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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19일 수요예배

나는 믿는다 사도신경 2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창세기 171~8)

 

[들어가는 말]

 

사도신경은 하나님에게 드리는 우리의 신앙 고백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고백 형식으로 된 선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분들은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눈을 감지 않습니다. 기도가 아니라 신앙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라틴어로 된 사도신경의 원문을 보면 크레도(Credo)’, 나는 믿는다!’(I believe!)로 시작하는데, 그 느낌이 아주 강력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는이라고 하지 않고 나는이라고 고백합니다. 물론 이것은 교회의 신앙 고백이지만, 각자 이 고백을 해야 하는 것이지 우리는이라고 하며 다른 사람에게 묻어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은 이렇게 크레도(Credo)로 시작해서 마지막은 아멘(Amen)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고백이면서 동시에 선포입니다. 이것을 단순히 신앙 고백이라고 하면, 이 고백을 듣는 대상은 하나님한 분밖에 안 계십니다. 그러나 이것을 선포의 의미가 담긴 고백이라고 하면, 이 고백을 듣는 대상은 실제로 네 부류가 있습니다.

 

1)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

2)  사탄

3)  고백하는 사람 자신 (의심하고 흔들리는 마음)

4)  다른 사람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사도신경은 바로 이들 모두가 듣는 신앙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는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해야 합니다.

 

 

1.   하나님 아버지를 고백하는 신앙

 

사도신경의 열두 개 고백 및 선포 가운데 첫 번째는 성부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고백입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이 고백을 잘 보면 두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전능하신이고, 또 하나는 천지의 창조주입니다. 사도신경은 성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서 많은 것 중에 단 두 가지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부 하나님이 이러한 두 가지 내용으로 다 설명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세상에서 올바른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반드시 붙들어야 할 성부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라는 의미입니다.

 

간혹 신앙인들이 영적인 진리를 이야기할 때 그 영적 진리 전체를 다 설명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신학자들이 그렇습니다. 신학자들끼로 논쟁을 벌일 때 보면 아주 치열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미리 인정하고 들어가야 하는 사실은, 영적인 진리를 다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에 대해 완전하게 파악한 것처럼 말하려 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오류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순간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크고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주 잘못된 마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진리에 대해, 특히 하나님에 대해 결코 다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다 알 수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교만입니까? 다만 우리는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것, 즉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계시해주시고 알게 해주시는 만큼만 알게 되고, 그것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 고백입니다.

 

신학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Theology’인데, 이것은 테오스’(Theos, 하나님)로고스’(Logos, 학문, 이론)가 합쳐진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테오스를 주어로 볼 것인가, 아니면 목적어로 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테오스를 목적어로 생각해서 신학은 하나님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연구해서 그분을 알고 파악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보다 더 크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 큰 존재가 작은 존재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이지, 작은 존재가 더 큰 존재를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다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개미가 인간을 다 파악했다고 하는 것보다 더 교만한 말이 됩니다. 이처럼 신학을 하나님을 연구하는 학문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따라서 테오스는 목적어가 아니라 주어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신학이란 단순히 하나님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려주신 학문, 하나님이 계시해주신 학문인 것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당신에 대해, 영적인 진리에 대해 알려주신 것, 그것이 바로 신학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계시라는 말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시는 헬라어로 아포칼립시스인데, 이것은 아포’(~로부터 벗겨 냄)칼립토’(덮다, 가리다)라는 말의 합성어인 아포칼립토에서 파생한 명사입니다. 이것을 말 그대로 직역하면 덮개를 벗겨 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덮개를 벗기고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비밀스러운 것을 보게 하는 것이 바로 아포칼립시스즉 계시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덮개를 누가 벗기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 덮개를 인간인 누군가가 벗겨 보겠다고 하면 그것이 바로 이단입니다. 그런 사람은 교만의 죄악에 빠진 것입니다. 계시에 있어서 그 덮개를 벗기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만큼만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인정하고 하나님이 열어 주신 것을 보려고 애쓰며 나아가는 것이 바른 신앙의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의 성부 하나님에 대한 두 가지 고백도 그것이 하나님의 모든 것이어서 그렇게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성부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고백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의 첫 부분을 고백할 때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고백해야 합니다.

 

 

2.   전능하신 하나님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성부 하나님에 대한 두 가지 고백 중 첫째는 바로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오늘은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고, 다음번에는 천지를 만드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은 과연 어떤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엘 샤다이’(El Shaddai; God Almighty, 전능하신 하나님)를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러 가지를 소개합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때마다 새로운 이름이 생겨날 만큼 성경에는 그분의 이름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엘 샤다이라는 이름이 아주 특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백이 될 만큼 특별하고도 중요한 이름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들과 언약을 맺을 때 드러내신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1-2)

 

성경에는 엘 샤다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중요한 이름이 처음으로 기록된 곳이 바로 오늘 본문 창세기 171절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새롭게 강조하시는 순간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99세가 되었는데, 그가 75세였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처음 언약을 맺으시고 24년이 지난 후입니다. 그 언약이 깨어질지 모르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이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언약을 새롭게 확인시켜 주시면서 하나님 자신을 직접 소개하신 이름이 바로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입니다.

