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특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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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www.youtube.com/live/05utDyV-6Xc?feature=share&t=2054

 

 

202321일 수요예배

누가 나의 왕인가 4

아사: 하나님을 놓고 대신 붙잡을 것은 없다

(역대하 161~14)

 

1.   불의와 손잡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뒤 가장 먼저 도시를 건설하고 산당을 지었습니다.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운 것은 북이스라엘 백성이 예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내려갈까 염려해서였습니다. 여로보암의 가장 큰 걱정은 백성이 자기를 떠나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예루살렘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갈등하고 분쟁하는 긴장 관계였습니다. 역대하 16장에는 북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예루살렘에서 5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 라마를 요새화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사 왕 제삼십육 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1)

 

바아사가 라마를 요새화하는 첫째 이유는 북이스라엘 백성이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떠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고, 둘째는 남유다를 침공하기 위함입니다. 그러자 위기를 느낀 남유다 왕 아사가 매우 다급하게 아람(시리아) 왕 벤하닷을 찾아갑니다.

 

“2 그러자 아사는 주님의 성전 창고와 왕실 창고의 모든 은과 금을 모아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시리아의 벤하닷 왕에게 보내며 말하였다. 3 ‘나의 아버지와 그대의 아버지가 서로 동맹을 맺었듯이, 나와 그대도 서로 동맹을 맺도록 합시다. 여기 그대에게 은과 금을 보냅니다. 부디 오셔서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과 맺은 동맹을 파기하시고, 그가 여기에서 떠나게 하여 주십시오.’ 4 벤하닷은 아사 왕의 청을 받아들여, 자기의 군사령관들을 보내서, 이욘과 단과 아벨마임과 납달리의 양곡 저장 성읍을 치게 하였다. 5 바아사가 이 소문을 듣고는, 라마 건축을 멈추고, 그 공사를 포기하였다.” (2-5, 새번역)

 

아사는 당시 근동 지역의 강자였던 아람 왕 벤하닷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왕궁 곳간의 은금을 바칩니다. 그런데 그때 벤하닷은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이미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만일 바아사가 유다를 침공할 때 불리하면 벤하닷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고, 그러면 아사로서는 그들과 대적해 이길 승산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다급했던 아사는 벤하닷과 손잡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여 벤하닷에게 조공을 바치며 부탁했고, 다행히 벤하닷은 아사의 요청을 수락해 북이스라엘을 침공합니다. 그러자 바아사는 하는 수 없이 라마를 요새화하는 계획을 포기하고 돌아가게 됩니다.

 

이때 유다 왕 아사가 한 행동은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아주 현명한 선택 같습니다. 비록 아까운 은금을 갖다 바쳐야 했지만, 강대국인 아람과 화친했고 또 위협적인 존재인 북이스라엘을 멀리 쫓아냈으니, 그것은 훌륭한 투자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사가 선택한 방법이 외교적으로 매우 지혜로워 보이고 아주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아람 왕 벤하닷은 이미 북이스라엘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남유다 왕 아사가 은과 금을 바치면서 도와 달라고 하니까 동맹이었던 이스라엘을 배신하고 공격합니다. 한 번 배신한 사람이 두 번 배신하지 못하겠습니까? 한 번 타협하기 시작하면 또 다른 타협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듯 아사는 불의하게 약속을 깨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아니, 벤하닷이 돈 때문에 얼마든지 배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렇게 했습니다. 절대 변함이 없으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배신을 밥 먹듯 하는 벤하닷을 의지한 것입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법이나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잘못된 방법을 사용할 때 싫어하십니다. 정직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삶의 지침으로 삼고 살아가도록 성경이라는 최선을 주셨지만, 우리는 자꾸만 성경은 제쳐놓고 세상의 다른 데서 최선을 찾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사 왕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서 최선을 찾으면 불의한 길로 가게 된다는 사실과, 불의한 길로 가게 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을 주축으로 한 서방 연합국들은 독일과 일본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당시 전쟁이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갔는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다리를 건널 수만 있다면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라고 하면서 소련의 스탈린과 손을 잡았습니다. 당시 스탈린은 수십만 명이 넘는 사람을 잔인하게 숙청한 독재자였습니다.

