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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7일 수요예배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46 ✦
“거룩을 추구한 왕 요시야”
(역대하 34장 1~33절)
1. 최후의 성군 요시야의 종교개혁
기울어져 가는 나라의 멸망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유다에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훌륭한 왕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요시야입니다. 그는 자신의 나라에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불행한 왕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야는 자신이 살아 있는 한 나라를 거룩하게 만들고 강하게 세우려고 애썼던 리더였습니다.
아버지 아몬이 신하들에게 암살당하는 바람에 요시야는 8세의 어린 나이에 갑자기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1). 하지만 그는 31년 동안 유다를 다스리면서 여호사밧과 히스기야와 더불어 유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이 됩니다. 요시야는 왕이 될 때부터 아버지 아몬과는 처음부터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2절)
성경에서 왕들을 평가할 때 좋은 왕을 칭찬하면서 대개 2가지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나는 그가 ‘정직히 행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다윗의 길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정직히 행했다’는 말만 들어도 하나님 보시기에 훌륭한 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왕들로는 아사, 여호사밧,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요담, 히스기야, 요시야 등 8명입니다. 이 중에서도 온전히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사람인 ‘다윗의 길로 걸었다’고 평가될 정도로 최고의 왕은 여호사밧과 히스기야와 요시야 등 3명뿐입니다.
요시야는 왕이 된 지 8년, 그러니까 그가 16세 되던 해에 “하나님을 비로소 찾”았다고 되어 있습니다(3). 이것은 그 전에는 그가 전혀 신앙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아몬 같은 악한 아버지 밑에서 그런 신앙의 인물이 나온 것입니까? 성경에 직접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은, 요시야가 어릴 때 할아버지 므낫세가 변화된 이후의 선한 리더십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므낫세는 55년이나 되는 긴 통치 기간 중 49년을 우상숭배와 악행으로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했던 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로 앗수르에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회개하고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6년 동안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며 우상을 부수는 경건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므낫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아몬이 다시 악행을 저지르긴 했지만 아몬은 2년 만에 죽었고, 그 뒤를 이어 요시야가 왕이 된 때는 8세였습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요시야는 태어났을 때부터 6살 때까지는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살았던 할아버지 므낫세의 귀여움을 받고 자라났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토록 악을 행하다가 시련을 통해 크게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할아버지 므낫세가 요시야를 볼 때마다 비록 그가 어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얼마나 강조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일입니다. 16세까지의 유소년 시절 대부분을 아버지 므낫세의 악한 리더십만 보며 자란 아몬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며 자란 것입니다.
왕이 된 지 8년에 이렇게 확실한 자기 신앙을 보여주게 된 요시야는, 12년째 되던 해부터 나라 전체에서 우상을 몰아내는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일으킵니다(3). 요시야는 유다와 예루살렘 전역에 퍼져 있는 우상들을 모조리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이 작업은 아주 광범위하고 철저했습니다. 열왕기하 23장을 보면 요시야는 해와 달과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였고, 또 오늘 본문에도 나오듯 우상숭배 장소에서 행해지던 음란 행위를 단호히 몰아냈습니다.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 (왕하 23:7)
이 구절을 보면, 이때까지 남창들의 거주지가 버젓이 여호와의 성전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니, 당시 유다 백성들이 얼마나 타락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계속 성행하고 있는 남녀 매춘 행위가 그때는 아예 종교의 이름으로 나라의 공식적인 후원 아래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시야의 과감한 결단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있는 도벳을 부정한 곳으로 만들어, 어떤 사람도 거기에서 자녀들을 몰렉에게 불태워 바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왕하 23:10, 새)
이곳은 몰렉에게 자녀들을 제물로 불에 태워 바치는 끔찍한 인신제사가 자행되던 곳이었는데, 모압과 암몬 땅에서 수입된 우상 제사 방법 중 가장 잔혹한 이 일을 하나님의 땅인 이스라엘과 유다 내에서 계속 해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요시야가 확실히 중단시켜 버렸습니다.
요시야는 “유다의 여러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왕하 23:11)도 제거했습니다. 당시 태양신을 섬기는 자들은 태양신이 매일 수레를 몰고 우주를 도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태양신을 위해 말을 불에 태워 제사를 했습니다. 이것을 위해 왕명으로 제사용 말들을 전국에서 뽑아 와서 수용해 두던 마구간을 요시야가 과감히 없애버린 것입니다.
