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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4 수요예배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0

불가능한 상황을 역전시키시는 하나님

(열왕기하 6 24 ~ 7 20)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어려운 일들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해결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있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주는 분이십니다. 고난을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고난에서 빠져나갈 길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1.   사마리아 성의 포위


엘리사가 자신을 잡으러 아람의 대군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포했다가 놓아준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아람은 한동안 감히 이스라엘을 침공할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군대도 긴장을 풀고 방어를 게을리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던 아람은 갑자기 전쟁을 벌이며 쳐들어옵니다.


후에 아람 벤하닷이 그의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6:24)


아람 벤하닷의 엄청난 대군이 쳐들어 와서 수도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장기 포위전에 들어갑니다. 아람 군대는 바로 공격하는 것보다, 수도를 포위하고 안의 백성들이 보급을 받을 없도록 차단하는 전술을 택한 것입니다. 전략이 그대로 먹혀서 시간이 지날수록 성중에는 먹을 것이 거의 떨어지고, 그나마 남은 음식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됩니다.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사분의 갑에 다섯 세겔이라 하니” (6:25)


율법에 부정한 음식으로 규정되어 음식으로 쳐주지도 않던 당나귀 고기의 머리 부분조차 구하기 힘들어졌고 부르는 값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비둘기 똥조차 비싼 돈을 주어야 있었습니다. 이처럼 평소라면 음식으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는 것들인데도 터무니없는 가격에 거래된 것을 보면, 당시 사마리아 성의 기근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우상 숭배에 깊이 빠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람 군대가 침략해오려고 때마다 엘리사를 통해 미리 알려주셔서 방어하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가운데 머물렀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침내 아람을 통해 진노의 매를 드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이었다면 위기 안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고 회개했겠지만 그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합니다. 그는 성벽 위를 지나다가 자기 백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됩니다. 여인이 도와달라고 외치는데, 그때 그가 뭐라고 대답하는지 보십시오.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하니라” (6:27)


말은 하나님을 향한 비난과 원망의 말입니다. “왜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느냐? 하나님께 따져 봐라.”하는 식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며 하나님께 모든 책임을 돌리는 무책임하고도 악한 대답입니다. 이에 여인은 자신의 기가 막힌 사연을 왕에게 호소합니다.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되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디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여인에게 이르되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 (6:28-29)


여인과 이웃 여인이 서로의 아들을 잡아서 같이 먹기로 하여 먼저 자기 아들을 삶아 먹었는데, 이웃 여인은 자신의 아들을 숨기고 내놓지 않는다는 하소연입니다. 굶주림 앞에서 인간성과 모성애까지 저버린 참혹한 상황 앞에 왕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은 오래 모세를 통해 이미 예언된 것입니다.


그들이 전국에서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네가 의뢰하는 높고 견고한 성벽을 헐며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의 모든 성읍에서 너를 에워싸리니, 네가 적군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한 공격을 받아 곤란을 당하므로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몸의 소생의 살을 먹을 것이라” ( 28:52-53)


이미 영적으로 너무나 어두워져 있는 이스라엘 왕은 고통스런 상황의 원인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저 끔찍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옷을 찢으며 비명을 지릅니다. 옷을 찢는다는 것은 극도의 슬픔을 상징해서 보여주는 행위인데, 그가 죄를 뉘우치고 회개했기 때문에 그렇게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을 보십시오.


왕이 이르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6:31)


왕은 모든 끔찍한 현실의 책임을 애꿎은 엘리사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왕이 엘리사에게 이렇게 분노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전에는 아람이 공격하려고 때마다 미리 알려줘서 대비할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고, 지난번 아람 군사들을 사마리아까지 유인했을 죽였어야 했는데 엘리사가 놓아주라고 해서 괜히 놓아주어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원래 엘리사에게는 아람의 침공 계획을 이스라엘 왕에게 미리 알려줄 의무가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에게 애초에 그런 은혜를 베푸실 필요가 뭐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를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이스라엘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심으로 그들이 회개하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런 것이 반복되니까 마치 자기들이 그런 특권을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면서, 이젠 해주냐고 오히려 대드는 꼴입니다.


