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특별예배
HOME > 설교와칼럼 > 수요예배/특별예배
2015년 11월 11일 수요예배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9 ✦
“솔로몬의 타락과 그 결과”
(열왕기상 11장 1-13절)
1. 솔로몬의 타락의 모습
엄청난 부귀영화와 나라의 평안을 누리던 솔로몬은, 성공과 번영의 절정기에서 조금씩 하나님의 계명을 어김으로써 타락의 길로 가게 됩니다.
1) 아내들에 의한 우상 숭배
참으로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한 것은, 솔로몬이 이런 타락의 길로 간 것이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에게 오래 전 경고하셨습니다.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신 17:17)
왕은 아내를 많이 두지 말고, 자기를 위해 은금을 많이 쌓지도 말라고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에 모세를 통해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율법과 말씀을 배웠던 솔로몬이 이러한 말씀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또한 많은 잠언의 저자인 솔로몬이 이방 여인을 사랑하여 마음을 빼앗길 때 어떤 결과가 올 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잠 5:20-21)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를 충만하게 받은 사람이니까 이론적으로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누리는 축복에 너무 취해서 말씀을 실천할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 다윗이 여러 아내들로부터 자녀를 낳음으로써 어렸을 때부터 가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압살롬 반역의 이야기도 알고 있고, 자신의 이복형인 아도니야와 왕위를 놓고 갈등관계에 있기도 했기 때문에, 일부다처제로 인한 문제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 자신은 다윗의 몇 백배를 더 하게 됩니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1-3절)
솔로몬은 후궁이 700명이고 첩이 300명이었습니다(3). 그런데 성경은 솔로몬이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했다고 하고(1), 또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라고(2) 두 번이나 말씀합니다. 다윗도 여자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보다 더하여 천 명이나 되는 아내와 첩을 거느리고 살았습니다.
혹시 솔로몬의 이러한 모습을 보며, ‘야, 재물에 한이 없어서 마음껏 누리며 살았고, 수없는 여자들을 데리고 살았으니 솔로몬이 너무 부럽다.’라고 생각하는 남자 분들이 있습니까? 그게 아닙니다. 사실 솔로몬은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왜 그렇게 재물을 쌓고 또 쌓았겠습니까? 안 채워지니까 그런 겁니다. 왜 그렇게 수많은 여자들을 아내로 들였겠습니까? 안 채워지니까 그런 겁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인간의 마음속에는 뻥 뚫린 커다란 구멍이 있어서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로만 채울 수 있습니다. 아무리 대저택이나 억만금을 가져와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오직 가장 크신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가 있습니다.
사실 사랑은 집중력입니다. 솔로몬이 천 명이나 되는 아내들을 뒀다는 것은, 그 중 누구도 진실하게 사랑하지 못했다는 말이 됩니다. 많은 여자들을 사랑하려고 하다가 한 명도 깊게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천 명이나 되는 아내들을 둔 것은 그들을 사랑한 것도 있지만 주변나라들과 혼인을 통해 나라의 안전을 지키려는 정략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또 솔로몬의 엄청난 부귀영화와 지혜를 생각할 때, 수많은 나라의 왕들이 앞 다투어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으려고 자기 딸들을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지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을 이룬 솔로몬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나아가야 했는데, 세상의 다른 왕들과 똑같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왕권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는 돌이킬 수 없는 패망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여인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숭배하는 길로 이끌었다는 점입니다.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4-5절)
우리가 기억할 것은, 솔로몬이 처음부터 우상 숭배를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그도 자기가 설마 이방인 아내들 때문에 하나님을 저버리게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자기는 지혜가 넘치고 힘이 강하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얼마든지 자기가 이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산이었습니다.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4). 젊었을 때는 아무리 여인들이 애원해도 거절하고 달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들어 늙게 되니까 마음도 약해지고 힘도 약해지고, 컨트롤이 안 되는 겁니다. 계속되는 아내들의 요구에 조금씩 마음이 해이해지고 타협하게 되면서 이방 신들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기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은 거리낌 없이 우상 숭배에 빠져서 나라 돈을 털어 곳곳에 이방 신당들을 세우는 일까지 서슴지 않게 된 겁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6-8절)
이것을 볼 때, 우리는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해서는 곤란합니다. 신앙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만한 길로 나아갈 때, ‘나는 아직 젊고 힘이 있으니까 괜찮겠지’, ‘이번 한 번만은 괜찮겠지’, ‘이건 내가 얼마든지 컨트롤할 수 있는 거야’라고 확신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늘 나아가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았던 솔로몬의 이러한 타락을 보면, 눈에 보이는 성공에 취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할 때 그 누구도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의 아버지 다윗도 사울에게 쫓겨 도망 다니던 시절에 범죄한 게 아니라, 왕이 되어 주변의 적국들을 거의 평정하고 편안하게 살 만할 때 밧세바와 간음을 저질렀습니다.
