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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24 수요예배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2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여호사밧의 개혁

(역대하 17 1-19)

 

1.   말씀에 따라 개혁을 추진하는 여호사밧

 

보통 아버지가 엄청난 인물이면 그 자녀들이 그 업적에 눌려서 빛을 못 보기가 쉽습니다. 대형교회들도 보면, 개척을 하거나 초창기부터 사역한 훌륭한 목사님들이 은퇴하고 후임자가 이어받을 때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뛰어난 지도자의 후계자가 된다는 것은 이래저래 어렵습니다. 여호사밧의 처지가 바로 그랬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을 악한 왕 아합이 다스리던 시절, 남쪽 유다에서는 아사 왕의 뒤를 이어 여호사밧이 새 왕이 됩니다. 여호사밧의 아버지 아사는 하나님을 믿는 굳센 믿음으로 무장하여 왕위에 오른 초기부터 나라 곳곳의 우상 신당을 없애고 하나님의 단을 다시 세우는 개혁을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사는 말년에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의 침공을 막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아사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에게 감정이 상해서 죽는 날까지 하나님을 찾지 않는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하지만 여호사밧에게는 그 어떤 왕보다 아버지 아사의 그늘이 컸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곧 아버지 아사를 능가하는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줍니다.

 

 

1)  국방력의 강화

 

부친 아사가 병들어 죽을 때까지 3년 동안 같이 나라를 다스리다가 마침내 아버지의 죽음 이후 단독 통치를 시작한 여호사밧은, 공동 통치 기간까지 합쳐 25년 동안 유다를 다스리면서 유다에서 가장 훌륭한 왕들 중 하나가 됩니다. 그가 가장 먼저 초점을 맞춘 것은 국방이었습니다.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어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어하되” (1절)

 

여호사밧은 외국의 도움에 의지하던 부친 아사와는 달리 자주국방에 힘썼습니다. 특히, 여호사밧이 경계했던 적은 다른 대상이 아니라 같은 피를 나눈 북 이스라엘입니다. 아사의 통치 후반기에 이스라엘의 바아사가 유다를 침공한 이후, 유다와 이스라엘의 긴장관계는 계속되었습니다. 수적으로나 군사력으로나 우위에 있던 북 이스라엘은 항상 국경선 전역에서 남 유다를 침공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사 왕이 죽고 여호사밧이 뒤를 잇는 통치권의 전환기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1절에서 “이스라엘을 방어하되”라는 말은 이스라엘에 맞설 국방력을 키웠다는 말입니다. 일단 여호사밧은 아사 때 요새화시켰던 견고한 성읍들에 군사를 배치하여 이스라엘의 침략에 대비합니다.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또 유다 땅과 그의 아버지 아사가 정복한 에브라임 성읍들에 영문을 두었더라” (2절)

 

그 중에서도 아사가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은 군사적 요충지인 에브라임 성읍들에는 ‘영문’을 두었는데, 이것은 특별 수비대로서 이스라엘의 공격을 방어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이때 국경 지역을 요새화하면서 성읍들을 연계한 방어 시스템을 갖추었습니다.

이것은 옛 솔로몬 당시 유다 지역의 영토를 거의 회복한 여호사밧의 새 국가 행정구역 시스템이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12개 행정구역은 주고 세금 징수의 목적이었던 데에 반해, 여호사밧의 행정구역은 적의 침공을 대비한 국토방위의 성격이었습니다.

 

 

2)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함

 

국방력을 강화하여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비했던 여호사밧은, 이렇게 탁월한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경건을 실천하는 왕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사밧의 순종의 삶에 대해 몇 가지를 강조해서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3절)

 

첫째, 그는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나아갔습니다. ‘처음 길’이란, 다윗 왕의 초창기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때를 가리킵니다.

 

운동경기에서 최고의 칭찬은 당대 최고의 선수와 비교하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최근 미국의 스포츠 전문방송국인 ESPN에서 역대 최고의 농구선수 1위로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을 뽑았습니다. 그 뽑은 이유는 “1위로 뽑지 않을 이유가 없다.”가 이유입니다. 그 정도로 훌륭한 선수인데, 만약 어떤 선수에게 “당신은 마이클 조던과 같은 수준이다.”라고 하면 엄청난 칭찬입니다. 축구도 “펠레, 마라도나, 메시, 호날두의 수준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엄청난 칭찬입니다.

