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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825일 수요예배

분노의 시대에 자신을 지키는 길 2

사라의 분노: 사랑이 없으면 가족도 원수가 된다

(창세기 161~6)

 

1.   마음속에 쌓인 분노는 관계를 어렵게 한다

 

사라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직 하나님이 이름을 바꾸어주시기 전이므로 각각 아브람과 사래입니다.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에서 살다가 아버지 데라와 함께 떠나와서 하란에 머물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 땅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런데 힘들게 가나안 땅에 도착했지만 그 땅에 기근이 듭니다. 그래서 아브람과 사래는 애굽 땅으로 먹을거리를 찾아갑니다.

 

그때 아브람이 남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합니다. 애굽 사람이 사래의 미모에 끌려서 남편인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에게 사래를 누이라고 속인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하마터면 애굽 왕 바로에게 사래를 빼앗길 뻔했으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상당한 재산을 받아 가지고 애굽 땅을 나오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래에게 아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 당시 아기를 낳지 못한다는 것은 여자로서 가장 치명적인 결함이었기 때문에, 사래는 고민 끝에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냅니다. 여종 하갈을 통해 아기를 얻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1-2)

 

사래가 오랜 고심 끝에 아브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그는 별 망설임 없이 그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입니다. 사실 아브람은 이미 하늘의 별보다 바다의 모래보다 더 많은 자손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기를 얻으려고 합니다.

 

사래가 이때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이런 제안을 했겠습니까? 그렇다면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가운데 사래와 그것을 나누면서 조금 더 같이 기다려보자고 설득해야 했지만, 아브람은 마치 사래가 제안할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곧바로 받아들입니다. 이런 말은 안 들어도 되는데 즉시 듣습니다. 어쩌면 속으론 너무 좋아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3)

 

그렇게 해서 사라의 몸종 하갈이 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갈이 임신하자마자 돌변해서 사라를 제치고 자기가 안주인 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4)

 

이것은 하갈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실 누구나 이렇게 됩니다. 이전에 넘보지 못했던 자리라도 일단 꿰차고 나면 원래부터 자기의 것인 듯 행세하려고 드는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이때 사라의 입장에서는 몸종인 하갈이 자신의 주인 행세를 하려 드니까 얼마나 아니꼽고 어처구니없겠습니까? 사라는 이때 자신의 분노를 남편인 아브라함에게 쏟아 붓습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5)

 

사래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강했습니다. 게다가 하갈이 임신했다는 사실은 결국 아브람이 아니라 사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사건입니다. 이때 사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오는 시기와 질투와 분노 때문에 하갈의 임신을 도저히 축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라는 자신의 자격지심을 하갈에 대한 분노로 폭발시킵니다. 어떻게든 대를 잇고자 하는 남편의 갈망을 풀어주고자 자기 몸종을 남편에게 주었는데 도리어 멸시와 모욕을 받았으니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그러한 사래의 분노는 날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사래는 남편 아브람에게 자기가 받는 모욕은 남편이 받아야 옳다고 말하는데, 전부 다 아브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주님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한다고 항변합니다. 그러고 난 뒤 하갈을 대놓고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6)

 

사래의 학대가 얼마나 심했는지 하갈이 못 견디고 도망갈 정도였습니다. 이때 아브람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하갈이 임신한 채 집을 나갔으니 마음이 좋을 리 없습니다. 안타깝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괘씸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사라와의 관계에서도 갈등이 더 심해졌을 것입니다.

