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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6일 수요예배
✦ 이단 돌발 질문에 대한 답변 10 ✦
배도, 멸망, 구원에 관한 질문 (3)
(마태복음 24장 45~51절)
계속해서 신천지의 ‘배도, 멸망, 구원에 관한 돌발 질문’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질문 4] 마지막 시대의 배도자, 멸망자, 구원자의 실상을 아는가?
신천지 주장에 따르면, 성경의 언약 노정은 배도, 멸망, 구원이고, 이러한 언약 노정이 시대마다 특정한 사람을 통해 실상으로 성취되어 나타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배도자, 멸망자, 구원자로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담의 세계에서의 배도자는 아담과 하와이고, 멸망자는 뱀이며, 구원자는 노아라고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노아 세계, 아브라함 세계, 모세 세계, 여호수아 세계 등 배도, 멸망, 구원의 역사는 각 시대마다 실제 인물로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신약 시대의 배도자는 세례요한이고, 멸망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이며, 구원자는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구원 노정은 마지막으로 계시록이 성취되는 때 결정적으로 이루어지며, 이것을 알아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신천지는 말하기를, 이러한 내용은 요한계시록을 그냥 보아서는 알 수가 없는데, 기성교회가 요한계시록을 깨닫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배도, 멸망, 구원이 모두 비밀로 감추어져 있고, 이것이 언제 어디서 구체적인 실상으로 나타났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밀은 요한계시록 어디에 감추어져 있다는 말입니까? 신천지는 배도의 비밀이 일곱별과 일곱 금 촛대의 비밀(1:20)이고, 멸망의 비밀은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17:7)이며, 구원의 비밀은 일곱째 나팔(10:7)의 비밀이라고 주장하는데,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황당한 주장입니다. 게다가 이 비밀을 이루기 위해 나타난 실제 인물로서 배도자는 신천지보다 앞서 있던 사이비 단체 ‘장막성전’의 유재열이고, 멸망자는 ‘청지기 교육원’이며, 구원자는 이만희 총회장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신천지의 배도, 멸망, 구원에 관한 주장은 과연 얼마나 타당한 것입니까?
첫째, 신천지는 성경에 나타난 시대별 배도, 멸망, 구원의 실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과연 성경은 시대별로 배도, 멸망, 구원의 실상이 나타날까요? 그들이 주장하는 구약시대의 배도, 멸망, 구원의 노정 순리를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목자 선택 |
배도자 |
멸망자 |
구원자 |
아담 세계 |
아담과 하와 |
뱀 |
노아 |
노아 세계 |
노아 |
함 |
아브라함? |
아브라함 세계 |
? |
? |
아브라함 |
모세 세계 |
아론, 모세(실수) |
하나님? |
여호수아 |
여호수아 세계 |
사후 이스라엘 자손 (예: 솔로몬) |
하나님? |
? |
영적 이스라엘 (예수 초림) |
육적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세례 요한 |
서기관, 바리새인 |
예수님 |
주 재림 시대 |
영적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유재열 |
일곱 머리 열 뿔 짐승 청지기 교육원 |
이만희? |
천년성 시대 (이긴 자) |
천년성 밖에 있는 자들 |
하늘의 불? 하나님? (천년성 안의 성도는 해를 받지 않음) |
? |
위 표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신천지에서 배도, 멸망, 구원의 순리를 주장하는데, 이것은 사실 성경과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습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배도
이만희의 책 <천지창조>에서는 배도자를 각 세계마다 제시하려 시도합니다. 그러나 배도자의 존재와 배도의 행위가 명확하게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 아담 시대의 배도자는 아담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처음으로 택한 목자는 배도자가 될 운명이라는 말입니까? 그 후 노아 시대에는 노아가 배도하고, 모세 시대에는 모세가 배도하며, 예수님 시대에는 예수님이 배도자가 되어야 합니까? 이만희는 세례요한을 배도자로 주장하지만, 첫 목자인 아담이 배도한다는 논리대로라면 예수님 시대의 배도자는 세례요한이 아니라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말이 안 되는 억지 교리입니다.
둘째, 아브라함 세계에는 배도자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원래 그들이 말하는 순리대로라면 아브라함이 배도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만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기록할 뿐, 결코 배도자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 세계의 배도자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 되니까 스스로 모순입니다.
셋째, 모세의 실수는 배도의 행위가 아닙니다. 실수를 배도의 이유로 명시하는 것은 모세를 배도자의 카테고리 안에 억지로 끼워 넣으려는 자의적인 시도에 불과합니다.
넷째, 여호수아 세계에도 배도자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신천지의 논리 전개로 보면 여호수아 세계의 배도자는 여호수아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수아가 배도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두루뭉술하게 여호수아의 사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부패하여 배도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타락상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솔로몬이 대표적인 배도자라는 주장만 합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을 멸망시킨 멸망자와 구원자의 실상은 누구라는 말입니까? 이에 대해 신천지는 침묵합니다.
