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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https://youtu.be/_7JjqVvblpM?t=1367

 

 

20201231일 새해맞이감사예배

송구영신 메시지

광야를 기억하며 옥토로 나아가라

(신명기 81~20)

 

[들어가는 말]

 

우리는 지금 사상 초유의 코로나 사태를 겪었던 2020년을 보내고 새해인 2021년을 맞이하는 순간에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처음 경험해보는 상황 속에서 너무나 어려웠지만, 지금까지 우리 모두를 안전하게 지켜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2020년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 우리는 2021년에 대한 희망을 품으면서 새해를 맞이합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부터 코로나 백신이 나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서 이미 접종이 시작되었고, 특히 의료계 종사자들과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조만간 일반 시민들에게도 접종이 시작되리라는 희망적인 소식이 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희망을 품는 동시에 불안함도 여전히 느낍니다. 2020년이 끝나고 2021년이 시작되는 이 시점을 생각할 때, 우리 상황이 마치 출애굽한 뒤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을 거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40년이 아니라 단지 10개월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광야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이제 희망을 바라보는 새해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가 마지막 고별설교로 선포한 내용인 신명기 본문이 마치 지금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서 있는 곳은 요단강 건너편 모압 땅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이 눈앞에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기 직전입니다. 광야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다 죽었고, 1.5세대와 2세대만이 남아서 들어가기 직전의 순간입니다. 지난 40년의 광야 생활을 돌아보며 역사의 새로운 시점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의 숨 막힌 긴장감이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너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요단강은 단순히 동쪽과 서쪽을 나누는 지리적 경계선만이 아닙니다. 요단강은 믿음의 경계선이고, 광야의 불안정성과 정착지 가나안의 확실성 사이의 경계선입니다. 아직까지는 굉장히 불안정한 상황이지만, 이것만 넘어가면 안정적인 삶이 기다리고 있는 순간입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광야 생활을 청산한다는 의미입니다. 가나안에서는 광야와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이 펼쳐질 것입니다. 이들은 처음으로 자기가 소유한 땅에 정착하여 살게 될 것입니다.

 

이 긴장된 순간에 아직 땅이 없다는 현실과 또 땅을 곧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경계선인 이 요단강가 모압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상 초유의 코로나 사태를 겪은 2020년을 보내고 또 다른 미지의 세계인 2021년으로 들어가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원합니다.

 

 

1.   홍해를 건넌 후 만난 광야에서의 혹독한 훈련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을 상기시키면서 40년 동안의 과거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신명기 전체 내용이 바로 1.5세대와 2세대를 향하여 과거를 돌아보면서 교훈을 주는 모세의 고별설교입니다. 그것이 신명기입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1-2)

 

홍해의 승리를 찬양하는 노래가 출애굽기 15장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순간들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이 그 후 간 곳이 수르 광야입니다.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보시고 또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건져내셔서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3:8)에 이르게 하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드디어 홍해를 건너 애굽의 적들을 완전히 따돌리고 자유를 얻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넌 후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사흘 길을 걸었지만 물 한 방울도 구경할 수 없었던 수르 광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홍해를 통과한 이스라엘 백성을 기다린 것이 좋은 땅이 아니라 광야였다는 말입니다. 홍해에서 통쾌한 승리를 경험하며 소고 치고 춤추며 노래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는데, 그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하나님은 그들을 사막 한가운데 던져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막 불평하다가 나중에 물을 얻게 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홍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홍해를 건너면 바로 가나안이 나오는 게 아니라 광야가 눈앞에 나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홍해를 건넌 그 지점부터 지금의 이스라엘 땅까지는 버스로 여섯, 일곱 시간이면 가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그 가까운 거리를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헤맸다는 것은 훈련이었습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의 백성답게 만드시기 위해서 가나안으로 이끄시기 전에 먼저 광야로 이끄십니다. 사실은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녀를 사랑하시는 방식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자격 없는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아무 자격이 없는데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 구원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에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해를 건넌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노예근성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예근성을 가지고 그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들어가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래서 광야가 있습니다. 광야는 끝없이 광대하고, 위험하고, 배고프고, 목마른 곳입니다. 그러나 광야 학교의 훈련이 참기 어려울 만큼 힘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3)

 

여기 3절에도 나오고 그 앞의 2절에도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를 낮추시며라는 말입니다. 광야의 훈련이 힘든 이유는 그것이 바로 우리를 낮추시는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높여주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낮추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낮아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중에 낮아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높아지기를 원하지, 남들보다 낮아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광야가 힘든 훈련입니다. 수치스럽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겸손을 훈련하는 곳입니다.