 

왕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열왕기서나 역대기서에서 최고의 칭찬은 무엇이겠습니까? ‘다윗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다윗의 처음 길”, 즉 그의 최고 전성기와 같다는 것은 최고의 칭찬입니다. 다윗이 가장 순수하고 강했을 때처럼 여호사밧이 행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호사밧은 인생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그 신앙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3)라는 말은, 다스릴 때 우상들을 찾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자리는 여러 모로 스트레스와 고민이 많은 자리입니다. 그래서 왕들은 우상들을 섬기는 제사장들의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역대기서의 기자는 이 점을 강조하면서, 여호사밧이 당시 통념과 다른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젊은 왕 여호사밧은 당시 많은 왕들의 관습을 끊어버리고 우상 신을 숭배하는 제사장들에게 조언 받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대신 그는 무엇을 했습니까?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4절)

 

여호사밧은 오직 자기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위기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찾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뜻대로 실천하는 리더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했습니다. 진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진실한 행동이 나온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15)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예수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이 계명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보면, 왜 이 계명을 지키지 못하여 사랑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편해 하고 미워합니까?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찾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신뢰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4절에서 “이스라엘의 행위”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여로보암을 비롯하여, 북 이스라엘에서 행해진 온갖 형태의 우상 숭배를 말합니다. 여호사밧은 단호히 그것들을 끊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복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 1:1-3)

 

여호사밧은 이렇게 복 있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하신 복을 부어주셨습니다. 첫 번째 복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3). “이는”이라는 말을 보고 문맥을 살펴보면, 그 뒤에 이어 나오는 내용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 원인이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신 것은 그가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고, 항상 하나님께 구하고, 계명대로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여호사밧의 통치는 아주 순탄하게 달립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 (5절)

 

얼마 안 되는 기간에 나라가 여호사밧의 리더십 아래 놀랍도록 강해졌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여호사밧의 권위에 자발적으로 복종합니다. 그 복종의 표시로 자진해서 예물을 가져온 덕분에 여호사밧의 부귀와 영광이 대단해집니다.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왕이 이토록 짧은 시간에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왕권을 굳게 한 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사밧은 그 성공에 취하여 타락하지 않습니다. 대개 사람이 성공하면 하나님을 잘 믿을 것 같아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여호사밧은 성공에 취하여 타락하지 않습니다.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 (6절)

 

이 말씀은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일에 더욱 적극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수록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복을 그가 점점 더 느꼈던 것입니다.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이라는 찬양곡의 가사처럼, 우리 주님은 섬기면 섬길수록 더욱 귀한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뜻대로 섬기며 살다 보면 자유가 구속받고 얽매이는 게 아니라 재미가 있습니다. 주님 뜻대로 사는 것, 주님 뜻대로 섬기는 것이 부담스럽고 재미가 없다면 그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제대로 주님을 섬기게 되면 그것이 아주 재미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이번에 <기도의 삶>을 열여섯 분이나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는 어렵습니다. 물론 “내 기도하는 이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라는 찬송 가사도 있지만, 그것을 뒤집어 볼 때 오죽하면 그렇게 가사를 썼겠습니까? 기도는 힘들고 어려운데, 실제로 기도를 해보면 어떻습니까? 열심히 기도하고, <기도의 삶>에서 통성기도하고 나서 일어나면 어떻습니까? 어디에서 느낄 수 없는 어떤 기쁨과 희열이 느껴집니다. 분명히 기도는 어렵고 부담스러운데, 기도를 다 하고 일어날 때 뭔가 뿌듯하고 기쁨이 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그런 기쁨과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따르게 됩니다.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순종한 것은 무슨 의무감이나 쇼맨십으로 한 게 아닙니다. 그는 온 열정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했습니다. 그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주님을 사랑했고, 최고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상 숭배의 근원이 되는 산당들과 우상들을 제거했습니다. 산당은 솔로몬 통치 말기에 그와 결혼하여 온 수많은 이방 여인들이 각각 자기 신을 섬길 수 있게 솔로몬이 허용하면서 지어준 것이고, 나중에 우상 숭배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의 아버지 아사 왕 때도 몇 번씩 산당들과 우상들을 없애는 일을 했는데도 또 다시 산당들과 우상들이 많이 있었던 것을 보면, 어둠의 세력은 참 생존력이 강합니다. 죄는 한 번 없앴다고 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주님 앞에서 자기를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여호사밧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걷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놀라운 일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대하 16:9)

 

이 말씀은 그의 아버지 아사가 집권 말기에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의 침공을 막으려 하자, 하나님께서 그를 꾸짖으며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은 여호사밧 같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아사에게는 질책하시며 주신 말씀이지만, 아들인 여호사밧에게는 축복의 말씀이었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여호사밧에게 하나님은 엄청난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3)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침

 

산당들과 우상들을 파괴한 여호사밧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칩니다.

