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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12일 수요예배

나는 믿는다 사도신경 1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히브리서 1019~25)

 

[들어가는 말]

 

지난 20203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위기의 때를 맞이했는데, 이제 많이 좋아지고 거의 끝나가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코로나 기간 중 미국에서도 그랬지만, 특히 한국은 나라 차원의 방역 조치로 인해서 자유로운 모임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교회가 큰 위기를 맞이했었습니다.

 

그런 중에 좋은 점도 있었는데,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거품이 너무 많이 끼었다고 하는 반성의 목소리들이 많이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신앙의 핵심, 믿음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믿음의 기본을 우리에게 잘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2천 년의 기독교 역사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지고 고백되는 신앙 고백입니다. 이것이 가톨릭교회의 신앙 고백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16세기 종교 개혁을 일으켰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나 장 칼뱅(Jean Calvin)도 자신들의 교리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기며 강조했던 신앙 고백이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은 우리의 믿는 도리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도신경을 매주 고백하면서도 이것이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도신경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언젠가 사도신경으로 말씀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제가 존경하는 유진소 목사님이 1년 전쯤 사도신경에 대해 제가 딱 원하던 스타일의 책을 내셨습니다. 그 제목이 바로 <나는 믿는다>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가지고 오늘부터 14번에 걸쳐 사도신경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사도신경이란 무엇인가

 

먼저 생각해볼 것은 사도신경이라는 이름입니다. 이것을 왜 사도신경이라고 부릅니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신경’(信經)이라는 말의 의미를 먼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어떤 비판자들의 주장처럼 성경’(聖經)’()과 같은 의미로 쓰인 말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이것이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지기 때문에 사도신경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뭡니까?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우리의 믿는 도리를 고백한다는 면에서 신경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사도신경을 영어로 ‘The Apostles’ Creed’라고 하는데, 여기서 ‘Creed’라는 것은 믿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크레도’(Credo)에서 온 것으로서 교리, 신념, 신조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을 우리말로 번역한 신경이라는 것은 신앙 고백혹은 신조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도신경을 다른 말로 하면 사도들의 신앙 고백혹은 사도들의 신조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분명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사도라는 단어입니다. 왜 이것을 사도신경’, 사도들의 신조라고 부릅니까? 이와 관련하여 주후 4세기경 루피너스(Rufinus Tyrannius)라는 사람이 사도신조 주석을 쓰면서 아주 황당한 주장을 펼친 적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해인 주후 70년 이전에 열두 사도가 모여서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자신들이 믿는 믿음의 도리를 정리했는데, 가장 먼저 베드로가 첫 번째 내용을 말하고, 이어서 각 사도가 한마디씩 하면서 사도신경 전체가 완성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사도신경은 열두 개의 나는 믿는다라는 고백으로 되어 있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루피너스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아주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직접 만들었기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이 신앙 고백의 근원과 기초가 바로 사도들이 했던 신앙 고백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도신경의 최초의 근원은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했던 고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6:16)

 

이것은 베드로만이 아니라 모든 사도들의 공통된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잘 보여 주는 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도마의 고백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하지 않아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고 그래서 의심했는데, 일주일 후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만났을 때 이 고백을 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0:28)

 

이처럼 예수님을 향한 사도들의 신앙 고백으로부터 교회의 신앙 고백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 편지를 받는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합니다.

 

“19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0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 21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제사장이 계십니다. 22 그러니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우리는 마음에다 예수의 피를 뿌려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맑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19-22, 새번역)

 

이러한 사도들의 신앙 고백이 초대 교회에서는 세례를 위한 교육과 문답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그 후 많은 문답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중 주후 215년에 쓰인 히폴리투스(Hippolytus of Rome)라는 사람의 <사도적 전통의 문답식 신경>의 내용이 세례 문답의 형식을 아주 잘 보여 주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 되었다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셋째,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회와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습니까?

