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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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설교: https://www.youtube.com/live/qmkpCy2qopo?si=1JUE5ISuUjVnWtYe&t=100

 

 

2024113일 주일예배

예수와의 만남 14

구원받지 못할 죄인은 없다

(누가복음 191~10)

 

[들어가는 말]

 

사람의 이름마다 각각 의미가 있습니다. 제 이름도 밝을 준자에 근원 원자를 써서, ‘밝은 근원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에도 다 뜻이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생명의 삶> 첫 시간에 자기소개를 하면서 각자 자기 이름의 뜻이 뭔지를 나눕니다.

 

비즈니스도 이름이 좋으면 손님들이 기억하기 좋으니까 아주 기발한 이름들과 희한한 이름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넘어서 엽기적인 이름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정부페>라는 상점이 있는데 뷔페 식당입니다. <미의 비밀은 화장빨>이라는 화장품 가게가 있습니다. <동네북>은 서점이고, <갖다줄까? 니가 올래?>도 있었는데 동네 분식집 이름이라고 합니다. <조용한 곳 찾다가 없어서 내가 차린 집>이라는 데가 실제로 있었는데 커피집입니다. <beer천가>는 호프집이고, <청춘물약>도 호프집이며, <술퍼마켓>은 당연히 술집입니다.

 

<버르장머리>라는 미용실이 있었고, <고마우신>은 신발가게, <순대렐라>는 순대집입니다. <코스닭>은 치킨집이고, 그 외에 <침이 꼴가닭>, <위풍닭닭>, <쏙닭쏙닭>도 치킨집입니다. <꼬랑내>라는 가게도 있었는데, 망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신발가게였기 때문입니다. 신발을 샀는데 꼬랑내가 나면 어떡합니까?

 

<드슈>라는 데는 레스토랑이고, <보슈>라는 데는 영화관이라고 하는데, 주인이 같다고 합니다. <이노무스키>는 스키용품 대여점이고, <니들의 속셈이 무언지 궁금하다>는 속셈학원입니다. <개트럴파크>는 애견용품 가게입니다. 이름들이 참 신기한데, 이런 이름들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합니다.

 

교회 이름도 신기한 이름들이 많습니다. 파워풀 교회, 야동 교회(이건 좀 이상합니다), 무당 교회, 효리 교회, 누구나교회, 도토리교회, ~우리교회, 레포츠교회(레저와 스포츠를 즐기는 교회), 지안(지옥 안 가는)교회 등등.

 

또 사람 이름도 어느 대학교 체육학과 학생 중에 실제로 권튼튼이라는 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대학교 합격자 명단을 누군가가 살펴보다가 같은 학과에서 신기한 이름을 발견했는데, ‘신석기공룡이 같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고등학교 우등상 수상자 학생 이름은 나상조’(나에게 상을 줘)였고, 어느 학원 수강생 명단에는 모든 방법을 다 아는 사람인 노하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한 시간 더 주무셨어도 너무 자서 오히려 졸리실까 봐 잠을 깨워드리기 위해 서론이 길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주 기가 막히게 좋은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삭개오입니다.

 

한국어로는 삭개오라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헬라어로 삭개오라는 이름은 정결하다, 깨끗하다, 결백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그의 삶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고, 자기가 가진 이름과는 정반대로 아주 더럽고, 추악하고, 못된 삶을 살던 사람이 바로 삭개오였습니다.

 

 

1.   삭개오는 어떤 사람인가 (1~4)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1-2)

 

간단하지만 여기에 굉장히 많은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이제 곧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도중 여리고를 통과하시는 장면입니다. 거기에서 두 사람을 만나주시는데, 사실은 세 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맹인이 있었고 그중 한 명은 바디매오로 둘 다 구걸하던 거지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삭개오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 한 맹인은 예수님이 여리고 성을 들어가실 때 거기서 구걸하고 있었고, 삭개오는 성에 들어가셔서 지나가실 때 성안에서 만나신 사람입니다.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장이며 부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리고는 로마 식민지였던 유대 지역과 세례 요한을 죽인 헤롯 안디바(안티파스)가 다스리던 베레아 사이에 위치한 도시였습니다.

