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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QmyukNTJu40?t=1728

 

 

2021310일 수요예배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16

요엘(구원의 기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요엘 228~32)

 

[들어가는 말: 요엘서의 배경]

 

제가 목자로 섬기는 모세목장에서 협력하는 선교사님이 김요엘 선교사님이십니다. 원래 이름은 영어로 바울이신데, 선교를 나가면서 선교명을 요엘로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인용한 오늘 본문 요엘서에 나오는 대로 주의 영이 임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요엘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너무나 적합한 말씀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지만 요엘서는 아주 특별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요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상황과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굉장히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남 유다의 요아스 왕 때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요아스 왕은 일곱 살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왕이 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다는 것은 그의 부모 또는 형제가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인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가장 악한 여자였던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가 남 유다의 선한 왕 여호사밧의 며느리로 들어왔습니다. 아달랴의 남편이 여호람인데, 그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고 북이스라엘의 요람 왕이 아람과 싸울 때 도와서 같이 싸웠습니다.

 

그러다 엘리사를 통해 기름 부음 받은 예후가 요람을 죽이고 또 아하시야를 죽이는데, 자기 아들 아하시야가 죽은 것을 본 아달랴는 유다 왕손들을 다 죽여 버립니다(왕하 11). 그때 아기였던 요아스를 공주 여호세바가 몰래 빼내어 살리고, 성전에 숨어 6년을 지냅니다. 그 기간 동안 아달랴가 유다를 다스리게 되고, 7년째에 제사장 여호야다가 반정을 일으켜 당시 7세였던 요아스를 왕위에 올리고 아달랴를 처단합니다.

 

바로 그때가 요엘이 활동했던 시기였고, 그 시대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혼란했으며, 사람들에게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가득했던 시기였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 역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혼란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려움과 불안함이 가득한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에 대한 대답을 본문을 통해 살펴보려 합니다.

 

 

1.   하나님의 여전한 역사 가운데 거하라

 

요엘서는 여호와의 날이라는 무서운 심판과 재앙의 날에 대해 분명히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 시대의 모든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머니가 아들이 죽은 기회를 이용해서 나머지 가족들을 다 죽이고 여왕이 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토록 어렵게 세워진 왕 요아스가 처음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성전 수리를 명하여 그것을 위해 마음을 함께 한 백성들이 은을 넘치게 드려서 파손된 성전을 수리하기도 했습니다(왕하 12).

 

그렇게 열심을 보이던 요아스였지만,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후 그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죄를 범하며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보던 모든 사람들은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음을 다 느끼고 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상상도 못할 메뚜기 재앙이 밀어닥치고, 그렇게 끔찍한 일을 겪는 와중에 가뭄까지 이어지면서 어려움이 끊임없이 몰려왔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시는구나.’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상황들을 보십시오. 작년 이맘때 갑작스럽게 터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우리는 1년 동안 다 같이 모이지도 못하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망자와 감염자들이 나왔습니다. 이제 백신이 개발되어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운 상황입니다.

 

물론 코로나바이러스가 곧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조심해야 할 말입니다. 사실 코로나바이러스가 생긴 것은 인간의 탐욕 때문임이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교만했고, 교회도 제대로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재앙이 있을 수밖에 없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이어지는 처방입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사람들에게 어떤 처방이 주어졌는지가 중요합니다. 요엘은 여호와의 날이라는 무서운 심판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그날에 어떻게 해야 될지에 대하여 신앙의 정확한 처방을 함께 주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32)

 

이것이야말로 정말 정확한 영적 처방입니다. 아무리 무섭고 두렵고 엄청난 재앙의 날이라 할지라도, 그날은 우리 하나님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엘은 그 두려운 심판의 날을 왜 여호와의 날이라고 부릅니까? 그날이 아무리 무서워도, 그날이 아무리 두려워도, 그날이 마귀가 여러 가지 재앙들로 우리를 공격하는 날이라 할지라도, 그날은 여전히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날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신앙이 정말 중요합니다.

 

살아가면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너무 힘들고 끔찍하고 상상하지 못할 일들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흔들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결코 이 모든 상황을 놓아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상황은 여전히 괴롭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메뚜기 떼가 군대처럼 밀고 들어와 모든 것을 먹어 버리는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그날은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그 신앙 가운데 있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요엘의 간절한 외침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당신의 자녀들을 그 두려움 가운데서 보호하고 피하게 해주십니다. 그 고난과 어려움을 다 이기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역사를 위해 부름 받는 축복의 역사가 있을 것을 요엘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은 무엇을 전제로 합니까? 엄청난 재앙과 어려움을 전제로 합니다. 견디기 힘든 상황이 있을 때 거기서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구원의 날이 임하기 전에는 먼저 재앙과 어려움이 밀어 닥칩니다.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0-31)

 

그럴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직면한 모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우리를 지켜주시며 우리를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며, 이 믿음은 분명한 사실에 근거한 믿음입니다.