 

이것이 주후 325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소집된 첫 번째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를 비롯하여 4~5세기의 여러 종교 회의를 거치면서 내용이 정리되다가, 주후 710<텍스투스 리셉투스>(Textus Receptus)라는 문서에 지금의 사도신경과 거의 비슷한 형태로 확정되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가톨릭교회에서 예배를 위한 신앙 고백으로 주로 사용되다가, 16세기 종교 개혁 이후 루터와 칼뱅 등에 의해 교회 안에서 교리 교육을 위한 신앙 고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사도신경에 대한 루터와 칼뱅의 말은 이것이 왜 사도신경이라고 불리는지를 확실하게 알려줍니다.

 

사도신경은 우리나 초대 교부들이 고안해 낸 것이 아니다. 마치 꿀벌들이 온갖 아름다운 꽃에서 꿀을 모으듯이 위대한 사도들이 전해 준 성경의 가르침을 오묘하게 요약한 것으로, 어린이들과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의 유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사도신조는 우리의 구속의 중요한 점들을 간단히 요약하며, 그리스도에 대해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일들을 일일이 분명히 보여 주는 일람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신경이라고 부르지만 그 저자 문제는 전연 고려하지 않는다. 고대 저술가들은 신경을 사도들에게 돌리는 점에서 상당히 의견이 일치했다. 사도들이 공동으로 써서 발표했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전한 가르침을 충실히 수집하며 요약한 것이므로 넉넉히 사도들의 이름을 붙일 만하다고 생각했다. 사도신조가 어디서 유래되었든 교회의 바로 초창기, 즉 사도 시대에 모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그것을 공적 고백서로 인정했다고 나는 확신한다.” - 장 칼뱅(John Calvin)

 

 

2.   우리가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이유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사도신경을 고백합니까?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  교회의 아름다운 연합, 즉 하나 됨을 위하여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3-24)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할 첫 번째 이유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즉 성도들이 연합하기 위해서, 하나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 사도신경은 세례 교육과 문답을 위해 사용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신경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하면서 교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온전히 묶기 위하여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배 중에 이 사도신경을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들 각자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다 같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순간 모두가 서로 하나 되어 연합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각 사람의 상황이나 형편이나 배경이나 개성은 모두 다르지만, 우리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더구나 그것이 처음 크리스천이었던 사도들이 가졌던 바로 그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기에, 우리끼리 서로 온전히 하나가 될 뿐 아니라, 1세기에 예수님과 함께했던 바로 그 사도들과 초대 교회 성도들, 그들의 신앙을 이어온 우리 이전 시대 성도들, 그리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바로 이와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과 하나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우리는 이전 시대 성도들과 지금 세계 곳곳의 성도들과 하나 됨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이 중요하고, 그래서 우리는 사도신경을 계속 고백해야 합니다.

 

 

2)  미혹하는 자와의 영적 싸움에서 이기기 위하여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25)

 

이 구절에도 언급되지만, 우리가 같은 믿음의 고백 아래 하나 된 공동체로 아름답게 서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훼방하는 영적 세력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진리를 왜곡하고 미혹하는 악한 영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이 나오게 된 초대 교회의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단들과의 싸움입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교묘하게 성도들을 미혹하면서 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 그런 악한 세력들을 물리치기 위해 사도신경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단의 미혹과 속임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각자가 믿는 믿음을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행에서 위조지폐를 걸러내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위조지폐가 어떤 것인지를 이론적으로 배우고 직접 손으로 만져보며 익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진짜 지폐를 계속 만지면서 그것의 특징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으면, 돈을 세다가 위조지폐가 섞여 있을 때 바로 찾아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단을 분별하는 방법도 똑같습니다. 이단이 어떤 특징이 있고 무엇을 전하는지 어느 정도 아는 지식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믿는 성경적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배워서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올바른 성경 지식이 이단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줍니다.

