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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11일 주일예배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5

변화된 베드로의 담대한 설교

(사도행전 214~21)

 

[들어가는 말]

 

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몇 년 전 영국에서 의대를 다니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국에 와서 사역하는 영국 청년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그 청년에게 한국 교회에 대하여 느낀 소감을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그가 대답하기를 영국 교회는 한국 교회에 비하여 교회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교인 수가 적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비록 교인 숫자는 적지만, 그들 모두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반면에 한국 교회를 보면 교회마다 교인들로 넘쳐나는데,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대답했습니다. 특히 청년들과 어울리며 느낀 게, 젊은이들이 예배당 안에서는 뜨겁게 찬양하고 예배하는데, 밖에서는 예사로 술 마시고 취하거나 이성 간에 거리낌 없이 성관계를 맺는 등, 도저히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영국 청년이 경험한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세속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이 주일에 예배당으로 와서 기도하며 예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전혀 구별되는 모습이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교회에서는 분명히 믿는 사람 같고 크리스천 같은데, 사회에서 살 때는 안 믿는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산다는 겁니다.

 

요즘 미국 교회도 이런 문제가 많아서 그런 사람을 실질적 무신론자라고 부릅니다. 무신론자는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실제 삶으로 나가면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이 아닌가 해서 실질적 무신론자라고 합니다.

 

그런 문제가 세월이 지나면서 나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서 15% 정도로 크리스천 인구가 내려갔다고 보이지만, 한때 천만 성도라고 할 때가 있었습니다. 전 국민의 25%가 크리스천이라고 할 때를 생각해보면, 믿는 사람들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친 것보다는(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지탄을 받은 것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비리 사건이나 누가 잘못하고 구속되고 사기 치는 사건을 보면, 잡혀 들어가는 사람들 중 다수가 장로나 안수집사였습니다. 지금도 옛날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1993년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을 했는데, 그때 사정의 바람이 불어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 들어갔는데, 그 중 장로나 안수집사가 너무 많았습니다.

 

일본은 크리스천 인구가 고작 1% 정도 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도 그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삶에서 정말로 말씀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교인 수를 자랑하며 양적인 성장을 추구할 때, 일본 교회는 말씀대로 실천하는 진지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세계적인 신학자나 문학가도 나왔습니다. 한국 교회가 선교사 파송 숫자가 많다고 하지만, 한국 교회가 일어나기 전에 크리스천 인구가 겨우 1%였던 일본 교회가 선교사 파송에서 세계 3위였다는 것이 너무 놀랍습니다.

 

교회란 건물이나 제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사람입니다. 바로 우리가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로 꽉꽉 차서 발 디딜 틈도 없지만 예배하는 모습만 빼면 비신자와 구별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한 교회가 주님 보시기에 올바른 교회일지, 아니면 교인 수는 적을지라도 순수한 마음으로 신실하게 주님을 따라 정말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가 주님 보시기에 올바른 교회일지는 너무나 대답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한국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세속화의 물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삶과 별로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 멀리 한국 교회를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자신만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도 주일에는 이렇게 나와서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는 것 같고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인 것 같은데, 매일의 삶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내뱉는 언어를 보면, 하는 행동을 보면, 하는 생각을 보면, 마치 주님과는 전혀 상관없이 주님을 안 믿는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까?

 

진정한 크리스천과 육신적인 크리스천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가장 큰 요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1.   성령을 받은 베드로의 선포

 

오순절에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가 나는 것이 들렸고(2),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하는 것이 보였습니다(3).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드디어 임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셔서 그들이 성령 세례를 받고 나서 곧바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성령 충만을 오해하는데, 뜨거워지고 눈물이 나는 게 다가 아닙니다. 성령 충만의 가장 큰 특징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상태입니다. ,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내 맘대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내 방식대로가 아니라, 성령께서 지시하시고 인도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상태를 성령 충만하다고 합니다. 뜨겁든 안 뜨겁든 상관없습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상태를 말합니다. 감정은 따라오는 것이지, 감정에 따라 성령 충만하고 안 하고가 아닙니다.

