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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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5일 주일예배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2 ✦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편 46편 1~11절)
[들어가는 말]
여러분도 다 아시는 것처럼,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전 세계가 큰 혼란과 불안에 빠져 있습니다. 엄청난 위기상황이 닥칠 때마다 제게 생각나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인 시편 46편입니다. 지금까지 세 번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이 시편이 생각나서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지난 2001년 9월 11일에 발생한 9/11 테러 사건입니다. 벌써 19년이 다 되어 가는 일인데, 그날 2001년 9월 11일은 화요일이었습니다. 제가 그 당시 부목사로 섬기던 교회에서 화요일 아침마다 있던 교역자 회의를 위해 교회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뉴욕의 쌍둥이 빌딩(World Trade Center)이 테러를 당했고 비행기가 와서 부딪쳤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이것이 농담인지 연습을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는데 실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교회에 거의 망가지기 직전인 TV가 하나 있었는데 아쉬운 대로 그것이라도 켜서 보니까, 정말로 뉴욕의 빌딩에서 연기와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나서 ‘이거 큰일 났구나’ 싶어 교역자들과 직원들은 재빨리 교회를 나와 차에 개스를 넣으러 갔습니다. 저도 연료가 거의 떨어졌던 제 차에 개스를 넣으러 갔는데, 이미 수많은 차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에 개스를 넣으러 가는 도중에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세계무역센터가 지금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결코 농담이나 연습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고 반복해서 외쳤습니다.
2001년 9월 11일은 미국 역사상 가장 엄청난 재앙의 날로 기록이 되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 시편 46편을 묵상하며, 교인들과 함께 그 내용을 나누었습니다. 3년 전 제 아들과 함께 뉴욕에 방문했을 때 <9/11 Memorial & Museum>에 가보았는데 정말 잘 만들어놓았습니다.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린 장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만들어놓았는데, 거기 전시된 사진들과 여러 물건들을 보면서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고, 그때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두 번째로 시편 46편을 깊이 묵상했던 때는, 지난 2008년 9월 26일 우리 교회 건물에서 개스 폭발이 일어났던 때입니다. 저 뒤의 유아실이 있는 자리가 그 당시는 교회 사무실이었습니다. 거기 앉아 있는데 갑자기 뻥 소리가 나면서 천정이 무너져 내리고 책장이 넘어지며 책이 쏟아졌습니다.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친교실 건물을 짓기 위해 공사를 하다가, 개스가 새서 Utility Room에 가득 차 있던 것을 모르고 불을 켜다가 폭발해서, 그것 때문에 6개월 동안 우리 교회 건물에서 모이지 못하고 이웃 교회 건물을 빌려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6개월 동안 우리가 언제 다시 돌아갈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그때도 시편 46편을 묵상하면서 재난 중에 우리를 위로하시며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세 번째로 시편 46편을 깊이 묵상하게 된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혼란과 불안함으로 가득한 이 상황 속에서, 오늘 우리는 시편 46편을 함께 묵상하며 크게 세 가지를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1. 재난을 당해도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두려움이 없어진다 (1~3절)
오늘 시편은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선포하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1절)
우리의 피난처이시고 힘이시며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시편 기자(고라 자손)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러므로(즉, 하나님이 피난처이시고 힘이시며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2-3절)
여기 보면, 땅이 변하고(요동치고), 지진이 일어나고, 산이 흔들려(무너져) 바다 가운데 빠지고, 바닷물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리는 사건’에 대한 묘사가 나옵니다. 물론 이것은 시적인 표현이지만, 이 장면을 머릿속에 생각해보면 정말 굉장한 장면입니다. 실제로 하와이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이 흘러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또 쓰나미가 나기도 합니다. 굉장히 두렵고 무서운 상황입니다.
