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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3일 수요예배
✦ 예수신경 24 ✦
예수신경으로 살아가기(6)
“예수 안에서 전하기”
(마태복음 10장 1~10절)
1. 선교 사역의 시작
지금 세상에는 하루에 약 9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예수님에게로 전환합니다. 2017년 현재 세계 최대의 종교는 기독교인데, 약 24억 8천만 명 정도 됩니다. 물론 이 통계는 천주교, 개신교, 동방정교 등을 다 포함한 수치이고, 교회에는 안 다니면서도 자기가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사람들까지 다 집어넣은 숫자입니다. 그 중 약 12억 3천만 명은 로마 가톨릭인데, 개신교 중에는 오순절파가 6억 7천만 명으로 가장 많고,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등의 전통 교파들을 합친 숫자가 6억 명 가까이 되며, 복음주의 성도들도 3억 4천 2백만 명쯤 됩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백인보다 유색인종이 더 많고, 북반구보다 남반구에 더 많습니다. 그리고 무게중심이 점점 더 남쪽과 동쪽으로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습니다. 2050년이 되면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 중에 히스패닉계가 아닌 백인은 1/5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고,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은 보수주의자나 은사주의자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런 변화는 모두 선교사들이 여러 지역으로 나가 사역함으로 일어난 일인데, 사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심으로써 시작된 일입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막 1:17)
당시 갈릴리 지역의 어부들은 그물을 자기 배에 끌어올린 다음,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를 분류하기 위해 물고기를 물가로 날랐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의 어업은 그물질과 분류작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낚는 것도 그물질에 해당하는 ‘선포’이고, 분류작업에 해당하는 것은 ‘심판의 경고’ 또는 ‘용서’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기적으로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부활 이후 남아 있던 열한 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지금 우리가 ‘대사명’ 또는 ‘지상 대명령’이라고 부르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8-20)
우리는 이것을 또 교회의 선교 사명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교회는 복음을 들고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선교 사명은 예수신경이 반드시 드러내야 하는 모습입니다. 마치 의사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언제나 다가가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을 들고 전하러 나가게 됩니다.
교회의 선교 사명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파악하기 위하여 우리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몇 개의 본문들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본문들을 보면 선교 사명이 매우 구체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선교란 무엇인가? 대회 ‘새로운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명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 4:23)
우선 마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선교가 어떤 성격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 다음 제자들의 선교 사역을 동일한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1절)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그분의 제자들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선교에 대한 이해는 오늘 본문 뒷부분에 더욱 직접적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5~10절을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지침은 마태복음의 다른 장들에서 예수님이 행하셨던 일들이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셨던 동일한 일을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1)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5-6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마 15:24)
2)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7절)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마 4:17)
3)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8a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마 8:3)
이 외에도 병을 고치신 사건들이 많이 나오고, 특히 8장과 9장에 많이 나옵니다.
4)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 (8b-1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마 8:20)
이 지침들을 모두 더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져야 하는 선교 사명에 대해 중요한 이해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곧 제자의 사명은 예수님의 사명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2. 사랑하기에 전하라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직업을 통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예수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왜? 영원한 멸망으로 가던 사람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가치를 가진 일, 천국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이 특권을 누려야 합니다. 특권은 누리는 사람에게 좋은 것입니다. 이 엄청난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누리기를 거부한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고, 몰라서 못 누린다면 그것 역시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그들이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할 것이라고 예상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또는 천국은 예수신경이 삶을 변화시키는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 가운데 나타납니다. 식탁에서 나누는 교제 가운데에도 나타납니다. 그 나라는 용서와 치유를 통하여 나타나고, 사람을 하나님의 식탁으로 회복시키는 가운데 나타나며, 역설적으로 작은 겨자씨 같은 능력 가운데 나타납니다. 그리고 공의를 위해 일하는 가운데 나타나며, 풍성한 기쁨 가운데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에 호의적으로 반응했던 사람들은 제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그곳에서 새롭게 주님을 믿어 제자가 된 사람들은 천국 이야기를 듣고 천국 백성을 보았습니다.
1세기에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었던 천국의 특징은 회당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놀랍게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를 시키려는 시도가 아니라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멀리 있는 어떤 거룩한 자리가 아니라 식탁 앞의 가까운 자리였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다른 사람들에게로 확장시킨 방식이었습니다. 즉, 그것이 그들이 복음을 선포했던 방식이었습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전파라는 단어를 항상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서방 교회는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상당히 주저하고 있기 때문에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국 국교회(Anglican Church)의 리더이고 신학자자 복음전도자인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이라는 분이 있는데, 특히 전도에 대해 여러 책을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자신의 책 <Adventure of Faith>(2001)에서 교회의 위선적인 말을 단칼에 베어버리는데,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그 안에 속하지 않은 이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교회는 분명 혼자서 죽을 것이다.”