엘리사를 잡으러 아람 군대를 사로잡았을 때도 어차피 이스라엘은 싸움도 하고 얻은 결과이니까 말이 없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그들을 대접해서 놓아주라고 함으로써 한동안 적의 침공 의지를 꺾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엘리사의 공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번의 위기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원망하며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둔감한 지도자, 무능력한 리더일수록 이렇게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합니다. 무슨 일만 일어나면 전부 ‘이 사람 , 사람 탓’이고 자기 잘못은 생각을 못합니다. 이스라엘 왕이 바로 그런 악하고 무능한 리더였고, 엘리사를 죽이라고 사자들을 먼저 보내면서 자기도 뒤따라옵니다.


때에 엘리사가 그의 집에 앉아 있고 장로들이 그와 함께 앉아 있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냈더니 사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살인한 자의 아들이 머리를 베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안에 들이지 말라 그의 주인의 발소리가 그의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6:32)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을 “이 살인한 자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악한 자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고 원수로 갚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문을 닫아걸고 왕의 사자들을 들이지 않습니다. 이어 그들을 뒤따라온 왕이 이를 갈면서 외칩니다.


무리와 말을 때에 사자가 그에게 이르니라 왕이 이르되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6:33)


그는 자신의 말대로 재앙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것임을 알았다면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돌아보며 회개했어야 하고, 용서를 위해 엘리사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을 부인하는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려 듭니다. ‘하나님은 잔인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어 봤자 소용이 없다’는 식의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십계명의 3계명을 어기는 죄입니다.


너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 20:7)


이스라엘 왕은 회개하기는커녕, 하나님을 향해 악한 마음을 품고 있는 악하고도 한심한 리더였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편에 있지 않은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편이 아니라고 화를 냅니다. 이에 엘리사는, 악을 행하고 우상 숭배를 하면서도 하나님의 복을 기대했던 어리석고 악한 왕과 이상 대화하기를 포기합니다. 대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영적으로 말이 통하는 사람과 자꾸 대화하려 해도 되지가 않습니다. 그럴 때는 대화를 하려고 하면 되고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회의 때에도 뭔가가 풀리면 자꾸 말로 하려고 하지 말고 기도하는 겁니다.

 


2.   구원의 선포


비록 이렇게 무지하고 악한 왕이 있는 이스라엘이지만,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그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시고 엘리사를 통해 사마리아 성의 구원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스아를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스아를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7:1)


이것은 정말 믿기 어려운 예언입니다. 하루만 지나면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곡식들이 평소 때와 같은 정상가격으로 유통될 것이라고 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는 겁니다. 지금 자기 자식을 삶아 먹을 정도로 비참한 현실에서, 더구나 재난의 원인을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사 자신에게 돌리며 죽이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이런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닙니다. 보통 담대한 아닙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선포했습니다. 엘리사가 ‘내 말을 들어라’라고 하시는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똑똑한 전문가들은 절망적인 상황을 보며 이것이 되는지를 분석해서 설명해줍니다. 정치, 경제, 외교, 국방, 교육 모두 되는지를 해설해줍니다. 사실 된다는 말은 누가 못합니까?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 되고, 저래서 되고, 된다는 말을 하기는 쉽습니다. 누가 모릅니까?


영혼 구원해서 제자를 만드는 것이 사실은 상식적으로 ‘안 되는 일’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를 만듭니까? 그런데 사실 된다고 하는 사람 치고 최선을 다해 사람을 봤습니다. 대개는 제대로 하지 않고 조금만 해보고는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망을 주신 것을 확실히 보고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번에 살펴본 거짓 선지자들처럼 하나님이 주시지도 않은 말씀을 가지고 가서 아합 왕에게 “승리할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전하는 겁니다.