 

성도들은 성령 충만함을 받고 나니까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4). 그 당시 절기를 지키기 위해 200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전 세계 각지로부터 예루살렘에 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들은 자기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11)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로 인하여 언어가 갈라지고 사람들이 흩어진 바벨탑 사건의 회복된 놀라운 사건입니다. 전 세계의 모든 언어로 성령님의 말씀이 전해진 역사적인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때 이 놀라운 일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그 중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라고 조롱했습니다(13). 바로 그때 열한 사도와 더불어 베드로가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4-15)

 

베드로가 일어나서 행한 첫 번째 설교는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개인의 일을 말하는 게 아니라 성령님이 임하신 사건을 설명합니다. 15절의 제 삼시는 오전 9시를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시간에서 6을 더하면 우리 시간입니다.

 

오전 9시라면 요즘 모든 사람이 출근해서 일할 때이지 술에 취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기운이 죽 빠지고 피곤한 것은 대부분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퇴근해서 집에 왔을 때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퇴근하면서 피곤하니까 술 한 잔을 하는 것이지, 출근 때부터 술 한 잔을 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술 취하는 것은 밤에나 취하는 것이지, 아침부터 취하는 것은 완전히 비정상입니다.

 

그런데 아침 아홉 시에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령이 임하신 것은 아홉 시 이전입니다. 이미 그 전부터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고 놀라운 역사를 체험한 후 뛰쳐나와서 하나님의 큰일을 여러 언어로 이야기한 것이 아홉 시였습니다. 그러니까 몇 시간 전부터 기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겁니다.

 

이때는 오순절 아침입니다. 지금으로 하면 주일 아침인데, 유대인들은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첫 날 아침 아홉 시였는데, 이들은 안식일이 끝난 그 저녁때부터 함께 모여 철야기도를 했을 수도 있고, 계속 같이 먹고 자고 하면서 기도한 겁니다. 그래서 새벽부터 이들은 함께 모여 계속 기도한 겁니다. 120명이 새벽부터 같이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함을 입어, 나가서 여러 언어로 하나님의 일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것이 참 은혜가 됩니다. 새벽기도를 힘들어 하는 분들도 있지만, 새벽에 이렇게 같이 합심해서 기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번 주 내내 새벽에 모여 기도하려고 하고, 컨퍼런스를 앞두고 40일 동안 새벽에 같이 기도하려고 합니다.

 

이 성령 사건이 결코 술에 취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베드로가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요엘서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교회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결코 사람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교회가 생길 때부터 함께하신 분들도 계시고, 중간에 오신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다른 데서 오신 분들도 계시고, 이 지역에서 오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내가 선택해서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와서 보니까 이 교회가 마음에 들어서 그냥 다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여기 누가 있는지 알고 온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그냥 와 보니까 이런 분도 있고 저런 분도 있습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이 맺어주신 사람들과 함께 교제하고 예배하며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지체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뜻에 따라 함께 한 몸 안에서 하나가 되어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는 것도 어떤 사람 때문에 믿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아무리 말을 잘해도 사람 때문에 믿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으셨으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것이 오묘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선택하셨는데 또한 우리가 믿어야 진짜 믿는 것이 됩니다.

 

우리 인간의 결단도 있어야 하고, 이미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결단과 헌신이 합쳐질 때 성령의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믿음의 반응이 따라와야 성령의 사건이 일어나는 겁니다. 사람만 혼자 애쓴다고 성령의 사건이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거기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나올 때, 두 가지가 합쳐져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불러주셨기 때문에, 또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며 나아왔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아직 믿음의 결단을 하지 못하신 분들은 바로 이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있습니다. 지금도 부르고 계십니다. 내가 결단하며 거기에 반응하면서 나아가느냐 안 나가느냐, 그것입니다.

 

어떤 부부에게 아이가 있는데,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크리스마스가 되어 선물을 줍니다. 그런데 아이는 자기가 돈을 주고 산 게 아니니까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분명히 부모는 아이를 위해 이 선물을 샀고, 이것은 그 아이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끝까지 안 받겠다고 거부한다면 그것은 이 아이의 것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과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음으로 감사하다고 하며 받아야 합니다. 아이가 할 일은 자기가 돈 주고 산 게 아니니까 내 것이 아니고 나는 돈 벌어서 사겠다 할 것이 아니라, “아빠, 엄마, 감사합니다.” 하고 선물을 받는 겁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에 대해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를 위해 이렇게 구원을 주시는군요.” 하고 감사하면서 받으며 나아오는 것이 믿음입니다.

