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특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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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4일 수요예배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8 ✦
“파멸로 이끄는 성공을 경계하라”
(열왕기상 9장 1-9절)
1. 솔로몬에게 다시 나타나신 하나님의 경고
하나님의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온 우주만물을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이신데, 그분과 우리가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그러니까 기도를 하라, 성경을 묵상하라, QT를 하라는 것은 부담이 아니라 엄청난 특권입니다. 그분을 감히 우리가 어떻게 뵙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그분의 뜻을 구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늘 기쁨으로 찾아오십니다. 그런 면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늘 찾아와 말씀해주셨던 솔로몬은 정말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오셔서 말씀하실 때 하나님은 사랑으로 오기도 하시지만 동시에 우리를 다스리는 영광과 권위로도 오십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에 나오는 요청처럼, 일방적으로 우리의 욕심을 채워주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수준으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그분은 사랑과 거룩이라는 양면을 가지고 오십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가 이루기를 원하던 모든 것을 마친 때에,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1-2절)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때가 언제입니까?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친 때’입니다. 이때는 솔로몬이 일천 번제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때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때입니다. 성전을 봉헌한 지도 어느 덧 13년이 지난 해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신 것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에 대한 응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때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셨을까요? 그것은 솔로몬이 통치한지 20여 년이 지나 번영과 평화를 누리는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해이해질 수 있는 솔로몬의 마음을 일깨우시고 영적 각성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음에 이루기를 원하던 모든 것을 이루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나라의 힘이 최고에 오른 상태에서, 솔로몬은 자칫 영적으로 나태해지고 교만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때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일종의 영적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내 삶에 고난이 있을 때 오시는 하나님은 나를 격려하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내가 너무 잘나갈 때 오시는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교만하지 못하게 막으시고 겸손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먼저 하나님은 솔로몬이 처음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했던 그 마음에 복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3절)
이때는 성전을 봉헌한지가 13년이 지났지만, 그래도 솔로몬은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유지해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듣고 복을 주시는데, 그 복의 핵심은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솔로몬이 만든 전에 있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영적 리더의 기도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면 그 누구도 해를 끼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우리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느냐 안 하시느냐,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임재입니다. 그런데 보통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나님을 떠나서 제대로 섬기지 않는데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자가 되면 ‘복 받았다’고 합니다. 반면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지만 가난하고 사업이 안 되고 직장도 잘리는 사람이 있다면 ‘복 받았다’라고 이야기하지를 않습니다.
그럼 어떤 눈으로 볼 것인가? 보통 우리가 보는 눈은 하나님의 눈이 아니라 세상의 눈인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진짜 복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과 늘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삶에 하나님의 임재가 보이는 삶이 복 받은 삶이지, 하나님은 안 계신데 잘나가는 것이 복 받은 삶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해주시도록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되든 못 되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 기도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러한 약속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축복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조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철저한 순종입니다. 솔로몬은 이전에 아버지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들어 하나님께 복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거꾸로 솔로몬에게 다윗의 온전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다윗에게 주셨던 언약의 내용을 솔로몬에게 상기시켜주십니다.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4-5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핵심 요지는, 순종할 때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순종하지 않을 때 언약의 복은 없다는 것입니다. 솔로몬과 그 자손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등을 돌리거나,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않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고 숭배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주십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7-9절)
불순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온갖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끊어질 것이고, 아무리 거룩하게 구별되었던 성전이라도 버림 받을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민족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20여 년 전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는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주신 말씀에 비해, 이 날의 말씀은 너무나 강하고 무섭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 날 솔로몬에게 이처럼 무서운 경고의 말씀을 주셔야 했습니까? 어렵고 힘든 시절, 모든 것이 처음이고 경험이 부족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던 그 시절에 비해, 이제 솔로몬은 노련한 왕이 되었고 너무나 많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그러는 가운데 영적으로 나태해져가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성공 한가운데에 이토록 무서운 경고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진짜 무서운 영적 위기는 언제 찾아옵니까? 재정이 바닥나거나, 심각한 병에 걸리거나 하는 것이 진짜 위기가 아닙니다. 가장 무서운 영적 위기는 성공하고 잘나갈 때 찾아옵니다. 그래서 잘될수록 더욱 겸손하고 조심하며 자신을 늘 주님 앞에서 돌아보아야 합니다.