엘리사가 선포한 내용은 엄청난 축복의 약속이었지만, 내용은 너무나 극적이었습니다. 어떻게 24시간 만에 참혹한 상황이 변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왕의 장관 명이 비웃듯이 엘리사에게 말합니다.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7:2)


왕에 신하입니다. 사람은 왕의 신임을 얻고 왕이 의지하는 장관이었는데, 그는 하나님을 믿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는 말을 내뱉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있는 창고 문을 여신다고 해도 그런 일은 있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모르고 그분의 능력도 모르니까 함부로 말을 합니다.


이에 엘리사는 분노하며 방자한 말을 함부로 지껄인 장관에게 무서운 심판을 선포합니다. “네가 분명히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을 눈으로 직접 것이지만 먹지는 못할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먹습니까?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풍성해지는데 사람만 먹습니까?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신의 대가는 이처럼 무섭습니다. 우리는 정말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을 향한 불신과 원망의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회중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아니면 차라리 우리가 광야에서라도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땅으로 끌고 와서, 칼에 맞아 죽게 하는가? 우리의 아내들과 자식들을 사로잡히게 하는가?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 14:2-3, )


정탐꾼들이 가나안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보고를 듣고 백성들이 원망을 내용입니다. 그러한 그들의 말에 대해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나를 원망하는 악한 회중이 언제까지 그럴 것이냐? 나를 원망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을 내가 들었다.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의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너희가 나의 귀에 들리도록 말한 그대로,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하겠다. 너희 가운데 스무 살이 넘은 사람으로, 인구조사를 받은 모든 사람들, 나를 원망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시체가 되어 뒹굴게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땅을 주어 살게 하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하였다. 그러나 이제 너희는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다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이 들어갈 것이다. 너희가, 사로잡혀 것이라고 걱정한 너희의 어린 것들은, 내가 이끌고 너희가 거절한 땅으로 들어가겠다. 땅이 그들의 고향이 것이다.” ( 14:27-31, )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원망한 그대로 그들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자기들에 대해 뭐라고 했습니까? 가나안의 강한 적들의 칼에 맞아 죽는 것보다 광야에서 죽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대로 되게 해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버하며 걱정해서 자기 자식들이 사로잡혀 것이라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 반대로 그들을 “내가 이끌고 너희가 거절한 땅으로 들어가겠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무서운 경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면 원망한 내용대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특히 자신에 대해 원망하면 그대로 이루어지고, 다른 사람에 대해 지레 짐작으로 미리부터 걱정하면 사람은 오히려 축복을 받습니다. 정말 말을 조심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바른 마음을 품고 바른 말을 해야겠습니다.


 

3.   사마리아 성의 구원의 성취


엘리사가 왕과 신하들에게 하루 만에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그들은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람 군대 쪽으로 가서 정탐할 생각도 안 했습니다. 엘리사의 예언이 너무나 믿기 어려웠고, 또 아람 군대에 대한 공포가 워낙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오묘한 구원의 역사를 전해줄 도구로 전혀 뜻밖의 사람들을 선택하여 사용하시는데, 그것은 성 밖에서 버림받은 인생으로 살던 4명의 나병환자들입니다. 이들은 평소에 성 사람들로부터 인간 취급을 못 받아서, 성 밖에 쫓겨나 살아야 했습니다. 거의 굶어죽게 되자, 이 나병환자들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서로 회의를 합니다(3-4).

 

평소에는 밤에 성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구걸하거나 몰래 주워 먹었는데, 이제는 성 사람들도 굶어 죽게 되었으니 그건 틀렸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있어도 굶어 죽게 되었으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람 군에게 가서 항복하면 조금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굶어 죽을 것이고, 가서 구걸하다 그들의 칼에 맞아 죽어도 죽는 건 똑같으니까, 눈 딱 감고 적군인 아람 진영으로 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이들 네 명의 나병환자들은 해 질 무렵에 아람 진에 도착하게 되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광경이 펼쳐집니다. 천막과 식량과 모든 것이 그대로 있는데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겁니다(5). 그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7:6-7)

 

그 사이에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에게 이상한 소리를 듣게 하셨던 것입니다. 수많은 병거 소리와 군마 소리와 큰 군대가 쳐들어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환청이었겠지만, 모든 병사의 귀에 동시에 들린 소리였기 때문에 다들 놀라서 일어나 도망간 것입니다. 당시 엄청난 대군을 동원할 수 있는 헷과 애굽에 돈을 주고 용병의 대군을 불렀다고 생각이 들면서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여 도망친 것입니다. 머리가 너무 빨리 도니까 도망갔습니다.

