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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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국의 Father’s Day인데, 저에게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맞이하는 첫 번째 아버지 날입니다. 두 주 전쯤인가, Father’s Day가 다가오니 예년처럼 미리 카드를 사 놓고 써서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는데, 이내 아차, 이제는 아버지가 안 계셔서 보낼 수 없구나.’ 하는 생각에 미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작년 11월 말 95세로 이 땅을 떠나 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그 전까지 꽤 건강하셨지만 마지막 10개월 정도는 몸에 염증이 생기면서 고생하셨고, 그것이 패혈증으로 발전하면서 결국 회복되지 못한 채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작년 10월 위독하셔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찾아뵈었지만 패혈증과 노인성 기억상실증으로 저를 알아보지 못하셨던 점입니다. 얼마 후 시카고에 사는 동생이 찾아뵈었을 때도 알아보지 못하셨습니다. 그래도 살아 계실 때 가서 뵐 수 있었던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그때 못 뵈었더라면 계속해서 후회가 남았을 뻔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살아 계실 때 뵐 수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지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던 강원도 평창 출신이셨습니다. 지금은 유명해지고 좋아졌지만 옛날에는 완전히 두메산골이었던 평창에서 태어나신 아버지는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고아가 되어 친척 집에서 자라셨습니다. 그러다 직업군인이 되셔서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 대령으로 예편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논산 훈련소인 연무대 참모장으로 계셨을 때 저는 대여섯 살 정도로 어렸지만 그래도 그때 일들이 꽤 많이 기억납니다. 군인아저씨들이 열심히 훈련받고 있을 때 훈련소 안의 수영장에서 저 혼자 튜브 타고 수영하던 기억, 훈련소장 장군님의 자녀인 형 누나들과 같이 놀던 기억, 여러 부하 군인들과 함께 군대 지프차를 타고 계곡에 가서 물놀이를 하던 기억, 참모장 관사 내 군인들이 기거하는 방에 가면 항상 아저씨들이 만화책을 보고 있었는데 저도 같이 빌려 보던 기억, 그런데 그 방에만 다녀오면 담배 냄새, 땀 냄새, 발 냄새, 총각 냄새가 섞인 군인냄새(?)가 베어오기 때문에 어머니가 다시는 그 방에 가지 말라고 야단치시던 기억 등등...

 

전역하시고 회사를 다니시던 아버지는 공휴일만 되면 가족들을 놀이동산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당시 주로 가던 곳이 창경원이나 어린이대공원이었고, 나중에 생긴 용인자연농원에도 몇 번 갔습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경복궁에 저와 동생을 데리고 다니시며 사진을 많이 찍으셨습니다. 한 번은 계속 저에게 거기 서보라고 하시며 사진을 찍으시는데 저는 그게 귀찮아서 나무 뒤로 숨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도 찍으신 사진이 남아 있어서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납니다.

 

중학교 이후로는 아버지와 많이 다니지 않아서 꼽을 만한 기억이 별로 없지만 한 가지가 생생히 기억납니다. 아버지는 늦은 나이에 결혼하신 데다 첫 아들인 저를 40세가 되어서야 보셨기에 그만큼 회사 정년도 다른 아버지들보다 빨리 와서 제가 겨우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 정년퇴직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어렸지만 그래도 장남이라고 거실에 불러 앉게 하시고는 집안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시면서 네가 장남이니까 알고 있으라고 알려주는 거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고 너는 열심히 공부만 하면 돼. 알겠지?”라고 말씀해주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저도 아들을 키우면서야 아버지가 그때 겨우 열네 살짜리 아이였던 저를 인격적으로 대해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날인 오늘, 평소엔 무뚝뚝했지만 늘 정직하게 사셨던 아버지의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많이 생각나고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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