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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6 수요예배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7

잘나가다 무너진 웃시야

(역대하 26 1~23)

 

1.   웃시야의 탁월한 리더십

아마샤가 죽고 그의 아들 웃시야가 16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됩니다(1).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라는 뜻의 웃시야는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는 뜻의 아사랴로도 불렸습니다. 그는 무려 52년이라는 세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3). 그는 초강대국인 앗수르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힘을 기울여 국력을 키웠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길러서 영토를 확장했고, 무역에 집중하여 부유해졌습니다.

웃시야를 살펴보기 전에 그의 아버지 아마샤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샤도 25세의 젊은 나이에 왕이 되어 29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에돔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한 그는, 교만해져서 함부로 이스라엘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대패를 당하고 자기 자신도 포로로 잡혀 수치를 당하고 오랫동안 포로생활을 하다가 돌아오게 되는 곤욕을 치렀습니다. 자기를 사로잡은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보다 15년을 살았지만, 결국에는 부하들에게 살해를 당하고 맙니다.

웃시야는 자기 아버지 아마샤가 북이스라엘에 포로로 잡혀간 BC 790년부터 유다를 섭정으로 통치하기 시작하는데, 그때의 나이가 16세였습니다. 그러니까 웃시야는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자기 아버지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은 거의 받았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런데도 어려운 때에 왕위에 오른 젊은 웃시야가 의외로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줍니다. 먼저, 웃시야는 국방에 힘을 쏟아서, 오랜 대적인 블레셋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웃시야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고 가드 성벽과 야브네 성벽과 아스돗 성벽을 헐고 아스돗 땅과 블레셋 사람들 가운데에 성읍들을 건축하매” (6)

사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침략했던 막강한 블레셋이, 웃시야의 공격으로 가드와 야브네, 아스돗 같은 핵심 지역을 빼앗깁니다. 블레셋은 다시 회복되지 못하고 맙니다.

그뿐 아니라 웃시야는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의 변방을 위협해 아라비아와 마온 부족들을 쳐서 굴복시키는데(7), 그렇게 되니까 그들과 연합해서 암몬 사람들까지 겁을 먹고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칩니다(8). 이로 인하여 유다는 남쪽으로 애굽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까지 세력을 떨치게 됩니다. 이렇게 잇단 성공에도 불구하고 웃시야는 자만하지 않고 계속해서 국방력을 강화하는데, 먼저 예루살렘을 요새화합니다.

웃시야가 예루살렘에서 모퉁이 문과 골짜기 문과 성굽이에 망대를 세워 견고하게 하고” (9)

자기 아버지 아마샤 이스라엘에게 패하면서 무너졌던 성벽들을 보수하고 망대를 견고히 세웠고, 대대적인 군대조직 개편도 단행합니다. 당시 웃시야는 2,600명의 족장과 307,500명이라는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는데(12-13), 이들은 모두 용사였고 싸움에 능한 자들이었습니다. 웃시야는 이들에게 방패, , 투구, 갑옷, , 물맷돌 같은 기존의 무기를 주는 외에도(14), 새로운 첨단 무기들을 만들어 줍니다.

예루살렘에서 재주 있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고안하게 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어 화살과 돌을 쏘고 던지게 하였으니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었더라” (15)

15절에서 “화살과 돌을 쏘고 던지게 하였으니”라는 기록은, 구식 대포인 투석기를 만들어 발사했다는 뜻입니다. 이런 장비까지 갖춘 것으로 웃시야의 군대는 아주 강한 군대였고, 주변 나라들은 소문만 듣고도 두려워서 감히 유다에게 싸움을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처럼 주변 나라들을 강한 군사력으로 누르고 안정을 얻은 웃시야는, 그와 동시에 경제력을 높이는 일에도 총력을 기울입니다.

광야에 망대를 세우고 물웅덩이를 많이 파고 고원과 평지에 가축을 많이 길렀으며 여러 산과 좋은 밭에 농부와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들을 두었으니 농사를 좋아함이었더라” (10)

광야에 물웅덩이를 많이 파서 농사에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확보한 겁니다.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많은 가축을 기르는 목축업을 장려하고, 좋은 밭에 농부와 포도원 다스리는 자들을 배치하여 농사를 적극 장려합니다.

이렇게 국가 경제의 기초가 기본 산업을 안정시킨 웃시야는 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해야 경제가 장기적으로 더욱 풍성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일찌감치 준비해 것이 있습니다.

아마샤 왕이 그의 열조들의 묘실에 누운 후에 웃시야가 엘롯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더라” (2)

엘롯은 홍해의 아카바 북쪽에 있는 항구 도시로서, 솔로몬과 여호사밧이 해상 활동의 본거지로 삼았던 중요한 곳이며, 지금은 리조트 타운이 에일랏(Eilat)입니다. 중요한 곳을 에돔 사람들이 장악했었는데, 그러던 것을 웃시야가 되찾아 재건한 겁니다.

