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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8일 수요예배

누가 나의 왕인가 9

히스기야: 형통할 때 더욱 조심하라

(열왕기하 201~6)

 

[들어가는 말]

 

히스기야는 남유다의 13(아달랴까지 포함해서) 왕으로, 아하스의 아들이며 25세에 왕이 되어 29년간 나라를 다스린 사람입니다. 열왕기하에서는 그를 아주 훌륭한 왕으로 평가합니다.

 

그는 조상 다윗이 한 모든 것을 그대로 본받아,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다.” (왕하 18:3, 새번역)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들을 통틀어서 정직히 행했다는 평가를 받은 왕은 단 8명입니다. 북이스라엘 19명의 왕들 중에는 0명이고, 남유다에만 8명입니다. 그들은 아사, 여호사밧,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요담, 히스기야, 요시야입니다. 그중에도 다윗의 길로 걸었다는 극찬을 들은 왕은 단 3(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이며, 거기에 히스기야가 들어갑니다. 실제 왕들 순위를 따지면 요시야 다음으로 #2인 사람입니다.

 

히스기야는 영적으로 훌륭했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던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께 질책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평가를 정확히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이 그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훌륭했지만 나중에 실수도 했기에, 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몇 가지 사건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1.   앗시리아의 침공과 하나님의 응답

 

먼저, 히스기야의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는, 그가 유다 왕으로 즉위한 지 6년 만인 31세 때,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일입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동족이지만 르호보암 때 갈라졌는데, 서로 대적할 때도 있었지만 필요할 때는 서로 연합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런 북이스라엘이 일찍이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멸망하는 것을 보면서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은 몹시 놀랐을 것이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 역시 그런 두려움을 안고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4 그는 산당을 헐어 버렸고, 돌기둥들을 부수었으며, 아세라 목상을 찍어 버렸다. 그는 또한 모세가 만든 구리 뱀도 산산조각으로 깨뜨려 버렸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 때까지도 느후스단이라고 부르는 그 구리 뱀에게 분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 그는 주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신뢰하였는데, 유다 왕 가운데는 전에도 후에도 그만한 왕이 없었다. 6 그는 주님에게만 매달려, 주님을 배반하는 일이 없이,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들을 준수하였다.” (왕하 18:4-6, 새번역)

 

히스기야는 성전을 수리하여 우상의 단을 제거하고 성전의 제사를 회복했습니다. 또 백성이 하나님께 첫 열매와 십일조와 감사 예물을 드리도록 하고, 가장 중요한 유월절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에 기쁨이 가득 차고 백성이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대하 30:26-27). 히스기야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다윗 이후에 없었던 큰 복이 유다 땅에 임했습니다.

 

히스기야 시대에 있던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은 앗시리아와의 전쟁입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하나님의 복을 누리던 유다는 어느새 교만해졌습니다. 유다의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도 죄악이지만 당시 강대국 앗시리아로서도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 커지기 전에 밟아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앗시라아의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합니다.

 

“13 히스기야 왕 제십사 년에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올라와서, 요새화된 유다의 모든 성읍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14 그래서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라기스에 와 있는 앗시리아 왕에게 전령을 보내어 말하였다. ‘우리가 잘못하였습니다. 철수만 해주시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앗시리아 왕은 유다의 히스기야 왕에게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요구하였다. 15 그리하여 히스기야는 주님의 성전과 왕궁의 보물 창고에 있는 은을 있는 대로 다 내주었다. 16 그 때에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주님의 성전 문과 기둥에 자신이 직접 입힌 금을 모두 벗겨서, 앗시리아 왕에게 주었다.” (왕하 18:13-16, 새번역)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쳐들어올 때 겁을 먹은 히스기야는 산헤립에게 사람을 보내 요구하는 것을 다 줄 테니 물러가달라고 하자, 산헤립은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히스기야는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과 함께 성전 문의 금과 모든 기둥에 입혔던 금을 다 벗겨 산헤립에게 바칩니다.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산헤립은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고 히스기야를 조롱하며 물러가지 않습니다. 산헤립의 장군 랍사게는 유다 말로 유다 백성에게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고 그의 말을 믿지 말라고 하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33 뭇 민족의 신들 가운데서 어느 신이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자기 땅을 구원한 일이 있느냐? 34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은 어디에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은 또 어디에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져 내었느냐? 35 여러 민족의 신들 가운데서, 그 어느 신이 내 손에서 자기 땅을 구원한 일이 있기에, 주 너희의 하나님이 내 손에서 예루살렘을 구원해 낸다는 말이냐?” (왕하 18:33-35, 새번역)

 

