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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7일 수요예배
✦ 이단 돌발 질문에 대한 답변 4 ✦
삼위일체에 관한 질문 (1)
(마태복음 3장 13~17절)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 핵심 교리 중 하나인데, 사실 삼위일체를 100%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신학자를 포함해서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자기가 최대 이해하는 정도로 설명하는데, 이것을 우리가 오늘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신천지는 삼위일체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신천지는 성부만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부인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초림 시대의 목자일 뿐이라고 합니다. 성령은 범죄하지 않은 천사를 비롯하여 하나님께 속한 모든 영들을 총칭하는 것이며, 인격적으로 구별된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신천지 성경 공부 과정에서 초기에 선악 구분을 가르치며, 왜곡된 하나님 개념을 주입합니다. 그러면서 삼위일체라는 말은 사람이 만들어낸 말일 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신천지 신도들에게 어떻게 답해야 할지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질문 1]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말이 어디 있나?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성부(聖父)’와 ‘성자(聖子)’란 용어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성부와 성자는 사람이 만들어낸 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아들’로 부릅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아버지(요 17:11)’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막 1:24, 5:7, 요 6:69)’이라는 개념으로 ‘성부’와 ‘성자’라 부르는 것입니다.
성경에 문자적으로 ‘삼위일체’라는 말이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성경은 성부, 성자, 성령을 증거하며, 이 세 분의 구별된 하나님이 한 ‘본체’, 곧 본질에 있어서 한 분이심을 증거합니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본체의 형상(히 1:3)’이라고 하며, 빌립보서에서는 예수님을 ‘근본 하나님의 본체(빌 2:6)’라고 증거합니다.
이것은 성자와 성부가 같은 본체, 곧 같은 본질이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에 관한 핵심적인 개념을 함축한 것이 삼위일체입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삼위일체’가 셋을 뜻하는 ‘트라이(tri)’와 하나 됨이나 한 본질을 뜻하는 ‘유니티(unity)’를 결합해 ‘트리니티(trinity)’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삼위일체’라는 말은 세 위격(tres personae)과 한 본체(una substantia)를 의미하는 라틴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먼저 ‘삼위’(三位)란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의 독립된 위격(位格), 곧 인격(人格, persons)을 가리킵니다. ‘위격’은 헬라어로 ‘휘포스타시스’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한 본질 안에 있는 인격적 구별을 뜻합니다. 그리고 ‘일체’(一體, one substance)라는 것은 하나의 본체(本體)를 뜻합니다. 이것은 ‘본질(essence)’을 의미하며, 본질적 실체를 가지신 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정리해 보면, 하나님은 구별된 세 인격의 하나님이 본질에 있어서 질적 차이나 구별 없이 하나의 본질로 존재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정통 삼위일체 이해 도표>
삼위일체 개념을 이해하는 전통적인 접근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부정의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성부는 성자가 아니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며, 성령은 성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 긍정의 방법입니다. 성부는 하나님이시고, 성자는 하나님이시며, 성령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삼위 간의 인격적 구별과 본질적 하나 됨을 이해해야 삼위일체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라고 할 때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라고 할 때 인간과 또 그 어떤 존재와도 구분되는 ‘신’이시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할 때 아버지와의 관계를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밖에 안 계십니다. 세 분만 신이십니다. 세 분이 완벽한 공동체를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신천지는 삼위일체 개념을 말이 안 된다고 하며 비판합니다. 그렇다면 처녀였던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님을 낳은 것은 말이 됩니까? 이것은 우리가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한 계시의 영역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 머리로 이해가 안 간다고 해서 무작정 비판하고 부인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겸손하게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른이 어려운 수학 공식이나 철학을 이야기하는데, 어린아이가 ‘말이 안 된다.’라고 하며 ‘1+1=2가 진리다. 이것밖에 없다.’라고 하는 것이 더 말이 안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 수도 없는 높은 차원에 계시는 분이신데 내가 볼 때 말이 안 된다고 한다면, 어린아이가 ‘1+1=2이고 이게 최고다.’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못한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할 것이 있는데, ‘삼위’에서 ‘위(位)’를 자리로 해석하고 ‘일체’할 때 ‘체(體)’를 글자 그대로 몸이라고 해석해서 하나님이 한 몸에 세 영의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 분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교주 이만희가 자기 책 <천국 비밀 계시>에서 “일체(一體)에 위(位)가 셋이니 이것이 말하자면 삼위일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몸이 하나인데 자리가 셋이라고 설명한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조상신을 숭배할 때 ‘신위(神位)를 모신다’라는 개념과 유사한 것입니다. ‘신위’(神位)라는 것은 ‘죽은 조상의 영혼이 의지하는 자리’를 뜻합니다. 이런 개념에 기초하여 삼위일체를 설명하게 되면, 삼위일체란 삼위 하나님의 신(神)들이 한 육체에 자리 잡고 거하는 것을 뜻하게 되어 버립니다.
