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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21 수요예배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7

성전 봉헌식과 솔로몬의 기도

(열왕기상 8 1-11, 62-66)



1.   언약궤를 옮겨오다

 

7년여의 기간에 걸쳐 성전 건축을 완성한 솔로몬은 전 국민을 다 모아 놓고 감격적인 성전 봉헌식을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그때 솔로몬은 역사에 남을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 이 감동적인 성전 봉헌식이야말로 솔로몬 통치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 지은 성전으로 언약궤를 옮겨오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새 성전 건물이 웅장하고 화려해도, 그 안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가장 먼저 언약궤를 새 성전의 지성소로 옮겨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언약궤를 옮겨오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주목할 점들이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모든 리더들을 비롯해서 온 백성이 함께 모인 가운데 봉헌식이 치러졌다는 것입니다.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일곱째 달 절기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고,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1-3절)

 

솔로몬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있는 지도자들까지 다 불러서 성전 봉헌식에 참석하도록 합니다. 장로들이 다 모였을 때 제사장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형식적인 행사가 아니라 온 백성들이 다 모여서 드리는 감동의 예배였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리더들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며 자신들의 최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결단하면서 나아간다면, 그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교회의 리더들은 이렇게 함께 모이고 함께 예배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결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 리더들의 공 예배 참석이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의 리더들이 자꾸 모여서 함께 예배하는 가운데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리더들의 마음이 하나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교회가 제대로 설 수 있겠습니까?

 

둘째, 언약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수많은 양과 소로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그와 함께 그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지냈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4-5절)

 

이 제사는 죄의 정결을 상징하는데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먼저 우리 죄를 정결케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양으로 희생하며 죽으심으로써 이제 그분을 믿는 사람은 다른 희생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과 그 피의 능력을 묵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드디어 언약궤가 성전의 지성소에 안치되고,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게 됩니다.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10-11절)

 

이때 성전에 구름이 가득하게 임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줍니다. 옛날 모세 때도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너무 강하게 임재해서 모세조차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출 40:34-35)

 

이처럼 아무리 훌륭한 영적 리더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함에 가까이 나아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모세처럼 훌륭한 사람도 그랬다면 우리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하나님은 인자하신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항상 우리를 돌봐주는 사랑의 주님이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함부로 막 대해도 괜찮은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온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 앞에 꿇어 경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인정해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신의 예배 태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 가운데 우리는 두 가지를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대개 자유로운 형식으로 예배하는 교회일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가톨릭처럼 엄숙하게 예전 중심으로 예배하는 교회일수록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예배 형식을 자유롭게 한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예전 중심으로 엄숙하게 예배한다고 하나님의 영광을 늘 기억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둘 다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감격하며 뜨거운 찬양과 기도로 나아가는 동시에, 거룩하신 영광의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겸손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예배 형식과 관계없이 하나님을 함부로 대할 때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분의 사랑에 감사하며, 거룩에 경외심을 가지고 드려야 합니다. 태도를 점검해야 합니다.

 

공 예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생각하며 드려야 하고, 목장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가는 가운데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경험하고 그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보게 됩니다.

 

 

2.   솔로몬의 기도

 

이제 솔로몬은 제단 앞에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합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22절)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봉헌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리더라고 하면 적어도 자기가 섬기는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기도의 내용을 보면 그 리더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는 새벽기도의 전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스갯소리로 어떤 목사님들이 “새벽기도는 누가 만들어가지고 이렇게 우리를 힘들게 하느냐?”라고 한 것을 오래 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농담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새벽기도가 목회자를 살립니다. 우리 교회의 목사인 제가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누가 합니까? 옆 교회 목사님이 기도해주겠습니까?

 

교회의 리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벽기도가 리더들 자신을 살립니다. 교회의 리더인 장로, 권사, 집사들이 교회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누가 합니까? 목자 목녀 목부가 자기 목장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으면 누가 합니까? 자기를 위해, 자기 가족을 위해서는 누구나 기도하겠지만, 교회의 리더는 자신이 섬기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회의 장로님들이 매일 새벽기도에 나와서 기도하시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특히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영적 리더는 사무엘이 말한 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삼상 12:23)

 

이렇게 기도를 하면, 중보기도를 받는 사람이 더 유익일까요, 하는 사람이 더 유익일까요? 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받는 사람에게도 유익이 되지만 하는 사람에게 더 유익입니다. 계속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계속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 복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놀라운 기도 응답을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주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으로 기도해야 되겠습니까? 이제 솔로몬의 기도의 내용을 하나씩 짚어가며 그것을 살펴보겠습니다.