다섯째, 천년왕국이라 주장하는 신천지 안에도 배도하는 일이 존재합니다. 이미 현재의 총회장이 배도자라 주장하며 갈라져 나온 신천지의 아류가 30여 개나 됩니다. 신천지에서는 자기들에게서 나간 사람을 배도자로 낙인찍는데, 이렇게 낙인찍힌 배도자가 아주 많습니다.
여섯째, 영적 이스라엘 세계에서는 배도자를 찾을 수 없습니다. 신천지의 주장대로라면 교회가 배도했다는 말입니까? 이 배도자의 실체가 누구입니까? 유재열이 배도한 것이 기독교 세계와 교회의 배도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유재열은 장막성전이라는 사이비 단체를 만든 자로, 그 어떤 정통 기독교 교단에도 소속된 적이 없었습니다.
2) 멸망
신천지는 멸망자의 배후에 옛 뱀, 마귀, 사탄의 영이 역사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담 시대에는 뱀이 역사했고, 노아 시대에는 사탄이 함에게 들어가 역사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멸망자에 대한 이들의 주장을 검토해 보면 이상한 점들이 보입니다.
첫째, 아담 시대에 아담을 멸망시킨 사탄이 들어 쓴 육, 즉 멸망자는 누구입니까? 신천지 핵심 교리에 영은 육을 들어 쓴다는 원칙이 들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도 멸망자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애초에 ‘멸망자’가 지난주 살펴본 것처럼 ‘멸망 당하는 자’를 뜻하는 것을 엉뚱하게 ‘멸망시키는 자’로 해석을 해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니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교리이긴 합니다. 신천지는 그저 옛 뱀, 사탄이 아담을 멸망시켰다고 할 뿐, 그 멸망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뱀이 사람의 육체를 입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둘째, 아브라함 세계의 멸망자는 누구입니까? 그보다, 아브라함은 멸망 당했습니까? 배도자도 없는데 어떻게 멸망자가 있겠습니까? 신천지는 아브라함 세계의 배도와 멸망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주장이 스스로 조작한 것임을 보여줄 뿐입니다.
셋째, 모세 세계의 멸망자는 하나님입니까? 모세와 아론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멸망자라는 말입니까? 신천지의 주장대로라면 분명히 멸망자의 영이 들어 쓰는 육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그 육체는 누구입니까?
넷째, 일곱 머리 열 뿔 짐승이라 하는 청지기 교육원이 멸망자입니까? 청지기 교육원이라는 것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교회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그렇다면 멸망자가 배도자를 멸망시키기도 전에 사라졌다는 말입니까?
다섯째, 천년성 시대의 멸망자는 누구입니까? 천년성 밖에 있는 자들을 멸하는 것은 하나님입니까, 사탄입니까? 과연 누가 멸망자가 될 것인지에 대해 신천지는 침묵합니다.
3) 구원
신천지가 제시하는 시대별 구원자의 실상 역시 두루뭉술합니다.
첫째, 어떻게 노아가 아담 세계의 구원자가 될 수 있습니까? 노아는 아담의 10대손입니다. 그러면 구원자가 배도 이후 적어도 10대는 지나야 나타난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주 재림의 시대의 구원자 역시 유재열의 장막성전이 배도한 이후 10대가 지나서 나와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러니 말이 안 됩니다.
게다가 구원자라고 자처하는 교주 이만희는 자기가 배도자의 무리, 곧 장막성전 가운데에서 나온 ’밀 한 되, 보리 석 되‘(계 6:6)와 같은 자라고 말합니다. 이단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식으로 교회에서 별로 사용하지 않는 이상한 표현들을 사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계 6:5-6)
만약 이런 논리라면 아담 세계의 구원자도 아담 당대의 자손 중에 나와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담의 아들 셋이 무너져가는 아담 계보의 구원자가 될 만한데, 그가 구원자가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둘째, 어떻게 아브라함이 노아 세계의 구원자가 될 수 있습니까? 온 세상은 아브라함 이전에 이미 바벨탑 사건으로 멸망 당하여 언어가 갈라지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온 인류는 원래 물로 심판당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물로 망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하신 언약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창 9:11)
셋째, 여호수아 세계의 구원자는 누구입니까? 이만희는 명확한 인물을 밝히지 않습니다.
넷째, 영적 이스라엘 시대에 ’밀 한 되, 보리 석 되‘가 구원자라면, 보리 석 되는 누구라는 말입니까? 신천지는 그런 존재가 있다고만 하지 그들이 누구인지, 지금 어디 있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구원의 역사를 일으킨 후 살아 있는지에 대해서도 신천지는 침묵합니다. 실체를 알면 사람들이 흔들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천년성 시대에 배도한 이들 가운데 이들을 구원할 구원자는 누구입니까? 신천지는 천년성 안의 성도들은 해를 받지 않고 보호받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천년성 밖에 있는 배도자들 중에 구원의 역사는 어떻게 일어난다는 말입니까?