 

마침내 연합군이 승기를 잡고 전쟁을 마무리할 때쯤, 영국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수상은 스탈린의 야욕이 히틀러에 못지 않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철의 장막이라는 말로 그 위험을 경고했는데, 그의 경고는 전쟁이 끝난 뒤 현실이 되었습니다. 소련은 순식간에 동유럽과 중국과 중남미 곳곳에 공산 정권을 확산시키더니, 1960년대 초반에는 세계 땅의 3분의 1을 공산화시켰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서 제국주의의 야심을 무너뜨릴 수 있었지만, 세계는 다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나뉘어 싸우며 냉전시대를 겪게 되었고, 그 사이에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우리는 위험이 닥치면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불의와도 타협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처음 당한 위험보다 더 참혹할 수 있습니다. 진리에 따라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가시밭길처럼 험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따라 살면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어려울지는 몰라도 후회하지는 않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도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크리스천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 세상이 우리 때문에 평안해지고 우리는 최후 승리를 얻게 됩니다.

 

성경은 아사를 가리켜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대하 14:2)했다고 기록합니다. 아사는 종교개혁을 단행했는데, 이방신 아세라를 숭배한 그의 어머니(또는 할머니)조차 태후에서 폐할 정도로 철저하게 행했습니다.

 

“2 아사는 주 그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일, 올바른 일을 하였다. 3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석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부수었다. 4 그는 또 유다 백성에게 명령을 내려서, 주 조상들의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실천하게 하였으며, 5 또 유다의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 버렸다. 그의 통치 아래 나라는 조용하였다.” (대하 14:2-5, 새번역)

 

아사 왕의 어머니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아사가 그의 태후의 자리를 폐하고 그의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니” (대하 15:16)

 

또 구스 즉 지금의 에티오피아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을 때 아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함으로써 그들을 물리쳤습니다.

 

주 그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주님, 주님께서 돕고자 하실 때에는, 숫자가 많고 적음이나 힘이 세고 약함을 문제삼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이 무리를 물리치러 왔으니, 주 우리의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주님,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주님을 이기지 못하도록 해주십시오!’” (대하 14:11, 새번역)

 

아사가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섬겼을 때 유다는 35년이나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유다 백성이 35년 동안 누린 평안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5년 동안 유다에 문제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위협하는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100만 대군이 쳐들어와도 하나님만 붙들고 의지한 아사와 백성의 믿음이 있었기에 나라가 평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 때 누리는 형통함입니다.

 

그런데 역대하 16장으로 넘어가면 마음이 온전했던’(대하 15:17) 아사가 갑자기 믿음 없는 사람처럼 되어 불의한 길로 나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의 위협에 위기를 느끼고 아람 왕 벤하닷에게 은금을 내어 주며 그의 보호를 받겠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구스의 100만 대군이 쳐들어올 때도 믿음을 지켰던 아사는 왜 이렇게 변질되었습니까? 그는 편안해지니까 믿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먹고살 만하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세상을 의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은 참 이상합니다. 상황이 어렵고 위기가 닥치면 간절히 하나님께 나아가며 의지하지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평안을 얻고 안정되면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 버립니다. 일이 잘 풀리고 돈을 잘 벌고 사회에서 높은 위치에 올라가고 성공하면 오히려 믿음의 길을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21세기 들어 한국 교회는 쇠퇴해 오고 있는데, 특히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위기라고 많은 사람이 말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서구의 교회들이 부러워했던 한국 교회가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걱정해주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신뢰를 잃고 이제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먹고살 만해졌기 때문입니다. 너무 편안해졌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오직 하나님만 붙들었는데, 먹고살 만해지고 편안해지고 화려해지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세상을 의지하며 세상 방법을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배부른 한국 교회는 갈수록 정치적으로 되고, 돈을 의지하고, 건물 규모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믿음의 순수성을 잃고 세상을 의지하니까 오히려 세상의 공격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던 35년간 유다는 평화의 땅이었으나,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세상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온전하던 아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더욱 믿음으로 나아가지 않고 원래 가졌던 순수한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니까 결국 그 인생이 비극으로 끝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우리 가정을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업이 세워져 갈 때 하나님이 기업을 붙들어 주십니다. 당장 눈에 좋아 보인다고 해서 믿음의 방법이 아니라 세상의 방법을 택하면, 당장은 잘되는 것 같고 현명한 결정을 한 것 같이 느껴져도, 언젠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당장은 어리석고 험난해 보이더라도 하나님을 붙잡고 믿음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과 가정과 사업과 직장을 붙들어 주시고 우리를 통해 이 땅을 이끌어 가십니다.

