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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30일 수요예배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5 ✦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열왕기상 5장 1-18절)
[들어가는 말]
축구경기에 선수마다 공격 포인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즌이 끝날 때 공격 포인트가 가장 높은 선수에게 상을 줍니다. 골을 넣을 때마다 공격 포인트 1점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 골을 넣게끔 도움을 준 선수에게도 역시 공격 포인트 1점이 주어집니다. 골을 넣었다고 더 많은 공격 포인트를 받는 게 아니라, 골이든 어시스트든 다 1점입니다. 골 하나가 들어가면 골을 넣은 선수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지만, 사실은 그 전에 골을 넣게끔 공을 이리저리 패스하고 결정적으로 빈 공간에 찔러주어 골을 넣게 해준 다른 선수들의 노력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어떤 중요한 일을 마무리하게 되면 그것을 이룬 사람에게 관심이 집중되는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오랜 세월을 거쳐 어려 사람들이 조금씩 기여한 것이고, 마지막 사람은 그 열매를 따게 된 것뿐입니다.
전도도 똑같지 않습니까? 내가 어떤 사람을 예수님 믿게 할 수 있으면 가장 좋지만, 모두들 기도와 사랑으로 섬기면서 벽돌 한 장을 쌓는 겁니다. 그러다 마지막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할 때 믿게 되어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전도했는데 안 믿고 떠났다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할 일은 최선을 다해 기도와 사랑으로 섬기며 주님의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도 솔로몬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다윗 왕이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물자들을 준비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주변 나라의 왕들의 협력으로 가능했던 일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을 보면, 성전 건축 전에 솔로몬이 두로 왕 히람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1. 솔로몬과 히람의 우호 관계
히람은 두로의 왕이었는데, 두로는 베니게(페니키아)의 수도로, 지금의 레바논 남부 항구 도시입니다. 두로는 당시 해외무역을 통해 굉장한 부를 축적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강력한 왕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 곳을 다스리던 왕 히람은, 솔로몬이 다윗에 이어 왕위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 먼저 사신을 보내어 이스라엘의 새로운 정권과 정식으로 교류하기를 원했습니다.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그의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었다 함을 두로 왕 히람이 듣고 그의 신하들을 솔로몬에게 보냈으니 이는 히람이 평생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 (1절)
여기 보면 “히람이 평생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다윗이 통치하던 기간 동안 항상 서로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히람은 다윗과의 그 좋은 관계를 솔로몬 시대에도 계속 유지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은 히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아버지 다윗에게 빚을 진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이런 우호 관계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다윗이 자기 아들 솔로몬을 위해 얼마나 좋은 일을 해준 것인지 모릅니다.
이처럼 나라와 나라 간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과 개인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부모로서 자녀에게 좋은 관계의 축복을 물려줄 수 있어야겠습니다. 두 집안의 부모끼리 친하고 사랑의 관계 속에 있으면 그 자녀들끼리도 잘 지냅니다. 하지만 두 집이 서로 미워하고 사이가 안 좋으면 그 자녀들끼리도 굉장히 어색합니다. 영어권 2세들이 따로 모이는 교회들이 많아졌는데, 어떤 교회들은 보면 1세들이 싸우는 것과 똑같이 서로 싸우는 경우들을 봤습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 배운 겁니다.
그래서 교회가 평안한 것은 정말 큰 축복입니다. 어른들이 싸우면 그것이 그 교회에서 자라는 자기 자녀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 것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평안한 교회에서 자란 자녀들은 또 그것을 보고 배웁니다. 우리는 관계의 축복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겠습니다.
솔로몬의 입장에서는 히람이 먼저 신하들을 보내어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한 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 건축을 위해 히람의 도움이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성전 건축을 위해 레바논의 백향목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당시 레바논에서 생산된 백향목은 썩지 않고 좀먹지 않는 최고 품질의 목재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왕들은 귀한 건물을 지을 때 레바논의 백향목을 재료로 얻기를 원했습니다. 게다가 그 백향목을 가장 잘 다루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두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전 건축을 위해서는 두로 왕 히람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사람을 보내어 히람에게 요청을 하는데 아주 지혜롭게 합니다.