지진을 경험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큰 지진은 경험하지 못했는데, 지금도 캘리포니아에 사는 분들은 항상 지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허리케인은 경험해보았는데,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에 살 때 허리케인이 자주 왔는데, 직접 친 적은 없었고 비껴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더 무서운 것은 토네이도인데, 바로 얼마 전 테네시에 토네이도가 불어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집을 잃어버렸습니다. 또 홍수가 일어나는데, 한국에도 홍수가 많이 났었습니다. 정말 두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3절 끝에 보면 그 압도당할 만한 사태 앞에서도, 두려워할 만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시편 기자가 선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사건과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재앙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고백이 나올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지금 엄청난 허리케인이 불어오는데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는 고백이 나옵니까?
1절을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바로 이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먼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힘이시라고 찬양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어려운 고비마다 항상 곁에 계시며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찬양합니다.
이처럼 시편 46편은 엄청난 재난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우리의 피난처이시고 힘이시며 큰 도움이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하나님이 피난처이시며 힘이시라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려움 가운데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분을 신뢰할 때,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거꾸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왜 두려워하고 걱정하며 불안해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기는 하는데 전적으로 100% 신뢰하지 않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뢰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안 믿습니까? 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신뢰하기는 하는데, 50%, 60%, 70%, 어떤 때는 90%... 사실 100% 다 드리며 신뢰하는 경우는 아주 적은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두려움이 생길 때 ‘아, 내가 지금 100%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지 못하구나.’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단순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면 다른 것은 걱정이 안 됩니다. 상황이 해결되어서가 아닙니다. 상황은 똑같이 어려운데,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리고 상황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 때문에 염려하고 불안해한다면 ‘내가 하나님을 100% 신뢰하고 있지 않구나’ 하는 표시가 됩니다.
여러분, 지금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걱정되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제가 지난 화요일에 노회의 위원회 모임에 갔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소식을 잘 알고 있고, 우리 한국 사람들은 지금 정보를 많이 갖고 있으며, 항상 한국 뉴스를 듣고 있기 때문에 그런 데 대해 생각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분들을 보니까 별로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요일이 되어 상황이 급변했고, 여기저기서 휴교령을 내리고 이곳 오하이오도 휴교령이 내리며 주지사가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대통령도 전국적인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그러니까 다급하게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 노회에서도 이것을 지금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걱정이 안 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여러분도 걱정되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사태가 빨리 해결되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도록 합심해서 기도해야겠습니다. 분명히 이번 이 사태는 해결되고 지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이번에 이 일이 잘 마무리되더라도, 그 다음에 또 어떤 다른 일이 이 세상에, 또 우리가 사는 이 미국 땅에 일어날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그래서 더 걱정이 됩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이 무엇을 신뢰하고 사는지 사실 점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내가 그 동안 정말 무엇을 신뢰하며 살았는지를 이런 위기상황이 닥칠 때 확실히 알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을 정말로 신뢰하는가? 하나님을 정말로 의지하는가? 그렇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워하는 것과 대비하는 것은 다릅니다.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대비를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물건을 너무 사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재기를 영어로 뭐라고 하는가 하면 ‘Panic purchase’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공포심에 질려서 물건을 사는 것이 사재기입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물건을 사댑니까? 저번에 가보니까 물도 없고 화장지도 없습니다. 그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두려움 때문에 마구 사대는 겁니다. 나중에 그것을 싼 값으로 팔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어려움 속에 있는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힘이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면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게으르게 준비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나와 함께 예배하는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으로라도 이렇게 예배에 집중하고 있는 여러분,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물론 온라인 예배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도 이해해드려야 합니다. 일제강점기나 6.25 전쟁을 지나면서 박해를 받아 보신 분들은, 예배는 절대적으로 주일성수를 하며 주일에 함께 모여서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박혀 있으십니다. 그것을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 열린 시각과 다른 측면으로 보면, 이 상황에서 우리가 온라인 예배를 안 드린다면 소수만 예배에 참석하거나, 또 셧다운이 되면 아예 예배를 못 드리게 되는데, 이런 technology를 이용해서 실시간으로 이렇게나마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이 더더욱 우리 신앙에 더욱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번 사태로 교회에 모여 예배하지 못하지만, 이것을 통하여 신앙생활을 대충하는 빌미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어떤 분은 혹시 ‘야, 잘됐다. 이제 합법적으로 교회에 안 나가도 된다.’ 하고 좋아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것은 독이 됩니다.