이처럼 그 누구도 자신에 대해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죄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늘 붙들고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길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기도가 있고 찬양이 있고 예배가 있고 참된 사랑의 교제가 있는 자리에 자신을 붙들어 놓아야 합니다. 어떻게든 예배도 그렇고, 목장을 하는 것도 늘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붙들어 놓는 것입니다.
2) 경고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외면
타락하는 솔로몬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너무나 아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은 아무리 당신께서 사랑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당신의 법을 무시하고 함부로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을 결코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아니,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매섭게 매를 드십니다.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9-10절)
만약 하나님의 매가 없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시는 사람이 아닌 겁니다. 그게 더 무섭습니다. 때려서 정신 차리게 하는 것이 사랑이지, 죄의 길을 가도 가만히 놔두면 그것은 그냥 망하라는 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죄의 길로 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그냥 ‘놓아두셨다’고 하는데, 그게 정말로 무서운 겁니다.
철이 든 사람이라면 자신을 무섭게 때리며 징계하는 부모님의 눈에 고여 있는 눈물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영적으로도 하나님이 때리신다면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눈물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범죄하는 솔로몬에게 심판과 경고의 말씀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솔로몬의 불순종에 대한 심판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화려하고 강하며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제국이 무너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믿고 의지하던 신하 중 한 사람에게 나라를 빼앗아 주신다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11절)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한 제국이고 엄청나게 쌓여 있는 재물이라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올라가기는 어려워도 떨어지는 건 순식간인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니 너무 이 땅의 성공에만 목숨을 걸 게 아닙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알아주는 가치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솔로몬도 그렇게 엄청난 왕국을 이루고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떨어지는 건 금방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그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12-13절)
그의 아버지 다윗을 생각하셔서 솔로몬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하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 대에 가서 행하실 것이며, 한 지파는 남겨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어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 다윗을 기억하시고 끝까지 그와 맺은 언약에 신실하셨습니다.
사실 그의 아버지 다윗도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다윗은 밧세바가 우리야의 아내인 것을 알고도 불러서 동침한 간음죄를 저질렀습니다. 밧세바가 임신을 하자 그것을 숨기기 위해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불러와 아내와 동침하도록 유도하는 거짓말의 죄를 범했습니다. 또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자신의 아예 우리야를 전쟁터의 가장 맹렬한 곳에 보내어 죽게 만드는 살인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렇게 보면, 다윗은 정말 엄청난 죄인입니다. 솔로몬보다 훨씬 더 죄인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된 까닭은, 죄를 저지른 후에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준엄한 질책을 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전심으로 회개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고, 하나님은 회개한 다윗을 끝까지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의 크신 긍휼을 베푸시어 내 반역죄를 없애 주십시오. 내 죄악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내 죄를 깨끗이 없애 주십시오. 나의 반역을 내가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지은 죄가 언제나 나를 고발합니다.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의 눈앞에서, 내가 악한 짓을 저질렀으니, 주님의 판결은 옳으시며 주님의 심판은 정당합니다. 아,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며, 주님의 성령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내가 지탱할 수 있도록 내게 자발적인 마음을 주십시오.” (시 51:1-4, 10-12, 새)
이처럼 다윗은 간절한 통회의 마음으로 진실된 회개를 했습니다. 회개의 핵심은 하나님과 동의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판결은 옳으시며 주님의 심판은 정당합니다.” 바로 이것이 회개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하나님의 이런 무서운 심판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바로 이 점이 솔로몬에게서 가장 안타까운 점입니다.