 

나병환자 네 사람이 아람 진영에 도착한 것이 바로 그 무렵이었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들은 놀라면서도 기뻐하며 먹고 마시고 은과 금과 옷도 가지고 나와 숨겨둡니다. 한마디로 이제껏 누린 적이 없을 정도의 최고로 신나는 시간을 보낸 겁니다. 그들이 한참을 그렇게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어 감동적인 말을 합니다.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7:9)

 

사마리아 성 안은 백성들이 너무 굶주려서 자기 자식까지 잡아먹는 처참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무서운 아람 군대가 물러가고 그들이 남겨 놓은 물자들은 너무나 풍성합니다. 이 아름다운 소식을 모두에게 전하지 않고 자기들의 욕심만 채우고 있는 것이 부끄러워졌고, 혹시 나중에라도 이 사실을 알면서도 전하지 않은 게 드러나면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급히 사마리아 성을 향해 갑니다.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이 나병환자들이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성으로 급히 되돌아간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교훈을 가르쳐줍니다.

 

첫째, 우리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끼리만 이 좋은 소식을 즐기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이 아름답고 복된 구원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곳에서도 전해야 하고, 특히 굶주린 사마리아 백성들처럼 구원받지 못한 채 영적으로 굶주려 죽어가는 열방의 영혼들을 기억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먼저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자들로서, 은혜에 빚진 마음을 가지고 한시라도 빨리 복음을 들고 달려가야 합니다. 전도와 선교의 열정을 다시 새롭게 다져야 합니다.

 

둘째, 나병환자들은 자기들이 이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후에 벌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했는데,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어 가는 자들을 살릴 구원의 복음을 알면서도 전하지 않는 것은 화를 자초하는 죄입니다. 구원의 복음은 반드시 선포되어야 하고, 믿는 자라면 모두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겔 3:17-19)

 

셋째, 나아만에게 치료가 가능하다는 소식을 알려준 사람이 포로로 잡혀 온 한 소녀 종이었듯이, 아람군이 물러가고 엄청난 물자가 있다는 구원의 소식을 사마리아 성에 전해준 것은 멸시와 천대를 받고 부정하다 여겨지던 나병환자들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약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알리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방식으로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내가 잘나서 쓰시고 못 나서 안 쓰시는 게 아닙니다. 쓰려고 하실 때 순종이 중요합니다.

 

이제 나병환자들이 전해준 소식은 곧 왕에게로 전달됩니다(11).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이것을 아람군의 유인작전이라고 생각합니다(12). 제법 머리를 써서 적의 의도를 파악한 것처럼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완전히 잘못 짚은 것입니다. 영성이 없으면 지혜도 없습니다.

 

그때 신하 중 한 명이, 아직 성중에 남아 있는 말 다섯 마리에 군사들을 보내 정탐을 하자고 합니다(13). 가서 보니 나병환자들의 말이 사실이었습니다(15). 과연 아람 진영에는 사람의 흔적도 없고, 버리고 간 의복과 장비들과 식량들이 길에 널려 있는 겁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왕이 뭐라고 할 틈도 없이 백성들은 와 하고 성 밖으로 달려 나갑니다.

