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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3일 수요예배
✦ 이단 돌발 질문에 대한 답변 13 ✦
구원에 관한 질문 (3)
(요한일서 4장 1~6절)
[질문 5] 당신이 속한 교회 목사는 하늘에 속한 말을 하는가, 아니면 땅에 속한 말을 하는가? 그것을 분별할 수 있나?
신천지인은 섭외(전도)하려는 교회 성도들에게 다가가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이야기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1절)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5절)
“31 위에서 오시는 이는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여서, 땅의 것을 말한다. 하늘에서 오시는 이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32 자기가 본 것과 들은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의 증언을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의 참되심을 인정한 것이다. 34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주시기 때문이다.” (요 3:31-34절, 새번역)
신천지는 이런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그가 어디에 속했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이 함께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한 이야기를 전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자기 교회 목사의 말에 무조건 아멘 할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제대로 듣고 그가 어디에 소속되었는지 분별하며, 목자와 함께하는 영을 분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창세기 1장은 비유로 풀어야 하는데, 하늘에 속한 진리는 상수(上水), 땅에 속한 말은 하수(下水)라고 말합니다(창 1:7). 하늘에 속한 진리는 역사와 교훈의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실 예언의 말씀이며, 이 예언의 말씀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 비유이고 요한계시록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비유를 풀어주고 요한계시록을 풀어주면 상수를 말하는 것이고, 교회에서 비유도 요한계시록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으면 땅에 속한 교훈, 인간적인 역사와 교훈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강단에서 목자가 세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비판받아야 하며, 그런 목회자가 있는 교회일수록 비유 풀이와 계시록 말씀이 없다는 겁니다. 상수를 마셔야 영혼이 살아나고 구원을 얻으니, 이제는 하늘에 속한 말씀을 배우고 깨달아야 할 때라고 속삭입니다. 만약 목사가 교회에서 상수에 대해 설교하지 않고 하수에 대해서만 말한다면, 그는 하늘에 속한 목자가 아니라 땅에 속한 목자라고 말하는데, 여기에는 하늘에 속한 목자는 하나님 소속이고 땅에 속한 목자는 사탄 소속이라는 전제가 들어있습니다.
신천지 사람들의 이런 말들에 대해 성도들은 우리 교회 목사는 하늘에 속한 말을 하며 참된 진리를 선포한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답변해야 합니다.
첫째, ‘우리 교회에서도 비유를 해석하는데, 신천지에서 푸는 비유 풀이와 다르다. 신천지 비유 풀이는 그저 단어 풀이 수준에서 그치지만, 우리 교회는 비유의 문맥과 상황을 고려하여 비유를 보다 입체적으로 해석한다. 그렇기에 교회의 비유 풀이와 신천지의 비유 풀이는 푸는 방식과 결론이 다르다.’라고 답해야 합니다.
교회가 해석하는 비유의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로 이어집니다. 반면, 신천지 비유 풀이의 결론은 이긴 자라고 하는 이만희 총회장이며, 이 땅에 이루어진 천년왕국인 신천지라는 겁니다. 결국 비유 풀이는 신천지식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사전 세뇌과정에 불과합니다. 신천지식 비유 풀이를 공부하다 보면 내면에 나타나는 몇 가지 증상과 변화가 있습니다.
1) 자기 교회 목사가 땅에 속한 말을 하는 거짓 목자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목사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니 예배 시간에 말씀이 들리지 않고 졸게 됩니다.
2) 성경 보는 관점이 바뀌고, 모든 것이 비유로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비유가 아닌 것은 말하기도 싫고 듣기도 싫어집니다.