 

1세기 초반 로마제국이 지배하던 유대 사회의 세금제도는 직접세간접세가 있었습니다. 직접세에는 인구세나 토지세가 있었는데, 그것은 로마제국이 직접 보낸 사람들들에 의해서 거두어졌습니다. 간접세는 항구로 들여오는 상품이나 한 성에서 다른 성으로 통과할 때 지니고 있던 상품에 대해서 매기는 세금으로, 항구나 성문 근처에 있던 세관에서 거두게 했습니다.

 

당시 간접세를 거두어들이는 일을 담당한 사람들이 세리였습니다. 간접세는 로마제국이 직접 걷지 않고 유대인들을 뽑아 그들에게 맡겨서 걷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유대인이 특정 지역의 간접세를 걷을 권한을 로마 당국에게서 받았는데, 대개 입찰(bidding)을 통해 그것을 받았습니다.

 

권리를 받은 사람은 로마 당국에게서 허락받은 지역에 대한 간접세를 자기가 미리 내고, 자기 밑에 부하 직원들(세리들)을 두거나 하청을 주어서 세금을 걷었습니다. 그러니까 미리 내라는 세금을 내놓고 그다음에 백성들에게 가서는 자기가 낸 세금의 몇 배나 되는 돈을 거두어 드린 것인데, 사실은 갈취한 것입니다.

 

삭개오는 부하 직원들을 고용하여 세금을 걷었던 세리장이었습니다. 세리들 중에도 세리장은 로마 정부에서 요구하는 액수의 세금을 미리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세리장은 다른 세리들을 고용해서 로마 정부가 정해준 액수보다 훨씬 더 많이 걷는 방법으로 이익을 남겨서 부를 축적하여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보통 세리도 꽤 부자인데, 세리장은 훨씬 더 부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는 세리가 압제자인 로마 편에 붙어서 자기 민족의 피를 빨아먹는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지나가다가 길에서 독사와 세리를 만나면 어느 편을 먼저 죽이겠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보통 유대인은 세리를 먼저 죽이겠다고 대답할 정도로 세리는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여리고는 인구가 10만 명이나 되는 큰 도시였습니다. 국제 무역으로 인해 아주 부유하고 활발한 주요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아프리카에서 나는 물건들이 북쪽으로 올라갈 때 모두 여리고를 통과해서 갔습니다. 상인들이 화씨 120도를 오르내리는 사막을 통과하여 그곳에 도착하면, 중동 지역에서 가장 훌륭한 오아시스가 있는 여리고에서 충분한 양의 물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이들 쉬어 가는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이러한 번영의 도시에서 삭개오는 그냥 세리도 아니고 세리들의 대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삭개오 아래서 일하는 세리들이 많았고, 그것은 그의 나이가 어느 정도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삭개오는 열심히 일을 해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해서 돈을 번 사람입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부자였지만 악랄한 세리장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만 지나가면 수군수군 하면서 눈을 흘기고 째려보고 적개심을 불태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그러니 삭개오는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피해 다니는 습성이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많은 데에 자기가 나타나면 분명히 욕하거나, 아니면 앞에서는 뭐라고 할 수가 없으니까 뒤에서 욕하고, 또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수군거리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있는 데를 항상 피해 다녔던 겁니다. 그런데 여리고에서 소문난 죄인이며 용서받지 못할 악인이었던 삭개오가 놀랍게도 예수님을 보기 원합니다.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3)

 