 

 

2.   선지자 요엘이 예언한 성령 사건의 성취

 

성령의 사건은 베드로가 주장한 것도 아니고 제자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놀랍게도 구약 요엘서의 예언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이미 800여 년 전 예언된 것이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6-17)

 

17절부터 21절까지가 요엘서의 말씀입니다(2:28-32). 내용은 같습니다. 요엘서에서 말한 성령의 사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인간이 믿음으로 반응하며 나아갔을 때 일어난 성령의 사건이 무엇이었습니까? 특히 몇 백 년 전에 예언된 말씀이 이때 어떻게 응답되었습니까?

 

1)  성령은 말세에오신다

 

요엘서에는 그 후에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말세에”(17)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라는 것은 약속하신 메시야가 오신 후에라는 뜻입니다. 메시야(그리스도/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30여 년 사시고 특히 3년 동안 공생애 사역을 하신 다음,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요엘서의 그 후에와 여기 나오는 말세에라는 말은 메시야가 그의 사역을 완성한 후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보통 말세다, 말세야라고 하는 것은 끝이 다 되었다는 말인데, 여기서 말세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구원 사역을 완성하신 후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1세기 때도 말세였고, 지금도 여전히 말세입니다. 갈라디아서 4:4에 보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을 말씀하는데, ‘때가 찼다는 것이 바로 그 후에또는 말세에라는 뜻입니다. 말세는 예수님과 함께 시작되었고,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부활과 승천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모든 지상에서의 사역이 끝난 후에 내가 내 영을 너희들에게 부어주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오신 것은 그냥 어쩌다 보니까 오신 게 아니라, 이미 몇 백 년 전에 예언하신 것이 이루어진 약속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령님은 오순절 아침 아홉 시 이전에 기대하고 기도하며 기다리던 성도들에게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셔서 충만하게 역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2)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요엘서 2장에 보면 모든 육체대신 만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같은 말입니다.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누구에게 임하십니까?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 때는 특정한 소수에게만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사나 제사장이나 예언자에게만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말세, 즉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 후에는, 또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고 난 그 후에는, 하나님의 영이 주님 앞에 나아와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이것을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나 어른이나, 건강한 자나 병 든 자나, 성공한 자나 실패한 자나, 자유롭게 있는 사람이나 감옥에 갇힌 사람이나, 살인자나 간음한 자나 사기 친 사람이나, 지식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오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메시지입니까? 저에게 사람을 골라서 성령을 주라고 하신다면, 착한 사람, 좋아 보이는 사람에게만 줄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전심으로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조건 없이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만민에게,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십니다.

 

실제로 이런 역사가 오래 전부터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Perspectives>라는 선교학 공부를 한 것이 1995년인데, 당시 전 세계에서 알려진 민족의 숫자가 22천내지 3천 개라고 했고, 그 중 약 11,000개의 민족이 미전도종족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몇 년 전에는 1500개 정도로 내려갔습니다. 20년 사이에 10배가 줄어들 정도로 복음이 급속도로 전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 북한에도 그런 역사가 일어날 것이고, 이슬람권에도 일어날 것이고, 또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그렇게 역사하십니까? 바로 우리 믿는 자들, 모든 믿는 자를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3.   성령이 부어질 때 일어나는 구체적 현상들

 

1)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17)

 

구약 시대 때는 예언자(선지자)들이 예언했습니다. 예레미야, 이사야, 에스겔, 아모스, 다니엘, 호세아, 요엘 같은 사람들이 예언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언에 대해 오해하는데, 미래를 점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래에 대한 것도 있지만, 예언서들을 읽어보십시오. 대부분 현재에 대한 일입니다. ‘지금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다. 그러니 빨리 마음을 돌이켜라. 빨리 회개하고 마음을 돌이켜라.’와 같은 것이 예언입니다. 미래를 점치는 게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항상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구약의 예언은 하나님이 특별히 기름 부어 세우신 예언자들을 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고 성령을 부어주신 다음에는 어떤 사람들이 예언을 합니까? 누구나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의 자녀들이 예언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 누군가의 자녀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받은 누구나 예언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성령을 받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요즘 한국에서 청년 실업이 굉장히 문제인데, 요즘 젊은이들이 연세 드신 어르신들보다도 꿈이 없는 것 같습니다. 몰려다니면서 뭔가를 하기는 하는데 눈에 생기가 없고 비전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익을 챙길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대학 가고 더 좋은 직장 잡고, 어떻게 하면 남을 누르고 올라설까 하는 것이 생각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조금 나가다 보면 슬쩍 거짓말도 하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타락하고, 방황합니다.