그리하여 유다는 다시 국제무역의 허브가 요충지를 확보하게 되었고, 이것은 나라 전체의 경제 발전에 힘이 되었습니다. 막강한 국사력을 바탕으로 안정된 환경 가운데 목축업과 농업을 통해 나라 경제의 기초가 튼튼해졌고, 엘롯이라는 국제무역의 허브 도시에서 세계를 상대로 교역할 있게 되니까, 유다의 경제는 크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웃시야의 성공을 보면서 가지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 아마샤가 말년에 비참하게 모습 밖에는 보고 자란 것이 없는 젊은 웃시야가, 어떻게 이런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할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그에 대한 힌트를 본문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멘토(스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 대신 명의 훌륭한 스승을 웃시야에게 붙여 주셨습니다.

첫째는 그의 어머니 여골리아라고 생각할 있습니다.

웃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아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

웃시야의 어머니 여골리아에 대해서는 단지 예루살렘 사람이라는 것만 나와 있는데, 그렇게 설명한 바로 뒤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4)

이것으로 보아, 어머니 여골리아가 아들을 제대로 가르쳤다는 것을 짐작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는 그가 집권 초기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정직하게 나라를 다스리던 때의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웃시야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아마샤의 모습을 말합니다.

그런데 경건한 어머니 여골리아가 바로 남편의 전성기 때의 경건하고 탁월한 리더십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가 어린 아들 웃시야에게 전수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16세의 청소년이 이토록 탁월한 리더가 되었겠습니까?

여기 계신 여성분들이, 자기 아들과 딸에게 바로 이런 어머니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머니로서 자녀에게, 아내로서 남편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정말 엄청납니다.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를 만나면 하나님이 쓰시는 신실한 종이 되고 탁월한 영적 리더가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여지없이 타락하고 무너집니다. 이세벨을 보십시오. 아합과 이세벨의 아달랴는 유다의 다윗의 후손들을 멸하려고 했던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여골리아는 좋은 어머니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기 자식 앞에서 남편 흉을 보는 여자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식에게 독을 먹이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리 별로인 남편이고 보잘것없는 아버지라도, 잘하는 한두 가지는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자녀 앞에서는 바로 좋은 점에 대해 남편 칭찬을 해보십시오. 어머니들만 아니라 아버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조건 엄마의 좋은 점을 칭찬해 보십시오. 없는 것을 만들어서 있다고 거짓말하라는 아니라, 장점을 찾아서 그것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가 달라집니다.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여골리아도 후반기에 교만하고 타락한 남편 아마샤의 흉을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저렇게 교만을 떨더니 봐라.’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아들 웃시야에게 아버지가 한창 전성기에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정직했던 모습을 말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나라가 힘든 시절에 왕이 어린 웃시야가, 아버지 없이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훌륭한 왕이 있었습니다. 이런 여골리아 같은 어머니들이 많이 나올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웃시야에게 명의 훌륭한 영적 스승이 있었는데 그는 스가랴입니다.

그의 곁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쳐 주는 스가랴가 있었는데, 스가랴가 살아 있는 동안, 웃시야는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 그가 주님의 뜻을 찾는 동안은, 하나님께서 그가 하는 일마다 되게 하여 주셨다.” (5, )

그를 가리켜 개역개정에서는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라고 묘사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스가랴는 어떤 인간적인 술수나 야심 없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근거하여 항상 웃시야 왕에게 영적 조언을 해준 사람입니다. 두려울 때는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전해주고, 복잡한 문제 앞에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전해주고, 사람들의 의견이 여러 가지로 분분할 때는 하나님의 통찰력으로 있도록 옆에서 도와준 사람입니다.

할아버지 요아스 왕에게 제사장 여호야다가 있어 훌륭한 영적 리더십을 발휘할 있게 해준 것처럼, 웃시야에게는 스가랴가 있어 항상 그를 영적으로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제대로 영적 리더가 있어 왕을 영적으로 이끌어주면 이처럼 나라 전체가 살아납니다. 그래서 스가랴가 사는 동안에는 웃시야가 하나님의 뜻을 찾았고, 그렇게 하니까 하나님은 그가 하는 일마다 성공하게 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실패를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성공 방정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길을 지도하시리라” ( 3:5-6)

말씀처럼, 마음을 다해 주님을 의뢰하고 하는 모든 일에 주님을 인정하면 성공합니다. 스가랴는 무슨 특별한 일을 해준 것이 아니라, 웃시야가 오직 하나님만을 구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래서 스가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웃시야가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 그가 그렇게 하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그가 하는 모든 일에 성공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구하고 있는 ,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은 내게 성공을 주십니다. 그러나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구하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합니다. 웃시야의 성공은 자신의 힘으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복이었습니다. 웃시야가 뭔가를 이룰 때마다 그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는 사실이 본문 곳곳에서 강조되는 것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를 도우사”(7) 전쟁에서 대적들을 물리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었더라”(15)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기이한 도우심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어떤 초자연적이고 특별한 은혜, 말로 설명할 없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주님의 역사를 말합니다.