 

성경은 사래가 왜 그렇게 화가 났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래의 마음이 어땠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 편안하게 자리 잡고 살던 하란을 떠나 낯선 땅 가나안까지 오는 길은 정말 험난했습니다. 게다가 기껏 도착했더니 기근이 들었고, 그래서 더 남쪽으로 가다가 도착한 이집트 땅에서는 남편 때문에 바로에게 농락당할 뻔한 위기도 겪었습니다. 그때 남편은 위기에 처한 자기를 구해주려고 노력하기는커녕 가만히 있었고, 하나님이 개입하여 구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일로 바로에게 큰 재물을 받아서 재산이 크게 늘어나서 나온 남편을 볼 때 신뢰가 떨어지는 동시에 서운한 마음이 확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부족한 남편이었지만 그래도 대를 잇기 위해 자신의 여종 하갈까지 주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돌아온 결과는 멸시와 모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남편은 아무것도 안 해주는 겁니다. 아브람은 인간적으로 보면 참 무능하고 비겁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후(20) 한 번 더 사라를 아내가 아닌 누이로 속여 곤란에 빠뜨리게 됩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또 다시 아내를 빼앗길 뻔한 것입니다. 그때도 아브라함은 재산을 단단히 챙기긴 했지만, 애굽에서 호된 경험을 하고도 배운 게 없었고 별로 바뀌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어주셨지만, 그의 속사람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라는 그러한 아브라함이 신뢰가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믿는 하나님에게도 신뢰가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래의 마음속에 쌓인 분노는 학대를 넘어 마침내 하갈을 내쫓게 됩니다. 자신의 내면에 상처가 있고 분노가 쌓이면 타인과의 관계는 정상적으로 지속되지 않습니다.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언젠가는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사래의 분노는 하갈에 대한 학대로 드러나고 하갈은 결국 사래의 곁을 떠나 도망쳐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래의 분노에 주목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분노는 인류 역사의 가장 뿌리 깊은 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자리 잡습니다. 두 여인 사래와 하갈의 갈등은 그들에게서 태어나는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오늘날 이슬람과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과 이슬람의 갈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분노는 가정에 갈등을 가져온다

 

한편, 이 상황을 하갈 입장에서 보면 어떻습니까? 주인 사래의 명령에 따라 아브람 어르신과 동침해 아기를 가졌는데, 감사는커녕 오히려 사래에게 학대를 당하고 결국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억울하고 기가 막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런 하갈을 만나주시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갈은 아브라함의 집으로 돌아가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뒤 마침내 사라가 이삭을 낳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얻은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꿔주셨습니다. ‘큰아버지아브람에서 열국의 아버지아브라함으로, ‘나의 공주사래에서 모든 사람의 어머니사라로 복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것처럼 아브라함이나 사라는 그런 이름을 가질 자격이 없었습니다.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보호하기는커녕 도리어 위험에 빠뜨리는 못난 남편이었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다른 여자를 통해 아들을 얻겠다고 계획했다가 오히려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과 갈등하다 쫓아낸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아브라함과 사라인데도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놀라운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들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의롭게 만들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얻고 사라는 그 이름을 웃음이란 뜻의 이삭이라고 짓습니다. 너무 좋아서 웃음을 감출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또 다시 집안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며 조롱하는 것을 사라가 보았고, 그에 분노하여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쫓아내는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때도 아브라함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종이니 알아서 하라고 분노한 사라에게 모든 문제를 맡겨버립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의 무책임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마엘 역시 아브라함의 아들이기 때문에 한 민족을 이루도록 복을 주십니다.

 

이때까지만 놓고 보면 아브라함은 참 비겁한 사람입니다. 그는 무책임한 남편이고 신실하지 못한 아버지입니다. 이렇게 남편이 남편답지 못할 때 아내의 내면에 화가 쌓이고,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할 때 분노가 폭발하게 됩니다. 해소되지 않은 분노는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급속히 팽창하여 결국 폭발합니다.

 

그런 분노를 흔히 화병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그 사람의 내면의 질서뿐 아니라 밖으로 드러나는 삶의 질서까지 무너뜨리게 됩니다. 아버지의 무책임함은 어머니의 가슴에 화병을 만들었고, 그것이 가정마다 크고 작은 한으로 서려 한국 사회와 이민 사회 곳곳에 쓴 뿌리를 남겨 놓았습니다.

 

본문에서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사래입니다. 잉태하지 못한 것도 사래였고,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여종을 통해 아기를 얻겠다는 인간적인 생각을 한 것도 사래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래는 도리어 남편과 여종에게 화를 냅니다. 임신한 하갈을 돌보거나 책임지지도 않습니다.