 

여기도 OSU 캠퍼스 근처를 가보십시오. 당연히 나이가 안 되면 술을 살 수도 없고 마실 수도 없는데 그래도 다 합니다. 가짜 아이디를 가지고 합니다. 몇 년 전에는 이곳 미국 대학생이 술을 너무 한꺼번에 많이 마셔서 죽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요즘은 그런 것이 뉴스거리도 안 됩니다. 이런 게 요즘 젊은이들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특징은, 젊은이들이 환상을 본다고 합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환상을 가진다는 말이 아니라 비전(vision)’을 가진다는 말입니다. 확실한 목표가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좀 가난하고, 남들에게 손해도 보고, 지식도 많지 않고, 경험도 없을지라도, 꿈을 가지고 힘차게 나아가는 것이 젊은이 아닙니까?

 

그런데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전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 확실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목표가 무엇이겠습니까? 기껏해야 좋은 학교 나오고, 좋은 직장 잡고, 돈 많이 벌고, 시집장가 가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학위를 따고... 이런 게 아닙니다.

 

물론 그런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그런 것도 좋은 목표가 될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은 최종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고 도구일 뿐입니다. 그런데 도구와 과정이 되어야 할 것들이 삶의 목적이 되어 버리니까, 그것을 이루면 타락하는 겁니다. 이루지 못해도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나가떨어지고, 이루면 타락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정한 목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의 최고의 목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공무원이 되는 겁니다. 정년 때까지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불행한 일입니다. 안정되게 늙을 때까지 편안하게 하는 그런 것이 청년들의 꿈이라고 하니까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런 건 비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내 인생과 젊음을 투자해서 영원한 가치를 가진 일에 헌신하는 겁니다. 진리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도전하고 모험하는 겁니다. 하다가 넘어지고 깨지고 상처받고 그럴 수 있지만, 다시 일어나 또 도전하고 모험하는 것이 성령 받은 젊은이의 모습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이렇게 자녀들이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이 환상을 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자기 원하는 방식대로 살면 잘될 것 같은데, 자기 것만 챙기고, 자기 가족만 챙기고, 자기 목표만 딱 이루고 남들을 이용하며 자기가 올라가면 인생이 잘될 것 같은데, 인생이 오히려 망가집니다. 제 말이 거짓말 같으면 한 번 세상을 보십시오.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조사해보십시오. 행복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불행합니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이 다 떨어져나갔습니다. 너무 외롭고 고독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고 자살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정한 성공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성공했다면 왜 자살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비전을 꿈꾸며 나아가는 사람은 그 인생이 살아납니다. 생기가 넘칩니다. 비록 현실은 힘들고 괴롭고 가난하고 잘 안 되더라도,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나아가는 사람은 살아납니다. 생기가 넘치게 됩니다.

 

 

3)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물론 성령이 임하시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능력도 나타나고, 다리를 못 쓰던 사람이 일어나고, 기적과 역사들이 나타나고, 무엇보다 복음이 전파되는 선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오순절 예언에 대해 베드로가 설교한 것에서 중요한 것은, 성령이 임하시면 늙은이들이 꿈을 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늙은이라는 말이 어감이 좋지 않습니다. ‘어르신이 좋습니다.

 

성령님이 부어지면 어르신들이 꿈을 꾼다는 겁니다.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은퇴한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여러분도 은퇴하시기 전 날에 우셨습니까? 은퇴 전 날에 축하를 받으며 겉으로는 좋은 척하는데 혼자 방에서 많이 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꿈을 꾼다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어느 교회나 그렇지만, 우리 교회에서도 어르신들이 중요합니다. 60, 70, 80대 어르신들이 영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느냐가 교회의 영적 상태를 결정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어르신들로 가득하다면 우리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전혀 그렇지 못하고 이상한 방향으로 나가며 잘못된 모습을 보인다면 교회도 잘못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성령 충만한 어르신들이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새로운 삶>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십 년도 벌써 넘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회사에 들어갔는데, 그렇게 경쟁이 치열한 대기업에 들어가 놓고도 1년이 지나면 신입사원의 80%가 회사를 떠난다고 합니다. 왜 나가냐고 하면 꿈이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학력에 학점도 좋고 똑똑한 사람들인데, 회사에 들어왔더니 복사나 시키고, 특히 여직원들에게 커피나 타오라고 하고, 아주 단순한 일만 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보기에도 한심하고 끔찍하며 미래가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대리가 되면 좀 괜찮아질까 하고 보니 대리는 자기보다 더 한심합니다. 과장(10년차)이 되면 더 나을까 싶어 과장을 보니까 여전히 한심합니다. 부장(15년차)이 되면 나은가 했더니 다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의 꽃이라고 하는 이사(20년차)가 되면 나은가 해서 보았더니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일대로 바쁘고, 위의 눈치를 보고, 아랫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며 삽니다. 그래서 꿈이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너무 늦기 전에 빨리 나가서 자 붙은 직업을 준비하여 해아겠다고 하는 겁니다. 공인중개사라도 해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단순히 어느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는 겁니다. 선배를 보면서 꿈이 안 생긴다는 것이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저번에 나갔을 때 보니까, 길을 가던 20대 청년 둘이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스스럼없이 나 어제 약을 했어.”라고 하는 겁니다. 제가 지나가고 있는데도 자기들끼리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 한국 청년들이 마약도 하고 별 짓을 다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꿈이 없어져서 그렇습니다.