 

 

2.   자세를 다시 바로잡으라

 

“7 그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8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7-8)

 

선견자 하나니라는 사람이 아사에게 와서 이전에 구스의 100만 대군이 쳐들어왔을 때를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지금보다 더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도움을 구했으면서, 그보다 작은 어려움이 오니까 왜 당황하며 하나님을 모르는 세력과 손을 잡았느냐고 책망한 겁니다.

 

그러면서 아사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왕이 그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지금 당장은 유다가 아람을 이용한 것 같이 보이지만, 결국 아람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평안할 때가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증명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배 시간에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가운데서 증명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교회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 드러납니다.

 

예배 시간에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고 아멘, 아멘하는 것에서 우리의 믿음이 드러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은혜 받고 나간 다음에 어떻게 사느냐를 통해 우리의 믿음이 드러납니다. 예배 시간과 교회에서는 믿음을 훈련하는 것이고, 가정과 일터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가운데 믿음을 드러내고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무엇을 의지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험이 닥쳤을 때, 위기가 왔을 때, 나는 무엇을 붙잡습니까? 저도 자주 기도할 때 주님,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데, 이것이 사실은 틀린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실 우리를 그저 도와주시는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 뭔가 해 보려다가 잘되지 않으면 나중에야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애쓰는 일을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하면 하나님은 도와주시는 분에 그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삶에서 직접 일하시면 그분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일하면 내 수준에 그치지만, 하나님이 일하시면 하나님의 수준으로 완성됩니다.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When we work, we work. But when we pray, God works.”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하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이것이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기도하며 최선을 다한 다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최선을 다한 다음 뭔가 부족한 것 같으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며 도와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린 것처럼 기도하고, 그다음에 모든 것이 나에게 달린 것처럼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혹시 나는 하나님을 헬퍼(helper)로 여기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헬퍼가 아니라 우리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에서 왕이십니까, 헬퍼이십니까? 우리는 흔히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해 놓고는 문제가 생기면 울면서 도와 달라고 기도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물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나아가는 태도는 귀합니다.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로 도와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문제가 터지고 이것저것 해보다가 나중에야 울부짖는 것은 하나님을 헬퍼로 여기는 어린 신앙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9)

 

선견자 하나니는 아사에게 망령되이행동했다고 책망합니다. 아사가 현명한 외교 정책을 폈다고 스스로 만족하고 있을 때, 그것이 망령된 일이었다고 돌직구를 날린 것입니다. 이것을 NIV 영어 성경은 “foolish thing”이라고 번역합니다. ,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겁니다. <새번역>에서는 어리석게 행동했다.’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니는 아사에게 당신의 바보 같고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이 나라에 전쟁이 있을 것이다.”라고 책망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그러면 세상의 방법을 쓰지 말고 기도만 하라는 말입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그렇게 묻는 사람에게 뭐라고 대답해야겠습니까? 이렇게 대답하면 됩니다. ‘발 달린 기도를 하십시오.’ 전심으로 기도한 다음에는 열심히 뛰라는 것입니다.

 

아사의 행동이 어리석은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행동하게 됩니다. 기도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기도한 대로 행하겠다는 결단까지 포함합니다.

 

하나님, 저의 삶을 통해 영광 받아주십시오.’라고 기도해놓고는, 실제로는 편법을 쓰고 슬쩍 불법도 저지른다면, 그렇게 기도는 해놓고 다른 지체를 미워하거나 교회에서 전혀 섬기지 않고 선한 일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그런 삶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영광을 받으시겠습니까? 그것은 제대로 기도한 것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기도했으면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사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했습니다. 아사가 자기 좋을 대로 세상적인 방법을 취한 것은, 그가 제대로 기도하지 않고 기도한 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니가 아사를 찾아가 간언하는 장면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기를 원하는 분이심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움을 요청할 때 아주 기뻐하십니다. 비록 우리가 해보다가 안 되니까 그제야 하나님을 헬퍼로 여기며 도와달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도움 요청을 기뻐하시며 도와주기를 원하십니다.