웃시야는 객관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상황에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아버지 아마샤는 전쟁에 패해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나라의 수도는 무너져 불에 탔습니다. 재물은 바닥났습니다. 요새들은 황폐화되었습니다. 많은 군사들이 죽고, 백성들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나라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절망만 가득하던 바로 그런 때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16세의 아주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암담했겠습니까? 그러나 바로 그때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이 웃시야와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국방이 바로 서고 경제도 경이로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려운 상황에 닥칠 절망하지 말아야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의 “기이한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능력, 경험, 재산, 인맥, 재주로는 됩니다. 그러나 순간순간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이 있으면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순간이라도 이상하게 일이 풀립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2.   웃시야의 타락과 죽음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나라를 발전시킨 웃시야 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타락하고 맙니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16)

교만하고 악을 행하게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가 강성하여지매”. 성공하고 강해지니까 교만해지고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잘되고 성공하면 잘할 같은데, 실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교만해지고 타락합니다.

여기서 악을 행했다는 것은 아무 악이 아니라 ‘파멸당할 만한 악’을 말합니다. 무슨 악이 그토록 무서운 심판을 받게 합니까? 그것은 웃시야가 제사장만 있는 분향하는 일을 하려고 것입니다.

원래 성전의 향단에 분향하는 일은 제사장들만 있는 임무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신 바에 따르면, 대제사장은 매일 아침 등을 점검할 때와 매일 저녁 등에 불을 분향해야 했습니다. 향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상징합니다. 제사장에게만 위임된 일을 왕이 행하려고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웃시야가 도대체 그것을 하려고 들었을까요? 그는 자신의 마디면 누구나 벌벌 떠는 엄청난 제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제사장들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고, 저런 일은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 해야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겁니다. 그래서 그는 일을 가볍게 생각하고 자신이 분향하려 했습니다.

왕이 분향하려고 시도하는 것에 놀란 대제사장 아사랴와 80명의 제사장들은 그를 막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이기에 중단하라고 외칩니다.

웃시야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18)

이때라도 웃시야는 ‘아,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인정하며 돌아섰으면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제사장에게 화를 내며 향로를 잡고 억지로 분향하려 듭니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때에 여호와의 향단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19)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자기를 막아서며 말리는 제사장들을 밀쳐 내는 웃시야는 이미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그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했지만 그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인이었습니다. 그저 ‘나는 아무 것이든 있고 못할 없는 왕이다.’라고 하며 고집을 부리는 야심 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웃시야는 향로를 잡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향로를 건드린 아니라 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영광과 권위를 건드린 범죄였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왕이라도 없는 일입니다. 순간 하나님의 진노의 손이 그를 쳐서 당시 의학으로는 치료받을 길이 없는 저주의 병인 나병이 이마에 나고 순식간에 그의 온몸을 덮어 버렸습니다.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 (20-21)

졸지에 나병환자가 웃시야는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죽는 날까지 별궁에 홀로 거하다가 쓸쓸히 숨을 거두고 맙니다. 그토록 훌륭한 왕이었던 웃시야가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까? 그토록 잘나가던 그는 교만에 가득 차서 제사장만이 있는 일을 하려다가 나병에 걸려 쓸쓸히 죽어가는 끔찍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까?

무엇보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한 것을 잊어버리고 성공으로 인해 마음이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에도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원인은, 그를 바로잡아 주던 스가랴의 죽음입니다. 할아버지 요아스 왕이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고 나서 타락한 것처럼, 웃시야도 자신의 영적 스승인 스가랴가 죽고 나니까 타락해 버렸습니다.

우리도 서로가 서로에게 훌륭한 영적 스승의 역할을 감당하고 이끌어주고 케어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를 케어해주던 사람이 사라져도 주님 앞에 홀로 있는 믿음을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언제까지 다른 사람에게만 의존하는 신앙에 머물러서는 곤란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설교에만 의존해서는 됩니다. 자기 스스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혼자서도 하고 같이 모여서도 하는 겁니다. 같이 모였을 때는 함께 하나 되어 나아가는 의미가 큽니다.