집에서 형을 보니까 또 삼촌을 보니까, 인생의 꿈이 안 생깁니다. 회사 들어가서 정신 못 차리고 밤늦게까지 매일 야근하고 술에 절어서 들어옵니다. 한심합니다. 아버지가 되면 좀 나은가 해서 아버지를 보니까 더 한심합니다. 회사에서는 나이가 들면서 잘릴까 봐 고민하고 걱정합니다. 매일 밤늦게 들어오다가 엄마에게 혼납니다. 할아버지는 좀 나은가 했더니 할아버지는 제일 한심합니다. 돈 없어서 매일 허덕거리며 어떻게 하면 이것들에게 돈을 좀 빼앗아낼까?’ 하다가 며느리에게 거절당하고 상처받고, 그러는 모습을 보니 이게 도대체 인생에 꿈이 없구나. 다 한심하다.’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청년들이 내리는 결론은 돈이다. 돈이 인생의 핵심이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빨리 나가서 자 붙은 걸 해서 안정적으로 살려 하고, 공무원이 되어서 안정적으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형도,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다 돈 때문에 그러는 거니까, 젊었을 때 빨리 돈 벌어서 조기 은퇴하고 편하게 살겠다고 합니다. 청년이 노인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청년이 은퇴를 꿈꾸고 있습니다. 정말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도 그러고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꿈을 잃고 나서부터 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학교에서 여러분, 장래 희망이 뭔가요?”라고 하면 대통령, 장관, 장군 같은 대답도 있었지만, 소박하게 아빠 같은 사람 될래요. 엄마 같은 사람이 될래요.” 하는 아이들이 꽤 있었습니다. 내 아이가 그런 말을 한다면 정말 자녀 교육에 성공한 겁니다. 그런데 요즘 그런 아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 반대입니다. ‘절대 나는 아빠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 ‘절대 나는 엄마 같은 사람은 되지 않겠다.’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사회가 무너진 증거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면 질서가 바로 잡힐 수 있습니다.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 안에서 올바른 꿈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중요한 게 바로 이겁니다. 젊은이들이 와서 볼 때 , 이 교회는 저렇게 연세 많으신 분들이 이렇게 아름답게 신앙생활을 하며 영적인 본을 보여주고 계시는구나. 꿈이 생긴다. 나도 저렇게 나이가 들어가야겠다.’라고 하는 겁니다.


원래는 다 꿈이 없는 사람들이고 그저 직장에서 성공하며 사회에서 돈 많이 버는 것을 꿈으로 삼고 살았는데, 그렇게 존경스러운 분들을 만나면서부터 돈 많이 벌고 성공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렇게 훌륭한 신앙의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꿈을 꾸게 되는 겁니다. 믿음의 선배들을 보면서 믿음의 후배들이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행복한 교회가 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됩니다.


그런 교회라고 문제가 없는 게 아닙니다.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꿈을 꾸게 되니까 삶이 행복해지기 시작하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다 보니까 행복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바로 이것입니다. ‘꿈을 꾸는 어르신이 되자!’ 실제로 어르신인 분들도 그렇지만, 그 밑의 중년이나 청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점점 더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아름답고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 비결은 성령을 받고 꿈을 꾸는 겁니다. 자기의 헛된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꾸는 겁니다.