“당신도 알거니와 내 아버지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들을 그의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 (3절)
먼저, 솔로몬은 이 성전 건축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일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버지 다윗으로 하여금 사방의 원수들을 물리치고 승리하도록 해주셨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바로 이 두로 왕 히람의 호의로 백향목 궁궐에 살면서, 하나님의 궤가 그냥 휘장 안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전을 건축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정복 전쟁으로 피를 묻혔기 때문에 이 일을 허락받지 못했는데, 다윗의 그런 마음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이 일을 맡기셨습니다.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원수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자리에 오르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신 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 하오니” (4-5절)
젊은 솔로몬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아버지 다윗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줍니다. 왕의 자리에 오르면 자기 위에 아무도 없다고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실제로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피라미드 대공사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아버지 다윗에 대해, 겸손과 존경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고 나서 처음 펼치는 국가 정책은 성전 건축이었고, 이것은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이 아버지 다윗을 통해 복을 주신 뜻을 이루기 위하여 추진한 일이었습니다.
솔로몬의 말을 가만히 보면, 그 주어는 철저하게 하나님입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라는 표현이 계속 나옵니다.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고, 사방에 태평을 주셨고,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정말로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라는 가사처럼 그대로 순종합니다. 마치 자기 생각은 전혀 없는 사람처럼 말을 합니다.
솔로몬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왜 자기 생각이 없겠습니까? 솔직히 왕이 된 지금 아버지 다윗과는 뭔가 다른 왕이 되고도 싶고, 젊은 사람답게 새로운 정책도 펼쳐보고 싶고,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솔로몬에게는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였습니다.
리더의 자리라는 것은 어쩌면 자기가 중심이 되고 싶은 자리입니다. 리더가 되면 사람들의 이목이 자기에게로 몰립니다. 그래서 우쭐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철저히 신본주의자였습니다. 신본주의자는 생각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도 많지만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신본주의자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자신은 하나님의 신하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렇게 했을 때 왕의 권위가 나타났습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목회자인 저도 그렇고,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이나 안수집사님들 특히 위원장 맡은 분들도 그렇고, 특히 목자 목녀 목부도 그렇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따르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겠습니까? 자꾸 ‘나를 따르라’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하나님을 따르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따르는 하나님을 보고 같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해서, 사람들이 나를 별로 존경하지 않고 좀 우습게 여기는 것 같을 때, 왜 그렇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잘 따르고 있지 않을 때 그렇게 됩니다. 자녀가 나를 잘 따르지 않을 때도, 내가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따르는 삶을 살 때, 내 자녀도, 주변 사람들도 나를 따르게 됩니다.
2. 지혜로운 외교
1) 히람의 적극적인 협력
솔로몬은 히람에게 몇 가지 지혜로운 제안을 합니다.
“당신은 명령을 내려 나를 위하여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베어내게 하소서 내 종과 당신의 종이 함께 할 것이요 또 내가 당신의 모든 말씀대로 당신의 종의 삯을 당신에게 드리리이다 당신도 알거니와 우리 중에는 시돈 사람처럼 벌목을 잘하는 자가 없나이다” (6절)
솔로몬은 “당신의 모든 말씀대로” 즉 히람이 정하는 대로 품삯을 지불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상대방에게 요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유익이 되도록 충분한 대가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대방도 성공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것이 분명하다고 해서, 무조건 상대의 희생을 당연시해서는 힘들어집니다.
솔로몬은 또 두로의 전문성을 인정해줍니다. “임금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 쪽에는 시돈 사람처럼 벌목에 능숙한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올바른 이유로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것을 적절한 때에 해주면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칭찬이 얼마나 중요하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도 있고 책도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 히람 왕이 솔로몬에게 사신을 보낸 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과 친분을 다지려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인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의 젊은 아들 솔로몬에 대해서는 실제로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 새로운 왕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려는 의도가 컸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왕 솔로몬은 히람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남들을 위협하는 강한 힘이 아닌, 주변을 안심시키고 기쁘게 해주고 든든함을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운 능력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요청에 대해 화답하는 히람의 반응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람이 솔로몬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이르되 오늘 여호와를 찬양할지로다 그가 다윗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사 그 많은 백성을 다스리게 하셨도다 하고, 이에 솔로몬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이 사람을 보내어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거니와 내 백향목 재목과 잣나무 재목에 대하여는 당신이 바라시는 대로 할지라” (7-8절)
여기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하고 훈훈합니다. 성전 건축의 규모를 생각하면 그것에 협조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것도 몇 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노동자들이 자기네 나라 안으로 들어와서 작업해야 하고, 자기 나라의 노동자들과 군대까지 가서 도와줘야 하는 엄청난 공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람은 너무나 기분 좋게 승낙합니다.
