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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2일 수요예배
✦ 치유기도 8 ✦
“억압된 기억의 치유”
(예레미야 31장 31~34절)
1. 기억의 세계
한 달 정도 후면 한국의 최대명절 중 하나인 추석입니다. 명절이 될 때마다 주부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는데, 이제는 한국의 백화점 직원들이 명절 때에도 한복 대신 정장을 입고 일한다고 합니다. 주부들이 한복을 보는 순간 명절에 안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억이 있으십니까? 하나님도 기억하시지 않는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자주 떠올리며 힘들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일상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상한 감정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면 마음속에 뭔가 억압된 기억이 있는 것이고, 그것으로부터 치유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새 언약” 즉 신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옛 언약’ 즉 구약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주겠다고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새 언약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34절)
첫째, 새 언약은 마음에 기록되어 언제나 지킬 수 있게 됩니다(33). 옛 언약, 즉 율법은 돌 판에 주어졌는데, 새 언약은 마음 판에 새겨져서 언제 어디서든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34). 그리고 그 다음이 중요한데, 하나님께서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34). 죄를 용서해주실 뿐 아니라(forgive) 잊어버려 주십니다(forget).
‘기억하다’라는 단어가 성경에 250번 나옵니다. 그 중 75번은 하나님과 관련된 것인데, 주로 하나님의 언약이나 그 백성에 관한 것입니다. 나머지는 실수와 같은 것들을 기억하지 말라고 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면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안타깝게도 계속해서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요즘 인공지능(AI)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데, 심장과 폐는 인공으로 만들어서 대치할 수 있지만, 아직 뇌는 인공으로 대치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죽음의 공식적인 정의가 뇌사인 것처럼, 뇌는 생명이 있는 한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뇌에는 130억 개의 신경세포들이 있고, 대부분의 세포들은 5,000개의 신경세포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런 뇌의 조직 안에 기억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1) 장기 기억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의 저자인 대니얼 쉑터(Daniel Schacter) 박사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어머니 뱃속에 잉태되고 6~8주부터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 정도면 사진에서 점 정도 크기 밖에 안 되는데도 다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경험들은 단어가 아니라 그림으로 기억되며, 인간은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을 더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많은 일들이 기억 속에 남아있지만 기억을 못하는 이유는 그 기억을 의식화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억에는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있는데, 감정적 치유와 관련되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장기 기억입니다. 장기 기억에도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과정적 기억(procedural memory)입니다.
이것은 몸이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저장하는 장소로, 자동차 운전이나 자전거 타기와 같은 운동기술, 분노, 수치, 죄책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삶의 경험에 대한 반응인 감정적 반사작용을 관장하는 기억입니다.
둘째는 언어적 기억(semantic memory)입니다.
단어와 논리에 근거한 사실과 정보에 대한 기억을 말하며,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뉴스나 텔레비전에서 보고들은 것, 또 교회에서 들은 설교 말씀이나 성경지식이 여기에 속합니다. 우리는 이런 정보가 보관되어 있는 언어적 기억 창고에서 필요한 정보들을 규칙적으로 호출해내어 기억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삽화적 기억(episodic memory)입니다.
이것은 우리 삶에 가장 영향을 주는 기억으로, 그림에 근거하는 기억입니다. 느낌과 감정, 그리고 관계와 개인적 경험에 대한 기억으로, 감정적, 영적 치유를 위해서는 삽화적 기억을 반드시 다루어야 합니다.
2) 감당하지 못할 기억을 차단해주는 기억 매장 시스템
자살하고 싶은 충동과 우울증세가 반복되는 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치료 과정에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임신했을 때 가족 중 한 사람이 자살하는 것을 목격했던 것입니다. 그가 직접 본 것은 아니었지만, 태중에서 어머니와 함께 목격한 충격적 사건에 대해 상처를 받았는데, 기억의 치유를 통해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태아나 갓난아기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들으며 기억한다고 합니다. 아기는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으며, 분명한 단어를 몰라도 자기가 느낀 것을 체계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을 대하는 어머니(또는 양육자)의 태도와 아빠와 엄마 사이의 관계가 태아와 아기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태교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미국이나 서양에서는 나이를 따질 때 태어나는 순간부터 계산해서 만 나이로 따지는 반면, 잉태의 시점을 나이로 환산해서 계산하는 한국의 나이 계산법만 보아도, 태교를 중요시한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뇌 과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뇌에는 나쁜 감정들을 정기적으로 매장시키는 시스템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해로운 감정 때문이 우리 자신이 무너지는 것을 막고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는데, 자동차 사고와 같이 큰 사고를 당했을 때 그 순간 기억이 끊어지는 것도 여이게 해당됩니다. 과부하가 일어나면 전기회로가 끊어지는 것처럼, 감당하기 힘든 기억들을 차단해주는 은혜로운 기능인 것입니다.
