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특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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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일 수요예배
✦ 이 시대의 거짓 신들 1 ✦
“내 마음속의 위험한 우상들”
(출애굽기 20장 1~6절)
오늘부터 새로운 말씀 시리즈로 “이 시대의 거짓 신들”이라는 주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책 한 권을 정해서 하게 되는데, 책 제목은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입니다. 아주 작은 책인데도 그 내용이 너무너무 좋아서입니다.
요즘 미국과 한국에서(어쩌면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요즘 말로 ‘핫’ 한) 기독교 저자가 바로 팀 켈러입니다. 이분은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리디머 장로교회(Redeemer Presbyterian Church)를 1989년에 개척하여, 전도가 아주 힘들다는 뉴욕에서 주로 젊은 전문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해서 출석인원 5천 명이 넘는 대형교회로 성장시킨 분입니다. 그 숫자가 중요한 것보다도, 팀 켈러 목사님은 미국을 넘어 한국과 전 세계에 미칠 정도로 큰 영향력을 미치는 분입니다. 지난 7월에 은퇴를 하면서 교회를 세 개로 분리하기도 했습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목회의 말기에 들어가면서 저서들을 엄청나게 쏟아놓기 시작했는데, 많은 책들이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 중 우리가 오늘부터 하게 된 <내가 만든 신>을 비롯해서,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팀 켈러의 기도>, <탕부 하나님>과 같은 책들은 정말 훌륭한 책입니다. 한국의 목회자들이 책을 쓰는 경우 대부분이 설교를 편집해서 내는 설교집인데, 팀 켈러 목사님의 책들은 신학과 철학과 시대에 대한 안목까지 포함한, 정말 놀라운 수준입니다. 앞으로 몇 주 동안 <내가 만든 신>을 살펴보며 큰 유익을 얻을 수 있기 바랍니다.
[들어가는 말]
2008년 중반에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가 오자, 부유하고 인맥이 넓던 사람들이 줄지어 비참하게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연방주택담보대출공사인 프레디맥(Freddie Mac)의 재무담당 부사장 대행, 유명한 부동산 경매회사 셸던 굿(Sheldon Good)의 사장, 유럽 여러 왕가와 고위층 집안의 재산을 맡아 투자했던 프랑스의 자산관리사, HSBC 은행의 덴마크 출신 중역, 베어 스턴스(Bear Stearns)의 간부 등,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을 택했습니다.
1830년대에 프랑스의 정치철학자이자 역사가였던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미국을 설명하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풍요의 한복판에서 우울한 이상 기류가 시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 세상의 부실한 낙은 결코 인간의 마음을 채워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우울한 이상 기류’는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지만 매번 그것은 ‘절망’으로 끝납니다. 찾으려던 것을 결코 얻지 못합니다.
그런데 절망과 슬픔은 서로 다릅니다. ‘슬픔’은 위로받을 수 있는 고통이며, 여러 좋은 것들 중 하나를 잃었을 때 찾아옵니다. 반면, ‘절망’은 위로받을 길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잃었을 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정신없이 바쁜 호황기에도 널리 퍼져 있다가 경제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을 때 지독한 절망으로 변하는 이 ‘우울한 이상 기류’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1. 우상이 점령한 사회
사도행전에 보면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의 문화가 생생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당시 도시마다 좋아하는 신이 있어서 신전을 짓고 신상을 숭배했습니다. 바울이 아덴(아테네)에 가보니, 말 그대로 신상 천지였습니다. 저도 안식월 때 가보았지만, 바울의 눈에는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세워진 아테나 여신의 파르테논 신전이 도시 전체를 압도했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전쟁의 신 아레스, 승리의 신 니케, 바다의 신 포세이돈, 다산과 부의 여신 아르테미스 등, 온갖 신이 광장마다 즐비했습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행 17:16, 22-23)
이 시대도 고대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문화마다 그 문화를 지배하는 우상이 있습니다. ‘제사장’과 제사 의식도 있습니다. 지금은 사무실이나 헬스장이나 경기장 같은 신전이 있어, 행복한 삶을 얻고 액운을 물리치려면 거기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미모와 권력과 돈과 성취의 신이란, 바로 우리 각자의 삶과 사회 전반에서 신적 위치를 점한 그런 것들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신상 앞에 무릎을 꿇지는 않지만, 많은 여성들이 외모와 몸매에 과도하게 집착한 나머지, 우울증과 위장병 등에 시달립니다. 실제로 다산과 부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에게 향을 피우며 제사하지 않아도, 돈과 성공을 세상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면 우리도 자녀를 일종의 인신 제물로 바치는 것과 같습니다. 직장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얻고자 가정과 공동체마저 팽개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우리 문화가 새롭게 배출해 온 한 인간 집단이 있는데, 그것은 성취도는 높지만 ‘수직과 수평의 균형을 잃은 부류’입니다. 그들은 상사나 멘토와의 수직 관계에서는 좋은 처세술이나 아부 실력을 발휘해서 출세 가도를 달리지만, 배우자, 가족, 친구와의 수평 관계에서는 참된 교제를 할 줄 모릅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성공의 허무함과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끼지만, 배우자와 자녀와는 이미 멀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허한 내면을 달래려고 외도에 빠지거나 다른 극단적 조치를 취합니다. 그러다 결국 가정 파탄이나 스캔들, 때로는 둘 다에 빠지고 맙니다. 그들은 성공의 신 앞에 모든 것을 제물로 바쳤지만, 오히려 삶이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고대의 신은 피에 굶주려 있어 비위를 맞추기가 힘들었는데, 그것은 지금도 똑같습니다.