늙는 것에도 두 가지가 있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냥 늙는 게 있습니다. 늙어서 점점 초췌해지고 꾀죄죄해지고 악취가 납니다. 늙은 냄새가 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익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익어가면서 구수하고 좋은 향기가 납니다. 나는 그냥 늙어갈 것인지, 아니면 정말 익어갈 것인지? 무엇이 그것을 결정합니까?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꿈을 꾸는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자기의 헛된 꿈, 즉 자기만 잘되고 자기 가족만 잘되려는 사람은 그냥 늙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추해지고 점점 이상한 냄새만 날 뿐입니다. 그러나 비록 이 세상에서 좀 어렵다고 해도, 하나님의 꿈을 꾸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사람은 그렇게 익어가는 사람,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사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어르신이 될 줄로 믿습니다!



4)  “남종과 여종들이 예언할 것이요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8)


남녀노소, 남종, 여종 할 것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개념이 아닙니다. 아무 자유가 없고 구속된 노예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도 성령이 부어지면 그들도 예언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그저 사고 안 나고, 안전하게 살고, 돈 많이 벌고, 하는 일마다 잘되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런 건 시시한 겁니다. 예수 믿으면 부자가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일입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성령이 부어지면 남녀노소 종들에게까지 다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5)  피와 불과 연기의 기사와 징조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19-20)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기 때문에 기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면 무슨 기적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으면서도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기대가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기대감이 너무 없는 겁니다. 너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상식적으로만 살도록 훈련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신앙은 절대로 몰상식이나 비상식이 아닙니다. 그런데 상식과 경험과 지식을 초월하는 초상식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인간의 이성과 상식과 경험과 지식에 갇혀 버리는 분이시겠습니까? 그런 데에 제한받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모른다고,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시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땅에 기적과 이사를 베푸시는데, 특히 불과 피와 연기로 임한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출애굽의 마지막 재앙 때 피가 있었고, 제사를 드릴 때 늘 피를 뿌렸습니다. 또 하나님이 임하실 때 불로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임하신 곳에 연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와 역사들이 더 많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피와 불과 연기가 일어날 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이 역사 속에 나타나시고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구원을 준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6)  누구에게나 임하는 구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21)


누구든지입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어떤 인간적인 조건도 상관없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고 그분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나가는 말]

 

이 시대에 기독교 신앙이 너무 제도화되고 침묵하는 현실이 슬픕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교회는 건물도 아니고 제도도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교회는 믿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우리는 제도도 필요하고 건물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물러 있는 게 문제입니다.

 

교회가 우리끼리 즐거운모임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프로그램이 여러 개 돌아가면서 우리끼리 즐거운 것이 될 때 어떻게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가 되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주님을 아직 모르는 분들을 ‘VIP (Very Important Person)’이라고 부르면서 섬기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분들도 우리와 같이 구원을 얻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VIP만 돌보느냐? VIP만 돌보지 말고 나도 좀 돌봐달라.’라고 한다면 완전히 교회를 오해하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서 VIP를 돌보면 나를 따로 돌봐주지 않아도 주님의 제자로 성장해 나갑니다. 한 명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까? 찾아가야 하고, 몸을 움직여 섬겨야 하는 등,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주님의 강한 용사로 오히려 세워지는 것입니다.

 

누워서 내가 아프니까 치료해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재활을 해야 합니다. 수술을 한 다음에는 재활을 해야 합니다. 누워만 있으면 더 힘을 못 씁니다. 일어나서 재활을 해야 합니다. 바로 그런 것이 재활하는 겁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서 나아갈 때 영적으로 살아나는 겁니다. 무엇보다 교회에는 이런 구원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야겠습니다.

 

이번 금요일부터 “VIP와 함께하는 말씀잔치를 합니다. 말씀잔치는 VIP만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결단하며 헌신하기로 다짐하며 나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을 모르는 분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분들도 구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십시오. 내가 말 한마디 해서 초청하고 어떻게든 섬기고 데려와서 그것 때문에 그분이 구원을 얻는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초청할 수 있는데도 다음에 하지. 이 사람만 있나? 다른 사람을 하지.’라고 막연하게, 나태하게, 안일하게 함으로 그 영혼이 구원을 못 받는다면, 하나님 앞에 설 때 얼마나 죄송스러운 일이 되겠습니까?

 

이번 주에 정말 귀한 기회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때 내가 저 사람을 너의 가족으로, 너의 친척으로, 너의 친구로, 같이 만나는 사람으로, 교회에 같이 다니는 사람으로 몇 년을 붙여주었는데, 왜 그는 여기에 없고 저기에 있니?’라고 하시면 정말 큰일 아니겠습니까? 그런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오히려 수고했다. 잘했다. 너 때문에 저 영혼이 여기에 와 있다.’라는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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