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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4일 수요예배
✦ 바울에게서 배우는 성화의 기도 6 ✦
“국가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
(디모데전서 2장 1~2절)
1. 사역의 우선순위인 중보기도
디모데전서는 흔히 목회서신으로 불립니다. 디모데전서와 후서, 그리고 디도서는 사도 바울이 노년에 자신의 목회 후배이자 믿음의 아들로 여기던 디모데와 디도에게 쓴 편지입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이 디모데전서에서 당시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하던 디모데에게 어떤 자세로 목회하며 또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목회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사역의 스승으로서 제자에게 권면하는 편지를 시작할 때 보통은 ‘내가 너에게 권한다. 첫째, 이렇게 저렇게 해라.’ 하면서 특히 첫째는 ‘목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설교다. 설교 준비를 철저히 하고 감동적인 설교를 전달하라.’ 하며 시작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뭐라고 하며 시작합니까?
“그러므로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와 기도와 중보 기도와 감사 기도를 드리라고 그대에게 권합니다.” (1절, 새)
다시 말해, 중보기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사역자의 우선순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를 하기는 하되, 누구를 위해 먼저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 중에도 당연히 병들고 아프고 실패하고 인생의 어려움 때문에 힘들어 하는 지체들을 위해 먼저 기도하라고 권하는 것이 합당한 충고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시금 우리의 상식을 깨는 권면을 전합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2절)
하나님도 권력에 약한 분이시고 높은 자리를 좋아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런 권면을 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2절의 뒷부분을 보면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알게 됩니다. 기도함으로써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입니다.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높은 지위에 있는 지도자들의 결정이 바로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은 나라와 사회의 정책을 결정하고 이끌어갑니다. 그런데 그들의 결정에 가장 민감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사회적 강자들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사실 한국을 보면 재벌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누가 되어도 잘 갖다 바치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약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중보기도 리스트에 국가 지도자들을 올려놓고 기도를 시작한다고 해보십시오. 우리가 어떤 지도자들을 위해 먼저 기도해야겠습니까? 내가 투표해서 뽑힌 높은 지위에 올라간 지도자들, 즉 내가 선호하는 지도자들을 위해 먼저 기도하는 것이 바른 순서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기도하라고 말한 ‘임금들’ 중에 로마시대에 가장 높은 임금이 누구입니까? 황제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의 로마 황제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다름 아닌, 바로 그 악명 높은 네로 황제입니다. 결국 네로 황제의 명령 때문에 바울이 목이 잘려 죽는 참수형을 몇 년 후에 당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네로 황제를 위해 기도하라고 디모데에게 명령합니다.
네로는 로마 방화의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려 잔인하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사람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파괴했고 크리스천들을 흩어버린 악독한 황제입니다. 그래서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네로라고 하면 이를 가는 공적 1호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네로와 그 아래에서 함께 일하는 지도자들을 위해 먼저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 명령을 우리의 상황에 적용해본다면 우리의 중보기도 리스트 1위에 와야 할 임금이 누구이겠습니까? 이름을 듣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아베 총리... 무슨 느낌이 드십니까? 지금 이 순간으로서는 일본의 아베 총리가 한국 사람으로서 가장 이를 갈 만한 사람 아닙니까?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존경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의 대화 파트너인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역시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중국의 시진핑(습근평) 주석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별로 인상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까? 얼마나 합니까? 사실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솔직히 이들을 욕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는 별로 안 합니다. 이들을 비난한 것과 기도한 것을 시간으로 비교해보면 엄청난 차이가 날 겁니다. 비난하는 것이 훨씬 많고, 기도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꾸준히 기도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명령입니다. 바울은 곧 자기를 목 잘라 죽일 네로 황제를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비록 내가 찍은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나는 다른 사람을 찍었는데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더라도, 비록 내가 싫어하는 방향을 추구하는 지도자라도,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바른 태도입니다.
미국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에서 지난 몇 년 동안 벌어진 일들을 보면, 뉴스를 보면서 분개하고 괴로워하고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고 비난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 크리스천들이 너무 기도하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닌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잘못 가는 지도자를 위해 얼마나 기도했습니까? 부끄러운 형편입니다.
물론 이전의 독재정권 시절에 조찬기도회에서 목사님들이 독재자를 찬양하던 식으로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들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잘못할 때는 당연히 비판도 해야겠지만, 무엇보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2. 우리의 사람됨에 영향을 끼치는 중보기도
오늘 짧은 디모데전서 본문을 통해 우리가 국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참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경건하고 품위 있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하기 위함입니다.” (2절, 새)
기도할 때 갖는 잘못된 태도는 우리가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우리 자신을 바꿔 놓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바뀌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뀝니다. 바울은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경건’은 하나님을 향한 태도를 강조하는 말이고, ‘단정’은 사람들을 향한 태도를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경건’과 ‘단정(품위)’, 하나님을 향한 태도와 사람들을 향한 태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면 두 가지 복이 따라옵니다.