2. 인간의 마음은 우상 공장이다
제가 이곳으로 이사 오던 2005년에는 부동산과 주식에 엄청난 거품이 끼었던 때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희 집도 가장 비쌀 때 산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2008-2009년의 경제 위기 때 경기가 곤두박질치면서 소위 ‘탐심의 문화’가 그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 3:5)
오래 전 사도 바울은 탐심이 나쁜 정도가 아니라 우상숭배라고 정확히 지적했습니다. 즉, 돈은 신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의 신적 힘을 경험하고 그것에 마음을 점점 빼앗기게 되면 자유는 사라지고 숭배와 복종 관계에 가까워집니다.
돈은 영적 중독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다른 중독처럼,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깁니다. 아무리 갈망해도 오히려 만족이 자꾸만 줄어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채우려 하고 더 큰 모험을 시도하다가 결국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그토록 이성에 어긋나게 행동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인간의 마음이 ‘우상 공장’이라서 그렇다고 알려줍니다.
‘우상’이라고 하면 대체로 눈에 보이는 신상을 떠올립니다. 물론 아직 세계 곳곳에서는 전통적인 우상숭배가 이루어지는 곳들도 있지만,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내적 우상숭배는 모든 사람에게 두루 퍼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 내게로 와서, 내 앞에 앉았다. 그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이들은 여러 우상을 마음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이며, 걸려 넘어져서 죄를 짓게 하는 올가미를 자기들 앞에 둔 사람들인데, 내가 과연 이런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을 수가 있겠느냐?” (겔 14:1-3, 새)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가리켜 “이들은 여러 우상을 마음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그것을 들었다면 분명히 “우상이라니요? 무슨 우상이요? 저에게는 아무런 우상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인간의 마음이 성공, 사랑, 재물, 가정 등 ’좋은 것‘을 우상으로 변질시켜 버린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그런 것들을 신격화하여 삶의 중심에 둡니다. 그것만 얻으면 든든함과 안전과 만족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는 꼭 거짓 신상 앞에 절하는 행동만이 아니라, 외적인 몸으로 하지 않더라도 내적인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어떤 피조물로 대체하는 것이 곧 우상숭배입니다. 결국 성경이 말하는 우상숭배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힘과 인정과 위로와 안전을 자신의 지혜와 능력이나 다른 피조물로부터 얻으려는 태도를 말합니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다른 데서 채우려고 하면 그것이 우상이라는 말입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은 크리스천이라면 꼭 봐야 할 내용입니다. 거기서 핵심 소재는 악의 왕 사우론이 소유한 능력의 반지입니다.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라도 이 반지를 끼려는 사람은 누구나 탐욕에 물들게 됩니다. 그 반지는 마음속의 가장 절실한 갈망을 우상으로 확대시키는 ‘심리적 증폭기’ 역할을 해서, 그 반지만 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표를 이루려고 합니다.