 

“그가 왕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의 방백들 벤하일과 오바댜와 스가랴와 느다넬과 미가야를 보내어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가르치게 하고” (7절)

 

이때는 그가 왕위에 오른 지 3년이 되는 때였습니다. 나라의 국방을 다지고 산당들과 우상들을 파괴하는 데 그 정도 시간이 걸렸던 것입니다. 그것이 끝나자 여호사밧은 말씀으로 백성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합니다. 진정으로 나라를 바꾸는 것은 말씀을 배우는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말씀을 가르칠 자들을 세우는데, 방백 5명(벤하일, 오바댜, 스가랴, 느다넬, 미가야), 레위 사람 9명(스마야, 느다냐, 스바댜, 아사헬, 스미라못, 여호나단, 아도니야, 도비야, 도바도니야), 제사장 2명(엘리사마, 여호람)을 세워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책을 가지고 성읍들을 방문하면서 가르치게 했습니다.

 

여기서 “방백”이라는 것은 지방 장관, 즉 요즘의 도지사나 시장급 정부 관리인데, 레위 사람이나 제사장은 당연하지만 이런 방백들이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친 것을 보십시오. 그 당시 사회의 영적 분위기가 얼마나 높아져 있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특히 방백들이 가르쳤다는 것을 보면, 단순히 종교적 계명만 가르친 게 아니라, 종교적인 부분은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가르치고, 이들은 그 율법에 기초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도덕과 생활 교육을 가르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상 그 어느 왕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개혁입니다.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가 두 차례에 걸쳐 종교개혁을 실시했음에도 유다의 우상 숭배가 왜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는가를 깊이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산당이나 우상을 없애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악한 것들을 없앤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더러운 것을 비우고 가만히 놓아두면 또 다른 더러운 것으로 채워지게 마련입니다. 그 빈자리를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여호사밧은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고 탁월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한 나라의 힘은 총칼이나 무기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교육에서 나옵니다. 강대국일수록 보십시오. 교육 시스템이 잘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 시절부터 모세와 여호수아, 또 이스라엘의 모든 리더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가르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말씀을 가슴에 새기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이 흐릿해지면 개인도 가정도 국가도 망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큰 위기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행하면 살아납니다. 에스겔이 본 해골 골짜기의 마른 뼈들처럼 살아나게 됩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겔 37:4-5)

 

그런 면에서 가장 훌륭한 자녀 교육은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고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말씀을 늘 듣고 읽고 묵상하고 행하는 연습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2.   말씀으로 세워진 강력한 나라

 

여호사밧이 말씀을 직접 백성들에게 가르침으로 온전한 개혁에 힘쓰니까, 하나님은 주변 나라들이 유다를 두려워하게 해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에 두려움을 주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매” (10절)

 

싸움은 직접적인 충돌 이전에 정신력에서 이미 판가름 납니다. 하나님께서 주변 나라들에게 두려움을 불어넣으시니까 그들은 싸우기도 전에 벌써 전의를 상실하게 됩니다.

 

왕이 된 직후부터 여호사밧은 적들의 침략에 대비하여 국방을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적으로 준비를 해도 하나님의 보호보다 낫겠습니까? 하나님을 전심으로 구한 여호사밧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 유다는 주변 국가들이 두려워하는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 중에서는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리며 은으로 조공을 바쳤고 아라비아 사람들도 짐승 떼 곧 숫양 칠천칠백 마리와 숫염소 칠천칠백 마리를 드렸더라” (11절)

 

사사시대부터 늘 이스라엘을 대적하던 블레셋이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리며 조공을 바칩니다. 아라비아 사람들은 이스라엘 맞은편 넓은 사막에 거하던 이스마엘의 후손들인데, 주로 목축업을 하면서도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엄청나게 많은 짐승 떼를 여호사밧에게 바쳤다는 것은 전쟁할 마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가장 골칫거리였던 세력들이 싸움 한 번 없이 알아서 여호사밧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누가 이렇게 했겠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바로 이런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나아가면 그 누구도 우리를 함부로 못 건드립니다. 가장 껄끄럽던 사람들, 괴롭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부드럽게 나오고 오히려 우리를 어려워하기 시작하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거나 이상하게 행동할 때 마음이 흔들리고 괴롭습니까? 그럴 때는 괴로워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하며 나아갈 때입니다.

 

그런 일이 생길 때 저는 저 자신의 영적 생활을 돌아보며 부족한 부분을 찾습니다. 특히 기도가 부족할 때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더욱 기도에 매달립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기도를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틀림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정말 주님을 찾는 사람은 기도하게 되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기도를 안 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옳은지는 하나님께서 판단해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전심으로 주님을 찾는 사람을 잘 봐주시겠습니까, 아니면 기도는 안 하면서 비판만 하는 사람을 잘 봐주시겠습니까? 물론 누구에게나 자비를 베풀어주십니다. 하지만 누가 옳은지를 판단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사람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너를 괴롭히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에 엎드려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의 시온이라 하리라.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네가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 왕의 젖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사 60:14-16)

 

이렇게 주변 민족들이 알아서 고개 숙이고 나왔지만 여호사밧은 방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강력한 군사력으로 나라를 방비하는 일을 더 빈틈없이 진행시킵니다.

