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특별예배

HOME > 설교와칼럼 > 수요예배/특별예배

 


2016 7 20 수요예배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9

멸망 직전 북이스라엘의 대혼란

(열왕기하 15 8~31)


 

[들어가는 ]

 

동양이나 서양, 또 옛날이나 지금을 막론하고, 제국의 마지막은 늘 비참하고 허무합니다. 한국에도 삼국시대를 보면, 백제가 멸망할 때 아주 비참했습니다. 원래 백제의 마지막 왕이었던 의자왕은 굉장히 똑똑한 왕이었고 처음에는 잘했습니다. 그래서 신라가 당하지 못하여 당나라와 연합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의자왕이 주색에 빠져서 총명함을 잃고 결국 자기 장수들이 다 죽고 자신도 비참하게 당나라에 끌려가는 허무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한때 그토록 웅장했던 왕궁이나 건물들도, 수많은 금은보화도, 천하를 호령했던 기세도 다 사라지고 무너진 잔해만 남을 뿐입니다. 한 나라가 멸망할 때 대부분의 경우 그 원인은 왕의 리더십이 무너진 데에 있습니다. 나라뿐 아니라 어느 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라면 목사의 리더십일 것이고, 각 가정은 부모 특히 가장의 리더십, 회사라면 사장 혹은 회장의 리더십이 무너질 때 그 회사가 무너집니다.

 

아무리 화려한 제국이라도 사람과 같아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쇠락하고 죽는 코스를 반드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어떤 나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하에 역사상 최고의 절정기를 누렸는데, 같은 시대에 남 유다는 아마샤 왕의 교만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성전 보물까지 다 빼앗길 정도로 비참한 처지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두 나라의 왕들이 바뀌면서 이번에는 정반대의 상황이 됩니다.

 

남 유다는 10대 왕 웃시야(아사랴)의 52년간에 걸친 통치 기간 동안 국력이 다시 안정되고 상당한 번영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죽은 다음에 30여 년 동안 무려 6명의 왕들이 왕위 쟁탈전을 벌였고, 그 중 5명이 심복에게 살해되는 대혼란의 상황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남 유다보다 정확히 136년이나 먼저 멸망당하고 맙니다.

 

 

1. 스가랴

 

북이스라엘의 14대 왕인 스가랴는 예후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서, 왕위에 겨우 6달 만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6달 밖에 왕으로 있지 못한 비극적인 왕이었습니다(8). 이 사람은 이스라엘을 최고의 절정기로 이끌었던 여로보암 2세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스가랴는 단 6개월 만에 끝났습니다.

 

스가랴는 이전의 왕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습니다(9). 북이스라엘 왕들은 대부분 다 이렇게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가랴는 하나님과 심복들로부터도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비참한 죽임을 당합니다.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그를 반역하여 백성 앞에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0절)

 

살룸이라는 신하가 반역을 일으켰는데, 살룸은 스가랴를 죽이는 데 있어서 몰래 하지 않고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왕을 죽입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왕을 죽였는데도 살룸이 별 문제 없이 새로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만큼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스가랴가 잘못해서 민심을 잃었다는 뜻이 됩니다. 아버지 여로보암 2세가 최고 절정기를 이루어 놓았는데, 이 6개월 사이에 요즘 말로 다 말아먹은 겁니다. 다 무너뜨린 겁니다. 그래서 모든 민심이 떠날 때 살룸이 백성들 앞에서 스가랴를 죽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스가랴의 비참한 최후와 예후 왕조의 몰락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 자손이 사 대 동안 이스라엘 왕위에 있으리라 하신 그 말씀대로 과연 그렇게 되니라” (12절)

 

이미 오래 전에도 이스라엘은 첫 번째 왕 여로보암이 세상을 떠난 뒤 3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왕들이 연달아 최측근 신하들에게 살해를 당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이스라엘의 왕조가 4번이나 바뀌는 혼란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가랴의 죽음으로 예후 왕조가 끝나면서 다시 그와 똑같은 피의 역사가 이스라엘에서 또 벌어지게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은 이제 바로 앞으로 다가온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알려주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스가랴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망할 때까지 5명의 왕들이 더 나오는데, 사실 스가랴의 죽음과 함께 이스라엘에서는 제대로 된 왕정이 끝났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그 후부터는 스가랴의 후대 왕들이 사실 왕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 거의 폭도와 같은 악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4 왕조

왕조

재위 기간

여로보암 왕조

여로보암

22

나답

2

바아사 왕조

바아사

24

엘라

2

오므리 왕조

오므리

12

아합

22

아하시야

2

요람(여호람)

12

예후 왕조

예후

28

여호아하스

17

요아스

16

여로보암 2

41

스가랴

6개월


 


2.  살룸


왕을 공개적으로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북이스라엘의 15 살룸은, 자기가 죽인 스가랴보다도 훨씬 짧게 밖에는 왕위에 있지 못했습니다(13). 디르사 출신의 므나헴이 수도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살룸을 죽여 버렸기 때문입니다(14). 이것은 살룸 자신이 뿌린 죄의 값을 치른 것이라고 성경이 알려줍니다.