요시야의 매서운 개혁은 ‘멸망의 산’(The Hill of Corruption)으로도 향했습니다(왕하 23:13). ‘멸망의 산’은 솔로몬이 자신의 처첩인 이방 여인들을 위해 수많은 산당을 지어준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의 남쪽 봉우리를 가리킵니다. 요시야는 수백 년이 넘도록 우상을 위한 산당들이 가득했던 이곳을 깨끗이 정리했습니다.
계속해서 요시야는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까지 헐어 버렸습니다(왕하 23:15).
“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왕하 23:15-16)
벧엘은 단과 함께 북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우상숭배를 위한 제단이 있던 곳입니다. 이로써 당시 요시야는 앗수르 치하에 있던 북이스라엘 영토까지도 개혁을 확장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6-7). 이것은 오래 전 하나님의 사람이 여로보암에게 와서 선포한 예언이 300년 후에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왕상 13:2)
요시야의 우상 제거가 얼마나 철저했던지, 유다 전역에서 거둬들인 우상들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서 우상숭배자들의 무덤에 뿌려 흔적까지 없애버렸습니다(4). 또 우상숭배를 했던 제사장들의 시신까지 찾아내어 단 위에서 불살라 버릴 정도였습니다(5). 이런 대대적인 우상 제거 작업이 유다의 최남단인 시므온 지역에서부터 북이스라엘의 최북단 지역인 납달리까지 널리 진행되었습니다(6).
그런데 왕이 된 지 8년 만에 확실한 신앙을 고백하며 나아간 요시야가, 왜 4년이 더 지난 12년이 되어서야 이런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실천에 옮기게 되었습니까?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것은 그 당시 복잡한 국제정세와 연관이 있습니다.
이전 왕들인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의 통치 기간 내내 유다를 압박했던 강대국 앗수르는, 요시야 12년까지 계속해서 유다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앗수르가 시퍼런 칼날로 유다를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앗수르로부터 들여온 우상들을 제거하는 일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앗수르의 신들을 파괴하는 것은 곧 앗수르에 대한 반역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시야 12년인 BC 628년 당시, 앗수르는 주변 속국들의 반란과 엘람인들의 침공으로 위기에 닥쳤고, 게다가 신흥 강대국 바벨론과 메데 제국의 세력이 날로 커지면서 이미 쇠락기에 접어든 앗수르를 압박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앗수르가 유다에 대해 더 이상 내정 간섭을 할 수가 없게 되었고, 요시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밀어 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상황을 탓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한 열정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역사는 하나님의 사람들 중심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상황을 탓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기 전에, 과연 내가 정말로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한 열정을 품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위해 인생을 헌신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상황을 움직여주실 줄로 믿습니다.
2. 율법책의 발견
요시야가 왕이 된 지 18년, 6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끈질긴 종교개혁을 단행함으로 요시야는 나라 안의 우상들을 거의 깨끗하게 청소해 버렸습니다(8). 그리고 숨 돌릴 틈도 없이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성전을 수리하는 데에는 막대한 돈이 필요했는데, 계속된 앗수르의 침공으로 국고는 바닥이 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할 수 없이 요시야는 과거의 요아스가 그랬던 것처럼, 백성들에게서 성전 복구 헌금을 거두어들이게 됩니다.
“그들이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나아가 전에 하나님의 전에 헌금한 돈을 그에게 주니 이 돈은 문을 지키는 레위 사람들이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남아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온 유다와 베냐민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서 거둔 것이라” (9절)
사실 국고의 돈이 바닥난 상태인데 백성들이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전을 복구하겠다는 열정을 품은 백성들은 없는 가운데서도 필사적으로 헌금을 했고, 그 눈물의 한 푼 두 푼이 모아지면서 하나님의 전을 복구하게 되었습니다. 돈을 감독하는 자들에게 주고 그들이 일꾼들에게 주어서 전을 수리하는데, 사람들이 성실하게 일을 감당합니다.