그때 히스기야는 자기의 옷을 찢고 베옷을 두르고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이사야에게 사람들을 보내어 기도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들의 말을 들은 이사야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6 당신들의 왕에게 이렇게 전하십시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앗시리아 왕의 부하들이 나를 모욕하는 말을 네가 들었다고 하여, 그렇게 두려워하지 말아라. 7 내가 그에게 한 영을 내려 보내어, 그가 뜬소문을 듣고 자기의 나라로 돌아가게 할 것이며, 거기에서 칼에 맞아 죽게 할 것이다.’” (왕하 19:6-7, 새번역)

 

그때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은 에티오피아 왕이 자기와 싸우러 나왔기 때문에 그리로 가서 이사야에게 위협적인 내용의 편지를 보냅니다. 이사야는 그 편지를 가지고 성전으로 가서 주님 앞에 펴놓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15 그룹들 위에 계시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만이 이 세상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는 오직 한 분뿐인 하나님이시며,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16 주님,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십시오. 주님, 눈여겨 보아주십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을 전한 저 산헤립의 망언을 잊지 마십시오. 17 주님, 참으로 앗시리아의 왕들이 여러 나라와 그 땅을 마구 짓밟아 버렸습니다. 18 여러 민족이 믿는 신들을 모두 불에 던져 태웠습니다. 물론 그것들은 참 신이 아니라, 다만 나무와 돌로 만든 것이었기에, 앗시리아 왕들에게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마는, 19 주 우리의 하나님, 이제 그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셔서, 세상의 모든 나라가, 오직 주님만이 홀로 주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왕하 19:15-19, 새번역)

 

그 기도 후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말씀을 주시는데, 그 내용을 보면 산헤립의 교만을 통렬히 꾸짖으시면서 그를 비웃으십니다. 그리고 산헤립에 대하여 히스기야에게 이렇게 알려주십니다.

 

“32 그는 이 도성에 들어오지 못하며, 이리로 활 한 번 쏴 보지도 못할 것이다. 방패를 앞세워 접근하지도 못하며, 성을 공격할 흙 언덕을 쌓지도 못할 것이다. 33 그는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이 도성 안으로는 결코 들어오지 못한다. 이것은 나 주의 말이다. 34 나는 내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고, 내 종 다윗을 보아서라도 그렇게 하겠다.” (왕하 19:32-34, 새번역)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날 밤에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서, 앗시리아 군의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쳐죽였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을 때에 그들은 모두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왕하 19:35, 새번역)

 

히스기야가 성전에 엎드려 통곡하고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직접 앗시리아를 물리쳐 주셨습니다. 학자들은 185천 명이 한꺼번에 죽은 이유를 급성 전염병이 돌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하여 앗시리아는 유다에서 물러났고, 하나님을 조롱한 앗수르 왕 산헤립은 암살당해 죽고 맙니다. 그것도 아들들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런 뒤 오늘 본문인 열왕기하 20장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2.   믿음의 수고를 기울이라

 

히스기야는 병들어 죽게 되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구하게 됩니다.

 

그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1)

 

그때에로 시작하는 이 말씀을 유심히 보십시오. 이때가 언제일까요?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또한 가장 큰 적이던 앗수르 왕 산헤립이 죽은 뒤인데, 이것은 히스기야가 왕이 된 지 14, 그가 39세가 되던 해입니다. 그러니까 이 나이는 한창 일할 때이고, 지금은 모든 것이 잘될 때입니다.

 

그의 전성기라고도 할 수 있는 때인데, ‘그러한 때에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립니다. 병석에 누워 있는 히스기야에게 선지자 이사야가 찾아오는데, 이사야는 희망의 소식이 아니라 당신은 죽을 것이니까 당신의 집을 정리하십시오.”라고 합니다. 히스기야로선 실망스럽고 화가 났을 것 같습니다. 아파서 누워 있는 사람에게 힘내라고 위로해 주지는 못할망정 이제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라니, 얼마나 섭섭하고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지금까지 여러 왕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실 때는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경고는 심판이 아니라 은혜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경고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도록 길을 열어 주십니다.

 

“2 이 말을 듣고서, 히스기야는 그의 얼굴을 벽쪽으로 돌리고, 주님께 기도하여 3 아뢰었다. ‘주님, 주님께 빕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한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히스기야는 한참 동안 흐느껴 울었다.” (2-3, 새번역)

 

히스기야의 기도에는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두 가지를 기도했는데, 첫째는 자기의 공로를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보통 교회에서 주일예배 때 대표 기도를 할 때 보면 많은 분들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벌레만도 못한 우리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주일 동안 죄를 짓던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게 인도해주옵소서.”

 

성도들은 함께 기도하면서 그런 기도 내용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벌레보다 못한 삶을 매주 산다는 것입니다. 벌레만도 못하다고 회개하는 기도가 매주 반복됩니다. 왜 우리는 매번 벌레보다 못한 삶을 선택하고 사는 겁니까? 왜 우리는 매주 패배자로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겁니까?