살룸의 남은 사적과 그가 반역한 일은 이스라엘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15)


여기 보면 분명히 성경은 살룸이 스가랴를 “반역한 일”이라고 기록합니다. 살룸이 스가랴를 살해한 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탐욕 때문에 일으킨 반역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앞의 10절에도 “살룸이 그를 반역하여”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그가 행위가 결코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스가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섭리는 살룸이 아니었더라도 어떻게든 행해졌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왕을 함부로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죽인 살룸의 탐욕과 살인은 분명히 죄였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권력이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력을 상대로 하나님의 지시 없이 함부로 칼을 휘두르는 것은 분명한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아합 집안에 대해 예후를 통해 심판하도록 하셨습니다. 예후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실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살룸은 스가랴를 죽인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아니고, 자신의 권력욕에 의해서 저지른 죄였습니다.


이런 왕들을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하나님이 그렇게 다윗을 사랑하셨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다윗도 물론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애썼던 사람입니다.


사실 다윗은 누구보다 사울을 죽일 권리가 있던 사람 아닙니까? 이미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기름 부어 세우셨습니다. 그런데도 장인인 사울이 자신을 그토록 집요하게 죽이려고 쫓아올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자신이 죽일 없다고 하며 죽이지 않았습니다.


번째 사건은 사무엘상 24장에 나옵니다. 사울이 다윗 일행이 굴속에 숨어 있을 그것을 모르고 일을 보러 굴속으로 들어옵니다. 그때 다윗이 옷깃만 살짝 자릅니다. 그런데 그때 다윗의 사람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손에 넘기리니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날이니이다.” (삼상 24:4)


그랬는데 다윗은 자락을 가만히 베고 일어나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삼상 24:6)


하나님의 뜻이라고까지 하는 부하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울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주라고 하며 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데 번째는 놀랍습니다.


사울의 진에 몰래 내려가 보니까, 모든 사람이 잠에 취해서 자기들이 것을 전혀 모르고 자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자고 있고 곁에 부하들이 자고 있는데, 전혀 인기척도 느끼고 그냥 자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깊은 잠에 들게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완전히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로 보입니다. ‘아, 하나님이 드디어 사울을 죽이라고 하시나보다. 이건 완전히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하는지 보십시오.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삼상 26:8-11)


얼마나 놀라운 태도입니까? 이것은 누가 봐도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있는데도, 다윗은 끝까지 하나님의 원칙을 지켰습니다. 결국 사울은 다윗이 예상한 대로 전장에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게 됩니다. 여기 다윗이 말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치셔서 병에 걸려 죽든지, 전쟁터에 나가서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다윗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자기도 사울을 죽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상 도망자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빨리 사울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신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정말 너무너무너무 놀라운 태도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수만 있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사는가? 잘못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원칙을 저버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울은 전쟁터에서 죽습니다. 하지만 만약 다윗이 개인적인 원한으로 칼을 휘둘렀다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를 샀을 것이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의 왕이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죽였으면 사울 쪽의 사람들은 끝까지 다윗을 원수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겁니다. 결국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것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겁니다. 그것까지 계산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국 모든 백성을 아우를 있는 왕이 되는 길이 것입니다.


그런데 살룸은 권력욕에 사로잡혀서 왕을 모든 사람 앞에서 죽여 버렸고, 그렇게 하니까 자신도 재위 만에 살해당했습니다. 남을 함부로 하니까 다른 사람이 자기를 때도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겁니다.

 


3.  므나헴


북이스라엘의 16 므나헴은 살룸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므나헴은 예후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스가랴의 장군으로, 북이스라엘의 초기 수도였던 디르사의 실제 리더였습니다.


