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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7일 수요예배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2

믿음으로 하나님의 길을 가라

(이사야 4316~21)

 

1.   하나님의 길을 발견하는 법

 

1)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내시는 길의 신비를 우리 지혜로는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 길을 볼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기도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33:3)

 

우리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세계가 있고, 기도해야만 볼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에 찾아오는 고통의 시간이 오히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길을 발견하는 시간으로 변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렵고 힘든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할 때도 추상적인 기도가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이 추상적이고 피상적으로 되는 경향입니다.

 

은혜가 풍성한 삶, 성령 충만, 주님 뜻대로 사는 것, 승리하는 생활등등, 이런 말 자체는 좋지만, 그것이 삶 속에서 도대체 뭔지 그림이 잘 안 그려집니다. 굉장히 모호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 제대로 된 신앙생활이고, 그런 신앙생활을 해야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주님의 신실한 제자로 자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삶><경건의 삶>에서는 이런 은혜로운말을 쓰면 빨간색 줄을 긋고 구체적으로 쓰라고 해드립니다. 예를 들어서, 기도제목이 이번 주에는 은혜가 풍성한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한다면, 은혜가 풍성한 삶이 도대체 뭔지, 어떻게 살게 해달라는 건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언어로 바뀌어야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또 감사 제목을 나눌 때도 범사에 감사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은 평소에 감사를 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범사가 뭔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당연히 범사에 감사하지만, 그 범사(모든 일)에 무엇이 포함된 것인지, 무엇 때문에 감사한지를 구체적으로 할수록 믿음이 자랍니다. 추장적으로 할수록 믿음이 안 자랍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할 때도 대충 하거나 소위 은혜로운말만 나열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해야 합니다. 물론 대중 기도를 할 때는 격식이 있지만, 혼자서 하나님께 개인기도를 하는데 그런 추상적인 말을 왜 사용합니까? 우리는 기도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절박함과 간절함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캄캄한 광야 속에서, 안개 같은 미래 속에서 하나님의 길이 조금씩 보이게 됩니다. 그 길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높은 길이며, 열매를 거두는 길이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시각을 받아서 볼 수 있는 길입니다.

 

 

2)  말씀을 통하여

 

막막한 광야 길에서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볼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가리켜 산을 오르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험한 길을 올라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인생은 산을 올라가는 것이라기보다는, 사막 같은 광야를 지나는 것입니다. 산은 정상이 보이지만 광야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광야는 항상 지형이 변해서 지도가 소용이 없는 곳입니다. 광야에 모래 폭풍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여기 있던 산이 저기로 가 있고, 없었던 골짜기가 파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야에서 필요한 것은 지도가 아니라 나침반입니다. 광야에서 지도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특히 자기가 감이 좋다고 해서 자기의 감을 믿고 방향을 정하며 나아가서는 큰일 납니다. 그랬다가는 헤매기만 하다가 탈진해서 쓰러져 죽고 맙니다. 변하지 않는 나침반을 기준으로 방향을 잡고 나아가야 길을 잃지 않고 광야를 건너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광야와 같은 곳입니다. 계속해서 상황이 급변하고 곳이 이 세상입니다. 과거의 경험과 지식으로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우리 자녀들이 어떤 직장을 선택하면 좋을지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지금 취업난이 심해서 청년실업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청년 취준생(취업준비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이 공무원이라고 합니다. 공무원 시험이 젊은이들 가운데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공무원이 가장 안전할 것 같아서 경쟁이 치열한데, 곧 그렇지 않은 시대가 올지 모른다는 겁니다. 지금 인기 있는 것이 곧 도태되고, 지금 전혀 알려지지 않은 직업이 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불확실한 광야 같은 시대를 뚫고 나갈 수 있는 나침반이 필요합니다. 이 나침반의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다바르입니다. 둘 다 같은 어근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래서 광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슴에 새기며 새롭게 태어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훈련을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인 나의 말을 잘 듣고,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며, 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의 규례를 모두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주 곧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15:26, )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 너희 하나님인 나의 말을 잘 듣고입니다. 우리는 보통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4:13)는 말씀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에 초점을 두는데, 사실은 그 앞에 있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가 중요합니다. 여기서도 어떤 질병도 내리지 않을 것에 초점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끝나버린 말이 아니라, 지금 주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어질 살아 있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어느 길로 가면 될지, 완벽한 지도를 그려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시면서 말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매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직접 가주시면서 인도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동행할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계속해서 너와 대화할 것이다. 너는 나만 따라와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매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미국이나 한국 대통령이 나와 너무 교제하고 싶어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영광입니까? 그런데 온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그 주인이신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과 매일 교제하기 원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많은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그래서 기도나 큐티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 엄청나신 하나님은 우리와 매일 교제하고 싶어 하십니다.