 

혹시 믿음 때문에 순교하는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헛된 죽임을 당하거나 학살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순교는 죽임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는 사실 예배하는 것이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순교는 그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결론이지, 비참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기도하고 있는 한, 우리는 결코 그 가운데서 버림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힘든 상황에서도 구원받고 아름답게 승리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믿음의 결론입니다.

 

여러 가지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올지라도 한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요엘의 이 간절한 외침을 기억하십시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것은 그때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동일하게 역사하는 말씀입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려운 일을 만났다고 모두가 당연히 기도의 자리에 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영 안에서 자유를 누리라

 

그렇다면 불안과 두려움이 우리를 짓누르는 순간, 그때를 놓치지 않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28-29)

 

여기서 핵심은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과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럼 무엇이 핵심입니까?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어느 민족 출신이든, 왕족이든 귀족이든 자유인이든 종이든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주신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오순절에 성령님이 오셔서 성도들이 성령 충만하여 나가서 여러 다른 언어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선포했습니다. 그때 명절을 맞이하여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신의 언어로 선포하는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는데, 새 술에 취했다고 하며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일어나 소리를 높여 바로 이 요엘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2:16-21)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 무식했던 베드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한 후, 예수님이 고난과 죽임을 당하고 삼일 만에 부활하겠다고 하시니까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예수님을 야단치다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는 꾸중까지 들었던 베드로, 변화산에 올라가서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서 초막 셋을 짓고 삽시다.’라고 엉뚱한 말을 하던 베드로, 심지어 예수님이 잡히실 때 세 번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구약의 말씀을 줄줄 외웁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니까 그렇게 변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부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체험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하는 겁니다. ‘요엘서의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것을 다른 말로 성령의 기름부음 또는 성령 충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든지 상관없이, 주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부어지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의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맡기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한 예로, 기도가 그렇습니다. 주님의 영이 부어지지 않고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말로,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것은 진정한 기도가 아닙니다. 그냥 보면 그런 것도 기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냥 자기 이야기를 줄줄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진짜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의 영이 부어져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경험해야 합니다.

 

예배와 찬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영이 부어지지 않고는 제대로 된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찬송가를 부르고 아무리 은혜로운 가사로 찬양을 부르더라도, 진정한 마음이 없이 부르면 노래에 그칩니다.

 

마음의 치유도 그렇습니다. 주님의 영이 부어지지 않고는 치유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끼리 모여서 상담하는 것으로는 온전한 치유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마음은 조금 편해질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죄와 상함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이 부어지면 슬픔이 변하여 기쁨으로 바뀌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두려움이 변하여 찬송이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제 코로나 사태에 대한 출구전략을 세워야 할 때인데, 1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특히 매주 교회에 와서 방송을 위해 애쓰시는 사역자들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이 기간 동안 오히려 더욱 하나님께 나아간 분들도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거나 예배를 안 해도 누가 알지 못하니까 전혀 하나님을 찾지 않고 예배하지 않고 적당히 살았다면, 그 동안 해오던 안일한 신앙생활을 버리고 새롭게 나아가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자신의 한계에 갇혀 있는 신앙생활을 버리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딱 요만큼만 하겠다고 하는 자기 틀레 꽉 막혀 있는 신앙생활을 던져버리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한 신앙생활로는 결코 죄를 이길 수 없고 상황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힘과 노력과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주님의 영이 부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주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부어지면, 아무리 두렵고 무서운 날이 온다 할지라도, 아무리 힘든 상황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아무리 어려운 일들이 우리 삶에 일어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가운데서 담대히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약속하신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의 찬송과 간증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의 영이 부어지지 않고 성령 충만하지 않은 채 그냥 살아가면, 조그마한 어려움이 와도 부서지고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 충만하며 나아갈 때 어떤 큰 어려움이 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주어집니다.

 

우리는 이 시대 가운데 주님의 영이 부어진 사람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에 대한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고 싶다. 내가 정말 성령 충만하고 싶다. 내가 성령님의 뜻대로 인도함을 받고 싶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다.’고 하는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 가운데 우리가 먼저 할 것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바로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 코로나 사태가 이런 사모함을 더 크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있던 것도 없어졌는지 반드시 점검해보아야만 합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설 때 이것에 대해 자신에 대해 아뢸 때가 옵니다.

 

사모함이 정말 필요합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편견과 지식과 경험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기를 간절히 구하십시오.

 

이렇게 구해보십시오. “주님의 영을 제게 부어 주십시오. 간절히 사모합니다. 주님의 영을 제게 부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며 나아갈 때, 우리 위에 주님의 영을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놀라운 삶을 살게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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