 

광야는 결코 인간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우물을 팔 수도 없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습니다. 물이 없습니다. 먹을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자기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광야가 아니면 그것을 배우지 못합니다.

 

3절에는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셨다고 말씀합니다. 만나를 어떻게 주셨습니까? 얼마나 주셨습니까? 그날그날 가정마다 딱 맞는 하루치의 양만 주셨습니다. 이틀, 사흘 저장해놓으면 썩어버립니다. 안식일 전날에만 이틀 치를 저장해놓아도 썩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매일매일 하나님을 의지해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직후에 수를 세어보니까, 전쟁에 나갈 수 있는 20세 이상 남자가 603,550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합해서 전체 인구는 200만 명이 넘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고 척박한 광야에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먹을 식량을 도대체 어디서 구합니까? 말이 되지 않습니다. 너덧 명이라도 광야에서 먹을 양식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전혀 음식을 구할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는 한마디로 사람이 살기가 불가능한 곳입니다. 무슨 낭만적인 곳이 아닙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의 장소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하나님이 그렇게 매일 만나를 먹여주신 이유가 뭐라고 합니까? ‘너를 낮추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낮추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광야는 낮아져서 전적으로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하는 곳입니다. 교만하면 결코 버틸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하나님이 뭘 주시나? 내가 알아서 하겠다.’ 하며 물을 찾아보고 음식을 찾아보고 해보았자 전혀 소용이 없는 곳, 오히려 그러면 죽는 곳, 자기 힘으로 해보겠다고 하면 죽는 곳, 교만하면 버틸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을 보십시오.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4-6)

 

4절이 마치 이렇게 들립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네가 코로나에 걸리지 아니하고 네가 건강하게 잘 지냈느니라.’ 마치 이렇게 들리지 않습니까? 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잘 지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광야는 하나님께서 직접 양식을 공급해주시는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광야에서는 인간 스스로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공급할 길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힘으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명령만 지키고, 그분만 따라가며, 그분만 경외하는 법을 배우는 곳입니다. 광야에서는 인간적인 힘을 빼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훈련하게 됩니다.

 

 

2.   아름다운 땅의 유혹

 

그런데 그 다음에 보면, 이 아름다운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땅의 유혹이 있습니다. 그 다음 7-10절을 보면, 마치 한 편의 시처럼 가나안 땅을 설명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가나안 땅에 대해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7)

 

첫째로, 가나안은 아름다운 땅, 좋은 땅으로서, 더 이상 극한 상황에 이르러야만 기적을 통해 솟아나는 물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겁니다.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지하수가 흐르고 샘물이 나고 시냇물이 흐르는 땅입니다. 한마디로 물이 아주 풍성한 땅입니다. 저 남쪽 유대 광야 등을 빼면 물이 많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8)

 

둘째로, 가나안 땅은 곡식이 풍성한 땅이라는 겁니다. 더 이상 만나가 내리기를 기다려서 그것을 받아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곳은 밀과 보리가 자라고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가 나는 땅이며, 올리브기름과 꿀이 생산되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 갔을 때 무화과를 먹어봤는데 정말 답니다.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9)

 

셋째로, 가나안 땅은 먹을 것이 모자라지 않고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땅입니다.

그리고 넷째로, 가나안 땅은 돌에서 철을 얻을 정도로 철이 흔하고, 산에서 동(구리)을 캐낼 수 있는 땅입니다. 이런 땅이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광야의 위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10)

 

이렇게 좋은 땅이고 옥토인데, 왜 하나님은 요단강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시고 모세를 통해 이 신명기라는 긴 설교를 듣게 하십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아무 부족함 없이 풍족한 이 땅이 사실은 광야보다 더 위험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풍요로운 이 땅이 광야보다 더 위험한 곳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좋은 땅이 왜 위험하다는 말씀입니까? 이 땅은 그 안에 인간을 유혹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바로 그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8장을 통해 계속 반복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억하라입니다. 그리고 잊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라입니다. 사실은 이 말들이 신명기 전체의 요약입니다. ‘기억하라. 조심하라.’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11-14a)