그런데 반지를 끼는 사람은 점점 더 거기에 종속되고 중독됩니다. 그것이 없으면 못 사는 게 바로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꼭 손에 넣어야만 하기 때문에, 그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평소에 존중하던 규정도 어기고 남들과 자신마저 해칩니다. 이처럼 우상은 끔찍한 악을 낳는 영적 중독입니다. 톨킨의 소설에서만이 아니라 현실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3. 무엇이든 우상이 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우상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돈)입니다. 돈은 삶을 바꾸고 문화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신이 될 수 있습니다. 돈은 숭배자의 마음을 찢어놓는 강력한 우상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탐심의 문제가 소위 ‘부자들’에게만 있다고 보고 거기에만 집중한 나머지 가장 근본적인 진리를 놓치는데, 그것은 무엇이든 우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도덕규범이 십계명인데 1계명을 보십시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2-3절)
여기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다른 신들”이 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다음에 답이 나옵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4-5a절)
이 말이 뭡니까? 세상 모든 것이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돈이나 명예나 섹스뿐 아니라 삶의 무엇이든지 우상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대용품, 즉 ‘거짓 신’(counterfeit god)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야전군 장교가 있었는데, 그는 자기 휘하의 병사들에게 너무 무리하게 체력 단련과 군사 훈련을 시켜서, 오히려 병사들은 사기가 꺾였고, 그 바람에 전투 중 통신이 끊겨서 수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한 여성은 어릴 때 가난한 집에서 자랐는데, 성인이 되어 재정적인 안정에 집착한 나머지 좋은 남자를 여러 명 놓치고 결국은 사랑하지도 않는 부유한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결국 얼마 못 가 이혼했고,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고생길에 들어섰습니다.
몇몇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들은 열심히 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한 수준으로 잘하려고 스테로이드와 기타 약물을 복용했습니다. 그 결과 몸도 나빠지고 결국 그것이 발각되어 명예도 잃었습니다.
그들이 행복의 기초로 삼았던 것은 오히려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기초를 엉뚱한 데 두었기 때문입니다. 거짓 신은 늘 실망을 안겨주게 되어 있습니다. 훈련된 부대나 재정적 안정이나 뛰어난 운동 실력을 원하는 것이 잘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들을 보면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대개 ‘우상’ 하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자체가 나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더 좋은 것일수록 그것이 우리의 가장 깊은 욕구를 채워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집니다. 그래서 좋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최고의 것을 갈망하며 그것을 위해 무리하다가 결국 우상숭배로 빠지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거짓 신, 즉 우상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삶의 가장 좋은 것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우상이란 무엇입니까? 무엇이든 나에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크게 내 마음과 생각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다른 데서 얻으려 한다면 바로 그것이 우상입니다. 무엇이든 워낙 자신의 삶의 중심이자 필수적인 것이어서, 그것이 없이는 살아갈 가치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게 바로 가짜 신이며 우상입니다.
우상은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에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열정과 에너지와 돈과 자원을 거기에 쏟아 붓게 됩니다. 가정, 자녀, 직업, 돈벌이, 성취, 칭찬, 체면, 사회적 지위가 다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로맨틱한 이성 관계, 자기 분야에서의 인정,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 외모, 두뇌, 정치, 대의명분, 도덕과 가치관, 심지어 교회 사역에서 성공하는 것도 다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혼 구원하여 제자를 만들자’고 하며 나아가고 있지만, 내 만족을 위해 그것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한다면, 그것 역시 우상숭배가 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우리가 그것을 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이렇게 말한다면 그게 곧 우상입니다. ‘저것만 있으면 내 삶이 의미 있게 될 거야. 저것만 되면 나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저것만 이루면 내가 중요해지고, 안정감이 들 거야.’ 이런 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바로 ‘숭배’입니다.
고대 사람들, 특히 이교도들이 사실상 모든 것을 신으로 본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돈의 신, 전쟁의 신, 일의 신, 국가의 신이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신이 되어서 개인의 마음이나 사람들의 삶을 신처럼 지배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몸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지만, 그것을 ‘신격화’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는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단지 아름다움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아프로디테입니다. 사람들과 문화 전체가 끊임없이 외모 때문에 고민하고, 거기에 시간과 돈을 지나치게 쏟아 붓고, 심지어 개인의 성품까지 외모에 기초하여 평가하게 됩니다. 예쁘면 다 용서가 되고, 못 생기면 성격도 나쁠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우리의 행복과 삶의 의미와 정체성에 하나님보다 더 영향을 끼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바로 그게 우상이고 이 시대의 거짓 신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숭배는 복잡한 개념이라서, 지적,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영적 영역들에 모두 걸쳐 있습니다. 먼저, 개인의 우상으로는 로맨틱한 사랑, 가정, 자녀, 돈, 권력, 성취, 자기 분야의 인맥, 다른 사람이 정서적으로 자기에게 의존하기를 원하는 것, 건강, 매력적인 외모 등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만족과 의미를 그런 데서 얻으려고 시도합니다.
