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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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설교 본문 바로 뒤에 있는 본문(눅 1:46~55)을 ‘마리아의 노래’라고 부르는데, 이 노래는 비천한 여종인 자신에게 큰일을 행하신 하나님에 대한 찬양입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이러한 마리아의 노래에 근거한 신학의 핵심 주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낮추시고 낮은 자는 들어서 높이신다.’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노래(삼상 2:1~10)도 마리아의 노래와 같은 주제입니다. 두 노래에서 모두 높은 자는 낮아지고 낮은 자는 높아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전이 일어납니다. 바로 이런 것이 마리아의 노래 신학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성경을 보면 마리아의 노래에 해당되는 내용이 많이 발견됩니다. 그 중 하나가 아이를 못 낳는 여자들을 통해 우여곡절 끝에 믿음의 사람들이 태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믿음의 어머니들의 불임성 신학’입니다.
구약시대 당시 아기를 못 낳는 여인들은 저주받았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비참한 여인들이 절망할 때 하나님이 태를 열어주셔서 믿음의 사람들이 태어났습니다. 사라, 리브가, 라헬, 마노아의 아내, 한나, 엘리사벳 등을 보십시오. 이 여인들 모두 아이를 못 낳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마침내 믿음의 인물을 낳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장자보다 둘째나 막내를 들어 쓰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 또한 ‘둘째 아들 신학’이라고 불립니다. 옛날에 장자는 재산 분배 시 다른 형제들의 두 배를 상속받으며 크게 인정받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세상에서 인정받는 장자보다 오히려 둘째나 막내 등 낮은 자를 들어 쓰실 때가 많습니다. 가인보다 동생 아벨을 기뻐하셨고, 에서가 아니라 동생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요셉도 열한 번째 아들이었고, 그의 아들들도 므낫세보다 동생인 에브라임이 더 크게 되었습니다. 형 아론이 아니라 동생인 모세가 지도자로 쓰임 받았고, 다윗도 여덟 아들 중 막내였습니다.
‘히브리’라는 단어도 마리아의 노래 신학입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어원이 있는데, 하나는 ‘하비루’이고 다른 하나는 ‘입부르’입니다. ‘하비루’는 바벨론에서 인간 축에도 못 들어가는 천민 노동자를 가리키는 말이고, ‘입부르’는 이집트의 채석노동자 또는 큰 돌을 운반하다가 깔려 죽는 사람, 혹은 광야에서 헤매는 비천한 유목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스스로를 가리켜 그렇게 비천한 계층인 히브리인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것이 마리아의 노래 신학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 자체가 마리아의 노래 신학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의 왕이시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아주 연약한 어린 아기로 오셨고, 그것도 비천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예수님을 높이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번 성탄절은 코로나 사태 때문에 이전에 비해 들뜨거나 흥겨움이 덜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노래 신학이라는 성탄절의 본래 의미를 기억한다면, 지금 코로나로 인하여 많은 제약을 받는 이 상황을 통해, 오히려 낮은 자를 높이시는 역전의 하나님을 더욱 생생히 체험하게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 기간에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 앞에서 매일 신실하게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시는 날을 반드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