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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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한국 텔레비전 방송의 개그 프로그램에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가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우스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내용이었는데, 정말 우리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이 있듯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심지어 부부사이라도, '한 길 사람 속'은 오직 대화를 통해서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서 살맛을 느끼며, 관계의 단절은 인간에게 고통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정을 주시고 또 교회를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주일에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목장 등을 통해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자신에게 유익이기 때문입니다.
친밀한 부부 사이나 가까운 이웃 사이에도 갑자기 관계가 냉각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뭔가 말실수를 한 것입니다. 말실수를 하는 이유는,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하여 상대방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대충 짐작으로 넘겨짚기 때문입니다.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 전 미국 어느 병원에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수시로 사람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물건을 마구 집어 던졌습니다. 간호사들은 정신병동에 보내어 감금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정신과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얼마 후 정신과 의사가 와서 살펴보니, 그 할머니는 지적인 사람이며 고등교육을 받은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전에 시력을 잃어 시각장애인이 되었고, 최근에는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다리 수술을 받기 위해서 정형외과에 입원하고 있다가 소란이 일어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특히 라디오를 항상 틀어 놓고 있었는데, 다른 환자들이 귀를 막아야 할 정도로 소리를 크게 해놓았습니다. 그래서 간호사가 라디오 볼륨을 줄이면 그때마다 폭발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할머니가 창문을 항상 열어 놓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간호사가 창문을 닫으면 정신착란 증상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살펴본 정신과 의사는, 라디오와 창문이 할머니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할머니와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놀랍게도 할머니는 정신착란증 환자 같지 않게 모든 라디오 프로그램을 줄줄 꿰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뭔지, 그 진행자가 어떤 사람이며 어디가 매력인지, 또 진행자가 들려준 재미있는 유머도 말해주었습니다. 그 할머니에게 라디오가 그토록 중요했던 이유는, 라디오가 자기에게 날짜, 시간, 날씨,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최신 뉴스 등을 다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눈은 안 보이지만 라디오가 그녀에게 눈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할머니에게는 창문을 꼭 열어놓아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창문을 통하여 우유배달 소년의 자전거 소리, 새의 울음소리,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들 바람, 버스가 도착하는 소리 등을 다 듣고 느끼며 세상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는, 라디오와 창문이 할머니의 눈이었고 다리였다는 사실을 간호사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친절한 그들은 할머니에게 이어폰을 구해드렸고, 침대도 창가로 옮겨드렸습니다. 그 후로 다시는 정신착란 증세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대화를 나누지 않은 채 의료진만의 짐작대로 진행했더라면, 할머니는 라디오를 빼앗긴 채 창문도 없는 정신병동에 갇히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 이해받고 치유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대화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