너무나 날카로운 지적인데, 사실 바로 이것이 놀랍게도 우리가 추구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 교회가 가정교회를 하면서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슬프게도, 교회들이 비신자들에게 정말 관심이 없습니다. 다른 민족의 교회는 모르겠고, 한국에 있는 교회들과 미주의 한인 교회들을 보면, 대부분 교회 나오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보이고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만 진행합니다.
사실 전도하지 말자고 하는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을 보면 실제로 전도하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아니, 교회들이 사실은 전도를 하기는 합니다. 그러니까 전도하는 교회가 많지 않다고 하는 것보다는, 전도하는 교인들이 많지 않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보통 교인이라면 전도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습니다. 전도를 해야 된다는 것도 알고, 전도하면 좋은 것은 다 압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전도하는 것은 상당히 힘들어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거부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창피하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전도는 전도대원이나 ‘전도폭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나 전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생 전도를 한 번도 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종교적인 사교 클럽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교회가 더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하느냐로 경쟁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좋은 신앙 훈련 프로그램이나 신앙 강좌, 훌륭한 자녀 교육 시스템을 갖춘 대형 교회로 몰리게 되었고, 작은 교회들은 문을 닫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위 부흥한다는 교회를 보면 목회자의 설교가 좋든지, 프로그램이 다양하든지, 교육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서 이미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숫자가 늘은 것이지, 새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을 발견합니다. 주일 출석이 수천 명 되는 교회에서 새로 예수 믿어 세례를 준 사람의 숫자는 1년에 손꼽을 정도밖에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드니까 전도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여든 사람들을 관리하는 데 에너지를 쏟다 보니 비신자 전도를 할 만한 여력도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오늘밤에 오신다면 몇 명이나 천국에 가고 몇 명이나 지옥에 갈까요? 한국 인구 중 크리스천 비율을 많이 잡아 20%로 잡으면, 그 20%가 천국에 가고 80%가 지옥에 갈 것입니다. 1만 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라면 8천 명이 지옥에 가고, 10만 명의 도시면 8만 명이 지옥에 가고, 100만 명의 도시면 80만 명이 지옥에 갑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지옥으로 향해서 가는 80%에는 관심이 없고 천국에 갈 20%에 더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전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가정교회를 하는 우리라도 지옥에 갈 80%의 비신자를 구원하여 천국에 갈 사람으로 만들고, 일단 천국 백성이 된 후에는 우리 교회 교인이 되든 다른 교회 교인이 되든, 괜찮다고 하자는 겁니다. 하늘나라의 관점에서 볼 때에 교회는 하나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리스도는 한 분이십니다. 개 교회는 한 몸의 다른 지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가 참 귀합니다. 가정교회의 목적은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목장 사역이 쉽지가 않습니다. ‘영혼 구원’ 부분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배경이 없는 분이 목장에 나오기 시작하여 예수님 영접하는데 보통 2년에서 5년이 걸리는데,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열매가 맺힐 때까지 포기하기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며 섬긴다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영혼 구원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노력한다고 열매가 맺어지는 것도 아니고,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열매가 맺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전도의 열매가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신실성입니다. 충성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신실함이며 끝까지 충성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2)
충성 또는 신실성이라는 것은 ‘한 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서고, 기도를 쉬지 아니하는 가운데 섬기며 나아가면, 영혼 구원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교회는 종교적인 사교 클럽이 아니며,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예배하고 파송하는 공동체입니다. 릭 워렌 목사님이 <목적이 이끄는 교회>에서 쓴 것처럼, ‘교회에서 중요한 것은 몇 명이나 모였느냐(seating capacity)가 아니라 몇 명이나 세상에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도록 파송하느냐(sending capacity)’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나만 잘 믿으면 된다.’라고 생각하며 살짝 예배에 참석하고 오거나, 혼자 열심히 기도하고 큐티하고 성경을 읽으며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 자신의 개인적 삶에 일어나는 것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들을 섬기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이 섬기신 것처럼 나도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말입니다. 혼자 기도하고, 혼자 큐티하고, 혼자 성경 읽고, 혼자 예배 참석했다 돌아오는 그런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래서 목장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명을 가지고 이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웃을 사랑하기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웃이 지옥으로 가면 안 되고 천국을 함께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전도의 핵심은 결국 사랑입니다.
[나가는 말]
시카고 근교의 윌로우크릭 교회에서 전도소그룹 목사로 섬겼던 개리 풀(Garry Poole)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가 전도에 대해 자신의 책 <Seeker Small Group>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개발하고 실행하는 일에 내 생애 전부를 바쳤다. 하지만 도중에, 복음 전파 과정에서 가장 큰 도전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성경의 진리를 담대하고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과, 구도자들과의 귀중한 우정을 손상시키지 않고 안전하게 유지하는 일 사이의 균형을 발견하고 지속해나가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한 가지 사명이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하여 천국의 기쁜 소식을 들고 다른 사람에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신경을 실천할 때 일어납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웃을 사랑할 때 전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상대방을 향해 하나님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기회를 주신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에게 허락하신 VIP 영혼들을 위해 더 열심히 기도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들도 천국에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기도하는 가운데 나아가 그분들을 섬기기 원합니다. 그럴 때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