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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5일 수요예배
✦ 인생의 목적이신 하나님 3 ✦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목적”
(에베소서 2장 8~10절)
1.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세계뿐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아직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세계까지 창조하셨습니다(창 1:1).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신 것은, 이 세계가 없으면 뭔가 불편하고 모자라는 것이 있어서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창조의 교리를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이 세계가 하나님께 필요했다면 그분은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완전한 하나님일 리 없다. 만약 필요하지 않았는데도 이 세계를 만들었다면 헛된 일을 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일 리 없다.”
그러나 이런 관점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종종 천재성을 지닌 탁월한 예술가들을 만납니다. 어떤 사람은 그림을 그림으로써 자신의 예술혼을 드러내고, 어떤 사람은 불후의 명곡을 남기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모든 인류가 사랑하는 위대한 조각품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만든 작품이 자신에게 필요했기 때문에 만든 겁니까? 자신이 만든 작품이 없으면 자신에게 뭔가 모자라는 것이 있었기에 그렇게 한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만든 작품이 없어도 그들은 그 자신입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충만한 예술혼이 있었기에 그러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된 세계는 하나님께서 뭔가 충족하지 못한 분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하고 부족함이 없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분이고, 당신 자신이 다함이 없는 행복이라면, 무엇 때문에 인간을 만들어서 자신보다 훨씬 못한 그들과 관계를 맺는가? 이것은 하나님께 무엇인가 모자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배가 부르고 편안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뜻대로 잘되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얼굴도 모르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굶주림에 마음 아파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돕고 싶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실행합니다. 심지어 찾아가기까지 합니다. 어떤 사람이 더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입니까? 두 번째가 아닙니까?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것은 하나님의 필요 때문이 아닙니다. 사랑 자체가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자 하는 성향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속적으로 사랑의 관계 속으로 초청하십니다.
1) 인간: 하나님께서 만드신 존재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10).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신앙의 출발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을 받아들이고 나면 자신의 존재의 근원에 대한 답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인간을 만드셨겠습니까? 사람이 만든 모든 것에는 그 목적이 있습니다. 마이크는 소리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고, 기타나 피아노 같은 악기는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고장 나면 쓸모가 없어져 버려집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눈에 보이는 물건에 비해서 훨씬 더 놀라운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가치를 지닌 인간을 하나님께서 아무런 목적이 없이 만드셨을 리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기대하신 삶이 있었습니다. 그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 인간을 매우 특별하게,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창 1:26)
이 형상은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닮은 영혼의 특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기에 인간은 위로는 하나님을 이해하고, 옆으로는 사람을, 아래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이해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사람으로 지으신 뜻에 맞도록 이 세상을 다스리고 가꿀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신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품고, 이 세계 속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피조물은 창조의 목적 안에서 살아가고, 인간은 한 가족 공동체로 서로 사랑하며 피조세계를 아름답게 다스리기를 기대하셨습니다(창 1:28).
2) 그리스도인: 그리스도께서 재창조하신 인간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써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었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잠시 좌절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인간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따라 살게 하시는데, 바로 그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8-9절, 새번역)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존재인지를 이어서 말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10a)
선한 일을 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음을 받은 존재가 바로 신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되고 어그러진 인간을 예수님께서 수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원하신 것이 창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완전히 새롭게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고후 5:17, 새번역)
여름에 물고기를 잡아서 밖에 그대로 몇 시간 놔두면 완전히 짓물러서 흐물흐물하게 되고 썩어버립니다. 그렇게 썩은 물이 줄줄 흐르는 생선이 새 생명을 받아서 물속을 힘차게 헤엄치는 등 푸른 물고기가 되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은 단순한 고침이나 치료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다시 부여하는 재창조의 사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로 그런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을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각각 목적이 있게 창조하셨지만, 인간이 타락한 이후로는 누구도 그 목적대로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신 것은 인간의 죄로 인하여 망가진 천지 창조의 목적을 다시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2.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우리가 상점에서 구입하는 모든 물건에는 매뉴얼이 주어집니다. 싼 물건은 매뉴얼이 아주 짧고 간단하게 되어 있지만, 몇 만 달러 되는 자동차 매뉴얼은 훨씬 더 두껍고, 수십만에서 몇 백만 달러 되는 실험실 기계의 매뉴얼은 몇 권씩 됩니다. 비싼 물건일수록 매뉴얼을 잘 공부하고 숙지해서 사용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고장을 냅니다.
그런데 이 세상 어떤 물건보다 값진 것이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온 우주에 한 명 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하실 정도로 우리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토록 고귀한 인생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주신 매뉴얼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첫 번째 관심사는 참사람이 되는 것, 즉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인격 수양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바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구원이 필요한 인간의 비참함과 그 비참한 인간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며,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인생에 대한 올바른 매뉴얼(사용 설명서)을 읽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0절, 새번역)
이 말씀을 보면 우리는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한국어 성경에는 ‘선한 일’이 단수로 나오지만 헬라어 원어에는 복수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선한 일들’을 위해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신 의도가 곧 ‘선’(the Good)이며, 거기에 맞는 조건이나 상태가 ‘선함’(goodness)입니다. 그러니까 ‘선한 일들’이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이나 섬김을 가리킵니다. 그저 불쌍한 사람을 조금 돕는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이나 섬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범죄함으로 죄인이 된 인간은, 본성상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따라 살 수 없는 망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인간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하신 것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을 고쳐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따라 선을 행하며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건축이 영어로 ‘아키텍쳐(architecture)’인데, 이 단어는 ‘원리, 근본’을 뜻하는 헬라어 ‘아르케(arche)’와 ‘기술’을 뜻하는 헬라어 ‘테크네(techne)’의 조합에서 나왔습니다. 그렇게 조합된 이유가 뭐겠습니까?