그런데 엄청난 사건이나 사고를 당할 때 흔히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 하고 생각하지만, 그 기억은 우리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잠재의식 속에 있다가 극심한 스트레스나 안 좋은 상황에 놓이게 될 때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과거의 일이지만 그 사건이나 사고에 대한 기억과 우리의 반응, 즉 감정과 느낌은 우리 뇌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구사일생 살아 돌아온 참전용사들에게 평생 따라다니는 트라우마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떨쳐버릴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기억으로 인하여 피폐한 인생을 살거나, 가족까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쓰나미로 인해 18,000명의 사상자가 나왔는데, 그 시체를 수습하던 일본 의사들에게 정신착란 증상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이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일을 당하여 마음이 억압될 때, 악한 세력이 우리 마음에 역사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통하여 생긴 부정적인 감정(거절감, 두려움, 슬픔, 미움, 분노, 낙심, 실망, 절망 등)을 해소하지 못할 때, 그것은 육체적인 질병을 일으키고, 심할 경우 믿음으로 치유 받는 것도 상당히 어려워집니다.
이렇게 기억의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특별히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닌데 격한 감정적 반응을 나타냅니다.
둘째, 자신의 감정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무시하면서, 그렇게 고통을 무시하면 완전히 없어지는 것으로 잘못 생각합니다.
셋째, 영적 가면을 쓰고 그 가면에 맞추어 살려고 애를 씁니다. 가면을 쓰고 ‘내가 이런 사람이다’라고 보이려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봉사, 성경읽기, 제자훈련과 같은 일과 사역에 몰입하는데, 가면을 쓰고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작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며 신앙이 성장하지 못합니다.
넷째, 마음의 병이나 내적인 고통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더 열심히 실천하면 해결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2. 억압된 기억의 치유를 위하여
L 집사는 10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수년간 아버지와 둘이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L 집사를 학대했습니다. 그리고 낯선 여자들이 줄지어 집으로 왔습니다. 그에게는 집안일 등 과다한 책임이 지워졌고, 그는 고독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L 집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행복한 시간에도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감정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생존해야 했기 때문에, 우는 것이나 슬픔에 잠기는 것을 허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를 악물고 독하게 살다 보니, 감정을 느끼는 것이 두렵고, 지금은 어떻게 느끼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무감각해졌습니다.”
이러한 L 집사에게는 억압된 기억과 감정의 치유가 필요합니다. 인간의 내면은 깊은 우물과 같아서, 수면 밑의 세계와 접촉하려면 기억을 호출해야 하는데, 이것은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억을 캡슐에 비유한다면, 캡슐 안에는 사건의 진실과 그 당시 우리가 느꼈던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을 숨겨 놓고 살다가, 어느 순간 이전의 안 좋았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면, 물속에 숨겨놓았던 캡슐이 수면 위로 갑작스럽게 떠오르게 됩니다.
캡슐 안에 있는 것이 해로운 감정이라면, 치유를 위해 캡슐의 내용물을 처리해야 합니다. 이미 일어난 사건을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의 감정과 생각은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캡슐을 개봉해야 하고, 사건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추적하여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의 능력 안에서 그 감정을 처리해야 합니다.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과 감정이 담긴 캡슐을 개봉하지 않고 억압하다 보면, 삶 속에서 많은 감정적,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이것은 물놀이 공을 물속에 넣어보려고 애쓰는 것과도 같습니다. 평소에 억압된 기억들은 수면 아래 잠겨 있다가, 질병이나 불행한 결혼생활, 또는 자녀 문제 같은 형태로 다시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부정적인 기억들을 가지고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기억들을 억압하거나 눌러 버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무시하거나 억압한다고 해서 기억이 치유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아픈 상처를 다시 직면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건의 삶’이나 ‘새로운 삶’ 공부를 할 때 과거의 상처들을 돌아보게 할 때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기억도 하기 싫은 것을 기억하라고 하느냐?’라고 반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기 싫다는 것은 해결이 안 되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힘든 기억이라도 해결이 되었으면 다시 돌아봐도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해결이 안 되었는데 자꾸 끄집어내어 보라고 하면 반발하는 겁니다. 해결이 안 되어 힘들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은 사탄이 원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들을 대면하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왜냐하면 상처가 치유되어 우리가 회복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과거에 대한 충격과 막연한 두려움을 통해 우리를 옭아매거나, 잘못된 정보에 의한 거짓 믿음에 속아서 분노와 증오와 자기비하와 죄책감 속에서 살도록 하려고 유도를 하는 겁니다.