 

엘 샤다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언약을 맺는 것과 관련된 이름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언약을 맺게 될 때,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에게서 누군가가 언약을 받음으로써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 될 때, 바로 그 순간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엘 샤다이’, 즉 전능한 하나님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언약이 주어지면 그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지지만, 중요한 것은 그 언약이 이루어질 때까지 언약을 받은 사람은 믿음으로 그 언약을 붙들고 있어야 하기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주신 언약이 반드시 이루어질 줄 알고 기다리는 바로 그 믿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음으로 기다리려면 언약을 주신 하나님이 엘 샤다이’, 곧 전능한 하나님이신 것을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그것을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그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은 아브라함이 언약을 받고 24년이 흐른 시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자손을 주겠다고, 땅을 주겠다고, 복이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계속 하나님만 믿고 따라왔는데, 땅이 생기거나 자기가 세상 민족들에게 자기가 복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제 99세라는 나이는 인간적으로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한 사실을 말해주고, 특히 아내 사라는 경수도 끊어진 상황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면서 믿음이 흔들리려는 때에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엘 샤다이’, 곧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이 엘 샤다이(전능한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주셨던 언약을 확인해주십니다.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4-5)

 

지금까지 그의 이름은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이었는데, 이제는 아브라함(많은 무리의 아버지)으로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정말 엄청난 약속입니다. 자식이라고는 서자인 이스마엘밖에 없는데,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주실 뿐 아니라 엄청난 후손들이 나올 것이라고 하십니다.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6-8)

 

이렇게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제 안 된다고 여겨질 때, 믿음이 흔들리려 할 때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엘 샤다이’, 곧 전능한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엘 샤다이의 신앙 고백 없이는 언약의 성취까지 제대로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을 잘 보여 주는 찬양이 바로 우리가 조금 전에 불렀던 <주님은 산 같아서>(김준영 작사, 임선호 작곡)입니다.

 

      안개가 날 가리워 내 믿음 흔들리려 할 때

      나 주님께 나아가네

      주님은 산 같아서 여전히 그 자리에 계셔

      눈을 들면 보이리라 날 위한 그 사랑

 

      주는 나의 도움이시며 주의 계획 영원하시네

      주의 위엄 앞에 믿음으로 순종의 예배드리리

      주님께서 날 이끄시며 주가 항상 함께하시네

      주의 사랑 안에 믿음으로 순종의 예배드리리 영원히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 그때 버티고 이기고 끝까지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바로 그 순간에도 산같이 버티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엘 샤다이에서 샤다이라는 말은 산을 뜻하는 아카드어 사두’(Sadu)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엘 샤다이는 바로 산의 하나님, 산 같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시편 121편의 고백 그대로입니다.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121:1-2)

 

우리가 흔들리려 할 때, 어려움을 만나서 도움이 필요할 때, 산 같이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서 계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3.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I am nothing)라는 믿음으로

 

이 언약의 믿음으로 엘 샤다이를 고백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언약이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인데, 그 관계가 제대로 맺어지려면 하나님은 반드시 전능하신 분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인간이 죄를 범할 때부터 그 죄의 근본은 바로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 것’(Hybris, 휘브리스)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을 때의 인간의 마음의 중심에는 그것을 따 먹고 눈이 밝아져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악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악을 판단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가 기준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조금 전 신학계시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바로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전능하다는 교만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가장 악한 죄가 바로 그것입니다.

 

만들어놓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보다 더 악한 것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우상 숭배 중에서도 최고로 악한 자기 스스로 우상이 된 자기 숭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사람이다.’라는 고백에서 시작합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신앙에 관한 짧은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글을 쓴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를 돌아보던 중 너무나도 피곤하고 힘들고 지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왜 갈수록 힘들고 어려운지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삶을 돌아보니 그동안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너무 애쓰면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외모를 꾸미는 일부터 다른 사람의 SNS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까지, 온통 사람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보여 주고 확인받기 위해 애쓰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상처받고 자기에게 실망하며, 지치고 피곤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글을 올린 사람은 신앙인답게 그 초점을 과감히 주님 앞으로 돌리고 그분에게만 나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진정한 평강과 자유를 얻는 너무나도 귀한 메시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붙들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더 이상 지치거나 피곤해지지 않게 해주는 메시지, 믿음으로 바르게 설 수 있게 해주는 너무나도 중요한 메시지를 자기 글의 제목으로 올려놓았는데, 그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I am nothing but God is everything!”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전부이시다.)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에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전부이십니다.’라는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하는 순간 다음 네 가지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1)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2)  대적 마귀의 모든 악한 계략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실패한다.

3)  우리의 내면, 즉 속사람은 자유와 평안을 누린다.

4)  우리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이런 모습에서 은혜와 도전을 받는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바로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나는 믿습니다라는 이 고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기본 중에 기본이 바로 이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상황이 더 커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릴 때, 나의 자아가 너무나 강하게 주장하며 판단하려고 할 때, 그렇게 흔들리고 의심되고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움켜쥐고 싶을 때, 이렇게 고백하며 선포해 보십시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신앙 고백을 하며 나아갈 때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한 손으로 붙들어주시며 형통한 길로 인도해주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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