2. 솔로몬이 이룬 일들
1) 수많은 건축과 기나긴 노역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과 자신의 왕궁을 짓는 공사 외에도 수많은 건축 사업을 벌이며 성읍들과 요새들을 지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 뿐 아니라, 밀로, 예루살렘, 하솔, 므깃도, 게셀을 건축했습니다(15). 또 게셀, 아래 벧호론(17), 바알랏, 다드몰(18), 모든 국고성, 병거성, 마병의 성들(19)을 건축했습니다.
문제는 이 많은 건축 공사들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공사를 위해 동원한 사람들은 가나안 정복 때 쫓아내지 못하고 남겨 두었던 가나안 민족들이었는데, 그들을 노예로 삼아 일을 시켰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중 남아 있는 모든 사람, 곧 이스라엘 자손이 다 멸하지 못하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그들의 자손들을 솔로몬이 노예로 역군을 삼아 오늘까지 이르렀으되” (20-21절)
그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뭘 했습니까?
“그러나 솔로몬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는, 어느 누구도 노예로 삼지 않았다. 이스라엘 사람은 군인, 신하, 군사령관, 관리 병거대 지휘관, 기병대원이 되었다.” (22절, 새)
그러나 조금 나은 대우를 받았기는 했어도 노동에서 완전히 면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장기간 수많은 건축 공사가 진행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힘들어했고, 훗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그 불만을 터뜨리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세계적인 유적지라고 부르며 찾는 건축물들의 대부분은 알고 보면 수많은 노예들의 피로 세워진 것들입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노예로 있을 때 지은 것입니다. 로마의 그 유명한 원형경기장 콜로세움도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끌려온 10만 명의 유대인 노예들을 짐승처럼 부려서 지었습니다. 살아남은 노예들도 콜로세움을 개장하던 날 다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화려한 왕들의 업적 뒤에는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비참한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끔찍한 노예 생활을 하면서 피라미드를 지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이제 나라의 힘이 강해졌다고 해서 자기들도 이방 노예들을 불러다가 자기들의 건설 공사에 이용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처음 성전을 지을 때는 노동자들을 3교대로 집에 돌아가게 하면서 배려하던 솔로몬도, 일단 화려한 국가적 공사들에 발동이 걸리니까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은, 약한 자들의 피와 땀을 요구하여 얻어낸 업적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훗날 이스라엘은 멸망당하고 강대국들에 끌려가 다시 노예 생활을 하게 됩니다.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면 자기도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활발한 해상 교역과 조선사업
“솔로몬 왕이 에돔 땅 홍해 물 가의 엘롯 근처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지은지라, 히람이 자기 종 곧 바다에 익숙한 사공들을 솔로몬의 종과 함께 그 배로 보내매, 그들이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사백이십 달란트를 얻고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왔더라” (26-28절)
이것을 보면, 솔로몬은 자신의 통치 기간 중에 해상 무역을 크게 활성화시켜서 경제적인 번영을 추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두로 왕 히람의 도움으로 많은 배들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남쪽 끝에 있는 상업 항구 엘롯이나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지어 홍해와 아카바 만을 거쳐 지금의 아라비아 서남해안으로 추정되는 오빌까지에 이르는 해상 무역로를 다스리며 교역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스바 여왕의 방문
이러한 솔로몬의 탁월한 지혜와 번영과 부귀영화는 해상 무역을 통해 먼 나라들에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재산에 있어서나, 지혜에 있어서나, 이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래서 온 세계 사람은 모두, 솔로몬을 직접 만나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넣어 주신 지혜의 말을 들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각각 은그릇과 금그릇과 옷과 갑옷과 향료와 말과 노새를 예물로 가지고 왔는데, 해마다 이런 사람의 방문이 그치지 않았다.” (왕상 10:23-25, 새)
솔로몬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의 모든 왕들보다 더 컸기 때문에 온 세계 사람들이 다 엄청난 조공물을 가지고 솔로몬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해외 귀빈 방문은 스바 여왕의 방문이었습니다. 당시 향료와 금, 은, 보석의 무역으로 유명했던 스바는 아라비아 남서쪽에 위치했던 아주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그런 나라의 여왕이니까 아주 뛰어난 여성 CEO 스타일의 통치자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스바의 여왕은 소문으로만 듣던 솔로몬의 업적과 지혜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먼 길을 여행하여 찾아온 것입니다. 스바의 여왕의 특이한 점은, 솔로몬의 그 엄청난 재산과 화려한 건축물들과 군대를 보기 전에 먼저 솔로몬의 지혜를 시험했다는 사실입니다.
