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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0일 수요예배
✦ 나는 믿는다 – 사도신경 4 ✦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장 14~18절)
[들어가는 말]
오늘은 사도신경에 나오는 열두 개의 ‘나는 믿는다’라는 고백 가운데 두 번째 고백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 고백은 성부 하나님에 대한 첫 번째 고백에 이어서 나오는 성자 예수님에 대한 여섯 개의 신앙 고백 가운데 첫 번째 것입니다.
사도신경의 주된 내용은 바로 ‘성자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백입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다 보면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에 대한 것은 각각 하나밖에 없는데,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내용은 아주 많은 것을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성자 예수님이 삼위 하나님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분이어서가 아니라, 사도신경을 고백해야만 했던 그 당시에 성자 예수님에 대한 미혹과 공격이 가장 심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신앙을 흔들고 무너뜨리기 위해 악한 세력이 공격하는 주요 포인트가 성자 예수님에게 집중되어 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옛날만이 아니라 지금도 그렇습니다.
성자 예수님에 대한 여섯 개의 신앙 고백 가운데 첫 번째에 해당하는 이 두 번째 고백 안에는 뒤이어 나오는 다섯 가지 고백에 해당하는 아주 중요한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자 예수님에 대한 기본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고백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절대적인 신앙 고백입니다.
1.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함
우리는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습니까?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인이 되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거듭남을 경험한 후 천국 백성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서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들어 있는 핵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3가지입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
2천 년 전,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주전 4년경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나사렛에서 성장하신 분, 나사렛 예수라고 일컬어지는 그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요한에게 세례받으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제자들을 세우시고 훈련하시고, 그러다가 잡혀서 고난당하신 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바로 그 예수를 말합니다.
2) 그리스도
그 예수가 구약에 그토록 많이 예언되었던 메시아라는 고백입니다. 메시야는 히브리어이고 그리스도는 헬라어로, 둘 다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말하는데, 그것이 자기들을 구원하실 구세주를 의미하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때에 이 땅에 친히 보내신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호칭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가 이름이고 그리스도가 성인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사도들이 했던 고백의 핵심입니다. 물론 사도신경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3) 주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고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 고백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이라 해도, 그 구원의 역사가 우리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구원의 역사와 은혜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시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건 안 됩니다. 오직 이 한 가지, 나의 주님이셔야 합니다. 아버지의 주님, 어머니의 주님, 할머니의 주님, 아들딸의 주님, 배우자의 주님이 아니라 ‘나의 주님’이셔야 합니다.
다시 말해, 그분과 내가 서로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저분’이 아니라 ‘나의 주님’이셔야 합니다. 그분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면 나는 그분의 종이라는 관계 말입니다. 그래야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로 내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구원받았다고 하면 ‘영의 구원’만 생각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땅에서의 구원, 받는 구원, 성화의 과정, 혼의 구원도 구원인데 많이 생각을 안 합니다.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이 땅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을 밟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산다면 예수님을 온전히 주님으로 모시고 있지 않은 겁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받고 천국에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이 땅에서는 천국을 살지 못합니다. 나의 주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인 노릇을 하면 삶이 복잡해지고 염려와 불안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나의 주인이셔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얼마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느냐가 소위 믿음이 좋으냐 아니냐를 판가름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면 나는 그분께 순종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믿음이 좋은 게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마치 보험을 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보험이 있는데 모든 것을 다 커버합니다. 그래서 ‘야, 저 보험은 정말 좋다.’ 하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 가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 아무 혜택이 없습니다. 가입해야 혜택이 있습니다. 아무리 그 보험이 좋아도 내가 그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야 그 보험의 혜택이 나에게 주어집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고백은 모든 것을 커버하는 보험을 가진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바로 그 보험에 가입하는 것입니다.
