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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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큐티(QT) 본문이 마태복음인데, 5~7장을 소위 ‘산상설교’ 또는 ‘산상수훈’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이 산 위에서 행하신 설교로,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나타내는 삶의 원리들과 특징들을 가르쳐주시는 너무나 귀한 말씀입니다. 어제 마태복음 5장 말씀으로 큐티를 하다가 특히 이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마태복음 5:43-45, 새번역)
이 말씀을 묵상하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왜 하나님은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똑같이 해를 주시고 비를 주실까? 선하고 의로운 사람에게만 주시면 안 되나? 악하고 불의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셔야 마땅한 게 아닌가?’
그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가만 있자,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선한 사람과 의로운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잖아? 모든 사람이 다 악하고 불의한데도 해와 비를 내려주시는 거구나!’ 그랬습니다. 내가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라서 해와 비를 주시는 게 아니라, 내가 악하고 불의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으니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왜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라고 하셨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랑을 베풀고 기도를 해주는 대상은 원수가 아니라 이웃입니다. 원수에 대해서는 미워하고 저주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이웃에게 하는 일을 원수에게도 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가장 악한 매국노로 비난받던 세리라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도 자기 형제자매들에게는 인사할 줄 안다고 하십니다(마 5:46-47). 다시 말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을 구분하고 또 자기 형제자매와 타인을 구분하여,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특징이지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면,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입니다. 결국 사람들을 보며 이웃이나 원수로 구분 짓는 일 없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이웃으로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삶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나에게 못되게 구는 사람, 나를 괴롭히는 사람, 나를 욕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을 미워하고 저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랑해주고 기도해줄 때,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이라고 하십니다.
지금 세상은 사람들을 이웃과 원수로 구분하여 서로 차별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똑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 차별과 미움과 증오의 고리를 끊으시고 참 사랑과 용서와 희생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도 사람들을 이웃과 원수로 구분하여 차별하는 일 없이, 모두 다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