 

 

1) 다윗 왕실에 대한 기도 (22-26절)

 

하나님이 못하시는 것 중 하나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에게 하나님이 주신 언약대로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서 나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25절)

 

다윗 같은 믿음의 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정말로 엄청난 축복입니다. 솔로몬에게 가장 큰 축복은 그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다는 것도 아니고, 역사상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윗이 그의 아버지였다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지난번 이스라엘과 유럽을 가보니까, 대부분의 나라들이 조상들 덕분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을 하여 그들 덕분에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미국도 조상들을 잘 만난 덕분에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데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우리가 자녀 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돈? 명예? 아닙니다. 요즘 한국의 모 대기업에서 형제끼리 싸우는 것 좀 보십시오. 돈이 너무 많고 권력도 많으니까 형제끼리 소송을 걸고 싸웁니다. 얼마나 불행합니까.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가 우리를 보며 “믿음의 아빠 엄마 덕분에, 믿음의 할아버지 할머니 덕분에, 내가 이렇게 잘되었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왕과 백성을 위한 기도 (27-30절)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7-29절)

 

이 내용은 성전 봉헌 기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29)라고 한 것은, 항상 하나님께서 임재해 달라는 간청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성전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전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예수님도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성전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리고 성전인 성도가 할 일은 기도입니다.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30절)

 

여기서 끝 부분에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말은, 죄를 지었을 때 용서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솔로몬은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정말로 간절히 기도해야 할 제목이 바로 죄 사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보십시오. 사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죄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회개하며 기도하는 사람에게 내려오는 하늘의 복입니다.

 

 

3) 맹세에 대한 기도 (31-32절)

 

31절부터는 성전을 두고 하는 특별한 기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범죄함으로 맹세시킴을 받고 그가 와서 이 성전에 있는 주의 제단 앞에서 맹세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하시되 주의 종들을 심판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의 의로운 바대로 갚으시옵소서” (31-32절)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문제가 일어났는데 이에 대한 사실 여부를 알 수 없을 경우, 죄를 범했다는 혐의가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성전에서 결백을 맹세하게 한 법을 근거로 한 기도입니다. 어떤 문제를 두고 성전에서 맹세했을 때 그 맹세가 진실한 것인지 아닌지를 밝혀 주실 것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억울해도 객관적인 증거가 없어서 꼼짝없이 당하게 되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지식과 법의 한계에 부닥쳤을 때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간섭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을 행한 사람은 죄에 대해 심판하시고 옳은 일을 한 사람은 죄가 없다고 밝혀 주시기를 구합니다.

 

가끔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거나 사실이 아닌데도 공격을 받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정확히 심판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심판주시라는 것은 무서운 일이 아니라 감사한 일입니다. 혹시 이 땅에서는 그것을 못 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는 다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말을 듣더라도 흥분하거나 가서 맞받아칠 필요가 없습니다.

 

 

4) 전쟁에서 패할 때를 위한 기도 (33-34절)

 

33절부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고서 재앙을 당한 경우에 대한 기도입니다. 죄를 짓고 나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뭐라고 합니까? “싸다, 싸. 자기가 행한 대로 받는구나.” 그러나 하나님은 그래도 여전히 불쌍하게 여겨 주십니다. 솔로몬은 범죄에 대한 징계로 재앙을 당한다 해도, 성전을 향해 기도하며 회개하면 용서해 달라고 주님께 간구합니다.

 

여기 8장에는 죄로 인해 당하는 세 가지 재앙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33-34절)

 

가장 먼저 죄로 인하여 적국에게 패하는 경우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나라의 장래를 좌우하는데, 이스라엘이 적국에게 패하는 것은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패하는 것은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용서해주십니다.

 

 

5) 죄로 인해 비가 오지 않을 때를 위한 기도 (35-36절)

 

“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께 벌을 받을 때에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이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시오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35-36절)

 

둘째로, 죄를 범함으로 가뭄이 닥치게 됩니다. 농사를 짓는 이스라엘에 가뭄이 닥치면 그야말로 죽음의 위기와 절망 그 자체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면 먹고 사는 문제가 아주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즉시 회개하고 죄에서 떠나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비를 달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6) 기근과 전염병에 대한 기도 (37-40절)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막론하고” (37절)

 

또한 범죄하게 되면 기근이나 전염병이 일어납니다. 사실 요즘 이상한 병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조류 독감, 구제역, AIDS, SARS, 이제는 MERS 등 많습니다. 자연 재해 역시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이 구약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 자연 재해가 일어나면 ‘너희는 죄를 많이 지어서 벌을 받는 것’이라고 정죄하면 안 되지만, ‘여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하며 돌아봐야 합니다.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38절)

 

이 말씀을 보면, 재앙과 관련하여 공동체와 개인 모두에게 다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공동체 전체가 어려움을 당할 때 모두가 그 문제를 자신의 책임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 전 인도에서 한 유명한 힌두교 수도사가 물 위를 걷는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자, 몇 월 며칠에 어느 수영장에서 물 위를 걷는 시범을 보이겠다고 광고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므로 오는 사람들은 모두 기도를 많이 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물 위를 걷는 수도사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마침내 그 수도사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사람들을 조용히 시킨 수도사는 겉옷을 벗고 잠시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집중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며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지켜보았습니다.

 

드디어 그 수도사가 물속으로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예, 그대로 물에 풍덩 하고 빠졌습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그가 물 위를 걸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모두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도사가 물속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가 이제 과연 뭐라고 말할 것인지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는 온 몸이 젖은 채로 막 화를 내며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니들이 기도를 안 해서 그래!”