 

열네 살의 어린 이스마엘을 데리고 집을 떠나야 했던 하갈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막막하고 기가 막혔겠습니까? 사실 하갈도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십대 소녀였고(15-16) 그렇다면 이때 많아야 30세 정도였습니다. 하갈 입장에서는 모든 일을 계획하고는 그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사래도 밉지만, 뒷짐 지고 방관만 하는 아브람도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3.   분노의 상황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라

 

분노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살고, 그러다 보니 분노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분노가 결국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했고, 나아가 오늘날 심각한 중동 분쟁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분노의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니까 하나님의 기준을 거부하고 내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내가 내린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생기게 되고, 바로 그런 사람들을 향해 나오는 감정이 분노입니다.

 

결국 분노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상한 감정입니다. 그런 분노는 결국 어느 시점이 되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파탄을 가져오고, 다 나아가 집단적인 대립과 갈등이 전쟁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성경을 보면 여러 군데에 하나님의 약속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사람을 통해서만 그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잠시 중단하고 말씀으로 기준을 삼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과 판단을 버리지 못하고 그것을 주장하게 되면, 본문의 사래처럼 인간적인 궁리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로 인하여 분노할 일이 생기며, 결국 평생 처리하지 못할 분노를 쌓게 됩니다.

 

아랍 민족은 이스마엘의 후예이고 유대인은 이삭의 후예입니다. 이 두 민족은 지금도 원수지간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남편으로서 아내 사라를 충분히 사랑하며 처신을 잘했다면, 하갈이 감히 사라를 모욕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사라도 이스마엘을 자기 자식처럼 돌보고 키웠을 것이고, 오늘날 중동의 분쟁도 없었을 것이며 아마도 인류 역사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분노의 열매가 수없이 많이 맺힌 역사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후 세대들이 그 열매를 따 먹으며 고통을 겪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내면에 쌓여 있는 분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분노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분노는 당대에 해결되어야 하지, 그것이 자손들에게까지 대물림되어선 안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분노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미래뿐 아니라 자손들의 미래까지도 결정됩니다.

 

그런데 내게 허락된 결점이나 부족한 것조차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하나의 선물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의 분노가 생기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내 뜻대로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입니다. 특히 회의할 때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화가 납니다. 꼭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때 자유해집니다.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지혜롭게 수용하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지금 자신의 상황을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분노가 일어나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 믿음의 눈으로 보면 다른 차원의 길이 보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를 작사한 Fanny Crosby는 태어난 지 6주 만에 의사의 실수로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할머니 밑에서 정말 힘들고 외롭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크로스비 여사는 자신의 불행을 통해 오히려 8천 곡 이상의 찬송가를 작사하는 놀라운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찬송시를 보십시오.

 

     아,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비록 보이지 않는다 해도 이 세상을 나는 만족하리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축복을

     나는 얼마나 많이 누리고 있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한숨짓고 눈물지을 수도 있지만

     나는 한숨짓고 눈물지으려 하지도 않으리

 

이 시는 크로스비 여사가 언제 지은 것 같습니까? 그녀가 겨우 8세에 지은 시입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불행을 겪으면 당분간은 그 불행에 매달려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면 또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혹시 지금 자신의 내면에 어떤 이유로든 분노가 있습니까? 그것을 숨기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드러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분노를 드러낼 때 분노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해결되지 않은 채 마음에 남아 있는 분노는 결국 나를 죄의 덫에 걸리게 합니다.

 

특히 내면의 분노로 누군가를 미워하여 분노를 표출한다면, 그 관계는 당연히 안 좋게 끝날 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도 큰 상처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분노하면 상대방도 상처를 받고 나도 상처를 받고 관계는 끝납니다. 그러므로 분노를 사람에게 쏟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며 어리석은 일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분노할 때 상대방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 깨지고 무너짐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어떤 분노를 쏟아 놓아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드러낼 때 내 마음이 깨끗해질 수 있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날 때,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 모두 쏟아놓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할 때 참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아름다운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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