히람의 첫 반응이 무엇입니까? 크게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첫 마디는 무엇입니까? “오늘 여호와를 찬양할지로다”(7)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실상 히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솔로몬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혜가 그를 감동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상대방의 관계 속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시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나를 위해서 일하고 도와주고 돈까지 쓰면서도 짜증내거나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며 협력해주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만나서 함께 일하는 사람마다 어려운 부탁도 쉽게 들어주고 자기 일처럼 도와주려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도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목재를 운송하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히람의 모습을 보십시오.
“내 종이 레바논에서 바다로 운반하겠고 내가 그것을 바다에서 뗏목으로 엮어 당신이 지정하는 곳으로 보내고 거기서 그것을 풀리니 당신은 받으시고 내 원을 이루어 나의 궁정을 위하여 음식물을 주소서 하고” (9절)
육로로 운반하는 것보다 물로 운반하는 것이 빠르고 쉬웠지만, 이것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방법입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든지, 아니면 차마 이것까지는 부탁하지 못했던 일인데, 히람은 자원해서 시원스럽게 문제를 해결해주었습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우리가 친절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지혜로 남들을 대하게 되면, 상대방은 자신의 최선을 다하여 우리가 부탁하지 않았던 것이나 몰랐던 것까지 자원해서 도와주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아가는 사람은, 이처럼 일이 진행되는 과정 곳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축복을 만나게 됩니다.
2) 서로 이익이 되는 약조
히람은 솔로몬의 제안에 찬성하면서 구체적인 조약 내용을 통보합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그 내용을 기꺼이 받아들여 즉시 실행함으로 두 나라 간에는 실제적인 교역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솔로몬의 모든 원대로 백향목 재목과 잣나무 재목을 주매, 솔로몬이 히람에게 그의 궁정의 음식물로 밀 이만 고르와 맑은 기름 이십 고르를 주고 해마다 그와 같이 주었더라” (10-11절)
히람은 솔로몬이 필요로 하는 양만큼 충분히 성전 건축에 필요한 목재를 공급했고, 이에 대해 솔로몬은 밀이나 기름을 풍성하게 주었습니다. 밀과 기름은 해상무역이 발달한 두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생필품이었습니다. 이처럼 좋은 관계를 이루려면 양쪽이 합리적인 약속을 하고, 또 그것을 철저히 실행해야 합니다. 신뢰가 깨어지면 관계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건강한 관계는 단순히 매너가 좋거나 처세술이나 말재주가 좋아서 되는 게 아닙니다. 행동을 통해 신뢰를 얻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특히 사회생활을 하면서 약속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말은 틀림없어야 합니다. 지키지도 못할 말들을 쉽게 해서는 안 되고, 약속을 해놓고 자꾸 바꿔서도 안 됩니다. 그래야 거룩한 영향력을 세상에 끼칠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인 줄 다 아는데, 밥 먹듯이 거짓말을 일삼거나 약속을 해놓고 너무나 쉽게 깨버리면 누가 신뢰하겠습니까? 늘 자기 앞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험담만 하는 사람이 다니는 교회를 누가 찾아오겠습니까? 틈만 나면 거짓말을 하며 남을 속이는 예수님, 다른 사람과 약속을 해놓고 너무나 쉽게 깨버리는 예수님을 상상할 수 없듯, 그분을 따르는 우리도 정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두로의 이 조약이 이루어지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고로 히람과 솔로몬이 친목하여 두 사람이 함께 약조를 맺었더라” (12절)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지혜롭게 처신했기 때문에 히람과 친해지고 함께 조약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미련하게 했거나 거만하게 행동했으면 히람은 결코 돕지 않았을 것입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도 그렇고, 회사와 회사의 관계도 그렇고, 나라와 나라의 관계도 그렇고, 아름다운 관계를 이루려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관계 속에 역사하셔야 아름다운 관계가 세워질 수 있습니다. 동시에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신이 해야 할 책임을 다할 때 신뢰관계가 생길 수 있습니다.
3. 건축을 위한 실제적 지혜
1) 효과적인 노동 인력 배치
이제 솔로몬은 레바논으로 보낼 노동자들을 모집합니다.
“이에 솔로몬 왕이 온 이스라엘 가운데서 역군을 불러일으키니 그 역군의 수가 삼만 명이라” (13절)
그런데 레바논 산중에 3만 명의 일꾼들을 보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어떻게 합니까?