 

“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영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7:16)

 

원래 아람군은 장기적인 포위작전으로 나갈 계획으로 왔기 때문에 식량이 풍성했습니다. 그래서 버리고 간 식량이 엄청나게 많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제 곡식이 평상시와 같은 가격으로 유통되게 되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없던 것이며 가격도 평소의 가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람 군대를 도망가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이 버리고 간 식량으로 굶어죽어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시는 놀라운 일을 일으켜주셨습니다. 이것은 정말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이처럼 어떤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소망의 말씀은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예언뿐 아니라 심판의 예언도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은 왕의 장관이 비참하게 죽은 것입니다.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였던 그의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왔을 때에 그가 말한 대로라” (7:17)

 

이 사람을 생각해보십시오. 실제로 왕을 부축했다는 뜻도 될 수 있고 왕의 신임을 받았다는 뜻도 될 수 있습니다. 그 장관에게 성문을 지키게 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성문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지도계층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 사람은 신하들 중에도 가장 왕의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교만했을 것입니다. 스스로 높이며 우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의 신임을 받아 높은 자리에 올라간 그것, 교만한 그것 때문에 죽었습니다. 홍수처럼 밀고 나오는 백성들에게 밀려서 넘어진 겁니다. 백성들은 굶주려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게 없어서 넘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옆에 있던 호위병들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백성들에게 밟혀서 죽고 말았습니다. 굶어죽게 된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날이었지만, 그에게는 죽음의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신하는 자에게 임할 심판을 상징해서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영생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만, 어떤 이유로든 이 복음을 거부하거나 끝까지 무시하는 자들은 결국 영원한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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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떠한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먼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소망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세상이 무시하며 믿지 않더라도, 아무 반응이 없더라도, 결코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계속 전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그러한 하늘 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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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처음부터 끝까지 악만 행한 아하스 (대하 28:1-27)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8 (7/13/16) kpccoh 2016.07.13 2332
57 잘나가다 무너진 웃시야 (대하 26:1-23)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7 (7/09/16) kpccoh 2016.07.06 3625
56 여로보암 2세와 그 시대의 선지자들 (왕하 14:23-29)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6 (6/29/16) kpccoh 2016.06.29 7270
55 정직했다가 타락한 아마샤의 안타까운 리더십 (대하 25:1-28)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5 (6/22/16) kpccoh 2016.06.22 4348
54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는가?" (갈라디아서 2장 20절) - 이기환 장로 (6/15/16) kpccoh 2016.06.15 820
53 섬김과 리더쉽 (마가복음 10장 44 – 45절) - 이기환 장로 kpccoh 2016.06.08 737
52 엘리사의 마지막 예언 사역 (왕하13:1-25)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4 (6/01/16) kpccoh 2016.06.02 2659
51 극적으로 등장했지만 안타깝게 끝난 요아스 (대하22:10-24:27)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3 (5/25/16) kpccoh 2016.05.25 2051
50 예후를 통해 이루어진 아합 가문에 대한 심판 (왕하 9장-10장)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2 (5/18/16) kpccoh 2016.05.18 3668
49 하나님의 절묘한 타이밍 (왕하 8:1-15)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1 (5/11/16) kpccoh 2016.05.11 4802
» 불가능한 상황을 역전시키시는 하나님 (왕하 6:24-7:20)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0 (5/04/16) kpccoh 2016.05.05 2824
47 하나님의 사람, 능력의 사람 (왕하 6:1-23)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9 (4/27/16) kpccoh 2016.04.27 4450
46 나아만의 치유 (왕하 5:1-19)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8 (4/20/16) kpccoh 2016.04.20 5096
45 모압과의 전쟁에서 거둔 절반의 승리 (왕하 3:1-27)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7 (4/13/16) kpccoh 2016.04.13 5372
44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마 6장 9-13절) - 이기환 장로 kpccoh 2016.04.06 665
43 엘리야와 엘리사가 보여준 리더십 승계의 모범 (왕하 2:1-25)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6 (3/30/16) kpccoh 2016.03.31 4616
4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주는 의미 (요 12:20-33) - 성금요예배 (3/25/16) 이준원 2016.03.26 2605
41 불신앙과 불순종의 비참한 결말 (왕하 1:1-18)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5 (3/16/16) kpccoh 2016.03.16 3841
40 의로운 왕에게서 나온 악한 아들의 실패 (대하 21:1-20)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4 (3/09/16) kpccoh 2016.03.10 2002
39 찬양으로 거둔 승리 (대하 20:1-37)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3 (3/02/16) kpccoh 2016.03.03 3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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