 

땅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 최고의 유혹인데, 바로 이 풍요로운 가나안 땅이 그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광야의 궁핍과 위험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적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나안 땅의 풍요, 자기 힘으로 조금 노력해서 얻게 되는 풍요로움 때문에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해서 은금과 곡식과 과일을 많이 얻어 풍성하네. 그러니 하나님이 필요 없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 그것을 지적하며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7)

 

이것이 바로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역할을 이제 땅이 대신하게 된다는 겁니다. 사실 땅에서 얻는 풍요로움이 하나님을 대체한다는 겁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며 광야에서 살다가, 이제는 이 땅에 들어와서 조금만 일해도 막 얻으니까 별로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지 않고 이제는 자기들이 스스로 삶을 계획하고 이끌어가는 삶을 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땅만 생각해도 24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며 바쁘게 움직여야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가지고 더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나가서 일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인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고 나니까, 이제는 오히려 하나님 없이 살아도 괜찮다고 하며 별 지장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는 겁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는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부담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제사를 적당히 드려서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고 뒤로 가서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열심히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제사를 빨리 해치우고 나서 뒤로 가서는 딴짓을 했습니다. 그들의 비극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더 이상 의지하지 않고 자기들의 힘으로 살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 삶의 주인이 자기라고 생각하며 살게 된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제 코로나 백신이 나왔으니까, 더 이상 마음 졸이며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지 않아도 되고, 과학과 의료진을 의지하며 살면 되겠다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성경 속에 살아 계신 분이시고,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시다고 우리가 분명히 믿습니다. 그렇지만 내 삶 속에 하나님이 별로 역사를 안 하셔도 나 혼자 괜찮게 살 수가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별로 필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나니까, 정작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땅을 자기들의 신으로 섬기게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기 마음을 살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정말로 하나님을 원합니까, 아니면 풍요로운 땅을 원합니까? 나는 정말로 하나님을 의지합니까, 아니면 의학이 주는 안전과 건강을 의지하는 것입니까? 땅이 주는 달콤함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모세는 그것에 대해 무섭게 지적하며 경고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18-20)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말씀 중에 시편 23편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1)

 

다윗의 유명한 시편입니다. 우리가 너무 사랑해서 암송하기까지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한 뒤에 그것이 변질되었습니다. 물론 한참 후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라고 고백했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땅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며 변질됐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사랑하지만 이 말씀을 이렇게 바꾸어 생각하고 있습니다.

 

돈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학벌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건강한 몸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자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지금 돈을 벌지 말라거나, 좋은 학벌을 추구하지 말라거나, 건강한 몸을 가지면 안 된다거나, 자녀를 돌보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그것들을 주신 분이 누구냐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이나 학벌이나 건강한 몸이나 자녀가 나에게 생명을 주고 풍요로움을 주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를 통해서 주시는 겁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하나님은 그것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gift)에 취해서 주신 분(Giver)을 잊어버리고 엉뚱한 것을 섬기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없어지면 절대로 안 되는 것처럼 벌벌 떨며 걱정하고 살아갑니다.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한 번 잘 점검해보십시오. 혹시 내가 하나님 없이는 살아도 이것 없이는 못 살겠다고 하는 게 혹시 있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내가 빠져도 이것은 절대 안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게 혹시 있습니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하나님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나의 진짜 목자인 것입니다. 내가 진짜 섬기는 건 하나님이 아니라 바고 그겁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부족함 없는 삶이 하나님에게서가 아닌 땅에서 온다고 믿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땅의 것을 자신의 목자로 섬기며 살게 되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서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세상으로부터 바로 그 메시지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고 땅이 너의 목자다. 땅이 너에게 부족함 없는 삶을 준다.’ 이것이 사실은 사탄의 메시지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속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네게 필요한 것은 내가 다 안다.’ 마태복음 6장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필요를 다 아신다고 합니다. ‘네게 필요한 것을 내가 다 알고 있으니까 내가 네게 주겠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탄은 뭐라고 합니까? 우리에게 끊임없이 염려하라고 합니다.