 

화려한 이집트에 살 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광야는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계속 말씀하기 원하시고, 또 그 말씀에 우리가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결국 우리가 살 길은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제해나가는 것입니다. 기도로 더욱 깊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죽습니다. 영적으로 침체에 빠집니다. 영적으로 생명력 있는 삶을 살려면 다른 길은 없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말씀을 항상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현재진행형인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길이 보입니다.

 

우리가 막막해 하는 것, 앞이 안 보이는 것은 길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을 못 보기 때문입니다. 거기 있는데 못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사람만이 광야에서도 길을 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길을 갈 때 해야 할 일

 

1)  과거에 집착하지 않기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갈 때 중요한 첫 번째는 과거의 길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홍해를 가르신 사건을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다시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16-17)

 

이렇게 홍해를 가르시고 길을 내신 일을 다시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홍해 사건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영원히 남을 만큼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이 뭐냐고 물으면 출애굽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 출애굽 사건 안에 이 홍해 사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황이 어렵고 현실이 힘들 때마다 , 옛날에 정말 엄청났었는데...’ 하면서 전설처럼 떠올리는 사건이 바로 홍해의 기적이었습니다. 그 일은 그들이 기억하는 최고의 기적이었고 하나님이 행하신 최고의 역사였습니다. 물론 그 사건은 엄청난 기적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에 대해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8)

 

이 엄청난 일을 기억하지도 생각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홍해의 기적은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것도 다 옛날 일이다. 이제 너희에게 내가 더 놀라운 새 일을 행하겠다.’ 홍해 사건이 아무리 놀라운 일이었다고 해도, 거기에 집착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은 정말로 다 잊어버리라는 게 아니라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좋았더라도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장차 일으키실 구원 사역은 훨씬 더 놀랍고 위대한 일이 됩니다. 이제 과거 조상들이 경험했던 놀라운 기적만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하나님이 자신들을 위해서 이루실 일을 기대하며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과 교회들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과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부흥을 많이 이야기하면서 굉장히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초대 교회를 그리워하는 게 아닙니다. 대신 그때 신약 교회가 주님이 원하셨던 교회로서 주님의 증인의 역할을 다하여 복음을 전했을 때 일어났던 그 엄청난 역사가 지금 이 시대에도 일어나도록 우리도 주님께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결단도 안 하고 헌신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 옛날에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는데라고 그리워하면서 지금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지금도 그런 역사가 일어나도록, 진정한 부흥이 우리에게도 임하도록,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난 2007년에 한국 교회에서 1907년 평양 대부흥과 같은 일이 일어나도록 하자고 여러 행사들이 있었고 운동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작년에도 마르틴 루터가 1517년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지 500주년이 되는 해라고 떠들썩했습니다. 덕분에 여행사들만 특수를 누렸습니다(종교개혁 패키지). 그런데 평양 대부흥 100주년종교개혁 500주년이라고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었는데도 한국 교회는 더 신뢰도가 추락하고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이곳에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올바로 서도록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몇 주년인지 따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목표와 비전을 세우고 떠들썩하게 하면서 나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를 만들라고 명령하신 그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그의 선원들 중에서 육지로부터 300마일 이상 떨어진 대양으로 항해를 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떠나온 육지가 완전히 보이지 않은 다음에야 비로소 그들은 새로운 땅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과거와 완전히 작별해야 복된 미래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너무 좋았든지 또는 너무 힘들었든지, 과거는 과거입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폐쇄적이고 비관적이 되어서 앞으로 나가지를 못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과거에 잘나갔던 기억 때문에 자만심에 가득하여 겸손히 새로운 미래로 출발하지 못합니다. 둘 다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나쁜 습관, 죄책감, 상처, 후회,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열등감, 또 과거의 성공에 대한 자만심을 전부 다 확실하게 털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복된 미래로 갈 수 있습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뒷걸음 쳐서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을 다 없애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홍해를 갈라주신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마른 땅으로 건넌 후에 하나님이 다시 홍해를 닫으셨습니다. 이것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홍해는 다시 물로 가득 찼습니다. 이제는 애굽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광야에서 끝장을 봐야 하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찾아 약속의 땅으로 가든지, 아니면 불순종해서 죽든지, 그들은 선택해야 하는 때가 된 것입니다. 백성이 광야에서 계속 모세에게 원망하며 이집트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고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하며 난리를 쳤는데, 실질적으로는 이집트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 길은 막혔던 겁니다.