왜 그가 예수를 보기를 원할까요? 그의 마음 상태를 헤아려보십시오. 그는 엄청난 부자입니다. 돈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이 자기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사실 돈이 그렇게 많아도 마음 편히 쓸 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를 증오하는데 어디에 가서 어떻게 쓰겠습니까? 그는 마음이 공허합니다. 친구도 없습니다. 아무도 그와 함께 지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가 가진 재산으로 인해 삭개오는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는 대저택에 살았을 것이고, 마음이 공허하니까 번쩍거리는 반지를 열 손가락에 다 끼고 다니고, 비싼 목걸이를 하고 다니고, 종들도 많고, 그 당시 최고로 비싼 낙타(요즘 말로 하면 최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권력과 돈이 있는 세리장이었기 때문에 사람들, 특히 사업하는 사람들이 그와 좋은 관계를 맺고자 노력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에게 잘 보여야 사업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뇌물을 갖다 바치고, 특별한 선물도 갖다 바치지 않았겠습니까? 그의 생일을 기억해서 바치고, 그의 가족들 생일도 기억해서 바쳤습니다. 요즘 좋다고 하는 것들은 다 갖다 바치고, 귀하다는 것은 다 갖다 바쳤습니다. 아주 희귀한 것까지 다 구해다 바쳤습니다. 게다가 최고로 좋은 레스토랑에 모시고 가서 최고의 요리사가 만든 최고의 요리를 대접했습니다. 가장 비싼 컨트리클럽에 모시고 가서 함께 접대 골프도 칩니다.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을 하는 이유는 물론 그들이 삭개오를 사랑하거나 존경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그들은 세금 관계에 있어서 삭개오에게 잘 부탁한다는 뜻으로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그런 것을 모르겠습니까? 자기에게 이렇게 선물도 많이 주고 접대해주는데, 속에 다른 마음을 가지고 한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눈치 못 채겠습니까? 삭개오가 이 정도 위치까지 오르려면 굉장히 눈치가 빠른 사람이어야 합니다. 로마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고, 백성들의 동태를 살펴야 합니다. 무조건 돈을 막 빼앗으면 폭동이 날 수도 있는데 그것을 잘 봐가면서 해야지 무조건 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는 굉장히 눈치가 빠른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앞에서는 웃으며 아부를 떨지만, 아주 공손한 태도를 보이지만, 뒤에서는 자기를 욕하고 자기를 멸시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점점 더 공허하고 쓸쓸합니다. 그의 마음은 텅 비어 있습니다.

 

이때까지 삭개오는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 수십 년 동안 굉장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돈과 명예를 위해서라면 온갖 악한 일도 서슴지 않았고, 자기 민족이라도, 친구라도, 어쩌면 가족까지도 방해가 될 때는 짓밟고 괴롭히고 제거하는 것을 예사로 알며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여리고 성의 세리장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로마와 결탁하고, 또 얼마나 뇌물을 갖다 바치고 뒤에서 온갖 이상한 짓을 얼마나 많이 했겠습니까? 아마도 요즘 말로 하면 조폭을 동원해서 여기저기 다 쓸고 다녔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이룬 부와 권력을 가졌어도 삶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는 겁니다.

 

저번에 부자 청년 관리에 대해서 우리가 살펴봤는데, 그 사람도 그렇게 젊은 나이에 성공하고 부자였지만 뭔가 마음이 빈 것을 그가 느꼈기 때문에 예수님께 와 내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하고 질문한 겁니다. 아무리 해봐도 이게 안 채워지는 겁니다. 채워지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고 했는데도 그게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뭔가가 빠진 것 같았습니다. 구원받은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와서 질문한 것입니다.