둘째 원인은, 우상 숭배의 장소인 산당을 그대로 방치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왕하 15:3-4)

열왕기서를 읽어보면, 남유다 왕들의 리더십을 평가할 산당을 제하였는지 했는지가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을 봅니다.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산당 제사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고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깨뜨리며 산당을 헐고” ( 33:51-52)

산당을 헐라고 하신 것은 산당이 우상 숭배지로서,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사람을 잡아 죽여서 제사하는 , 복술, 음행이 자행되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려 하나님께 범죄할 경우, 처참하게 멸망하고 타국에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고 무섭게 경고하셨습니다( 26:30-33).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 백성들은 종종 산당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직 성전이 건축되기 전에는 예배드릴 장소가 마땅하지 않아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임시 장소로 산당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사무엘도 산당에서 예배를 드렸고, 다윗 때부터 솔로몬 때까지 기브온 산당을 예배처로 자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건축된 다음부터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어졌습니다. 성전 건축 후에는 반드시 그곳에서만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12:5).

그런데 이스라엘의 초대 여로보암이 그런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장소를 바꾸어 산당에서 예배하기 시작하면, 함부로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종교적 타락으로 이어지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대 왕들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산당을 제해버린 여부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백성들은 굳이 예루살렘 성전까지 가서 예배드리는 것을 힘들어하고 귀찮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웃시야 때까지도 온갖 우상 숭배가 나라 곳곳의 산당에서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백성들 사이에 뿌리 깊은 관습으로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인 알면서도 경건한 왕들조차 백성들을 자극하기 싫어서 그냥 방치해 것입니다. 아마샤도 그랬고 아들 웃시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도야 괜찮지하고 사소하게 생각했든지, 아니면 백성들이 두려워 방치했든지 간에, 우상 숭배의 근원인 산당을 곳곳에 그냥 방치해 것은 나라의 영적 분위기를 계속 흐려놓는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그래서 나라 전체에 악한 영적 분위기가 판을 치게 되었고, 국력이 강해지고 마음이 교만해지면서 웃시야 왕과 지도층들이 우상 숭배 세력들의 영향을 서서히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이왕 하려면 철저히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적당히 타협하면서 신앙생활을 적당히 편안하게 하면, 빠지지도 않고 너무 하지도 않고 적당하게 하면, 적당히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아니라 타락으로 갑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이 그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믿음생활을 하려면 철저히, 끝까지, 삶의 구석구석까지 제대로 해야 합니다. 악한 세력이 어떤 여지도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적당히 타협하고 여지를 남겨두면, 사탄은 그것을 너무 알기 때문에 바로 그것을 통해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뜨리게 됩니다.

 

[나가는 ]

안타까운 것은, 요아스와 아마샤와 웃시야에 이르기까지 3 모두 똑같이 용두사미의 리더십 패턴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시작은 하나님의 길로 정직히 행하며 잘하다가, 그것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후반기에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습니다. 모두 처음에는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시작했지만, 성공해서 힘이 강해지니까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떠나고 그때부터 리더십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진정한 성공은 마음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겸손히 무릎 꿇으며 주님 앞에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서도 열심히 주님 앞에서도 서고, 목장에서 서로를 격려해주고 기도해주는 겁니다. 교회에서 이렇게 같이 모여서 예배하고 말씀을 공부하고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아무 소망이 없고 선한 것이 없던 나의 삶에 오셔서 나를 만나주시고 주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은혜를 매일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은혜 가운데 날마다 거하며 끝까지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함으로써, 오히려 시작보다 끝이 아름다운 영적 리더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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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불가능한 상황을 역전시키시는 하나님 (왕하 6:24-7:20)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0 (5/04/16) kpccoh 2016.05.05 2824
47 하나님의 사람, 능력의 사람 (왕하 6:1-23)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9 (4/27/16) kpccoh 2016.04.27 4448
46 나아만의 치유 (왕하 5:1-19)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8 (4/20/16) kpccoh 2016.04.20 5096
45 모압과의 전쟁에서 거둔 절반의 승리 (왕하 3:1-27)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7 (4/13/16) kpccoh 2016.04.13 5372
44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마 6장 9-13절) - 이기환 장로 kpccoh 2016.04.06 665
43 엘리야와 엘리사가 보여준 리더십 승계의 모범 (왕하 2:1-25)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6 (3/30/16) kpccoh 2016.03.31 4616
4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주는 의미 (요 12:20-33) - 성금요예배 (3/25/16) 이준원 2016.03.26 2605
41 불신앙과 불순종의 비참한 결말 (왕하 1:1-18)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5 (3/16/16) kpccoh 2016.03.16 3841
40 의로운 왕에게서 나온 악한 아들의 실패 (대하 21:1-20)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4 (3/09/16) kpccoh 2016.03.10 2002
39 찬양으로 거둔 승리 (대하 20:1-37)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3 (3/02/16) kpccoh 2016.03.03 3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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