때에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와서 딥사와 가운데에 있는 모든 사람과 사방을 쳤으니 이는 그들이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그들이 곳을 치고 가운데에 아이 부녀를 갈랐더라” (16)


여기서 보듯, 므나헴은 살룸보다 잔인한 인물입니다. 권력을 잡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나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살룸이 자기 왕인 스가랴를 모든 사람 앞에서 죽였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자기도 살룸을 죽여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반란군을 이끌고 사마리아로 진군하는 겁니다.


과정에서 딥사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딥사가 성문을 닫고 저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그곳을 함락하고서 무자비하게 공격하여 사람들을 학살합니다. 심지어 임신한 여자들의 배를 칼로 갈라 죽이는 짐승 같은 만행을 저지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사람들이 이방 민족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동족입니다. 그런데 성을 닫고 저항했다고 해서 흥분하여 들어가서 닥치는대로 죽이고 야만인 같은 일을 저지르는데, 끔찍한 사람입니다.


므나헴은 왕이 후에도 무자비한 폭력으로 적대 세력을 평정하며 정국을 안정시킵니다. 동시에 그는 당시 근동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초강대국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에게 조공을 바침으로써, 앗수르의 칼날에서 이스라엘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앗수르 불이 와서 땅을 치려 하매 므나헴이 달란트를 불에게 주어서 그로 자기를 도와 주게 함으로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하여” (19)


여기서는 앗수르 “불”이라고 하는데, 그가 바로 디글랏 빌레셀 3세입니다. 고고학자들이 앗수르 왕의 궁전에서 발굴한 연대기 기록이 있는데, 그것을 보면 디글랏 빌레셀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아람이나 두로 주변 나라들로부터도 막대한 조공을 받았습니다. 그는 단순히 전쟁에서 싸움만 잘한 아니라, 외교와 경제와 심리전에도 능통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기만 봐도 휘두르고 조공을 받아 막대한 이익을 챙겼습니다.


게다가 디글랏 빌레셀은 다른 나라 왕들이 자신의 앞에서 무릎 꿇고 벌벌 떠는 것을 즐기는 악한 습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대 앗수르 궁정의 연대기에 이스라엘 므나헴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거기에 이렇게 나옵니다. 디글랏 빌레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므나헴에 대해서 말하건대, 짐이 그를 눈보라처럼 위협하니 그가 마리 새처럼 꽁무니를 빼더니 앞에 무릎을 꿇었도다. 짐이 그를 다시 그의 자리로 되돌려 보내고 짐에게 조공을 바치도록 하였노라.”


얼마나 수치입니까? 딥사의 자기 동족들과 새로 왕이 살룸을 처참하게 학살하면서까지 왕이 므나헴은, 자기보다 훨씬 강한 앗수르 앞에서는 아주 비굴한 모습으로 무릎까지 꿇었습니다. 이처럼 폭력은 폭력 앞에서는 한없이 비굴해지는 법입니다.


제가 유일하게(?) 보는 프로그램이 개그 프로그램입니다. 코너가 있는데 굉장히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조폭 두목이 있고 명의 부하들이 있습니다. 두목이 1번에게 시키니까 굽실굽실하며 “예, 예”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자기 부하에게는 아주 근엄하고 권위 있는 목소리로 “망치야~”라고 합니다.


그건 개그이긴 하지만 바로 그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므나헴이 자기 나라에서는 엄청난 폭력을 휘두르면서 자기가 최고라고 하며 죽여 버리는데, 자기보다 강한 디글랏 빌레셀 앞에서는 설설 기고 벌벌 떨며 무릎 꿇고 조공을 바치는 겁니다. 므나헴은 단순히 돈만 바친 것이 아니라, 나라의 지도자로서 자존심과 영광이 모두 짓밟힌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인간은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전락함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도 혹시 자신도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비겁한 모습은 없는가 살펴야겠습니다. 나보다 못한 같으면 함부로 하고, 나보다 강한 같으면 밑에서 설설 기는 그런 모습은 없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갖고 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남들 위에 군림해서도 되고, 그렇다고 강한 자에게 비굴하게 필요도 없습니다.


므나헴이 앗수르에게 바친 돈은 1,000달란트였는데, 요즘 돈으로 치면 2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액수였습니다. 많은 돈을 어떻게 마련했습니까? 이것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무리를 합니다.