바로 이런 방식이 신천지가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신천지는 이만희 총회장의 육체에 하나님의 영과 예수님의 영과 보혜사 성령이 함께하기에 삼위일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천지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고, 성령도 하나님이 아닌 크고 힘센 다른 천사일 뿐입니다.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계 10:1)
신천지는 ‘힘센 다른 천사’가 성령이라고 해석하는데, 말이 안 되는 해석입니다. 삼위는 동등한 하나님이 아닌 서로 다른 영들이고, 그 영들이 이만희 총회장에게 접신 된 모습이 바로 그들이 주장하는 삼위일체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나는 삼위일체는 어떤 모습입니까?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삼위일체에 대한 기록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관련되어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구원 역사를 이루는 삼위 하나님의 존재 방식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삼위일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삼위 하나님의 협력 사역이라고 알려줍니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16-17절)
여기에는 아들 예수님, 성령님, 아버지 하나님이 분명하게 등장하며, 성부와 성자가 사랑과 인격적 친밀함으로 연결되었음을 말씀합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첫 출발점에서부터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사역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당신의 성령을 보내셔서 성자의 사역을 도우십니다. 이러한 협력 사역은 마태복음의 마지막 부분에 더욱 분명히 나옵니다.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18-19)
예수님은 세례를 베풀 때 반드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왜 자신의 이름으로만 세례를 주라고 하지 않으시고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주라고 하신 겁니까? 이것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구원을 작정하셨고, 성자 하나님은 구원 역사를 성취하셨으며, 성령 하나님은 구원 역사가 각 사람에게 적용되게 하십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 협력하며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여기에 아버지, 아들, 성령, 삼위 하나님의 이름이 나란히 등장한 것은 삼위가 동등함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성자는 성부와 동등하고, 성부가 성자의 이름으로 보낼 성령 또한 성부, 성자와 동등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여기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은 구별된 동시에 동등한 이름입니다. 만약 세 분 사이에 우열이 있었다면 최고 우위에 있는 한 이름만이 필요하고, 다른 이름을 동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 13:13)
이 축복기도는 삼위의 동등함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입니다. 여기에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먼저 등장하고, 성부 하나님이 나온 후, 성령이 나옵니다. 만약 삼위 간에 서열의 질적 차이가 있다면 성부가 먼저 언급되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축복기도는 성부, 성자, 성령의 동등함을 보여 줍니다.
또한 성경은 삼위 하나님의 구별됨을 말씀함과 동시에, 삼위의 일체성을 알려줍니다.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 4:5-6)
더 구체적인 기록으로 여러 구절이 있는데,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사도행전은 사도 바울을 불러 회심하고 선교하게 하는 분을 예수님이라고 하기도 하고(행 9:17), 조상들의 하나님이라고도 하며(22:14), 성령이라고도 합니다(13:2-4). 또한 바울 일행을 불러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분을 하나님으로 소개하기도 하고(행 16:10), 예수의 영으로도 소개하기도 합니다(16:7). 그리고 바울을 예루살렘과 로마로 인도하는 분은 성령님이신데(행 19:21, 22:22), 이것은 동시에 예수님의 일이기도 합니다(23:11). 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을 속인 것은, 하나님께 거짓말을 한 것이 됩니다(행 5:3-4).
고린도전서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고 말씀합니다(3:16-17).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가 우리 안에 거하여 성전이 되게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성령은 곧 하나님과 같은 존재임을 전제합니다.
“9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10 또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 때문에 생명을 얻습니다.” (롬 8:9-10, 새번역)
여기서는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영(성령), 그리스도가 교차해서 언급되고 있으며 성부, 성자, 성령이 사실상 일치함을 보여 줍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자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이렇게 살펴볼 때, 성경은 분명 삼위 하나님을 구별하여 말씀하는 동시에 삼위 하나님의 일치와 하나 됨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종합하여 삼위 하나님이 한 본체라는 뜻으로 ‘삼위일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라는 말은 비성경적인 용어가 아니라 하나님을 균형 있게 이해하게 해주는 성경적 용어인 것입니다.