1) 경건한 사람이 되는 복
2절에 나오는 ‘경건’과 ‘단정’이라는 두 개의 단어를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경건은 헬라어로 ‘유세베이아(eusebeia)’라는 단어인데, ‘eu’(well, 잘)라는 단어와 ‘sebomai’(존중하는, 예배하는, 헌신하는)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경건은 ‘하나님을 존중하고 그분에게 삶을 드리는 예배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영어로도 경건이 ‘godliness’입니다. piety라는 말도 있지만, godliness는 하나님을 닮은 태도를 뜻합니다.
우리 크리스천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예수님 닮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태도로 그분을 닮아가는 삶을 산다’ 하는 의미입니다. 기도하게 되면 기도는 우리를 경건한 삶으로 인도하고 경건한 사람이 되게 해줍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사람이 되게 해줍니다.
2) 단정한 사람이 되는 복
‘단정’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셈노테스(semnotes)’인데, ‘타인을 향한 진지함’과 ‘정중함’을 의미합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NIV에는 ‘holiness’(거룩)이라고 되어 있고, NLT에는 ‘dignity’(위엄)라고 되어 있으며, Good News에는 ‘proper conduct’(적절한 행동)라고 번역되었습니다. 결국 ‘단정’이란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새번역에서는 ‘단정’을 ‘품위’로 번역했는데,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정중하게 대할 줄 모르는 사람은 품위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품위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나와 의견이 달라도, 싸우며 욕하는 사람을 가리켜 품위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의견이 다르고 맞서 싸워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데 절제하면서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을 향해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런 사람을 품위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품위 있는 사람입니까?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한다면, 내가 기도하는 그 사람을 향해서 증오와 경멸로 가득 찰 수가 없습니다. 굉장히 미운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위해 일단 기도하기 시작하면 미움이 누그러뜨려집니다. 오히려 기도의 대상을 불쌍히 여기기 시작하게 됩니다. 내가 너무 미워하고 싫어하던 사람인데, 기도하니까 불쌍히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며 존중하게 됩니다.
이웃을 위해 많이 기도하는 사람은 인간을 가볍게 다루지 않게 되며, 오히려 진지하고 정중하게 대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기도의 복입니다. 기도, 특히 중보기도는 우리를 단정한 삶으로 인도하고 우리를 품위 있는 사람이 되게 해줍니다.
그런데 요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어떤 경우를 보면 왜 그렇게 경박하고 천박한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까? 왜 교회에서 싸우는 일이 일어나고 분열이 일어납니까? 그 이유는 굉장히 간단합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게 되면 내가 기도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니까 막 대하며 막말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는 우리로 하나님을 향해서는 경건한 사람이 되게 해줍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얘가 내 아들 예수를 많이 닮았구나’라고 하시게 하고, 사람을 향해서는 단정한 사람, 품위 있는 사람이 되게 하는 복이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사람됨에 이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요번에 중보기도 헌신자 8기인데, 매번 하시는 분들은 특히 복 받은 분들입니다. 중보기도실에서 기도하는 것은 일단 교회를 위해서 너무나 귀한 사역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중보기도자들이 중보기도해주시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중보기도 헌신자 자신을 위해서도 굉장히 유익한 사역입니다. 그렇게 남을 위해 자꾸 기도하다 보면 경건한 사람이 되고 단정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귀한 복을 받습니다. 앞으로 9기가 될 때 많이 신청하셔서 경건하고 단정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삶의 상황을 결정하는 중보기도
우리가 국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더 큰 이유는, 그러한 우리의 기도가 우리 삶의 상황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갈망하는 성경적 삶의 특성 두 가지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요’와 ‘평안’입니다.
2절을 보시면, 우리가 추구하는 삶이 고요하고 평안한 삶 아니겠습니까? 사실 외부적인 삶의 요인에 의해 흔들리고 영향 받고 불안해하는 삶이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살아온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보통 사람들,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보통 한국 역사를 반만년(오천 년)이라고 하는데, 백성들은 항상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우리가 지도자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외적으로 고요하고 내적으로 평안한 삶을 살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1) 고요한 삶을 가져다주는 기도
국가 지도자들의 결정에 의해 우리 삶은 아주 시끄러운 삶이 될 수도 있고 고요한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누가 지도자인가에 따라 상황이 많이 달라집니다. 독재시대 때 독재자가 정권을 잡고 있으면 아무래도 그런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잡으면 다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랫동안 우리 민족이 갈망해온 나라의 이미지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조선’(朝鮮)이라는 한자어의 뜻에서 나왔다고 보입니다. ‘조’(朝) 자는 아침을 뜻하고, ‘선’(鮮) 자는 깨끗함을 뜻하니까, 조용함을 뜻한다는 의미에서 영어로 ‘Morning calm’이라고 했습니다.