종합해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는 고백은 성자 예수님에 대한 기본적인 고백이면서 동시에 사도신경 전체의 핵심 가운데 핵심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반드시 한 번은 해야 할 고백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았어도 삶에 이 고백이 없다면, 그의 삶은 결국 사망과 지옥으로 끝나고 마는 실패일 뿐입니다. 이 고백의 유무에 따라 사람의 구원이 결정되기에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사도신경을 고백하면서 이것을 고백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혹시 고백을 안 했을까 봐 불안해서 확인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고백한 사람으로서 그 구원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2.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사도신경은 두 번째 고백으로 성자 예수님에 대해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고백을 하면서 그 앞에 한 가지 사실을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분이 ‘그의 유일하신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개정되기 이전에는 ‘그 외아들’이라고 번역했고, 우리에게 익숙한 한자 표현은 ‘독생자’입니다.
먼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독생자’라는 표현은 은유(analogy)라는 것입니다. 인간 세계와 똑같이 성부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성자 예수님이 아들이라는 게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신성과 그 역사하심에 대해 우리가 부분적이지만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에서 사용한 은유입니다.
가끔 이런 걸 물어보는 분이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계시는데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그럼 성령은 어머니이시냐?’ 그것은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버지와 아들로 표현한 것이지, 진짜 아버지와 아들이 아닙니다. 동등한 관계입니다. 우리가 이해하도록 그렇게 표현해주신 것입니다.
오래전 한 신앙 잡지에 한 남자 집사님이 자기 아버지를 전도한 내용의 글이 실렸습니다. 이분은 유교적 전통이 강한 경상도 시골에서 태어나 성장한 후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로 오게 되었는데, 대학에 와서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했던 것은 아니고 그냥 다니는 정도였는데, 믿음이 좋은 아내를 만나면서 신앙이 더 깊어졌고, 또 교회에서 제자 훈련을 받으며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고 보니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으셔야 한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분의 기도 제목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전도하는 것이었는데, 특히 유교적인 전통에 깊이 빠져 있는 아버지를 전도하는 것이 너무나 절실했습니다. 하지만 아주 완고한 아버지를 전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별로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말씀을 배운 대로 기도하면서 계속 전도한 결과 놀랍게도 부모님이 드디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완강하게 거부하고 끈질기게 버티시던 아버지였지만, 아들과 며느리와 손주들의 지속적인 기도와 전도로 결국은 마음을 열고 어느 날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고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너무 감사하고 꿈만 같았던 어느 날, 시골 고향 집에 방문한 집사님은 아버지의 솔직한 질문에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때가 명절이어서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제사가 아닌 예배를 드리고 식사하는데, 그동안은 아들이 기도하다가 이번에는 아버지에게 기도를 부탁드렸다고 합니다. 그것이 성경적이니까 해 달라고 하면서 그렇게 부탁했습니다. 처음에는 못 한다고 하시던 분이 성경적이라는 말에 결국 허락하시고는 많이 고민하면서 나름 준비하시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을 조용히 부르더니 질문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 네가 기도하는 것을 들어 보니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던데, 그러면 나는 ‘하나님 형님’이라고 해야 하냐?” 하고 물으시더랍니다. 농담이 아니라 유교 전통에서 족보와 촌수에 밝으셨던 분이라 정말 고민스러워서 물어 온 질문입니다. 그때 그 집사님은 아버지의 신앙이 너무 귀하고 순수하게 느껴져서 눈물이 날 만큼 감사했다고 합니다.
성자 예수님을 ‘그의 유일하신 아들’, 즉 ‘독생자’나 ‘외아들’이라고 한 것은 은유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된 은유가 아니라, 우리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도록 돕기 위해 구체적으로 제시된, 너무나도 중요한 은유입니다. 실제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온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하늘 아버지께서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였다.” (마 3:17, 새번역)
이때 성령께서도 비둘기처럼 내려와 임하셨고, 그 후 성자이신 예수님은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하고 예배하고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설명을 위한 은유가 아니라, 실제적인 진리를 나타내고 실행하기 위한 은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그의 유일하신 아들’이라는 은유를 신앙 고백으로서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도 강조했지만,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 단순히 ‘성자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고 높이기 위해 드리는 신앙 고백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셔. 정말 대단해.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위치에 계신 분이야.’라고 하는 것은 맞는 생각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높이고 인정해 드려야만 영광 받고 만족해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다만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면서 ‘그의 유일하신 아들’이라고 선포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우리에게 주신 너무나도 중요한 메시지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유일하신 아들(독생자)에 대한 말씀에는 여러 가지의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바로 그 두 가지 의미가 사도신경의 신앙 고백 안에 들어 있습니다.