문화적 우상은 군사력, 과학 기술의 발전, 그리고 경제의 번영입니다. 전통 사회의 우상에는 가정, 노력, 의무, 도덕적 가치 등이 있는 반면, 서구 문화의 우상은 개인의 자유, 자아 발견과 성취, 풍요로움 등입니다. 이런 것들은 다 좋은 것이지만, 우리 삶의 기초를 거기에 두기만 하면 그것들이 우리에게 안전과 평화와 행복을 줄 것처럼 믿고 추구할 때 우상이 됩니다.
지적 우상도 있는데, 흔히 그것을 ‘이데올로기’라고 합니다. 각 직업 분야에도 우상이 있어서, 그것은 타협할 수 없는 절대 가치입니다. 사업 세계에서는 수익이 최고의 가치이므로, 자기표현은 억압됩니다. 그러나 예술계는 정반대로, 오히려 예술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자기표현을 위해 희생됩니다. 인류에게는 무엇보다도 이것이 필요하다는 식입니다. 이처럼 우상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4. 삶 전체를 지배하는 마음속의 우상
사람들이 마음속 우상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성경은 세 가지 기본 은유로 묘사합니다. 첫째, 사람들은 우상을 사랑합니다. 둘째, 사람들은 우상을 믿습니다. 셋째, 사람들은 우상에 순종합니다.
1) 결혼의 은유로 표현된 우상
먼저, 성경에 우상이 결혼의 은유로 표현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참 배우자는 하나님이셔야 하며, 그분보다 다른 것을 더 갈망하고 즐거워하면 그것은 영적 간음입니다. ‘거짓 연인’이라는 우상을 찾아내려면, 평소에 주로 공상하는 내용을 보면 됩니다. 자신이 평소에 즐기는 상상은 무엇입니까? 가장 절실한 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우상에게서 사랑과 가치와 아름다움과 의미와 만족을 얻으려고 합니다.
2) 종교적 은유로 표현된 우상
또한 성경은 우상을 종교적 은유로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만이 참 주님이신데, 우리는 개인적 성취나 경제적 번영에서 만족과 안전을 얻으려고 시도하며 그런 것을 의지합니다.
이런 우상은 우리 자신에게 통제권이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우리가 시달리는 악몽의 내용을 보면 그런 우상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삶의 가치를 느끼기 위해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런 신들이 자신을 보호해 주리라고 믿고, 그 비위를 맞추어 환심을 사려고 ‘제사’를 드립니다. 거기서 자신감과 안전을 얻으려고 하는 겁니다.
3) 정치적 은유로 표현된 우상
그리고 성경에 우상은 정치적 은유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주인은 하나님이셔야 하는데, 인간은 무엇이든 자신이 사랑하고 믿는 대상 또한 섬기게 마련입니다. 그게 무엇이든 타협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보다 중요해지면 우리를 속박하는 우상이 됩니다.
그런 경우의 우상은 우리의 가장 집요한 감정을 보면 찾아낼 수 있습니다. 나를 주체할 수 없는 분노나 불안이나 낙심에 빠뜨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떨쳐버릴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나를 괴롭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런 우상이 우리를 지배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 없이는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우리의 진짜 주인입니다. 권력을 구하는 사람은 권력에 지배당하고,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지배당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에게 지배당합니다.
흔히 말하는 심리적 문제도 사실은 우상숭배의 문제입니다. 완벽주의, 일중독, 만성적 우유부단, 남의 삶(특히 자녀의 삶)을 통제하려는 욕구 등은 모두 좋은 것을 우상으로 둔갑시킨 결과입니다. 그 비위를 맞추려고 하면 결국 지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우상은 우리 삶을 지배합니다.
[나가는 말]
조금 전 살펴보았듯이, 슬픔과 절망은 아주 다른 겁니다. 절망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둘의 차이는 우상숭배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비종교적인 것 같아도, 우리 마음은 사실 이 시대의 화려한 각종 우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상에게 자신의 삶을 바치게 되면 결국 찾아오는 것은 절망입니다.
절망에서 헤어나 전진해 나가려면 우리 마음과 문화에 자리 잡은 우상을 분별해야 합니다. 내가 평소에 즐겁게 상상하거나 절실하게 원하는 게 무엇인가? 내가 결코 이것만은 없어지면 안 된다고 하며 두려워하는 건 무엇인가? 나를 지나치게 분노하게 만들거나 죄책감이 들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우상을 분별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거짓 신들의 악한 영향에서 해방되는 길은 참 신이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뿐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시내산과 십자가에서 자신을 계시해주셨습니다. 그분을 만나면 진정으로 우리를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매일 우리는 기도와 말씀으로 그분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실망시켜드리더라도 그분은 우리를 참으로 용서해주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사랑을 주시며 완벽한 만족을 주십니다.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참 평안과 만족을 누리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