 

만일 하나님이 아사를 심판하시는 게 목적이었다면 굳이 하나니를 보내지 않으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왜 구스의 100만 대군을 기도로 물리친 일을 기억하게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은 심판이 아니라 우리가 돌이키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분입니다. 메시지를 보내고 또 보내시며 끝까지 우리가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아사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 (10)

 

선견자 하나니의 말을 듣고 아사가 노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보통 자신의 죄를 지적당하면 겸손하게 받아들이기보다 화를 냅니다. 자기의 약점을 들키지 않으려고 더 강하게 나갑니다. 자존심이나 수치심 때문이기도 하고 죄를 감추려는 의도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지 못할 때 비극이 시작됩니다. 성경 속 위대한 인물들은 잘못을 지적당했을 때 바로 회개하고 돌이킨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그렇게 나오는 겁니다. 특히 다윗 같은 사람을 보십시오. 엄청난 죄를 짓고 지적 받으니까 바로 돌이켜 회개했습니다. 지난 주일 본문에서도 잘못한 것을 깨달으니까 바로 화해합니다.

 

그러나 아사는 돌이켜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믿음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도리어 화를 내며 하나니를 옥에 가둡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실수한 후에 실수를 인정하고 돌이키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니는 아사를 향해 바보 같은 일을 행했다고 했는데, 정말 아사는 바보 같이 행했습니다.

 

분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아사처럼 수치를 느끼고 내는 분노가 있고, 예수님 같은 거룩한 분노가 있습니다. 이것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만일 화를 낸 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수치에서 오는 분노입니다. 후회가 되거나 수치를 느낀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켜야 하는 신호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11 아사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12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11-12)

 

하나님은 아사의 잘못에 대하여 질병으로 물으셨습니다. 그의 발에 병이 나서 매우 위독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그때 아사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의원들을 찾았습니다. 그가 병들었을 때라도 마음을 하나님께 돌이켰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프면 의사를 찾는 게 당연합니다. 아사가 의사들을 찾은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사에게는 영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을 해결하지 않았다는 것을 성경에서 지적하는 것입니다. 벤하닷에게 나아간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벤하닷만 의지한 게 문제였습니다.

 

혹시 가정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직장이나 사업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즉시 하나님을 찾으며 나아가야 합니다. 영적으로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영적인 근원을 해결해야 합니다. 아사처럼 근원을 해결하지 못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아사가 벤하닷의 손을 잡은 것이 문제였습니까? 발에 병이 나서 위독해졌을 때 의원들을 찾아간 것이 문제였습니까? 아닙니다. 어려울 때 이웃 나라와 화친을 맺는 것도, 병에 걸렸을 때 의사를 찾는 것도 그 자체로는 하나님 앞에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결국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모시고 있는가입니다. 우선권의 문제입니다. ‘주 되심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먼저 중심에 두고 하느냐입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지 못하여 내 삶의 왕으로 모시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인생의 성패는 우리가 누구의 손을 붙잡느냐에 있습니다. 잡을 것을 잡아야 합니다. 잘못 잡았다면 놓고 다시 잡아야 합니다.

 

스케이트 강사들은 수강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스케이트를 타다가 자세가 잘못되었으면 억지로 타지 마십시오. 힘이 빠졌을 때도 억지로 타지 마십시오. 그때는 잠시 쉬고 다시 자세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좋은 자세를 잡는 것이 운동의 기본입니다. 잘못된 자세로 계속 가면 안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자세를 잡는 것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자꾸 다른 데로 가지 말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이 받아주시고 치유해주시며 새롭게 해주십니다.

 

그렇게 매순간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감으로써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우리 모두의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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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 예후: 위선적인 신앙을 버리라 (왕하 10:28-31) - 누가 나의 왕인가 6 (2/15/23) admin_p 2023.02.16 1032
363 아합: 하나님 앞에서 머리 굴리지 말라 (왕상 21:17-29) admin_p 2023.02.09 518
» 아사: 하나님을 놓고 대신 붙잡을 것은 없다 (대하 16:1-14) - 누가 나의 왕인가 4 (2/1/23) admin_p 2023.02.02 550
361 여로보암: 자기 마음대로 하는 열심ㅁ을 버리라 (왕상 12:25-33) - 누가 나의 왕인가 3 (1/25/23) admin_p 2023.01.26 385
360 솔로몬: 세상에 보험 들지 말라 (왕상 11:1-11) - <누가 나의 왕인가> 2 (1/11/23) admin_p 2023.01.12 612
359 사울: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무너뜨려라 (삼상 15:7-23) - 누가 나의 왕인가? 1 (1/4/23) admin_p 2023.01.05 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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