[질문 2]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은 자기가 자기에게 기도한 건가?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이 되고 아들이 아버지가 될 수 있나?)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고 했으니 그러면 자기가 자기에게 기도한 것이냐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신천지는 삼위일체를 말이 되지 않는 비진리로 취급하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던 일을 언급합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 26:39)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면, 예수님이 이런 식으로 기도한 것은 자기가 자기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같으니까 말이 안 되는 개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아버지도 하나님이고 아들도 하나님이면 아버지(성부)가 곧 아들(성자)이란 말인데,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이 되고, 아들이 아버지가 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교회사적으로 ‘양태론(樣態論)’이라고 부르는 이단적 삼위일체론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구속사의 단계에 따라 모습(양태, mode)만 다르게 나타난 것이라는 주장이 양태론(modalism)의 핵심입니다. 양태론적 이해에 따르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상황과 시대에 따라 세 개의 다른 얼굴(mask, 가면)로 나타나신다고 합니다.
‘삼위일체’에서 ‘위(位)’를 뜻하는 헬라어 ‘휘포스타시스(ὑπόστασις)’는 서방 기독교에서 라틴어 ‘페르소나(persōna)’로 번역되어 이해되었습니다. ‘페르소나’는 무도회나 연극에서 역할에 따라 바꾸어 쓰는 가면을 뜻합니다. 이것은 한 배우가 연극에서 여러 가면을 쓰고 일인 다역을 하는 상황을 전제합니다. 이러한 식의 ‘위(位)’ 이해에 기초하여 양태론은 하나님이 시대에 따라 다른 얼굴(가면)로 나타나신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위(位)’를 뜻하는 헬라어 ‘휘포스타시스’는 가면이 아닌 개별적 인격(person)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세 인격(three persons)으로 존재하시면서도 하나의 본질적 실체(one substance)를 가지신 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양태론적 주장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이 자기에게 기도한 것이냐는 신천지의 질문은 이단적 삼위일체론인 양태론을 그 이해의 바탕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에게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분명히 인격적으로 구별되신 성부 하나님께 기도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런 식의 양태론적 이해에 대해서 분명히 선을 긋습니다. 성경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의 구별을 분명하게 보여 주며, 특히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는 오히려 삼위 하나님의 구별을 잘 보여 주는 본문입니다. 성자와 성부는 같은 분이 아니시며,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과 이 땅에 오셔서 구원 사역을 행하시는 성자는 서로 다른 분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뭐라고 외치셨습니까?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 27:46)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 십자가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성부께서 성자를 버리신 사건이고, 부활은 성부께서 성령을 통해 성자를 살리신 사건이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한 성자는 성부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행 2:32-33)
이 말씀에 따르면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을 살리시고 당신의 오른손으로 높이시며 예수님께 성령을 주시는 분이고, 성자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에게 성령을 받아서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성자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분이십니다. 여기에는 높이시는 분과 높임을 받으시는 분, 주시는 분과 받으시는 분, 부어주시는 분과 부은 바 되시는 분 사이에 분명한 구분이 있습니다. 또다른 구절을 보십시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 = 성령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 = 성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성부)의 영’ = 성령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영이 곧 성령, 즉 성결의 영이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신 성령님은 또한 각 신자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성령님이 신자 안에 내주(內住)하시면, 그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신자의 죽을 몸도 살리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성령의 내주하심은 장차 신자의 죽을 몸을 부활시키시기 위한 보증 또는 인침으로 작용합니다(고후 1:22, 5:5, 엡 1:13, 4:30).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자기의 것이라는 표로 인을 치시고, 그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고후 1:22, 새번역)
이처럼 하나님(성부), 하나님의 영(성령), 그리스도 예수(성자)가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더 나아가 성령과 그리스도는 성경에서 모두 신자를 위한 중보자로 표현됩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4)
여기 성자는 성부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으로 소개되며, ‘하나님 우편에 계신’ 분으로서 성부 하나님과 분명히 구별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6)
이 말씀들에 따르면, 성자는 하나님 우편에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시는 분이고, 성령은 성도 안에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입니다. 성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의 이름으로 하나님(성부)께 기도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성부 하나님께 성자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성도를 위한 성부, 성자, 성령의 구원 역사는 베드로전서에도 뚜렷이 구별되어 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미리 아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해 주셔서, 여러분은 순종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화가 더욱 가득 차기를 빕니다.” (벧전 1:2, 새번역)
성부 하나님은 예정의 주체로, 성자 하나님은 구원자로, 또한 성령 하나님은 거룩하게 하시는 분으로서, 세 분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도 뚜렷하게 구분됩니다.
이렇게 성부, 성자, 성령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서로 협력하셔서 구원하셨으며, 지금도 하나 되어 우리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성부 성자 성령께 매일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