은을 이스라엘 모든 부자에게서 강탈하여 사람에게 오십 세겔씩 내게 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니 이에 앗수르 왕이 되돌아가 땅에 머물지 아니하였더라” (20)


어쩔 없이 국내의 부자들로부터 기부금 형태로 억지로 거두어들였습니다. 이렇게 강제로 백성들에게 돈을 빼앗아 적에게 바침으로 수치스러운 평화를 얻어낸 므나헴을 하나님은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선지자 호세아를 보내셔서 무서운 경고와 책망을 하셨습니다.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그들이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회중에 들려 대로 그들을 징계하리라.” ( 7:11-12)


이런 고난이 오면 거기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그러나 므나헴은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당장 위험한 상황만 모면하려고 했으니, 목마르다고 구정물을 마셔버린 것과 같습니다. 돈은 돈대로 빼앗겼고, 앗수르는 그런 돈을 받고도 만족을 모르고 나중에 지독하게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멸망시키고 맙니다. 돈으로 해결하려 했는데 전혀 해결이 되었습니다.

 


4.  브가히야


북이스라엘의 17 브가히야는 므나헴의 아들로서 2년간 왕으로 다스립니다(23). 대개 보면, 쿠데타를 일으켜 왕을 죽이고 새로 왕이 본인은 오래 갑니다. 그런데 아들 대에서는 줄어드는 것을 봅니다. 그게 패턴입니다.


므나헴으로 아들 브가히야도 2 밖에 다스리는데,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는 악행을 계속 저지릅니다(24). 결국 브가히야는 2 만에 역시 부하에게 배신을 당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브가히야 정권의 장관이던 베가가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장관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과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이되 길르앗 사람 오십 명과 더불어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더라” ((25)


베가는 그때 이미 요단강 동편 지역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상당 부분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넘도록 착실히 세력을 키워 오던 그가, 마침내 왕을 죽이고 나라의 전권을 장악하기로 결단을 것입니다.


베가는 길르앗 용사 50명을 이끌고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의 일행을 습격했습니다. 왕궁 호위소는 왕궁에서도 높은 곳에 위치한 요새화된 성채였는데, 가장 보안이 잘된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브가히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곳에서 자객들의 칼을 맞고 죽은 것입니다.


세상에는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내가 안전하다 생각하는 곳도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프랑스 파리 테러, 프랑스의 휴양도시 니스에서 트럭 테러, 독일의 기차 안에서의 도끼 테러 많고,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곳이 가장 안전합니다.


강한 요새에 수많은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왕이 안전하게 피할 있는 곳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하나님께만 가는 것만이 가장 안전한 길이었는데, 왕들은 하나 같이 하나님께 나아오지를 않았습니다.

 


5.  베가


브가히야를 죽이고 이스라엘의 18 왕이 베가는 20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27). 그런데 20년이라는 기간에 대해 문제가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때가 BC 722년이었고, 유다의 요담 20년에 그가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 사이에 모순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웃시야의 아들 요담 제이십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30)


17:1 보면, 베가의 뒤를 이어 왕이 호세아가 유다 아하스 12년에 왕이 되어서 9년을 다스리다가 나라가 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다가 앗수르의 사료를 보면, 디글랏 빌레셀 3세의 재위 기간이 18년이었고, 처음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의 이스라엘 왕이 브가히야의 아버지 므나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여러 사실들을 종합해서 정리해 보면, 베가는 처음 12 동안 요단 동편을 부분적으로 통치하다가 서서히 이스라엘 전체를 장악하여 정식 왕으로서는 8년간 다스렸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보입니다.


베가는 그의 경력이 보여주듯이, 군대를 양성하고 움직이는 리더십이 뛰어나고, 나름대로 배짱과 전략이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이 되자마자 대담하게 앗수르에 대항하는 적대 노선을 펼칩니다. 이것을 위해 지금까지 원수처럼 싸웠던 아람 르신과도 동맹을 맺었습니다.


연합 전선에 유다도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유다는 제안을 거절합니다. 이에 분노한 베가는 유다를 어떻게 해서라도 앗수르 동맹에 끌어들이기 위해, 아람과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장차 이스라엘 전체의 멸망을 불러오게 되는 치명적 실수였습니다. 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유다 아하스가 앗수르에게 뇌물을 바치며 도움을 청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이미 저번에 다루었습니다. 요청을 받은 앗수르 디글랏 빌레셀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군을 이끌고 이스라엘 정벌을 단행하여 유다까지 밀고 내려온 겁니다.


29절을 보면 여러 지명이 나오는데, 이욘과 아벨벳 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땅을 앗수르 군대가 휩쓸어 버립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최초의 포로들이 잡혀가게 되었는데, 포로가 이스라엘 사람들 귀족, 기술자, 청년, 젊은 여인들은 모두 앗수르로 끌려가고 맙니다.