이렇게 살펴본 것처럼, 배도, 멸망, 구원의 순리는 신천지가 성경을 얼마나 자의적으로 짜깁기했는지를 보여줄 뿐입니다. 신천지의 배도, 멸망, 구원의 교리는 그 밖에도 다른 오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천지가 자신 있게 말하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배도, 멸망, 구원의 역사는 그 순서부터 맞지를 않습니다. 신천지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비밀’이란 단어에만 목을 매어 배도의 비밀은 1장 20절, 멸망의 비밀은 17장 10절, 구원의 비밀은 10장 7절에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순서가 배도, 멸망, 구원이라면, 왜 구원이 멸망보다 먼저 나온다는 말입니까? 스스로 모순이 됩니다.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계 1:20) - 배도의 비밀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 (계 17:10) - 멸망의 비밀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계 10:7) - 구원의 비밀
만약 요한계시록이 그것을 시간별로 기록했다면, 배도, 멸망, 구원의 비밀은 순차적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왜 구원의 비밀이 멸망의 비밀보다 먼저 나온다는 말입니까? 그러니까 말이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의 순서를 바탕으로 신천지의 논리를 설명하게 되면 배도자가 구원받고 다시 멸망한다는 이상한 논리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 한마디로, 배도, 멸망, 구원이라는 신천지의 교리는 엉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 5] 마태복음 24장 45절의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누군지 아는가?
신천지는 마태복음 24장이 배도, 멸망, 구원의 순리를 보여주는 장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가운데 마태복음 24장 45절의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구원자인 이만희라고 합니다. 뭐든지 좋은 것은 자기들에게 갖다 붙입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5절)
신천지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을 줄여 ‘충지종’이라고 부르는데, 충지종이 때를 따라 나누어 주는 양식은 예언의 말씀과 그것이 성취된 실상을 증거하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양식은 마태복음 24장의 종말 예언의 말씀과, 이것이 이루어진 실상에 관한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이 배도, 멸망, 구원의 사건이 성취되는 현장에서 그것을 보고 듣고 증거하는 목자가 바로 충지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4장 45절의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정말로 자칭 구원자라는 이만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첫째, 24장 45절은 이를 둘러싼 문맥의 흐름(32~51절)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 구절은 무화과나무의 비유 뒤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는 변화가 오면 여름이 가까이 오는 줄 분별하는 것처럼(32), 종말의 성도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종말의 징조를 보면 종말이 가까워 온다는 것을 분별하고 깨어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33).
이때는 모든 사람이 ‘깨어 준비된 사람’과 ‘깨어있지 못한 사람’의 두 부류로 나뉩니다. 밭에는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과 버려둠을 당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40), 맷돌질을 하는 여자 중에도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41). 또한 오늘 본문 말씀처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있을 것이고(45), 악하고 미련한 종(48-49)이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본문은 두 부류의 대비되는 인물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둘째, 본문은 특정인을 예언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45절 내용을 잘 살펴보면, 이 문장은 마태복음을 읽은 성도들에게 종말의 때에 ‘누가 과연 이렇게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과 같이 준비될 수 있겠느냐?’라고 하는 물음입니다. ‘종말의 때에 과연 누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겠느냐?’라고 하는 물음으로 도전하고 격려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종말의 때에 끝까지 깨어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며(잠 1:7), 신실하고 충성된 변함없는 사람입니다.
셋째, 만약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으로 온 사람이 이만희라면, 이어서 나오는 48절의 ‘그 악한 종’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대답해야 합니다.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48-49절)
악한 종은 충지종과 같은 집에 있는 종인데, 이 종이 악한 이유는 진리의 말씀을 깨닫지 못해서가 아니라,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하며 깨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주님의 재림이 언제일지 모르기에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 만약 충지종이 그들의 교주 이만희라면, 41절에서 맷돌질을 하는 두 여자 중 데려감을 당하는 여자로 온 사람은 누구라는 말입니까? 그것도 이만희입니까? 그럼 여자이어야 하는데 이만희는 남자가 아닙니까? 그러니 말이 안 되는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매주 살펴볼수록 신천지는 성경의 이곳저곳에서 말씀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짜깁기해서 사용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증인이 그런 것처럼, 신천지의 그런 방식도 전형적인 이단의 잘못된 행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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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역사를 끝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오실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전에 먼저 우리가 세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 다시 오셔서 역사를 종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오기 전의 시간을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 오실지 몰라 불안해 하며 두려워 떠는 게 아니라, 늘 깨어 준비하면서 끝까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목회하면서 보니까, 몇 년 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판단할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여기서 신앙생활을 같이 잘하다가 중간에는 흐지부지되고 제대로 하지 않았고, 그러다 이사를 가서 소식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보십시오. 그렇다면 그 사람이 떠날 때 우리가 본 마지막 모습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마치 배교자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어떤 일이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저 사람은 천국에 못 갔을 것이다.’라고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저 사람이 어떻다는 게 아니라 ‘나는 끝까지 충성할 것인가?’입니다. 우리가 매일 깨어서 끝까지 충성하며 살아가다 보면 예수님이 언제 오시든지, 아니면 내가 언제 세상을 떠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 앞에 설 준비가 이미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끝까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으로 살아감으로써 주님 앞에 서는 날 잘했다고 칭찬받는 신실한 종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