 

 

1980년대 초에 서울에 있는 한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교회 출신으로 신학교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 가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아서 온 목사님이 있었는데, 곧 교수가 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분이 한국에 돌아와서 귀국 인사차 자기가 자란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마침 담임목사님이 잠시 출타하셔서 그분은 사무실에서 기다리면서 거기 있던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거기 같이 있던 청년이 들어보니까, 그 신학박사 목사님은 거기 있는 사람들과 자기가 배워온 독일 신학에 대한 견해를 나누는데 그것이 자유주의 신학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신학적으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말이 안 되는 것으로서 일종의 신화화 된 것이며,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도 역시 신화적 요소를 가미하여 성경에 기록한 것이라는 최신 자유주의 신학의 견해를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사무장 집사님과 부목사님 한 분도 그러한 신학적인 견해에 동의하며 자신들이 가진 신학 지식을 가지고 그분에게 동조했습니다. 독일 유학파 출신 신학박사의 세련된 설명 앞에 모든 사람이 다 동조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사찰 집사님도 계셨는데, 이분은 경상북도 안동 근처에 있는 유교마을에서 태어나 겨우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농사를 짓던 분이었습니다. 이분이 청년 시절에 어떤 계기를 통해 예수님을 뜨겁게 만나게 되었는데, 그 후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이사 와 검정고시를 보고 그 교회에서 사찰로 일하면서 이제 막 야간 신학교에 입학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 사찰 집사님과 부인 집사님 모두 신앙적으로 아주 순수하고 점잖은 분들이었고 사람 자체도 너무나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대하거나 함부로 말하지 않는, 정말 안동 양반 같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몸을 부르르 떨면서 아주 큰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선포했습니다.

 

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예수님께서 동정녀를 통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그 말씀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사람의 말에 그렇게 강력한 힘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날 모두가 처음 경험했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강력하게 선포하시자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고, 그 독일 신학박사 목사님도 아니, 저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고하며 꼬리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날 거기 있던 그 청년은 이렇게 느꼈다고 합니다. ‘, 독일 신학박사가 한국 경상도 국졸 앞에서 무참하게 깨졌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함께 고백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영적 싸움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주되고 실제적인 이유입니다.

 

 

3.   사도신경의 열두 가지 신앙 고백

 

사도신경은 열두 개의 나는 믿는다라는 선포로 이뤄져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과 선포가 한 가지이고, 성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과 선포가 여섯 가지입니다. 또한 성령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과 선포가 한 가지이고, 교회와 성도에 대한 믿음의 고백과 선포가 네 가지입니다.

 

1   (성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과 선포)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2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과 선포)

     2-1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2-2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동정녀 탄생]

     2-3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죽음]

     2-4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부활]

     2-5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승천]

     2-6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재림]

 

3   (성령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과 선포)

     나는 성령을 믿으며,

 

4   (교회와 성도에 대한 믿음의 고백과 선포)

     4-1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4-2  죄를 용서받는 것과,

     4-3  몸의 부활과,

     4-4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이 열두 개의 고백은 열두 개의 미혹에 대한 강력한 한 방의 펀치입니다. 가만히 들어와 성도들의 신앙을 흔들고 무너뜨리며 교회를 파괴하려 하는 악한 세력들의 공격에 대응하는 강력한 고백이며 선포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미혹하고 공격하는 악한 것들에 대해 우리가 믿는 바를 이처럼 단호하게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로마제국과 온 세상이 성도들을 무너뜨리고 교회를 변질시키려 할 때마다 성도들은 이처럼 확실한 신앙 고백으로 그 악한 세력들을 물리치며 자기들이 가진 신앙의 본질을 지켜 왔습니다. 바로 이 신앙 고백을 붙들었기에 2천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성경적 신앙이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내려온 것이고, 교회와 성도는 시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동일합니다. 동일한 고백을 2천 년 전이나 지금 우리나 하고 있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교회의 그 신앙이 바로 우리가 갖고 있는 그 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러한 우리의 신앙을 매일 고백하고 선포하며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혹시라도 자기의 믿음이 흔들린다면 사도신경을 계속 암송하고 선포해 보십시오. 이러한 신앙 고백은 우리로 하여금 이 혼란하고 어려운 시간을 넉넉히 이기고 나아가도록 해 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확실한 성경적 신앙의 기초 위에서 사도들과 같이 또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이 이 신앙을 고백하며, 이전 시대 성도들과 지금 세계의 성도들과 같이 이 신앙을 고백하며, 어떤 어려움이 와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강력한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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