우리 모두는 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유혹에 빠지고 죄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돌이켜 회개하는 사람이 의외로 적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실하게 회개하는 다윗을 기쁘게 보신 것입니다.
4절과 6절에서 ‘온전함’으로 표현된 단어는 완벽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실하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 진실하고 겸손한 회개가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받아냅니다. 우리도 그런 온전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징계
솔로몬은 당시 최첨단 무기인 기마대를 애굽에서 대량 수입하고, 주변 국가들과 혼인 동맹을 맺음으로써 국방을 다지려 했습니다. 그러나 안정과 평화는 그렇게 인간적인 방법으로 오는 게 아닙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대적들의 마음에 공포를 심어주시고 그들이 감히 공격해올 엄두를 못 내게 해주십니다. 내 무기가 겁나서 대적들이 쳐들어오지 못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막이 나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못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불순종은 하나님께서 그 보호막을 걷어 가시게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국방과 외교는 걷잡을 수 없이 불안한 상태로 빠져들게 됩니다. 다윗 때에는, 아니 솔로몬 자신의 중반기까지는 꼼짝도 못하던 이웃 나라들이 갑자기 강해지면서 이스라엘에 칼을 들이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1) 에돔의 하닷 (14-22절)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징계하기 위해 일으키신 첫 번째 대적은 에돔의 왕자 하닷입니다. 원래 에돔 족속은 에서의 후손인데,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방해하여 그때부터 에돔과의 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계속 적대관계에 있다가 다윗에게 거의 전멸 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왕족 중에 어린 소년이었던 하닷은 극적으로 탈출하여 애굽으로 도피합니다. 거기에서 그는 바로의 호의 아래 세력을 키우게 됩니다.
“미디안을 떠나 바란에 이르고 거기서 사람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가매 바로가 그에게 집과 먹을 양식을 주며 또 토지를 주었더라. 하닷이 바로의 눈 앞에 크게 은총을 얻었으므로 바로가 자기의 처제 곧 왕비 다브네스의 아우를 그의 아내로 삼으매” (18-19절)
애굽에서 바로 왕이 자기 처제와 결혼을 시킬 정도로 하닷은 바로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그러다 다윗과 요압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에게 가서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21). 처제를 아내로 줄 정도로 하닷을 아끼던 바로는, 애굽에서 부족한 것이 없게 해주는데 왜 그러느냐고 놀라서 묻고, 하닷은 부족한 게 없어도 가야 한다고 대답합니다(22).
이것을 보면 하닷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릴 때 망명한 외국인으로서 왕의 신뢰를 입고 왕의 처제를 아내로 삼을 정도라면, 그야말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게 출세와 안정이 보장된 애굽 왕궁에서 편하게 살려고 할 텐데, 하닷은 고생하고 있는 자신의 민족에게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이런 사람이 칼을 갈고 애굽의 후원을 받아 고국으로 돌아왔으니, 이스라엘과 솔로몬에게 아주 큰 골칫거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분명히 솔로몬에게 자신의 공주를 보내어 왕비가 되게 했고, 그런 관계를 이용해서 많은 말과 병거를 이스라엘에 팔아서 막대한 이득을 챙겼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스라엘의 대적인 에돔의 하닷 왕자에게 애굽 왕실의 여인을 아내로 주고, 그의 세력을 뒤에서 은밀하게 후원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바로는 아주 간교한 양다리 외교를 펼친 것입니다. 둘 다 후원해서 더 강한 쪽으로부터 이득을 챙기려고 미리 준비를 해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아무리 완전히 내 편인 것처럼 보여도, 내가 약해지면 가차 없이 나를 내치고 다른 쪽으로 붙는 겁니다. 총명하던 솔로몬도 하나님을 버리고 영적으로 타락하면서 세상 권력의 이중성과 간악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니까 그렇게 지혜롭고 총명하던 사람이 흐려집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그것도 모르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을 가까이 하여 세상의 세력을 신뢰하고 나아가다가, 약해지게 될 때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오히려 버림을 받고 비참한 형편으로 추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결코 세상의 친구를 100%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불신하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들은 철저히 자기 이익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용하지 않으면 이용당하는 것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알면서 당해주는 것은 괜찮지만, 모르고 당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면 모든 상황을 파악할 능력을 주십니다.