 

굉장히 유치하지 않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지요? 그런데 우리 삶이나 교회에도 어떤 어려움이 생길 때 그런 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됐어.” “당신 때문에 이게 안 된 거야.” 그런 말을 한다면 그것은 그 인도의 수도사처럼 유치하고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그게 아닙니다. 공동체의 문제는 모두의 책임입니다. 그렇게 말할 힘이 있으면 회개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비록 직접적으로 자신의 죄가 아니더라도 비참한 상황을 온 맘으로 끌어안고 공동체를 위하여 ‘대신 회개’하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지키려고 성벽을 쌓고, 무너진 성벽의 틈에 서서, 내가 이 땅을 멸망시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있는가 찾아보았으나, 나는 찾지 못하였다.” (겔 22:30, 새)

 

다른 사람들, 특히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성벽이 무너지고 나라가 멸망하는 상황 속에서, 그 성벽 틈을 막고 멸망을 막을 한 사람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바로 이것이 중보기도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며 기도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특히 직접적으로 자신의 죄가 아니지만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잘못을 놓고 ‘대신 회개’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39절)

 

사실 이것은 굉장히 무서운 기도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없는 기도는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고 진실한 회개가 없이는 용서도, 회복도, 치유도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 마음의 진실함을 보시고 응답하십니다.

 

 

7) 이방인을 위한 기도 (41-43절)

 

계속해서 솔로몬은 이방인들이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응답해주실 것을 구합니다.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41-43절)

 

여기서 ‘이방인’은 이스라엘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듣고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다른 민족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참되신 하나님의 소식을 듣고 와서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성경을 잘 알지 못하고 영적으로도 미숙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들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이 이방인들과 같이 아직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8) 출전을 위한 기도 (44-45절)

 

솔로몬이 이 성전 봉헌식을 하고 있을 때의 상황은, 태평성대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장 평화롭고 가장 강력한 국력을 가졌던 시기입니다. 그런데 미리 불행한 미래를 예상하며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습니다. 먼저는 전쟁에 나갈 경우에 대해 기도를 합니다.

 

“주의 백성이 그들의 적국과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께서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그들이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이 있는 쪽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옵소서” (44-45절)

 

 

9) 포로를 위한 기도 (46-51절)

 

다음으로 솔로몬은 포로로 끌려갈 경우를 위해서도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게 넘기시매 적국이 그들을 사로잡아 원근을 막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46절)

 

사실 이 솔로몬의 기도와 같은 불행한 상황이 몇 백 년도 안 되어 이스라엘에게 닥칩니다. 이처럼 한창 잘 나가는 때에도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준비하는 것이 리더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지도자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영적 위기의식을 늘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때만큼은 솔로몬에게 그러한 의식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잘되기만을 구하는 것은 사실 반쪽짜리 기도입니다. 정말 성숙한 기도는 실패와 고통 한가운데서도 자신을 하나님 앞에 비추어보면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며, 정신을 차려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을 준비하는 기도입니다.

 

“그들이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반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 곧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47-48절)

 

여기를 보시면 솔로몬은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48)이라고 합니다. 기도 응답은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 (49절)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신 곳은 성전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것을 솔로몬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눈에 보이는 성전은 몇 번씩 비참하게 무너졌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무너지신 게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일 뿐이지, 하나님 그 자체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과 예배 의식 자체를 중요시하여, 자기들의 삶은 함부로 살아도 성전 예식만 제대로 드리면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불순종했을 때 결국 무서운 징계가 임하여 이방 군대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은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48)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이 온 마음과 온 뜻으로 하는 회개, 생명을 건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죄를 사해주셔야 눈에 보이는 상황도 풀리면서 포로로 있던 땅에서 본토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간절하고 정직한 회개에 있습니다.

 

 

3.   솔로몬의 축복

 

솔로몬은 기도를 마친 후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서서 큰 소리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며 이르되” (55절)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66절)

 

솔로몬이 만약 ‘야, 이 패역한 백성아! 말 좀 잘 들어라.’ 하는 식으로 막 야단을 쳤으면 백성이 솔로몬을 축복했겠습니까? 그러나 솔로몬은 백성을 축복하고, 백성은 솔로몬 왕을 축복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이처럼 지도자는 백성을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목사로서 저는 얼마나 성도들을 축복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질책보다는 격려하며 축복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장로님, 어떻습니까? 얼마나 성도님들을 축복하고 계십니까?

권사님, 집사님, 어떻습니까? 얼마나 축복하고 계십니까?

목자님, 목녀님, 목부님, 어떻습니까? 얼마나 목장식구를 축복하고 계십니까?

부모님들, 어떻습니까? 얼마나 자녀를 축복하고 계십니까?

성도님들, 어떻습니까? 다른 형제자매들을 얼마나 축복하고 계십니까?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살펴보면 축복을 얼마나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왜 직분과 사역을 맡겨주셨겠습니까?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축복하라고 그러신 것입니다. 영적 리더는 다른 사람들과 싸우는 사람도 아니고, 교우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결국 누가 주인이냐의 문제입니다. 매순간 하나님을 내 주인으로 모실 때 순종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서로를 축복하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또 서로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늘 기도하고 축복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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