오래 전 선교사들이 조선에 와서 복음을 전할 때, 이 나라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나라 이름을 분석해보고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 정말로 그러한 나라가 될 가능성을 보고서 흥분했다고 합니다. ‘조’(朝) 자를 보면 日(태양)과 月(월, 달)이 있고, 日 위와 아래에 십자가 두 개가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낮이나 밤이나 십자가가 다스리는 나라, 그것이 이 나라의 미래가 되기를 선교사들이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 민족은 바람 잘 날 없는 고통스런 사건들의 연속으로 불안과 염려와 긴장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현대사도 비극적입니다. 분단의 비극도 일어나고, 지금까지 74년 동안 분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진실하게 기도할 때 고요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2) 평안한 삶을 가져다주는 기도
우리를 둘러싼 외부적인 환경의 고요함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외적인 환경이 좋아도 자기 마음이 지옥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백성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에 평화가 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여기서 ‘평안한’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흔히 ‘peaceful’로 번역되는데, 때로는 ‘안정한, 정숙한’이란 뜻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벧전 3:4, 새)
여기서 ‘정숙한’이라는 단어와 디모데전서 2장 2절의 ‘평안한’이 같은 헬라어 단어입니다. 상황이 요동치는 긴장이 아니라 ‘안정된 평화’가 이 땅에, 그리고 이 땅에서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런 평화가 우리에게 임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이것이 바로 기도의 은혜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여 지켜줍니다. 기도한다고 상황이 확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어려워도 그 상황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부가 아무리 흔들려도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가능한 모든 형태의 기도를 함으로써 우리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 빌립보서 4장에는 ‘기도, 간구, 감사함’이 나오는데, 1절에는 ‘기도, 간구, 도고, 감사’가 나옵니다. 사실 같은 내용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여러 형태의 기도 방식은 모든 방법의 기도를 권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각 기도마다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간구’는 특별한 일을 놓고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일반적인 기도의 요청을 말합니다. ‘도고’가 중보기도를 말하는데, 특별히 누군가를 위한 위기 상황의 중보기도입니다. 누군가가 갑자기 아픈 경우 위기 상황 속에서 긴급한 기도 요청을 하고 함께 중보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응답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하지만, 특히 국가 지도자들을 위해서 간구하고 기도하고 도고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게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조국의 상황에 관련된 국가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가 아주 절실합니다.
우리나라의 평화통일을 생각할 때마다 연상되는 기도회가 있습니다. 과거 동독에 속했던 독일의 라이프치히(Leipzig) 시에 있는 성 니콜라이 교회의 평화기도회입니다. 1982년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5시마다 기도회 참가자들이 모여서 노란색 종이에 기도제목을 적은 다음, 촛불을 켜고 기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기도회를 시작한 사람은 크리스티안 퓌러(Christian Führer) 목사인데, 그는 이 기도회가 겨자씨만큼이나 작게 시작되었다고 회고하면서,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위대한 결과를 위해 이 기도회를 사용하실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원래 이 기도회는 단 6명만 참석하는 작은 기도회였습니다. 그러나 퓌러 목사는 꾸준히 기도회를 이끌었고, 기도회 중에 간간히 독일의 미래에 대한 자유 발언 시간을 허용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주 반복적으로 독일의 미래에 대한 의견 표현의 중요성,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기도의 중요성, 또 무엇보다 비폭력적 평화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의견 발표 후에는 다시 기도제목을 주님께 올려드리고 기도회를 마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7년이 지난 1989년 10월 9일, 성 니콜라이 교회를 포함한 인근 교회에 3천 명이 모였고, 기도회 후에 열린 평화 시위에는 7만 명이 모여서 비폭력과 평화를 외쳤습니다. 그날의 치안 책임자가 후일 고백하기를, “우리는 그날 시위를 대비한 모든 준비를 갖추었지만, 모인 사람들의 기도와 촛불에 대하여는 준비되지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침내 그로부터 한 달 후인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독일의 평화통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조국을 위해 우리의 간구, 우리의 기도, 우리의 도고, 그리고 우리의 감사를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모인 숫자와 상관없습니다. 또 우리가 여기 멀리 나와 있어서 ‘우리가 그런 것을 위해 기도한다고 되겠습니까?’라고 할지 몰라도, 예 됩니다. 괜찮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지난 번 김연수 목사님이 기도는 절대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정말입니다.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건망증이 없으십니다. 다 들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지도자들을 위해서도 간구, 기도, 도고,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려야겠습니다. 좋든 싫든, 한반도 상황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핵심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또 미국 자체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에한국이든 미국이든, 우리가 지도자들에 대해서 욕과 비판은 많이 하지만 기도는 별로 하지 않는 게 사실 아닙니까?
이제 우리의 마음 자세를 바꿔야겠습니다. 어떤 뉴스를 보실 때마다 기도해주십시오. 대통령이 나라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고 할 때, 개각을 할 때, 대선이나 총선이 있을 때,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찍어야겠다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누가 되든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누가 되면 인정을 못 한다고 하거나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되든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바른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땅 가운데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
➤ 결단의 기도
1) 우리나라와 주위 국가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일본의 아베 총리, 중국의 시진핑 주석,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
2)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 자신이 경건하고 단정한 사람이 되도록
3) 국가 지도자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통해 고요하고 평안한 삶을 누리는 사회가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