 

개오도 똑같습니다. 아무리 해도 안 채워지는 겁니다. 그래서 별다른 뜻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예수를 한번 보자고 하며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에 대해 특이한 점이 그의 키가 아주 작았다는 점입니다(3). 그는 조금 작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작았습니다. 어떤 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대인 전승에 의하면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발육이 안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남자로서 웬만한 여자들보다도 작고 아이들보다도 작은 키였기 때문에, 어떤 콤플렉스(complex, 열등감)를 가졌으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열등감이 그로 하여금 사회적인 성공과 돈에 대한 집착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 열등감이 있으면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열등감을 만회하고 그것을 가리고자 자기에게 부족한 그 부분을 메워 보려고 정말 놀라운 노력을 기울여서 실제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뉴스를 보면서 아니, 저렇게 성공한 사람이 왜 저런 짓을 하지?’라고 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그게 다 그런 겁니다. 남들은 모르는 마음속의 어떤 상처가 있습니다. 그것이 열등감이든지 아니면 굶주림이 어떤 상처가 있는데 그것을 자기가 해결해 보고자 몸부림친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진 것이지만, 그 성공이 그것을 치유하지 못합니다.

 

혹시 여러분,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겠다고 하고, 직장인은 열심히 직장생활하고, 또 사업하는 분들은 열심히 사업해서 그래도 이 미국 땅에서 내가 어느 정도 성공하고 살아야지.’ 하며 노력해서 실제로 어느 정도 되는 위치에 오르신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 정도까지 아니더라도 우리 대부분은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혹시라도 열등감 때문은 아닌지 우리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해서 이룬다고 해서 그 상처와 열등감이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미국에 와서 가끔 보면 LA나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국 사람인데 영어 이름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냥 한국 이름을 쓰면 되는데 자기 본명은 감추고 영어 이름을 씁니다. 그것도 열등감이나 다른 뭔가가 있어서 그런 경우입니다. 전부는 아닐지 몰라도 꽤 많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뭔가 숨겨야 할 비밀이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겁니다.

 

또 영어에 대한 열등감이 있을 수 있는데, 가끔 말할 때마다 이상하게 영어를 섞어서 쓰는 경우가 있으면 혹시 열등감 때문이 아닌지 체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에 어떤 분을 본 적이 있는데, 계속 말할 때마다 영어를 섞어서 씁니다. 그런데 영어가 자주 틀립니다. 그래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냥 영어를 쓰지 마시고 한국말을 쓰시지... 그런 것이 다 열등감에서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 혹시라도 그런 어떤 열등감, 수치심, 굶주림, 거절감 같은 상처가 있어서 그것을 만회해 보고자 열심히 다른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게 있습니까?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 나와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삭개오가 잘한 겁니다. 그는 어떤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삭개오는 이 순간 반드시 예수를 보아야만 하겠다고 마음먹습니다. 만나겠다는 것도 아니라 그냥 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4)

 

개역개정 성경에는 돌무화과나무라고 정확히 번역했는데 딱딱한 무화과나무입니다. 하지만 이전에 사용하던 개역한글 성경에는 뽕나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면서 삭개오는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에 올라갔대요.”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어떤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하시는데 바로 이 본문이었습니다. 원고를 안 보고 설교를 열심히 하시다가 여러분, 니고데모는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라고 하니까, 그때 모든 교인들이 갑자기 얼음이 되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 내가 지금 뭔가 실수를 했구나. 뭘 실수했지?’라고 하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며칠 전부터 계속 니고데모를 묵상해서 그랬는지 삭개오가 아니라 니고데모라고 말이 나온 겁니다. 그때 이 목사님은 재치를 발휘해서 그 순간 갑자기 삭개오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니고데모에게 외쳤습니다. ‘니고데모, 내려와. 거긴 내 자리야.’” 이렇게 마무리했다는 겁니다.

 

그 자리에 마침 다른 교회 목사님이 와서 그날 예배에 참석했는데, 그 설교를 듣고서 , 되게 기발하고 좋다. 나도 교회에 돌아가서 저걸 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자기 교회에 가서 설교할 때 니고데모는 키가 작아서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때 갑자기 삭개오가 나타나서 니고데모야, 내려와. 거기는 내 자리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의 눈치를 보니까 전혀 모르고 뭐가 문제이지?’ 하며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설교 방향을 틀어서 여러분, 성경 좀 읽읍시다.”라는 결론으로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성경을 모르니까 이게 니고데모인지 삭개오인지 전혀 감을 못 잡았던 것입니다.