“솔로몬이 그들을 한 달에 만 명씩 번갈아 레바논으로 보내매 그들이 한 달은 레바논에 있고 두 달은 집에 있으며 아도니람은 감독이 되었고” (14절)
솔로몬은 그들을 한 달에 만 명씩 번갈아 레바논으로 보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한 달은 레바논에 있고, 일을 마치면 두 달은 본국에 있게 해주었습니다. 솔로몬은 일과 휴식의 절묘한 균형을 잘 잡아서 일을 시켰습니다.
사실 인간의 마음은 참 간사해서, 너무 심하게 조이면 불만이 폭발하고, 그렇다고 너무 풀어놓아주면 게을러집니다. 그러므로 일과 휴식을 적절히 섞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한 것은 사실 어떻게 보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당시 고대사회에서는 왕들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람들을 데려와 노예처럼 부렸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백성들의 처지를 잘 헤아리며 일을 진행한 것입니다.
또 솔로몬은 가정에 있는 것이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이 노동자들이 한 달만 레바논에서 일하고 두 달은 집에서 쉰 것이 아닙니다. 두 달은 집으로 돌아와 집에서 출퇴근하며 일하러 나간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일을 하는 중에 너무 오래 집을 비우면 가정이 어려워질 것을 배려해준 것입니다. 또한, 집에서 가족들과 같이 지내며 일을 다닐 때 마음이 안정되고 일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가정의 힘을 잘 알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2) 이방인 일꾼들의 동참
또 한 편 솔로몬은 석재를 준비하여 석공과 짐꾼들을 동원합니다.
“솔로몬에게 또 짐꾼이 칠만 명이요 산에서 돌을 뜨는 자가 팔만 명이며, 이 외에 그 사역을 감독하는 관리가 삼천삼백 명이라 그들이 일하는 백성을 거느렸더라” (15-16절)
여기 보면 산에서 채석하는 석공이 8만 명, 짐을 운반하는 짐꾼이 7만 명, 또 작업을 감독하는 관리가 3,300명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석공들의 돌 다루는 기술은 대단해서, 마치 떡 자르듯이 그 육중한 돌들을 정확하게 다듬고 잘라서 운반해 왔습니다.
지난번 이스라엘 성지 순례 때 예루살렘 성전 터를 방문했는데, 그 육중한 돌들을 어떻게 옮겨왔는지 비디오를 봤는데, 돌을 잘라서 운반해오는 모든 과정이 정말 지혜로웠습니다. 그렇게 다 잘라서 운반해왔기 때문에 실제 성전 공사 현장에서는 망치나 정 울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미 정확하게 규격대로 잘라 온 돌들을 맞추기만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기술을 가진 석공들이 관리들까지 합쳐 무려 15만 3천 3백 명이나 되었는데, 사실상 이들은 대부분 이스라엘 땅에 사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성전 건축 사역에 이방인들이 대거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일에 장차 모든 열방과 민족이 함께 동참하게 될 것을 미리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이에 왕이 명령을 내려 크고 귀한 돌을 떠다가 다듬어서 성전의 기초석으로 놓게 하매, 솔로몬의 건축자와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이 그 돌을 다듬고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재목과 돌들을 갖추니라” (17-18절)
에브라임 산지에서 떠낸 돌을 다듬는 일은 히람의 건축자들과 그발 사람들이 담당했습니다. 그발은 페니키아의 한 도시로, 지금의 베이루트 북쪽 20마일 정도에 위치한 곳이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대대로 조선 기술의 최고 전문가로 유명했습니다. 백향목을 베는 일은 시돈 사람들이 했지만, 돌을 다듬고 옮기는 일은 그발 사람들이 했습니다.
당시 이렇게 거대한 건물을 지을 때의 건축공법은 크고 귀한 돌을 떠서 기초석으로 놓고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기초석만 찾으면 건물 전체를 재현해낼 수 있을 정도로, 기초석의 모양과 위치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건물의 기초석이 되는 모퉁이 돌에 비유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벧전 2:6-7)
너무나 놀랍게도, 솔로몬 성전의 터는 바로 천 년 전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리러 갔던 모리아 산이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엄청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외아들 이삭을 바쳤듯이,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온 인류를 위한 희생양이 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여줍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바로 예수님의 피 위에 세워졌습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 하나님이 사랑을 드러내는 곳이 교회이며, 우리가 바로 그 교회입니다.
주님의 교회로서 우리는 함께 성전으로 지어져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나아가야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우리 각자와 온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