1)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4절)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즉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없어서 구원받을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친히 들어오셨습니다. 이것은 역사상 딱 한 번 일어난 일입니다. 이것을 강조한 말씀이 18절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8절)
그러면 성경은 왜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을 말하면서 계속 ‘독생자’, 즉 ‘유일하신 아들’임을 강조합니까? 그것은 바로 속이고 미혹하는 자들 때문입니다. 1세기 당시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시지 않았다고 미혹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일 4:1-3)
그 당시에는 자기가 ‘예수’라고 미혹하는 악한 자들도 많았습니다. 교회사를 보아도 이단의 가장 많은 유형이 바로 이 성자 예수님을 사칭하고 왜곡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직접 이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23 그 때에 누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보시오, 그리스도가 여기 계시오’ 혹은 ‘아니, 여기 계시오’ 하더라도, 믿지 말아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서, 큰 표징과 기적을 일으키면서, 할 수만 있으면, 선택받은 사람들까지도 홀릴 것이다.” (마 24:23-24, 새번역)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단들은 다 예수님을 사칭합니다. 신천지, 안상홍 하나님의교회, JMS와 같은 것들이 다 그런 부류입니다.
제가 미국에 와서 대학에 편입하여 유학생과 룸메이트를 했는데, 그는 한국에서 교회를 안 다녔지만 JMS 교회에 누군가의 인도로 몇 번 가보았다고 합니다. 하루는 모임에 갔는데 거기 리더라는 사람이 와서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니?” 마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하신 것과 비슷합니다. 이단들은 이렇게 예수님을 자꾸 흉내 내려고 합니다.
이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진짜 성자 예수님을 사칭한 가짜 사이비이기 때문인 동시에, 그렇게 해서 신앙인들의 영혼을 도둑질하는 악한 것들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진짜냐 가짜냐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생명을 도둑질하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 영혼이 다 피폐하고, 몸까지 황폐해집니다. 집안도 무너집니다.
그렇기에 사도신경에서 ‘그의 유일하신 아들’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 악한 것들이 감히 찝쩍거리거나 간을 볼 수 없도록 신앙을 고백할 때마다 아주 분명하게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독생자’라는 단어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당신의 외아들을 매달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독생자라는 말은 바로 그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외아들은 부모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부모 자신들보다 더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엄청난 시험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를 넘어뜨리려 하신 것이 아니라, 그에게 그런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리아 산에서의 사건을 진행하면서 이미 갈보리 산에서 당신의 외아들을 죽이면서 우리를 구원하실 그 은혜를 언약으로 선포하셨습니다. 당신의 외아들을 대신 죽게 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다시 한번 온전히 누리는 것이 바로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을 하는 사람은 외로울 수 없습니다. 이 고백을 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버림을 받지 않습니다. 이 고백을 하는 사람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이룬 것이 없어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고 그 누구보다 존귀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고백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행복해야 합니다. 아니,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그의 유일하신 아들, 독생자’에 담긴 비밀입니다.
이 단순한 믿음의 고백은 세상의 복잡하고 교활하고 어려운 것들을 이기면서 우리가 천국의 삶을 살게 하는 영적인 능력이고 무기이며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장 강력한 고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는 고백을 끝까지 흔들리지 말고 힘 있게 선포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악한 것들이 물러갑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파워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어떤 상황에서도 이 고백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를 선포하며 나아가기 원합니다. 이 고백을 어떤 상황에서도 선포하며 나아갈 때 이 땅에서 하늘 복을 누리며 이 복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존귀한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