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HOME > 설교와칼럼 > 목회편지
몇 년 전 가정교회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에 계시는 어떤 목사님을 알게 되었는데, 일전에 그분이 제게 페이스북(Facebook) 친구 신청을 하셔서 소위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요즘 제주도에서 안식년을 보내며 사진과 글을 많이 올리십니다. 사실 페이스북에는 사람들이 글을 하도 많이 올려서 대부분 슬쩍 훑어만 보고 그냥 넘어가는데, 지난주 제가 여유 있게 쉬고 있을 때 마침 그 목사님이 글을 올리셔서 별 생각 없이 읽어보다가, 의외로 그 내용에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의 어느 집사님이 평소에 새벽기도회 때 은혜를 많이 받는다며 고마워했는데, 언제부턴가 새벽기도 설교 때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새벽 설교에도 눈물을 흘릴 정도라면 아예 은혜를 받기로 작정한 분이구나 생각되어 목사님도 그분을 볼 때마다 고마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반면 주일예배 시간마다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청년이 있어서 목사님의 눈에 계속 걸렸습니다. 성경 본문을 읽는 시간인데 폰만 보고 있고, 설교 시간에는 아예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문자까지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한 번 불러서 따끔하게 야단을 칠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꾹 참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 교회 장로 장립식에 목사님이 사모님과 함께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대개 그런 특별예배 때는 예배 순서와 함께 찬송가와 성경 본문이 인쇄된 순서지를 나누어주기 때문에 성경을 안 가지고 갔는데, 하필 그 예배에는 순서지가 따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핸드폰으로 성경 본문을 찾으려고 하는데, 옆에 있던 사모님이 툭 치면서 ‘목사가 예배 시간에 폰을 만지작거리면 괜히 다른 사람들이 보고 오해할 수 있으니 내 성경을 같이 봅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날따라 예배 시간이 길어지면서 평소에 좋지 않던 목사님의 눈이 따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인공눈물을 꺼내어 넣으려고 보니 늘 가지고 다니던 인공눈물이 하필 그날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손수건을 꺼내어 눈을 적당히 누르며 마사지를 했습니다. 바로 그때 번개처럼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아, 그 집사님도 나처럼 눈이 건조해서 손수건을 사용한 거였구나. 아, 그 청년도 나처럼 핸드폰으로 성경을 읽은 거였구나.’ 얼마 후 그 청년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설교 중 은혜를 받으면 즉시 핸드폰에 메모해서 저장해둔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이 그렇게 행동했던 진짜 이유가 각각 따로 있었지만 그 목사님은 자신의 선입관에 따라 나름대로 판단을 내려서, 한 사람은 엄청나게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으로 생각했고 또 한 사람은 예배 때 딴 짓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던 것입니다. 사실과 전혀 다른, 완전한 오해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 나도 저럴 때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왜 그런지 또는 무슨 뜻인지 잘 알아보지도 않고 나름대로 판단해서 좋다거나 나쁘다고 단정해버리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내 눈에 좋아 보인다고 금방 좋다고 판단했다가 속임수에 넘어갈 수 있고, 반대로 내 눈에 거슬린다고 금방 나쁘다고 단정 지었다가 창피를 당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먼저 그 말이나 행동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아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실수를 피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세워 나갈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