국제 정세를 잘못 읽은 판단 착오로 인하여 베가는 나라를 돌이킬 없는 파멸로 몰아넣게 것입니다. 성난 민심은 이미 그를 떠난 오래되었고, 그의 리더십은 이미 빠져나오기 힘든 늪으로 들어갔습니다. 게다가 앗수르도 자신들에 대항한 이스라엘의 괘씸한 왕을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앗수르 정책을 펼칠 왕을 세우기 원했습니다.


마침내 성난 민심과 강대국 앗수르의 은밀한 지원을 받은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일어나 베가를 죽여 버립니다(30). 결국, 베가도 자기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당하여 왕위에서 끌어내려지고 말았습니다.

 


[나가는 ]


우리는 북이스라엘의 멸망 직전에 벌어진 극심한 혼란을 보면서 무엇을 깨닫습니까? 지금도 세상은 혼란하고 종말을 향해 치닫는 것과 같이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여기저기서 테러가 난무하고, 인종간의 갈등과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쿠데타가 일어나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와중에 수많은 백성들이 죽고 다치고 고통을 당합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억압과 압제 아래 신음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노예제도 같은 사회 속에서 신음하고 있고, 어린 여자아이들이 팔려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다른 데로 눈을 돌리고 어떻게 해결할지 방법을 찾는 아니라, 하나님을 찾고 그분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대로 순종하여 살아가는 , 바로 그것이 우리가 일입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사명을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대로 땅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며 살아갈 , 내가 있는 이곳에서부터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세상이 바뀌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놀라운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8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부활신앙 (롬 6:5-19) - 크리스천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 6 (12/07/16) kpccoh 2016.12.08 1722
77 탕자의 비유에서 진짜 탕자는 누구일까 ? (눅 15:11-32) - 크리스천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 5 (11/30/16) kpccoh 2016.12.01 6590
76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신 이유 (눅 10:1-12) - 크리스천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 4 (11/23/16) kpccoh 2016.11.24 1810
75 폭풍 속에서도 편안히 잘 수 있는 믿음 (눅 8:22-25) - 크리스천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 3 (11/16/16) kpccoh 2016.11.17 1828
74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가? (마 19:16-26) - 크리스천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 2 (11/09/16) kpccoh 2016.11.10 4244
73 예수님을 의심한 세례 요한은 과연 정상인가? (마 11:2-15) - 크리스천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 1 (11/02/16) kpccoh 2016.11.03 3815
72 새로운 역사의 시작 (스 1:1-11)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50/최종 (10/26/16) kpccoh 2016.10.26 1883
71 절망 속에서 받은 마른 뼈 환상 (겔 37:1-28)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49 (10/19/16) kpccoh 2016.10.19 6264
70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왕하 24:17-25:30)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48 (10/05/16) kpccoh 2016.10.05 6303
69 남 유다의 비참한 최후 (왕하 23장 31절 - 24장 16절)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47 (9/21/16) kpccoh 2016.09.21 1974
68 "바보 크리스천" (행: 21:10-14) - 박명효 장로 kpccoh 2016.09.14 622
67 거룩을 추구한 왕 요시야 (대하 34장: 1-33절)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46 (9/07/16) kpccoh 2016.09.07 2945
66 “부르셔서” 이루시는 하나님! (살전 2:12) - 가정교회집회1(9/04/16) - 성승현 집사-국제가정교회사역원 총무 kpccoh 2016.09.06 640
65 악함의 극치를 보여준 므낫세와 악을 본받은 아몬 (대하 33장 1~25절)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45 (8/31/16) kpccoh 2016.08.31 3207
64 이사야와 미가의 활동 (사 6장 1~13절)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44 (8/24/16) kpccoh 2016.08.24 2610
63 덤으로 주어진 15년 동안 벌어진 일 (왕하 20장 1~21절)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43 (8/17/16) kpccoh 2016.08.18 5037
62 최악의 위기에 주어진 기적의 승리 (왕하 19장 1~37절)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42 (8/10/16) kpccoh 2016.08.10 3845
61 히스기야의 영적 개혁 (대하 29장 1~36절)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41 (8/03/16) kpccoh 2016.08.03 2859
60 마침내 임한 북이스라엘의 멸망 (왕하 17장 1~41절)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40 (7/27/16) kpccoh 2016.07.28 4734
» 멸망 직전 북이스라엘의 대혼란 (왕하 15장 8~31절)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9 (7/20/16) kpccoh 2016.07.20 2133


9480 S. Old State Rd, Lewis Center, OH 43035 / Tel: (614) 433-7155 / E-mail: kpcco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