 

새롭게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길로 가려면 과거에 대해 확실히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를 찍습니다. 간판만 바꾸어 달고서는 계속해서 똑같은 것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옛 습관을 버리지 않고 현재를 살게 되면, 과거의 실패는 미래에 그대로 반복되고 맙니다. 옛 습관을 버리지 않고서는 절대 새 역사를 열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고 싶다면, 과거에 마침표를 찍고 가야 합니다.

 

과거가 좋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과거에 잘나갔던 사람일수록 현재의 삶이 힘들어지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합니다. 좋았던 과거가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해주신 과거의 일들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과거의 일에 대해서는 기억하며 집착하는 게 아니라, 과거에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좋았던 과거에 갇혀버려서는 안 됩니다. ‘내가 왕년에는 그렇게 잘나가던 사람이었다.’ 하는 것이나 우리 교회가 이전에 이렇게 큰 부흥을 경험한 이 지역의 형님 교회였다. 장자 교회였다.’라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과거에 갇혀버리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미래에 해주려고 하시는 더 좋은 일들을 놓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옛 과거에서 떠나 새로운 미래로 옮겨갈 것을 명령하십니다.

 

 

2)  믿음의 첫 발걸음을 내딛기

 

하나님의 길을 가려면 믿음의 첫 발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첫 발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합니다. 홍해에 가로막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뒤에서 쫓아오는 바로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며 원망할 때 모세가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구원을 행하시는 것을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자기들을 위해 싸우실 테니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와 다른 이야기를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14:15-16)

 

과거를 끊고 앞으로 나아가며 하나님이 해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 쪽으로 나아가도록 명령하라고 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팔을 내밀어 바다가 갈라지게 하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순종할 때 하나님의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신뢰해서 하나님이 해주실 것이라고 기다리지만, 하나님이 해주시면 건너야 하는 것입니다. 순종할 때 길이 열립니다.

 

마른 땅의 길을 열어주시는 것도, 모세가 지팡이를 잡고 팔을 들 때 갈라지도록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냥 하실 수도 있었는데 모세를 사용하셨습니다. 모세는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백성들이 순종해서 앞으로 나아갈 때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열립니다. 고민하며 따지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순종하는 사람에게 열립니다. 때로는 고민하며 의심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끝까지 계속 고민하고 따지고 의심하면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순종할 때 길이 열립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을 보면, 대부분 문제를 놓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이 문제가 해결되어 없어지면 내 삶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문제, 가정의 문제, 부부 관계, 자녀와의 관계, 부모님과의 관계, 시부모님과의 관계, 진로 문제, 이웃과의 관계, 사업, 직장 같은 것들이, 문제가 해결되면 내가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해주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문제를 피하고 싶은데, 하나님은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그 문제 앞으로 우리를 몰아가십니다. 그 문제 속으로 믿음의 첫 발걸음을 내딛으라고 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도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제자들이 이제 저녁때가 되었으니 사람들을 보내십시오.”라고 했더니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피하고 싶은 문제였는데, 주님은 너희들이 해결해라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가 가로막혀 있는 것을 보며 죽음의 바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다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홍해만 없으면 살 수 있을 텐데 이 바다 때문에 죽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의 바다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안에 길이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을 했겠습니까?