말씀을 읽다보면 우상을 만들지도 섬기지도 말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무엇이 우상입니까? 보통 생각하기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 바로 그런 것이 우상입니다.
이전에 세계 여러 곳을 다녀온 분들이 좋다는 곳들을 다 돌아보고 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다 다녀 봤는데 미국이 천국이야.” 저도 저번 안식월 때 여기저기 다녔지만 미국이 천국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천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시 그 동안 미국의 강한 경제력이나 강한 군사력을 믿고 살아온 것은 아닙니까? 은근히 미국에 사는 것을 뿌듯하게 여기면서, 한국에 갔다 올 때 ‘독수리 여권’을 슬쩍 보이면서 ‘나, 이런 사람이야’ 하고 자랑한 것은 아닙니까? 너무 그 동안 미국제일주의 속에서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미국이 학계도 최고 수준이고, 학교들도 그렇고, 시설들도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것이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것들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만심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미국 경제가 나를 구원해주는 것도 아니고, 미국 정부가 이 문제를 다 해결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 정부가 잘하도록 우리가 격려하고 후원하며 기도할 대상이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대통령이 되면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대통령이 되면 반대하는 게 아니라, 누가 되든 어떤 정부이든 기도하며 후원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나 위정자들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미국만 우상입니까? 내가 가진 것 중에 절대적으로 뭔가 신뢰하는 게 있다면 그것도 우상입니다. <새로운 삶> 때 다루는 내용인데, 어떤 것이 크지 않아도 나에게 중요해서 쉽게 포기가 안 되어 하느냐 마느냐로 끝까지 고민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우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예배에 참석하는 것에 대해 갈까 말까 고민하셨습니까? 처음부터 가겠다거나 안 가겠다고 하면 별로 우상이 안 됩니다. 그런데 10분 전, 5분 전까지도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했다면, 또 온라인예배도 마찬가지로 할까 말까 끝까지 고민이 되었다면, 이것이 바로 우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어떤 것을 가지고 끝까지 고민했다면, 왜 고민했습니까? 나로 하여금 끝까지 고민하게 만든 그것이 뭔가? 바로 그것이 우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가진 어떤 것도 나를 구원해주지 못합니다.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내가 가진 재산, 학벌, 집안, 명예, 지위는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 중 재난이 닥치지 않게 막아주거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것들 중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차별이 많아서, 인종차별이 있고 인간차별도 있습니다. 그런데 차별을 하지 않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바이러스입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부자는 건드리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만 건드리는 게 아닙니다. 물론 대비를 잘하는 사람은 조금 낫겠지만 그렇다고 비껴가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유일한 믿음과 신뢰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문제가 그냥 해결되고 상황이 나아진다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면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그 어느 것도 우리에게 참된 안전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공항에 검색기기를 수백 개 설치한다고 해서, 군대를 훨씬 늘린다고 해서, 돈을 창고에 마구 쌓아놓고 산다고 해서 우리가 안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이시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그분은 돈이나 지위나 내 능력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다 해결해줄 수 있으십니다. 바로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결정적인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다 (4~7절)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4-5절)
여기 보면, “하나님의 성”이 나오는데, 그 성을 “지존하신 이의 성소”라고 부릅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 성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5). 그 성 자체는 별 게 아닌데,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니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별 게 아닌데,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니까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신다고 말씀합니다. 올빼미 체질이신 분들이 가장 싫어하는(?) 성경구절입니다. ‘왜 하필 하나님은 새벽에만 도우시냐? 밤에도 좀 도우시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말씀이 곳곳에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분,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6-7절)
수많은 민족과 나라가 일어나고 또 주저앉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은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7).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얼마나 화려한가,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가 하는 것이 당연히 아닙니다.
