 나눔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트위터는 페이스북과 좀 다른데, 자신이 따르고(follow) 싶은 사람들을 지정하면 딱 그 사람들의 글만 보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따르겠다고 신청한 사람들 중 특히 관심을 가지고 보는 두 명이 있습니다. 둘 다 한국에서 꽤 알려진 사람들인데, 한 명은 소위 우파 논객이고 다른 한 명은 좌파 논객입니다.
이 두 사람이 올리는 글들을 읽다 보면 참 신기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어떻게 그렇게 관점이 다른지, 정말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대통령 선거에 대한 평가라든지 최근 개성공단 사태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다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글을 읽으며 많은 것을 느끼고 또 배웁니다.
그들이 서로 완전히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각자 마음에 들어 있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두 명뿐만 아니라, 가만히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이 마음속에 들어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내용을 들으면 좋아하고, 자기가 가진 생각과는 반대가 되는 내용에는 거부감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이것이 정말 사실인가 아닌가를 잘 살펴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내 맘에 드는가 안 드는가에 따라 좋고 나쁘고를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수많은 오해와 오류들이 발생합니다.
사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에 대하여 정확한 정보를 파악해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진리를 찾는 어려운 과정은 생략한 채, 그냥 자기 마음에 드느냐 안 드느냐로 판단해버립니다. 결국 어떤 사건이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사실(fact)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자기가 느끼는 대로(perception) 판단을 해버립니다.
동물들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어떤 사건에 대한 반응이 아주 단순하며 오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같은 사건이라도 자기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머리가 커서 고민이야."'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머리가 크시네요."라고 하면 화가 나고 그 사람이 보기 싫어집니다. 그런데 "내가 똑똑한 것은 아무래도 머리가 커서 그런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데 누군가가 "머리가 크시네요."라고 하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그 사람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그렇게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는 틀을 깨지 않는다면, 살아가면서 계속적으로 오해와 다툼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무엇이 사실이고 진리인지 정확하고 객관적인 탐구의 과정을 거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매일 기도와 성경말씀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QT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매일 그분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살 때, 어떠한 외부의 자극이 내게 오더라도, 올바른 판단을 내릴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