“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솔로몬이 그가 묻는 말에 다 대답하였으니 왕이 알지 못하여 대답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더라” (10:1-3)
이것을 보면 스바의 여왕은 대단한 여걸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기 쉬운데, 스바의 여왕은 달랐습니다. 아무리 화려한 나라라도 다스리는 왕의 지혜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스바의 여왕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곡을 찌르는 질문들을 가지고 와서 솔로몬에게 질문 공세를 펼쳤습니다. 과연 솔로몬의 지혜와 능력이 모든 것을 감당할 만한지, 아니면 그냥 잘난 아버지를 둔 운 좋은 아들에 불과한지, 소문에 듣던 그의 지혜와 능력이 사실인지, 아니면 과대 포장된 뜬소문에 불과한지, 직접 와서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어렵고 복잡한 난제들을 가지고 와서 만나자마다 질문 공세를 펴는 자기에게 솔로몬은 너무나 쉽게 술술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며 스바의 여왕은 기가 질리면서, 이 사람 솔로몬에게는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됩니다.
대개 소문은 과장된 것이 많아서 실체를 알게 된 다음에 실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직접 솔로몬을 만나 본 스바의 여왕은 정반대로, 솔로몬이 소문보다 훨씬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왕께 말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사실이로다.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친히 본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 (10:6-7)
우리도 소문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소문은 사실의 절반도 못 된다는 말을 듣는 인물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4) 엄청난 부의 축적
10장을 읽어보면 솔로몬이 어느 정도의 부귀영화를 누렸는지가 나옵니다.
매해 금 666달란트, 즉 25톤이나 되는 엄청난 세금이 걷혔을 뿐 아니라, 교역이나 주변 나라들로부터 들어오는 수입도 엄청났습니다(10:14-15). 금으로 만든 방패도 500개나 되었습니다(10:16-17).
또 솔로몬이 쓰는 그릇들도 전부 다 금으로 만들었습니다(10:21). 너무 금이 흔해서 은으로 만든 그릇은 쓰지도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솔로몬의 재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이 그 많은 돈들을 벌어들이기만 하고 나누지를 않았다는 점입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금이 넘쳐나고 은은 돌 같이 흔했으며, 그 귀한 백향목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했습니다(10:27). 이러한 부귀영화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약속해주신 대로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부자가 되는 것 자체는 참으로 축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 많은 재물을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쌓아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가득 찼던 솔로몬이 이상하게도 그 엄청난 재물을 모으며 쌓아 두기만 했지, 그것을 풀어서 나누는 일에는 인색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세금은 계속 무겁게 걷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왕들의 재물 욕심에 대해 오래 전 이미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신 17:17)
하나님께서 내리신 복으로 많은 재물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 왕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을 비롯하여 왕들이 백성들과 함께 그러한 복을 나누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구약에 보면 항상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약한 자들을 돌볼 것을 강조합니다.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면 하나님은 그 멸시하는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을 보면 그 많은 재물을 모은 이야기만 나오지, 가난하고 약한 백성들을 위해 나누는 정책을 펼쳤다는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자기중심적인 재산 축적과 세금 정책은 오랜 세월 동안 백성들의 마음에 원망과 고통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결국 그 아들 르호보암 때에 폭발하게 됩니다.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왕상 12:4)
어리석은 르호보암은 이러한 백성들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는 더 무겁게 다스리겠다고 하다가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비극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 (딤전 6:7-10)
5) 막강한 군사력
세계를 놀라게 한 솔로몬의 부와 권세는 이스라엘의 군사력에서도 드러납니다. 솔로몬의 병거는 1,400대이고, 그것을 모는 마병이 12,000명이나 됩니다(10:26). 이런 군사력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 솔로몬이 의도적으로 모은 것입니다(10:28-29).