“곧 목수들과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어 다듬은 돌과 연접하는 나무를 사며 유다 왕들이 헐어버린 성전들을 위하여 들보를 만들게 하매, 그 사람들이 성실하게 그 일을 하니라 그의 감독들은 레위 사람들 곧 므라리 자손 중 야핫과 오바댜요 그핫 자손들 중 스가랴와 무술람이라 다 그 일을 감독하고 또 악기에 익숙한 레위 사람들이 함께 하였으며, 그들은 또 목도꾼을 감독하며 모든 공사 담당자를 감독하고 어떤 레위 사람은 서기와 관리와 문지기가 되었더라” (11-13절)
그런데 성전 수리 과정에서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한 것입니다.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헌금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가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매” (14-15절)
발견한 사람이 대제사장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율법책은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 안에서 발견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율법책은 원래 성전의 언약궤 옆에 비치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신 31:25-26)
원래 성전의 언약궤 옆에 보관되어 있어야 할 율법책이, 세월이 지나면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라져버려서 제사장들도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므낫세와 아몬의 극심한 배교 행위로, 이러다가는 악한 왕들이 율법책도 없애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 누군가가 숨긴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분실된 게 아니라 누군가가 숨긴 겁니다. 그렇다면 이 율법책을 숨긴 것은 적어도 30년 정도 전의 일이 됩니다. 그 사람은 숨길 장소를 찾다가,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지성소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없어졌던 율법책을 발견한 대제사장 힐기야는, 그것을 서기관 사반에게 주어 요시야 왕에게 전달하도록 했습니다. 사반은 그것을 요시야 왕에게 가지고 나아가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서기관 사반이 또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 앞에서 그것을 읽으매” (18절)
사반이 정확히 율법책의 어느 부분을 읽었는지를 알 수 없지만, 학자들은 문맥으로 보아 신명기 28장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합니다. 신명기 28장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따라 주어지는 축복과 저주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시대에 유다가 당하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 약 천 년 전에 이미 예언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요시야 왕은 충격을 받으며 자신의 옷을 찢습니다(19). 이것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큰 슬픔과 회개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요시야는 유다의 이전 왕들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 있었는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왕이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의 아들 압돈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가서 나와 및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들을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 하니라” (20-21절)
요시야는 비로소 자신의 나라 유다가 왜 이토록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그 정확한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를 제대로 해석하게 해주고, 인생을 제대로 보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 역사를 보고 인생을 보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통해서 보면 큰 그림이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말씀을 읽으며 자신에게 적용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적용해주려고 하면 결국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가정교회 집회와 목자가족수련회를 통해 다시금 확실히 배운 것이 그것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남들을 가르치려고만 하면,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말씀을 몰라서도 아니고 안 가르쳐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킨다고 지켰고 또 사람들을 정죄하며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생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과 같이 지내시면서 직접 보고 배우게 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말씀을 선포하셨고 가르치셨고 병자도 고치시며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서는 발견하지 못하던 특별한 권세가 예수님께 있음을 느꼈습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붙들고 씨름하며 그 말씀대로 살 때, 백 마디 가르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것이 파워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보려고 애쓰는 곳이 바로 목장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실천하여 변화된 은혜를 간증하고, 서로 그러한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요시야는 즉시 사람들을 여선지자 훌다에게 보내어 자세한 하나님의 뜻을 묻게 합니다(22). 훌다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안 나오지만, 학자들은 훌다가 예루살렘 출신의 상당히 영향력 있는 여선지자였을 것으로 봅니다. 훌다는 요시야 왕이 보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두 가지로 전해줍니다.
첫째, 요시야 왕이 들은 말씀대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진 유다는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당할 것이라는 끔찍한 내용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 앞에서 읽은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하리니, 이는 이 백성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그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의 노여움을 샀음이라 그러므로 나의 노여움을 이 곳에 쏟으매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24-25절)
둘째, 하지만 우상을 몰아내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회개하며 나아간 요시야는 이 엄청난 재앙에서 제외되는 은혜를 받으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을 가리켜 말한 것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약하여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손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네게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에 사신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 (27-28절)
이미 각오는 했겠지만, 그대로 훌다의 입을 통해 확인된 하나님의 뜻은 요시야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전혀 듣고 싶지 않은, 힘든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시야는 자신의 맘에 들든 안 들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훌다의 예언을 들은 즉시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장로들을 소집합니다. 그러자 그들과 함께 모든 백성들이 모이고, 요시야는 이 말씀을 함께 나눕니다.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든 백성이 노소를 막론하고 다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려주고,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고” (30-31절)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요시야와 온 백성들은 그 자리에서 서약하고, 그 증거로 아직 남아 있는 우상의 잔재들을 나라 곳곳에서 제거하는 일에 헌신합니다.