이번에 보니까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뉴욕 증권시장이 다우존스(Dow Jone) 지수를 비롯해서 모든 것이 기록적으로 떨어졌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고 전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사람이나 부자나 군대를 바이러스가 피해서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과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당신의 백성과 늘 함께 하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뭔가 하면,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해주시는데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가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느냐는 겁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다면 하나님도 그를 떠나십니다. 사실은 떠난다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하도록 옆에서 지켜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 해야 할 질문은, 내가 지금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지난 9/11 테러 때 비행기가 빌딩을 향해 날아가 부딪쳐 폭발하는 장면을 보고 온 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저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면 저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죽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슨 말을 남겼을까?’
그때 비행기가 다른 데서도 떨어졌습니다. 펜타곤에도 떨어지고 펜실베이니아 들판에도 떨어졌습니다. 그때 비행기가 떨어지기 전에 가족들에게 전화를 한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비행기 내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땅에 떨어지기 전에 모두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잘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역센터 빌딩 속에 갇혀 있던 사람들도 전화를 해서 비슷한 말들을 남겼습니다. 어느 누구도 ‘내가 여기서 돈을 많이 못 벌어 한이 되니까 당신은 나를 대신해서 돈을 많이 벌어라.’ ‘아들아, 나를 대신해서 돈을 더 많이 벌어라.’ ‘딸아, 출세하라.’ 같은 말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내일 승진하는데 오늘 죽는구나. 너무 억울하다.’라고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지난번 당신이 내게 화냈지? 밉다. 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하고 원망한 사람도 없었습니다.이제 금방 죽게 되었는데 그런 말을 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또 아무리 그런 말을 해도 급박한 상황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죽음이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내가 누구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가 누구냐’는 것은 세상에 살 때는 중요할 수 있지만, 죽음 앞에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영어로 “Who am I?”보다 중요한 것이 “Whose am I?”입니다. ‘나는 누구냐’보다 중요한 것이 ‘나는 누구의 것이냐’, ‘내 안에 누가 계시냐’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돈도, 명예도, 지위도, 가족도 함께 해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죽음도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께서는 죽음 이후에도 우리와 함께 동행해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의 것인가? Whose am I?’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 힘써서 행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정말로 중요한 것,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다른 중요한 것이 뭐가 그렇게 많아서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지금 잘하고 있지 못합니까? 지금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지 못하고 다른 데에 눈길을 준다는 말입니까?
정작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왜 죽음 뒤에도 함께 해주실 분에게는 소홀하면서 함께 해줄 수 없는 것에는 그토록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며 집착하고 있습니까?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가를 우리가 돌아보는 이 시기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은,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말로는 이렇게 했는데, 실제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그때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게 뭔지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매일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하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른 것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다른 것만 하다가 우리의 생각이 분산되어서 하나님을 놓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누누이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누가 설문조사를 해보았더니 인간의 사망률이 100%라고 합니다. 언젠가 우리의 모든 것이 멈춰버릴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날은 갑자기 올 수도 있고 또 천천히 올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려서 세상을 떠난 분들이 그렇게 될 줄로 알고 있다가 갔겠습니까?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간 겁니다.