3) 예수님이 자기 마음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전에는 예수님이 내 마음에 계시며 나의 구원자라고 고백했지만, 이제 예수님은 초림 시대의 구원자일 뿐이고, 계시록 시대에는 새로운 목자를 통해 구원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4) 지금 다니는 교회는 바벨론 교회이고,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진리의 성읍 시온산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둘째로 해야 하는 답변은, ‘우리 교회에서도 요한계시록을 풀어준다. 단, 신천지의 계시록 해석과는 다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천지의 계시록 해석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신천지가 아름다운 진리의 성읍이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요, 천년왕국이라고 합니다. 신천지에 들어가야 구원받고, 신천지를 거부하면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만희 총회장은 계시록 전장이 성취되는 사건을 직접 보고 들은 증인, 곧 대언자이자 보혜사이기에, 그를 통해 계시록을 깨달아야만 제대로 계시록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계시록은 기록된 지 2천 년 만에 한국에서 성취되는 사건으로, 이만희 총회장에 대한 약속이라는 허황된 주장을 펼칩니다. 그러나 신천지의 계시록 해석은 수많은 단어와 상징을 알레고리적 비유 풀이를 통해 연결하며, 그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정통 교회의 계시록 해석은 그와 전혀 다릅니다. 교회가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실제로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라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따라서 제대로 해석하려면 편지를 둘러싼 정황을 알아야 하고, 당시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고난과 핍박을 받던 교회의 상황을 고려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석하게 되면, 요한계시록은 예수님께서 제국의 핍박 가운데 고난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성도들이 음란하고 폭력적인 로마제국과 싸워 마침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과 소망을 심어주시는 내용으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해석은 편지가 기록된 역사적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의적인 단어 풀이로 해석하는 기괴한 신천지식 요한계시록 해석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셋째, 요한일서 4장 1절과 5절이 말씀하는 사람이 어디에 속해있는가를 분별하는 핵심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느냐의 여부라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지만,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1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영이든지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에게서 났는가를 시험하여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2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을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시인하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난 영입니다. 3 그러나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대자의 영입니다. 여러분은 그 영이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이 세상에 벌써 와 있습니다.” (1-3절, 새번역)
결국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셨음을 인정하고 말하느냐에 있습니다. 성육신이란 성자 하나님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원래 이 땅에 살던 예수라는 사람을 들어 쓴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긴 영광스러운 육체로 부활하셔서 승천하셨으며, 승천하신 그 영광스러운 몸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십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말하면 성령으로 말하는 사람이지만, 이것을 부인하면 악령으로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요한일서 본문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성령을 받았노라고 주장하는 교주의 말을 무조건 맹신하고 따를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육체의 부활을 말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기준으로 올바른 믿음을 판단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신천지인들은 성령을 받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육체적 강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넷째,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예수님이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라고 하신 것은 말이 곧 영이라는 뜻이 아니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신천지는 영을 눈으로 볼 수 없으니 말을 통해 그 사람이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를 분별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 구절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본래 뜻은 예수님의 말씀이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말씀이며, 그렇기에 생명을 만들어 내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성령만이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육신의 근육과 의지력으로는 아무것도 일어나게 할 수 없다.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모든 말은 성령의 말이며, 생명을 만들어 내는 말이다.” (요 6:63, 메시지)
이 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고 나서 그다음 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큰 기적을 베푸신 것에 놀란 사람들은 다시 예수님께 찾아왔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바로 참된 떡이며, 자신을 먹는 사람(예수님을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생명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 6:51-58).
이 말씀을 어려워하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 말씀을 깨닫는 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며, 성령이 오실 때 사람들이 비로소 이 말씀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사람들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성령으로 하신 말씀임을 깨달을 것이고, 생명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질문 6] 마지막 시대에 구원받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가?
이 질문에 감추어진 의도는 마지막 시대의 구원이 신천지에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신천지가 마지막 시대에 구원의 처소가 된다고 그들이 주장하는 이유는, 마지막 계시록 시대의 이긴 자라 자처하는 이만희 총회장이 있는 곳이 신천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노골적으로 처음부터 밝힐 수는 없으니까, 신천지는 이런 질문으로 상대방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전략을 폅니다.