건물을 지으려면 먼저 땅을 파야 합니다. 땅을 파는 사람들은 땅만 파는 전문가로서, 자신의 테크네(기술)를 이용해서 땅을 팝니다. 그 다음에는 건물의 기초를 놓는 사람들이 또 자기들만의 테크네로 건물 기초를 놓습니다. 그 다음 사람들도 자기들만의 테크네를 사용하여 기둥을 세우고 벽을 만듭니다. 또 창틀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테크네로 창틀을 만들고, 전기를 만질 줄 아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테크네로 전기를 다룹니다. 또 바닥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테크네로 바닥을 꾸밉니다.
그들 각자는 다른 사람의 테크네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자기만의 테크네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물을 짓는 현장에는 건물을 짓는 의도를 완전히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은 수십 개의 테크네들을 종합하여 그 건물을 완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아키텍트(architec)’라고 부르고, 그 사람이 하는 일이 바로 건물의 목적을 완성하는 기술인 ‘아키텍처(architecture, 건축)’입니다.
각 사람마다 하는 일이 있는데, 학생은 공부하는 사람이고, 사업가는 사업을 해서 돈을 버는 사람입니다. 운동선수는 운동 경기를 하는 사람이고, 군인은 전쟁을 대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좋은 학생은 공부를 잘하는 테크네가 있는 사람이고, 돈을 잘 버는 테크네를 가진 사람이 탁월한 사업가입니다.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는 사람이 훌륭한 선수이고, 전투를 잘하는 군인이 좋은 군인입니다.
그러나 행복은 좋은 테크네를 가졌다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하는 테크네, 돈을 버는 테크네, 운동하는 테크네, 전쟁하는 테크네 등 모든 것을 사용해서 인생이라는 집을 전체적으로 지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세상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디서 배웁니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그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의 목표는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테크네들을 사용해서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맞게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아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자신도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겠는지에 대한 지혜를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의 진짜 목표는 단순히 사람을 천국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망가진 사람을 이 세상에서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여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을 그의 인생을 통해 이루어드리며 자신도 행복하게 살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말하는 ‘선한 일’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음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데 기여하면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쓸모없이 창조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하신 데에는 목적하신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통하여 이 창조세계를 아름답게 하시고,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본문 10절의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에서 ‘위하여’는 헬라어로 ‘대하여, 향하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지으셨을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재창조하셨을 때, 인간의 삶의 방향을 창조의 목적을 ‘향하여’ 살도록 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해져 있을 때만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를 통해 이 세상에 흐르고, 그럼으로써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선하심의 덕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때 인간은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됩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주님께서 정하신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이 자신을 창조하신 목적에 맞게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여기가 하나님께서 나를 세워 주신 자리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내가 여기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는 자리가 있습니까? 내가 여기에서 이 일을 감당하며 살 때 주님의 선하심이 이 세상에 흘러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을 때 그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3.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창조하셨고, 당신이 쓰실 바를 정하셨습니다. 선한 일들을 작정하고 그렇게 살 수 있게 하는 분이십니다. 죄로 인해 그렇게 살 수 없게 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구속의 근거를 마련하고, 그 피로 속죄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자리에서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십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예비하셨습니다(10). 하나님께서 중심이 되십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재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게 하셨습니다.” (엡 1:4-6, 새번역)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온갖 섬김을 받으면서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 선한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선을 행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랑의 감화입니다.
선을 행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필요 없습니다. 그는 은혜가 없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는 그 일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선을 행할 능력이 자신 안에 없음을 곧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목마른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하도록 도우시는데, 이 일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일어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부어 주십니다. 우리가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목표를 정하고 주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며 섬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주며 공급하십니다. 물질이나 돕는 사람, 재능이 모자라서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행하기에 적합한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하여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지혜로워지고 능력이 많아집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히 살고 싶고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충성스럽게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놀랍게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위해 충성스러운 삶을 산 사람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십니다. 말씀을 읽을 때는 말씀의 은혜를 주십니다. 기도할 때는 성령의 놀라운 위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 매달릴 때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놀라운 사랑의 교제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한 일들 가운데서 행하게 하시기 위해 구원하셨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전에 예비”(10)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인간이 타락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시기 전에 이미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예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들을 행하게 하십니다.
‘행하게 하다.’(10)는 ‘길을 걸어가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10). 각 사람은 자신 속에 있는 성향을 따라 그 길을 걸어갑니다. 그 마음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선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선한 길로 걸어가고, 마음 안에 이런 것이 없으면 그는 악한 길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결국 선한 일들을 하는 삶, 그것도 한두 번 하고 그만 하는 삶이 아니라, 선한 일들을 계속 하며 살아가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이 자신을 지으신 의도와 목적을 늘 기억하고 내 삶에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는 것입니다. 특히 나를 지금의 직장이나 사업체에 두신 목적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얻은 것들을 가지고 예수님이 지금 여기 살고 계셨더라면 사용하셨을 그러한 방법으로 그것들을 사용함으로써, 내가 있는 이 자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대로 돌아가도록 기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매일 그렇게 살아감으로써 이 땅에서 유한한 인생이지만 영원한 천국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