 

, , 돈이 다 떨어져서 굶으면 어떡할래? 돈 없으면 죽어. 그러니까 기도와 말씀과 예배는 나중에 해도 되니, 지금은 빨리 일해서 돈을 모아야 돼.’ ‘, 병이 나서 고생하면 어떡할래? 그러니까 열심히 운동해야지, 기도는 무슨 기도? 성경공부는 무슨 성경공부?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되니까 일단 건강부터 챙겨!’ ‘네 아이가 공부 못하고 사회에서 뒤쳐지면 어떡할래? 그러니까 일단 공부와 운동과 음악과 과외 활동부터 시켜야 돼. 교회 다니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건 나중에 해도 되니까 지금은 그런 것들부터 먼저 시켜. 시간이 지나가면 시키고 싶어도 못 시킨단 말이야. 아이가 커버린단 말이야.’

 

사탄은 결코 우리에게 해로워 보이는 것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사탄이 바보가 아닙니다. 굉장히 똑똑합니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 우리가 살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거기에 먼저 헌신하게 만듭니다. 그것을 먼저 구하게 만듭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 안에 어떤 마음이 듭니까?

 

내 가족이 안전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내 자녀가 실패하면 어떡하지? 돈이 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실패해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 어떡하지? 병에 걸리면 어떡하지?’

 

사탄은 우리가 땅의 것을 먼저구하게 함으로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을 낭비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6:33에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거기서 핵심 단어가 먼저입니다. 다른 것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것을 구하라.’ 그런데 사탄은 뭐라고 합니까? ‘먼저 이 모든 것을 구하라. 하나님의 것은 좀 나중에 해도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필요를 다 아신다는 사실을 믿으면서 내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정말로 다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인의 삶,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지금 나는 무엇이 내 삶에 풍요로움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있습니까? 무엇이 나의 삶을 성공적으로 만든다고 믿고 있습니까? 그것을 우리가 점검해보아야 하겠습니다.

 

 

3.   오직 말씀으로

 

결국 우리는 오직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이야기해줍니다.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살아갈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광야에서든지 가나안에서든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완전한 착각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잘못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하면서 자꾸 다른 신들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18a)

 

기억하라!’ 신명기의 핵심 단어입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 앞에서 단단히 명심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2절을 다시 보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2a)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거든 광야에서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었는지 기억하라는 것,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인 가나안에 들어가 풍요롭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당연히 우리가 풍요롭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 땅 안에서 살면서 땅을 초월하며, 그 땅의 가치관을 초월하며 하늘의 가치관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가나안이라는 땅에서 정착하여 살되, 정신은 마치 광야에서 사는 것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만 기억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라는 것입니다. 광야를 기억하며 옥토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땅이 주는 풍요로움에 푹 빠져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그렇게 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기도를 하신 후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실 때 예수님이 인용하신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3)

 

광야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누리는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붙들고 가나안에 들어가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광야에서의 삶을 기억하며 가나안으로 들어가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았던 그것을 기억하면서,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우리는 그저 이 땅에 푹 취해서 살다가 죽는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길은 없습니다. 광야에서 붙들었던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풍요로운 가나안 땅의 유혹에서 건져줍니다.

 

작년 바로 이맘때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새해맞이 감사예배 때 2020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누가 이렇게 될지 알았습니까? 지금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2021년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전망하는 것처럼 2021년에는 이미 백신도 나오고 해서 2020년보다 상황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좋아지고, 그러다 보면 경제도 더 나아지리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상황이 더 좋아지는 것, 더 풍요로워지는 것이 반드시 축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오히려 저주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원합니다. 우리가 상황이 더 좋아지고, 아주 잘 풀리고, 모든 것이 잘되고, 2021년에 2020년보다 훨씬 좋아졌는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면 그것이 어떻게 축복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크나큰 재앙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광야 같은 2020년 동안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광야 같은 지난 10개월 정도의 삶 속에서 정말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갔던, 하나님만 의지하며 나아갔던 바로 그런 간절한 마음을 2021년에 상황이 잘 풀린다 해도 잊지 않기 원합니다. 기억하기 원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2021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든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나아감으로, 새해에 아름다운 믿음의 삶으로 나아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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