이들이 마지막 시대에 구원받을 약속의 성전이 신천지임을 주장하는 근거는 이런 식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따르면 말세에는 큰 환난이 임하는데, 그때가 되면 산으로 도망해야 하며(마 24:16), 이 산은 말세의 환난을 싸워 이긴 자가 가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을 지켜야만 복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 환난을 견뎌내고 이긴 자가 있다고 말씀하는데, 그는 생명나무 과실을 받아먹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고,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받으며, 철장 권세를 받고, 흰옷을 입고, 성전 기둥이 되고, 하나님 보좌에 앉은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긴 자가 있는 곳은 저 높은 하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을 보면 장차 천국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다고 하는데(계 21:2), 영계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온 산은 어디이겠느냐고 질문합니다. 그러면서 요한계시록 14장에 이긴 자가 서 있는 산이 등장하는데, 그곳이 바로 시온산이라는 것입니다(계 14:1). 이 산은 이긴 자가 거하며 영적 시온산이라 불리는 새 하늘과 새 땅,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의 결론입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종말의 구원은 특정한 장소에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시대에 구원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20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을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눅 17:20-21, 새번역)
둘째, 예수님은 마지막 때 자기가 이긴 자이며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막 13:21)
셋째, 성경은 한 사람의 ‘이긴 자’를 특정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기는 자는 이미 승리한 자가 아니라, 현재의 고난 중에도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 끝까지 분투하는 모든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어성경 NRSV는 이것을 ‘everyone who conquers’라고 번역합니다.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모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넷째, 마태복음 24장 16절에 도망의 목적지로 설정된 ‘산’은 시온산이 아닙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마 24:16)
마태복음에 따르면 시온산은 성전이 있는 산이고, 그 성전은 무너질 것이며(마 24:1-2), 성전이 무너지는 것은 곧 시온산이 무너짐을 뜻하는데, 종말에 무너지는 시온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이 구절에서 ‘산’은 헬라어 원문과 영어 성경에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이 산은 시온산이 아니라 시온산 주변의 산들(mountains)을 뜻합니다. 시온산이 예루살렘에 있기에 유대인들은 시온산 주변의 산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시온산에서 가장 가까운 산은 시온산 동쪽, 기드론 시내 건너편에 있는 감람산입니다.
다섯째, 히브리서의 시온산과 하늘의 예루살렘은 1984년에 나타난 신천지라는 집단이 아니라, 성령강림 이후 구원받은 성도들의 하늘 공동체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22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가서 이른 곳은 시온산,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여러분은 축하 행사에 모인 수많은 천사들과 23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집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재자이신 예수와 그가 뿌리신 피 앞에 나아왔습니다.” (히 12:22-24, 새번역)
히브리서는 초대교회 때부터 새 언약의 복음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시온산에 이른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따라서 이 말씀의 시온산은 1984년에 나타날 신천지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여섯째, 요한계시록 14장 1절의 시온산은 신천지가 말하는 것처럼 이 땅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계 14:1)
신약성경에는 시온산이 딱 두 곳, 히브리서 12장 22절과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 나옵니다. 히브리서 12장 22절은 조금 전에 살펴본 것처럼 시온산이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에 있다고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4장 1절이 말씀하는 장소 역시 하늘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2-3)
만약 14장 1절의 시온산이 이 땅에 있는 영적 시온산인 신천지라고 주장하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신천지는 시온산에서 부르는 ‘새 노래(계 14:3)’가 자기들의 원리인 배도, 멸망, 구원의 비밀이 들어 있는 계시록 실상의 말씀이고, 이 말씀은 인봉을 떼기 전에는 공개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을 읽어보면, 이 ‘새 노래’는 인봉을 떼기 전인 5:9에 이미 공개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의 시온산은 새 노래가 배도, 멸망, 구원에 관한 노래라고 주장하는 신천지일 수가 없으니, 스스로 모순을 보여줍니다.
요한계시록 14장 3절에 나오는 새 노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구원 역사를 찬양하는 하늘의 노래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노래는 이 땅에서 치열한 믿음의 싸움을 싸우고 승리한 성도들이 하늘 보좌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계 7:9-12)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하나님 보좌 앞에 우리도 함께 참여하여 다 같이 하나님을 높이며 이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그날을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 갔는데 엄청난 무리가 함께 모여 하나님 보좌 앞에서 흰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들고 큰소리로 찬양합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그때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합니다.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당신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그게 무슨 말인가 의아해하는데 그가 말합니다. “당신이 선교사님에게 선교헌금을 보내주셔서 선교사님이 그 돈을 사용하여 나에게 오셔서 복음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믿고 구원받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일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 보좌 앞에 서는 그날을 바라보면서 지금 이 땅에 사는 동안 끝까지 치열한 믿음의 싸움을 싸워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