2) 수리아의 르손 (23-25절)
아람 족속으로 이루어진 나라인 소바는, 동으로는 유브라데 강과 남으로는 암몬까지 이르는 비교적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군사력도 강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공격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나라입니다.
그때 르손이라는 사람이 자기 왕을 버리고 사람들을 모아서 탈출하여 다메섹으로 가서 세력을 키워, 결국은 수리아 왕이 되었습니다(24). 르손도 다윗이 왕위에 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다윗이 죽고 솔로몬의 통치 말기에 이스라엘의 국력이 약화되는 틈을 타고 스스로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25).
이처럼 다윗 때에 거의 진멸되었던 에돔과 수리아가 다시 일어선 것은 솔로몬의 범죄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타락으로 인한 심판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범죄에 대한 징계의 수단으로 대적들의 재기를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죄를 지으면 약해지게 되고, 그러면 안 보이던 적들이 우후죽순으로 다시 일어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나를 어렵게 만드는 사람이 생긴다면,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죄에서 돌이키게 하시기 위한 채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럴 때 불평을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영적으로 깨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3) 왕국을 분열시키는 여로보암 (26-40절)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국을 대적할 인물로 세우신 사람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닌 솔로몬의 신하 여로보암이었습니다.
“이 사람 여로보암은 큰 용사라 솔로몬이 이 청년의 부지런함을 보고 세워 요셉 족속의 일을 감독하게 하였더니” (28절)
건축 사업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인 여로보암을 솔로몬이 직접 감독자로 발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무서운 반역의 우두머리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도 살다 보면 배신을 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이서 내가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 중에 배신자가 나옵니다. 내가 믿고 모든 것을 맡겼던 사람, 내가 그렇게 잘해주고 섬겨주었던 사람들이 나를 배신합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사람은 군중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열두 제자 중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사람도 가장 가까운 제자였습니다.
솔로몬이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믿었던 신하의 괘씸한 배신이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입니다. 불순종한 솔로몬을 징계하시기 위한 도구로 여로보암의 반역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인생에 일어나는 일은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경과 기도와 교회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만, 다른 사람들과 상황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특히 여로보암의 배신처럼 내 인생에 충격적이고 불편한 일이 일어날 때는, 그 사람에 대한 분노와 섭섭함으로 감정적으로 반응할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가만히 돌아보며 하나님의 숨겨진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여로보암은 아주 자격미달인 리더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중에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계속 읽어보면, 모든 왕들이 악을 행했다고 나올 때 항상 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와 비교를 할 정도로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로보암과 그 후손들, 그리고 다른 왕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다가 다 멸망당하고 맙니다.
결국 여로보암에게 일시적으로 허락된 권력은 하나님의 백성을 징계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을 뿐입니다. 이 세상에는 여로보암처럼 자격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세상의 권력의 자리에 올라가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너무 갈등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의 어떤 섭리가 거기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솔로몬은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11)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여로보암을 죽이려 합니다(40). 그러나 여로보암을 죽이는 것이 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이 더 급한 일인데도, 솔로몬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반란은 자연스럽게 진압될 텐데, 그것을 몰랐습니다.
3. 솔로몬의 말년
믿음의 사람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잘못된 길을 가게 되면 갑자기 적이 많이 생깁니다. 아무리 인격이 훌륭하고 처세술이 좋아도 적은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적을 안 만들려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다 보면 아무것도 못하고 오히려 적이 더 생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사는 것입니다. 지금 대적이 없고 평안하다면 그것은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호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세상 누구보다 뛰어난 지혜를 주시고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신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의 길로 가게 된 솔로몬의 인생을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솔로몬이 이러한 일들을 통해 뭔가를 깨닫고 다시 주님을 찾았다는 증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솔로몬이 저자라고 하는 전도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전 12:1-2, 7, 13-14)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 중 헛되지 않은 것은 얼마나 됩니까? 하나님께서 인정하셔서 천국까지 들고 갈 만한 것으로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만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그 날을 준비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