 

“여호사밧이 점점 강대하여 유다에 견고한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하고, 유다 여러 성에 공사를 많이 하고 또 예루살렘에 크게 용맹스러운 군사를 두었으니” (12-13절)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리더의 나라는 날이 갈수록 더욱 강력해집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여호사밧은 “견고한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했는데, 요새는 대적의 위협을 막는 곳이고, 국고성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무기를 비축해 두는 성입니다. 그리고 각 성에 공사를 많이 하면서 전쟁을 대비하여 모든 성을 요새화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 성에 용맹한 군사들을 배치하고 그들을 아주 효율적으로 재조직했습니다. 먼저, 족속대로 군사 조직을 이루게 합니다. 유다 출신으로 3명(아드나, 여호하난, 아마시야)의 군대장관을 두고(14-16), 베냐민 출신으로 2명(엘이아다, 여호사밧)의 군대장관을 두어 군대를 지휘하게 합니다(17-18).

 

이들은 요즘 군대 계급으로 치면 군단장 급의 최고 지휘관들이었는데, 그들이 각각 거느린 5개 군대조직에 속한 병사들의 수는 무려 116만이나 되었습니다. 이것은 평상시에 생업에 종사하다 유사시에 소집되던 예비 병력까지 합친 숫자일 것입니다. 이들 중에 특히 눈길이 가는 사람은 아마시야입니다.

 

“그 다음은 시그리의 아들 아마시야니 그는 자기를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자라 큰 용사 이십만 명을 거느렸고” (16절)

 

아마시야는 군대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깨닫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임무를 수행한 사람입니다. 아마시야뿐 아니라 다른 군대지휘관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아마시야가 특히 더욱 그랬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가 다 사역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역의 장은 크게 세 군데입니다. 가정, 생업, 교회입니다. 사역을 교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 직장/사업/학교, 교회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 군데의 장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거룩한 사명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런 부모님 밑에 태어나서 자라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 남편/아내와 만나게 하셨고 이런 자녀를 주셨는가?

하나님께서 왜 나를 지금 이 직장/사업/학교에 두셨는가?

하나님께서 왜 나를 지금 이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셨는가?

 

이것을 깨닫고 그 사역의 장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섬기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하듯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불평하지 않고 주님께 하듯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사밧은 말씀을 기초로 하여 지속적이로 총체적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리더로서 철저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안달하며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막상 권력이 주어지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자신의 권력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잘 알았고, 그것을 가지고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상을 몰아내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대적의 침입에 대비해 국방을 튼튼히 한 것입니다. 자신을 왕으로 불러 세우신 하나님 앞에서 그 부르신 사명을 받들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책망

 

이렇게 거룩한 개혁을 이끈 여호사밧이었지만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그것은 북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과 정략결혼을 한 일입니다.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 (18:1)

 

여호사밧은 자신의 아들 여호람을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시켰습니다. 아합은 가장 악한 왕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판단이 빠른 그는 여호사밧의 리더십 아래 유다가 강해지자 혼인동맹을 맺어서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사람 여호사밧이 아합의 이런 속셈을 알면서도 거기에 응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치명적인 실책으로, 훗날 이로 인해 큰 위험이 닥치게 됩니다. 아달랴 때문에 유다가 엄청난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결정이 언제 이루어졌습니까?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을 때’입니다. 나라가 강해지고 번영을 누리게 되자, 경건하던 여호사밧도 그 안정과 평안을 깨뜨리기가 싫어졌고 거기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판단력을 순간적으로 잃어버리고 아합의 이스라엘과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잘못될 때는 항상 안주하려고 할 때입니다. 지금 상태를 유지하려고 할 때입니다. 편안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할 때, 지금이 좋으니까 이렇게 유지하자고 할 때 잘못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합과 혼인동맹을 맺은 여호사밧은 결국 아합이 일으킨 아람과의 전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과 유다 연합군은 크게 패하고 아합은 죽임을 당합니다. 여호사밧도 간신히 목숨을 구하여 유다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때 여호사밧에게 선지자 예후가 찾아와 하나님의 진노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이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의 궁으로 들어가니라.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19:1-2)

 

그러나 하나님은 징계 가운데서도 여호사밧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 (19:3)

 

그 후에 여호사밧은 이 뼈아픈 실책을 회개하고 다시 마음을 잡아 개혁을 계속하게 됩니다. 여호사밧이 실수에도 불구하고 계속 개혁을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그가 온 나라에서 우상을 제거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혼의 중심이 항상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백성들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넘어질 수 있고,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기도 하고, 노하시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상을 늘 제거하고, 중심으로 하나님을 늘 찾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늘 붙들고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귀한 도구로 쓰임 받는 인생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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