그날은 반드시 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날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날 우리와 함께 할 존재는 단 하나, 하나님뿐이십니다. 다른 어떤 것도,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도 우리와 함께 해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과 평소에 동행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토록 중요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붙들 수도 없고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미래를 붙들고 계신 분, 미래를 갖고 계신 분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붙들면 미래를 붙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을 붙들고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3. 이 상황도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8-11절)
9/11 테러 공격도 그렇지만, 지진이나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가 불어 닥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사실 별로 없습니다. 엄청난 자연의 힘 앞에서 우리 인간은 무력함을 느낍니다. 총격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테러도 많이 일어나는데, 어디를 여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습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도 그렇습니다. 지금 이 하나 때문에 정말 많은 것들이 중단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항공업계는 큰일 났고, 여행업계도 그렇습니다. 누가 이럴 때 여행을 다니겠습니까? 지금 골목상권이나 중소상인들이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경제(주식시장)가 휘청거리고 있고, 오일 가격도 오락가락하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저도 평소에 즐겨 보던 스포츠도 취소되었습니다. 지금 미국 대학농구가 제일 뜨겁게 달아오르며 토너먼트가 시작될 때인데 다 취소되었고, NBA(미국프로농구)도 끝났습니다. 유럽의 프로축구 리그들도 다 중단되었습니다.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세계가 다 올스톱했습니다. 정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통해 우리가 하던 모든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축구선수는 어떻게 하면 골을 많이 넣어 득점왕이 될까를 골몰하며 나아가던 선수들이, 이런 일이 탁 벌어지니까 ‘아, 그게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깨닫는 겁니다. 저 높은 자리만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었는데 바이러스 때문에 모든 게 중단되니까, ‘아, 저 자리가 내 인생에 제일 중요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걱정되고 불안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10절)
그렇습니다. 세계를 다스리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테러리스트들도, 경제도, 군사력도, 미국이나 어떤 나라도, 어떤 사람도, 다스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권자이십니다. 테러 사태나 이번 코로나19 사태처럼 아주 어려운 경우에도, 이 상황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런 혼란한 상황조차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물론 하나님이 일부러 악한 일을 일으키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일부러 바이러스를 일으켜 우리를 죽이시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도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역사적으로도 있고, 우리 개인에게도 있으며, 교회에게도 분명히 있습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의 어떤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든 아니면 자연재해이든, 악한 상황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선한 뜻이 분명히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일들이 나에게 벌어질까 봐 사실 걱정되지 않습니까? 바이러스가 갑자기 우리를 아프게 만들고 심하면 죽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가 갑자기 불어서 우리를 해칠 수 있습니다. 또 테러 공격이나 총기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위험한 일들이 있습니까?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는 정말 걱정할 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 때문에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성경은 분명히 선포합니다.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8-9절)
예수님도 이렇게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친구인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다음에는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를 내가 보여 주겠다. 죽인 다음에 지옥에 던질 권세를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눅 12:4-5, 새)
그분은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은 악이 판을 치고 여러 비참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끔찍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승리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선하신 하나님께서 선한 계획을 갖고 계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러한 모든 악함을 잠재우고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결국 이루어지고 맙니다.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붙들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어려움을 해쳐나가야 할 때입니다. 그분만을 신뢰하고 그분만을 따르며 그분만을 붙들 때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피난처이시고 힘이시며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 가운데 하나님 안에서 형제자매 된 우리가, 비록 지금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를 격려하고 돌보며 기도해줄 때입니다.
하나님을 붙들 때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사실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그분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 때문에 주님을 붙들 때 주님과의 관계가 거기서 깊어지고 또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아직도 주님보다 뭔가를 더 의지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주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될 만한 것을 숨겨두고 있는 건 아닌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가기 위해서 게이트를 나와 활주로를 쭉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갑자기 멈추더니 다시 게이트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한 시간 정도 흐른 후에야 비행기가 이륙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진 승객이 승무원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뭔가 비행기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예, 손님. 저희 비행기 기장(캡틴)이 엔진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해서요.”
“아, 그래요? 그럼 큰일 날 뻔했군요. 이제 엔진을 수리하고 떠나는 건가 보죠?”
“아니요. 캡틴을 바꿨습니다.”
굉장히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을 줍니다.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 그것을 해결해주실 수 있는 분, 인도해주실 수 있는 분인 우리 하나님을 붙들어야 되는데, 엉뚱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부담되고 듣기 싫다고 다른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지금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신뢰할 때입니다. 하나님만 붙들 때입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를 인도해주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끄실 무한한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혹시 앞으로 몇 주 동안 주 정부의 권고에 의하여 교회가 아예 shut down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이것을 계기로 신앙생활이 약해지고 하나님과 더 멀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런 온라인예배를 통하여 더 하나님께 예배로 나아가고, 더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며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또 온 가족이 함께 예배하는 가운데 가족끼리도 더욱 하나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