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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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한국 역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 두 명을 꼽으라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런데 실제 역사를 들여다보면 세종대왕은 보통 알려진 것과는 달리 명나라 사대주의 등 실망스러운 행동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질고 겸손한 성품을 가진데다, 학문을 사랑하고 장려했으며, 그 당시 안 하는 게 더 어려웠던 정치보복을 하지 않음으로써 신하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또한 한글을 만들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등 놀라운 업적을 많이 남긴 위대한 왕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인생은 정말 파란만장합니다. 1597년 음력 7월 16일,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원균이 배를 버리고 땅으로 도망가다가 왜군에 잡혀 죽고, 그날 조선 수군은 전멸했습니다. 거북선을 비롯해 160여 척에 이르는 전함이 파괴되었고, 만여 명의 병사가 전사했습니다.
당시 왕이었던 선조의 그릇된 판단으로 관직에서 쫓겨나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어명에 의해 삼도수군통제사에 복직했지만, 왕은 다시 ‘조선 수군은 더 이상 가망이 없으니 배를 버리고 육군과 합류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때 이순신이 올린 답변이 유명합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열두 척이 있나이다. 나아가 죽기로 싸운다면 해볼 만하옵니다... 전선의 수는 비록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얼마 후 이순신은 울돌목으로 가서 전투가 벌어지기 전날 밤 부하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살 것이나, 살려고 한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 했다. 또 한 사람이 길목을 막아 지켜도 능히 천 사람을 두렵게 할 수 있다 했는데,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다. 너희는 나의 명령에 한 치도 어긋나지 않도록 하라.”
이때 이순신이 말한 병법은 손무의 <손자병법>과 쌍벽을 이룬다는 평가를 받은 <오자병법>입니다. 그러나 이순신이 승리를 거둔 것은 결코 <오자병법>대로 싸워서 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순신은 오기를 뛰어넘고 손무도 뛰어넘은 엄청난 장수입니다. 사실 <오자병법>과 <손자병법>에는 적군의 수가 아군보다 더 많으면 절대로 싸우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이순신은 무려 10배나 많은 적들과 싸우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명량해전에서 믿을 수 없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순신이 <오자병법>과 <손자병법>을 뛰어넘는 병법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오기와 손무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마음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비천한 자리에서 고통 받고 있는 백성들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고통당하는 백성들을 지키기 위한 사랑 때문에 무모해 보이는 전투에 나아가 용맹하고도 지혜롭게 싸워 큰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세종대왕 역시 어떻게 해서 다른 어떤 왕들보다 더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다른 왕들에게는 없었던 마음, 즉 백성을 위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어려운 한문을 읽지 못하는 백성들도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한글을 만들었고, 조선의 실정에 맞는 농사법과 의학과 음악과 무기와 전술을 개발하여 백성들이 더 편하게 살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 서 있는 것을 보면, 그 두 사람이 한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인물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들의 성공의 비결은 백성을 향한 사랑입니다. 결국 핵심은 사랑임을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