당시에 병거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고, 솔로몬은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기 위한 목적 아래 애굽에서 말과 병거를 들여온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솔로몬은 비즈니스에도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서, 애굽으로부터 한 대에 은 600세겔을 주고 수입한 병거와 한 마리에 은 150세겔을 주고 수입한 말들을 주변 나라와 시리아에 되팔아서 막대한 이익을 챙겼습니다. 쉽게 말해서 무기 장사를 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솔로몬은 애굽에서만 아니라 각 나라에서 말을 수입했습니다(대하 9:28). 좋은 말을 사서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어디에서나 말들을 들여온 것입니다. 국방과 비즈니스 둘 다 잡은 기발한 경영 방법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의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금하신 일입니다.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신 17:16)
하나님은 홍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해오던 애굽의 병거들을 한꺼번에 다 물속에 쳐 넣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 하나님이 아니라 병거를 의지하려 합니다. 병거를 많이 가지게 되면 아무래도 하나님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많이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병거를 많이 들여오려면 애굽과 계속해서 많이 교역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그들의 잔인하고 무서운 군사문화와 우상 숭배까지도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과 교류를 하지 말라고 금하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자기를 지켜줄 수단을 많이 가지게 되는 것이 꼭 좋은 일이 아닙니다. 돈이 많다 보면 아무래도 돈 때문에 마음이 든든하다보니까 영적인 간절함이 사라집니다. 열심히 기도하지 않아도 돈으로 다 할 수 있는데 뭐 하러 기도하겠습니까? 열심히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에 부족함이 없는데 왜 하나님을 찾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하게 되면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솔로몬이 그 본보기입니다. 하나님보다 병거를 더 의지하다가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성공 속에는 파멸로 이끄는 유혹이 숨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그것을 경고합니다.
“비천한 신도는 자기가 높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십시오. 부자는 자기가 낮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십시오. 부자는 풀의 꽃과 같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가 떠서 뜨거운 열을 뿜으면,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져서, 그 아름다운 모습은 사라집니다. 이와 같이, 부자도 자기 일에 골몰하는 동안에 시들어 버립니다.” (약 1:9-11, 새)
솔로몬이 정말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일에 골몰하는 동안에 시들어 버렸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것이 엄청난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 부귀와 권력에 마음을 서서히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하셨지만, 솔로몬은 하나님께만 순종하는 마음에서 점점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에 취해서 그 복을 주신 하나님을 서서히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는 점점 시들어 가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의 업적을 설명해주는 본문의 이 많은 구절들 중에 솔로몬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내용은 딱 한 절 나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위에 해마다 세 번씩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또 여호와 앞에 있는 제단에 분향하니라 이에 성전 짓는 일을 마치니라” (25절)
성전을 짓고 봉헌할 때까지 그토록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정성을 쏟았던 솔로몬이었지만, 이제 자기 나라의 군사력이 강해지고 재물이 날로 쌓여가면서 점점 하나님을 예배하던 그 열정과 에너지가 다른 일들의 뒤로 밀리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당하고 여러 가지로 모자라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결코 저주가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도 돈이 많아지고 힘이 세지고 높은 데로 올라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저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망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이 무엇이겠습니까? 건강하거나 돈 많이 벌거나 높은 위치에 올라가서 출세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다 부수적인 것들이지, 인생에서 진짜 핵심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것, 그분의 임재입니다.
돈이나 성공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자꾸 가리며 흐리고 있습니까? 경고하시는 사인을 잘 보고 귀 기울여야 합니다. 반대로, 다른 데 의지할 곳이 없어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상황입니까? 지금 나와 함께 해주시는 그분의 임재하심을 깨달으며 전심으로 그분께 나아가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신뢰하며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