아픈 상처의 기억을 끌어내는 것은 감정적 수술과도 같습니다. 몸의 상처를 잘 치료하지 않고 방치해놓으면 2차 감염이 되어서 점점 더 악화될 수가 있습니다. 그것처럼 감정적인 상처들이 보통은 우리의 의식 아래에 있지만 때로는 현실 속에서 ‘과잉반응’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상한 감정의 치유>를 비롯하여 치유에 관한 여러 책들을 쓴 데이비드 씨맨즈(David Seamands)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받은 자극의 정도보다 더 심한 반응을 나타낸다면, 아마도 당신 안에 깊이 숨겨 있던 감정적 상처가 건드려졌을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자극의 정도에 비해 아주 심한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속에 뭔가 해결되지 않은 상처가 건드려진 것입니다. 만약 나 자신이나 주변에서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눈으로 봐주어야 합니다. 특히 주변 형제자매들을 자비와 은혜의 눈으로 봐주면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해결이 안 됐기 때문입니다. 아픈 상처는 정말 힘들지만 꺼내어 해결해야 합니다.
3. 기억 치유의 감정적인 요인들
1) 과잉반응
학대와 폭력은 육체적이건 감정적이건 성적이건, 한 개인에게 엄청난 상처를 줍니다. 그리고 그 아픈 사건으로 인하여 일어난 감정적, 영적 과잉반응은 피해자들에게 더욱 심각한 상처를 입힙니다.
어느 교회에서 치유기도의 시간 후에 M 집사가 강사를 찾아왔습니다. M 집사는 어릴 때 삼촌에게 성추행을 당했는데, 그 기억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가족에게 당한 너무 충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M 집사는 수십 년 간 이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며 살아왔습니다. 또 그때 엄마에게 이 사실을 고백했지만 엄마는 자기에게 아무에게도 이것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 엄마의 반응은 자신이 그 사건에 책임이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그러나 강의를 통하여 그 기억을 떠올렸을 때 분명 그것은 일어났던 사건이었고, 동시에 자기에게는 잘못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우울증과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던 이름 모를 헤스테리 증상의 원인이 바로 그때 그 사건 때문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은 강사 목사는 M 집사와 함께 가해자를 용서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가해자에게 편지를 쓰도록 했습니다. 대면하여 말하게 되면 상대방이 부인할 가능성이 크고, 편지의 목적이 상대방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 생긴 M 집사의 상처와 아픔을 표현하는 것이 치유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 후 M 집사는 점점 회복과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경건의 삶’ 때 하는 훈련이고 ‘새로운 삶’ 때 숙제를 하는 내용입니다.
2) 자신을 대적하는 부정적 감정
자신에 대한 부정적 태도와 감정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 때문입니다. 자기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 내면은 ‘바보 같은 놈! 못난 놈! 그렇게 칠칠맞게 행동하니 그런 일을 당하지! 창피한 줄 알아라!’와 같은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을 비하하는 부정적 언어를 계속 생각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며, 누군가가 시작한 그 말은 그 가정에서 세대를 이어 반복됩니다. 데이비드 씨맨즈는 이 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수많은 찬사는 쉽게 망각하면서도 단 한 가지 비판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것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잠재의식 속에 받아들인 정보에 끊임없이 집착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자기학대를 하는 것이다.”
3) 분노를 품고 사는 문제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 때 종종 분노와 복수심으로 반응하는데, 그것은 쓴 뿌리와 우울증으로 발전합니다. 그런 태도는 자신의 내면에 엄청난 영적, 감정적 쓰레기를 만듭니다. 하나님은 긴장을 푸는 도구로 우리에게 분노를 허락하시는데, 분노라는 감정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문제는 우리가 분노의 감정을 계속 품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엡 4:26-27)
어떻게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나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분을 내는 의로운 분노라면 그것이 가능합니다. 예수님도 성전을 청결하게 하실 때 채찍을 휘두르고 상을 엎으면서 분노하셨습니다. 그것이 의로운 분노인데, 솔직히 인간에게는 의로운 분노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또 아무리 의분이라도 해가 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그것은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어떤 사건이 벌어져 의로운 분노를 보였더라도 그것을 그날 해결해야지, 다음 날로 넘어가면 마귀가 역사하는 장을 만들어주는 게 됩니다. 마귀는 우리의 노하는 감정을 통해 장난을 치며 역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실수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빨리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분노하게 되면 더 심각한 일이 발생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신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 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약 1:19-20, 새)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도 노하게 되면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부분을 잘 해결해야 되겠습니다.
4) 수치심과 죄책감과 속임
사탄은 부모나 다른 중요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바보 같은 녀석! 창피한 줄 알아!”와 같은 말을 자주 내뱉게 함으로 수치심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사탄의 일입니다. 또한 이미 하나님께 고백하고 용서받은 죄에 대해서도 또 다시 죄책감의 수렁에 빠지도록 만듭니다. “네가 뭘 했는지 그 결과를 봐라.” “네 탓이잖아. 이 문제는 네 책임이야.” 이런 말을 반복하면서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사탄은 진실을 기만하고 나에게 책임이 있다고 속여서 거짓 믿음을 갖고 살게 만듭니다.