 

이처럼 가장 큰 문제 속에 하나님의 길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정말 진퇴양난의 상황, 앞뒤로도 옆으로도 갈 수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져 있다고 생각될 때, 어쩌면 그것은 지금껏 체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을 볼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믿음은 바로 그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여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문제의 한가운데로 치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피하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부딪쳐보는 겁니다.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19, )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새 일을 언젠가 행할 것이라고 하시는 게 아니라, ‘이미 새 일을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도 현재진행형입니다. 하나님의 새 일은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 진행 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기 전부터 움직이고 계셨으며, 그것을 보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라고 하시는 말씀은, 이미 움직이고 계신데 왜 그것을 모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3.   믿음의 눈을 열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라

 

믿음의 눈으로 보게 되면 하나님의 역사가 보입니다. 아직 상황이 똑같다고 해도, 이미 하나님의 복이 내게 쏟아지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원망과 불평과 두려움과 의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결국 이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으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우리에게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믿음의 눈을 가질 수 있습니까? 기도할 때 가능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고, 그러면 복을 받고 있는데도 그것을 못 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미 시작되었는데도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지금 이 세상은 아주 혼탁하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갈 길을 잃고 불안한 상황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 없는 것이 지금 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야말로 우리가 기도하며 새 힘을 내서 쭉 올라갈 때입니다. 지금 너무 혼탁한 세상이라 우리까지도 휩쓸려서 살게 됩니다. 점점 더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더 많은 것들이 쏟아지고 정보가 너무 많으며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거기에 정신을 빼앗기다 보니까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심지어 기도하면서도 그 생각만 납니다. 그래서 드라마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면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싶어지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다니엘금식 같은 것을 통해 음식도 절제하지만 미디어를 금식하면서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집중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를 너무 혼탁하기 만들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을 따로 빼서 이렇게라도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힘을 내어 올라가야 하는데, 올라가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될 수 없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은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바로 우리들인 줄로 믿습니다.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20-21)

 

여기에 보면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걸어가면 광야를 걸어가도 곳곳에서 하나님의 샘물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오아시스 샘물들이 나타납니다. 이제는 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쯤이면 신기하게도 은혜의 샘물이 나와 우리를 살려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것은, 하나님이 그 택하신 백성에게 물을 주시려고 광야와 사막에서 물이 나오게 하실 때, 그 백성뿐 아니라 승냥이나 타조 같은 짐승들도 그 물을 마시며 혜택을 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면 하늘 복을 받고 누릴 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하나님의 복이 흘러나가는 놀라운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여기 있기 때문에 우리 주변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물을 내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물이 없어 목말라 죽을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지으신 백성이기 때문에 광야에서 죽을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살아날 것이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아직도 기억나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쯤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가 주일이었는데 예배를 마치고 오후에 프로그램을 하는데 갑자기 경보가 울렸습니다. 북한에서 비행기가 넘어와서 전쟁이 벌어질지 몰라 경보가 울린 겁니다. 그때 제 옆에 있던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나중에 주의 일을 할 사람이고 사명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 죽을 수가 없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동물원 짐승 쳐다보듯 저를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우리는 반드시 살아날 것이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찬송을 받기 위해 지으신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합니다. 지금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을 잃지 말고 담대히 예배로 나아가야 합니다. 힘들면 신앙생활을 그만두거나 교회에 안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더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붙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어려움을 뚫고 나올 때 더욱더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며 찬양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하나님의 길을 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바로 이런 믿음의 비밀을 깨달은 시인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편 121)

 

이 고백이 우리 각자의 믿음의 고백이 되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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