“예루살렘과 베냐민에 있는 자들이 다 여기에 참여하게 하매 예루살렘 주민이 하나님 곧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니라.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들을 다 제거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32-33절)
결국 요시야가 살아 있는 동안 유다 백성들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한 명의 거룩한 리더를 통해 나라가 완전히 바뀌고, 한 시대가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요시야는 나라의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예언을 이미 들었지만, 그냥 절망만 하며 세월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나라를 살려보려고 하나님의 뜻을 바꾸는 시도를 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자기 나라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회개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적어도 자기 대에서만이라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요시야의 훌륭한 점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께서 이미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는데, 내가 뭐하고 헛수고를 하겠나?’라고 하며 포기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그래도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절망 중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최대한 거룩한 몸부림을 친 것입니다.
3. 안타까운 죽음
이처럼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말씀대로 실천한 요시야였지만, 그 마지막은 너무 안타깝고 슬픕니다. 그는 애굽 군대와의 전쟁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요시야가 애굽 군대의 손에 최후를 맞이한 곳은 므깃도였는데, 작년에 가보았습니다.
므깃도는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국제대로 상에 있던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그래서 훗날 유명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를 정복하려는 자는 반드시 이 므깃도를 먼저 차지해야 한다.” 이곳의 중요성을 진작 간파한 솔로몬이 요새로 만들었지만, 요시야가 전사하는 비운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사실 요시야가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애굽 군대는 처음부터 유다와 싸우거나 요시야를 죽일 의도가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유다를 그토록 괴롭히던 앗수르는 국력이 쇠약해져서, 신흥 강대국 바벨론에게 수도 니느웨가 함락당하여 멸망 직전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근동의 강대국 애굽은 거침없이 세력을 확장해 가던 바벨론 견제하기 위해 쇠락해가는 앗수르와 손을 잡았습니다.
당시 수도 니느웨를 잃고 유프라테스 강 지역의 관문인 갈그미스 성을 중심으로 밀려나서 다시 세력을 모으기 위해 시도하던 앗수르는, 거세게 몰려오는 바벨론의 파상공세에 밀려 도저히 스스로의 힘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바벨론을 견제할 앗수르가 이대로 망할 경우, 애굽은 혼자의 힘으로 저 무서운 바벨론을 상대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은 자신을 위해서라도 앗수르를 살려놓아야 했고, 이에 애굽 왕 바로느고가 직접 원군을 이끌고 나선 것입니다. 그리고 앗수르를 지원하기 위해 가는 이 애굽 군대는 북쪽에 있는 갈그미스로 가장 빨리 이동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거쳐 행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다 왕 요시야는 애굽과 입장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몇 대에 걸쳐 이스라엘과 유다를 짓밟은 앗수르가 멸망당한다면 기뻐서 춤을 출 상황인데, 애굽의 왕까지 직접 나서서 앗수르를 구원할 군대를 움직인다는 것은 결코 그냥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시야 역시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가 애굽 군대의 앞길을 막아선 것입니다.
한시가 급했던 애굽 왕 바로느고는 이것을 보고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사자를 보내어 요시야를 설득하려 했지만 통하지 않자, 할 수 없이 유다 군대와 일전을 치르게 되었고, 이 전쟁에서 요시야의 유다 군대는 처참한 패배를 당했습니다. 이때 요시야 자신도 화살을 맞고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꼭 필요한 전쟁이 아니라, 요시야가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피할 수 있는 전쟁이었고 또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이었습니다(35:21). 애굽 왕이 함부로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했다기보다는, 정말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35:22).
그러나 요시야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무모한 전쟁으로 자신과 부하들의 죽음을 자초했습니다. 그는 선한 왕이었지만 다윗처럼 경험 많은 장수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항상 순종하고 따르는 요시야였지만, 이때만큼은 앗수르와 애굽에 대한 인간적인 적개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배웁니까? 개인적인 감정에 너무 사로잡히게 되면, 요시야 같은 하나님의 사람도 주님의 음성을 무시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 자아가 살아서 날뛰게 되면, 하나님의 음성을 덮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재앙을 자초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끊임없이 주님의 뜻을 구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철저히 무릎 꿇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역시 잘하다가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삶,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려 애쓰는 삶이 예배자의 삶입니다. 바로 그것이 주님의 제자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참된 예배자의 삶, 신실한 제자의 삶을 살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우리의 삶 가운데 드러내는 영광스런 인생을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