 

저번 주는 벌레보다 못했지만, 이번 주는 그보다 조금 나았습니다.’라고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번 주보다 나아지려고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모릅니다. 주님, 아시죠? 이런 저를 봐주십시오.’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주일예배 때 들어오며 헌금함에 헌금을 넣을 때 그렇게 해야 합니다. 돈을 쓱 집어넣는 게 아니라 일주일 동안 제가 살아온 삶을 여기에 담아 드립니다. 제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썼습니다. 물론 부족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한 저의 삶을 받아주십시오.’ 하고 헌금에 삶을 담아 드리는 겁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히스기야는 자기 삶에 새겨진 믿음의 흔적, 고비마다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흔적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는 전심으로 울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우리도 히스기야와 같이 하나님께 기억해 달라고 말할 만한 믿음의 흔적이 있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간구를 들어주실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하나님과 함께한 믿음의 흔적이 나의 삶에 있는가 돌아봐야겠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산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한 것을 봐주십시오.’라고 할 만큼 제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히스기야는 정말 대단한 신앙인입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신실한 삶을 살았던 겁니다.

 

만약 제가 하나님, 제가 살아온 것을 보시고 봐주십시오.’라고 하면 하나님은 내가 봤는데, 별 볼 일 없더라.’라고 하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해봐야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대단하겠습니까? 그런데 히스기야가 그런 기도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훌륭한 신앙인이었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이 같은 기도에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4-6)

 

이 말씀에서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라고 하신 사실이 놀랍습니다. 히스기야가 지난날의 공로를 말씀드렸을 때, 하나님은 들으셨고 그의 눈물을 보셨습니다. 히스기야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믿음의 수고를 했고,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받아서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애쓰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애쓴다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애쓰지 않으면 안 주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폭포수를 맞으려면 그 아래로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은혜의 폭포수를 경험하려면 그 아래로 들어가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목이 너무 마른데 은혜의 단비를 받아 마시려면 그것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못 마십니다. 그릇으로 받아야 마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은혜를 베풀어주시는데, 그것을 받아 마시기 위해서 우리가 믿음의 수고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와 말씀의 수고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예배와 섬김의 수고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누릴 수 있는 그릇이 되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라

 

참으로 안타깝게도 히스기야는 15년의 생명을 연장받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혹시 히스기야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기도 응답이 자신의 공로 때문인 줄로 착각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24 그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26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대하 32:24-26)

 

성경은 히스기야가 은혜를 받은 뒤 교만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교만해졌을까요? 당시 고대 근동의 강자는 앗시리아였으나 바벨론이라는 신흥 강대국이 앗시리아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은 유다 왕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다가 살아났다는 소문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편지와 예물들을 챙겨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어쩌면 그는 유다가 강대국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건재한 이유와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다가 살아난 비결을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히스기야가 보여 준 모습은 참 실망스럽습니다. 그는 우쭐해서 바벨론 왕이 보낸 사신들에게 유다 궁중 보물 창고에 쌓인 보물들과 무기고 안에 있는 무기들을 자랑삼아 다 보여 준 겁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 히스기야가 교만해졌다고 말합니다.

 

히스기야가 누린 번성은 누구의 공로입니까? 남유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 강대국들 사이에서도 건재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병이 나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이 모든 것이 마치 자기의 공로로 된 것처럼 자랑했습니다. 교만은 이처럼 순간만 방심해도 틈타고 들어와 우리를 죄악 가운데 빠뜨립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흔적과 믿음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믿음의 흔적과 수고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처럼 자기 공로 때문에 형통하다고 착각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히스기야의 모습을 보면, 신앙이란 마치 외줄 타기를 하는 곡예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나태해지거나 교만해지지 않도록 늘 경계하며 해나가야 하는 것이 신앙생활인데,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한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정도면, 히스기야는 신앙인으로서 정말 나무랄 데 없이 살았던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형통가 풍요로움을 누렸는데, 바벨론 사람들 앞에서 그 모든 것이 마치 자기가 잘해서 그렇게 된 것처럼 자랑하게 된 것입니다. 교만이 들어왔습니다.

 

히스기야가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았을 때 해가 15도 뒤로 물러나는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천문학이 발달한 나라 바벨론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하나님을 자랑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복을 풍성하게 받고 누리는 가운데 그것을 주신 하나님이 아니라 복 자체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이처럼 감사와 탐욕은 같은 근원에서 출발합니다. 내게 복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면 감사하게 되지만, 주신 복 자체를 바라보면 탐욕스러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형통할 때 자기가 잘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 공로를 자랑하면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복을 감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이렇게 잘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은 은혜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형통할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내 삶을 통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기를 간절히 바라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삶도 그렇고, 우리 교회도 그래야겠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통해 또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보고 그 하나님을 궁금해하고 있는지 늘 점검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이나 이룬 업적을 자랑하는 일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의 삶과 가정과 우리 교회를 통해 드러나야 할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면 나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나시게 됩니다. 하나님의 복을 넘치게 받고 형통할수록 더욱 겸손하여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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