5) 두려움의 부하격인 염려, 걱정, 공포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예수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마 6:31-33, 새)
하나님은 온 우주를 돌보시듯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마련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적 마귀는 우리 삶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상상하여 미리 염려하게 만들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안절부절 하게 만듭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두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이것은 뇌의 구조와 관련이 있는데, 남성의 뇌는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처리하기에, 단순하지만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직종에는 남성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을 봅니다. 반면 여성의 뇌는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게 창조하셔서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자 분들이 보기에 남자가 답답해 보이는 겁니다. 하지만 또 그런 이유로 사탄은 여성이 쓸 데 없이 많은 일에 대해 예민하게 신경을 쓰고 염려하도록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4. 그때 우리와 함께 계셨던 예수님의 은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아주 헌신적이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사고와 학대와 고난의 사건들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신실한 신앙인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하나같이 힘든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픔의 자리에만 머물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모든 고난을 극복했습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경험한 상처와 아픈 기억들을 치유하려면 예수님께서 그 사건 당시 그 자리에 함께 계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수치에도 함께 참여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장된 기억들은 영상화를 통해 치유될 수 있는데, 성령님은 우리가 회상할 수 없었던 기억들을 호출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이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능하신 주님과 함께 그 사건을 연상하여 우리 기억의 내면으로부터 예수님의 치유하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억의 치유는 기억 속에서 함께 하신 예수님께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올려드리고 “원수 갚는 것이 낵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히 10:30) 약속하신 말씀대로 학대와 상처로 인해 우리에게 남겨진 모든 마음의 짐을 그분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상처로 생긴 부정적인 태도를 평화로 바꾸어주시는 예수님의 초청을 받아들이면서 그분께 나아갈 때, 우리를 속박하는 내면의 상처에서 치유되고 수치, 증오, 분노,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자유로워지게 될 것입니다.
풀러신학대학원(Fuller Theological Seminary) 선교학 교수였으며 내적 치유와 축사 사역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찰스 크래프트(Charles H. Kraft) 교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 그리스도인으로서 특별한 어려움을 겪은 기억도 없는데 그에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끊이지 않고 자신을 괴롭혀왔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부모가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자신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태중에 있었을 때 어머니에게 받은 첫 번째 메시지가 거절감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떤 결점 때문에 거절당한 것이라고 해석하게 되었고, 그 결과 50세가 될 때까지도 습관처럼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또한 원하지 않은 임신 때문에 어머니가 많이 괴로워하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임신 중에 그런 마음이 지속될 때 어머니 안에 두려움의 영이 임하고 자신에게는 거절의 영이 임한다는 영적 해석을 내린 그는, 거절의 영을 물리치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를 용서하고 거절의 영을 대적하며 쫓아내는 기도를 하자, 놀랍게도 자신을 평생 괴롭혔던 증상이 말씀히 사라졌습니다.
그 후 크래프트 교수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괴롭힘을 당하며 살고 있는 많은 고통의 배후에는 악한 영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사역과, 그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국에 어떤 여성 사역자가 있었는데, 자신의 인생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임신했을 때 노이로제를 앓고 있었고, 예수님을 전혀 믿지 않던 어머니는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수면제를 오랜 기간 복용하던 중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약물의 부작용과 태아에 미칠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을 어머니는 무척 걱정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어머니의 그 불안과 두려움이 태아에게도 미쳤던 것입니다.
그 여성사역자는 이런 기도제목을 가지고 여러 날 기도하는데, 하루는 어느 공휴일에 남편과 막내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그런 상처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 안의 우울감과 슬픔의 원인을 알게 되니 굉장히 마음이 힘든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때 어떤 장면이 눈앞을 스쳤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녀가 태아 때 어머니의 약물샤워를 받아 고통 받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때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예수님이 마치 수퍼맨처럼 나타나셔서 그녀를 낚아채어 자신의 품에 안고 등진 채 그 약물샤워를 대신 맞아주셨습니다. 그 후 약물샤워가 멈추자 예수님은 웃는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시고 너무 기뻐하시는 표정으로 그녀를 높이 들어올려 주셨습니다.
순식간에 스쳐간 장면들이었지만, 그때 이 여성사역자는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 구하셨고 또 자기를 그렇게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눈물이 터졌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녀의 어머니는 수면제 과다복용의 상태였지만 낙태하지 않으시고 출산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애 없이 정상적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 71:6)
우리 주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돌보신 분이십니다. 그분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