 

여기 성경을 보면 돌무화과나무에 그가 왜 올라갔는지, 그 동기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이 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를 보기를 원할 정도로 아주 절박한 심정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예수라는 분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중에도 예수가 "세리와 죄인의 친구"(7:34)라는 소문에 귀가 번쩍 띄었을 것입니다.

 

세리와 만나 교제하고 또 같이 식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라는 사람은 세리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줄 뿐만 아니라, 세리들과 함께 앉아서 식사까지 같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를 만나기 위한 특별한 이유도 없지만, 단지 그를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가 나도 만나주지 않을까? 나도 세리이고 죄인인데.’라는 기대감도 품게 되었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께서 어디로 오는지 알고 사람들보다 먼저 달려가서 나무에 올라갑니다. 그 당시 유대 문화에서, 성인이 뛴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로 여겨졌습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뛰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는데, 삭개오 정도의 유명 인사는 뛰지 않습니다. 나무에 올라가는 짓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는 여리고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입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무에 올라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삭개오는 이런 행동을 함으로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것은 단순히 그가 예수를 보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보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답은 없습니다. 그는 그냥 예수를 보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보기를 원한다는 말은, 그가 아주 강한 열망으로 자기가 변화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나도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 내가 이렇게 더 이상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저 예수라는 분을 통해 그래도 내 삶에 변화가 생길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소망 가운데 창피를 무릅쓰고 이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2.   삭개오의 구원 (5~10)

 

예수님이 여리고를 방문하신 일은 아주 의도적인 것입니다. 오시는 길에 여리고 성에서 구걸하던 맹인 바디매오를 구원하시고, 또 그 성에 살던 죄인 중의 죄인 삭개오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다른 길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 이 길을 선택하여 오셨다는 것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그 비장한 순간, 아주 엄중한 순간에도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삭개오가 나무 위에서 조심스럽게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실 가지 사이에 숨어서 잘 보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5-6)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삭개오는 즉시 반응해서 내려옵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아주 차갑습니다. 수군거리며 비난합니다.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7)

 

예수님이 삭개오가 어떤 사람인지를 몰라서 좋은 줄 알고 지금 그 집에 들어가시는 것입니까? 다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삭개오가 얼마나 악한 죄인인지 다 알고 계십니다. 다 아시면서도 그 집에 들어가 머물겠다고 하십니다. 사실은 그래서 더욱 그의 집으로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큰 죄인, 용서받지 못할 만한 죄인인 삭개오도 구원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0)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세리 마태(레위)를 부르실 때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5절에서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무슨 뜻입니까? 머무실 곳이 없으셔서 삭개오와 같은 죄인의 집에 머물겠다고 하십니까? 그리고 지나가실 때라면 아직 해가 높이 떠 있는 낮인데, 왜 벌써부터 그 집에 들어가서 자겠다는 말씀을 왜 하십니까? 그 집에 들어가서 교제하며 말씀을 가르쳐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 머무실 때가 없어서 가시는 게 아닙니다. 여리고를 그냥 지나서 더 갈 수도 있으셨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이 평소에 사랑의 관계로 잘 지내시던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이 예루살렘에 더 가까운 베다니에 있습니다. 베다니에 가셔서 그 집에 머무실 수도 있는데, 굳이 여리고에서, 그것도 삭개오 집에 머무시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몰라서도 아니고 머물 데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삭개오를 향한 초청입니다.

 

그냥 보면 내가 너의 집에 오늘 밤 머물겠다. 거기서 좀 자야겠다.”라고 하시는 것이 삭개오 입장에서는 자기가 초대한 게 아니라 예수님이 스스로를 삭개오 집으로 초대하신 겁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삭개오 집에 예수님이 가서 쉬시겠다는 게 아니고, 삭개오를 향한 예수님의 초청입니다. 무슨 초청입니까? 영생으로의 초대, 구원으로의 초대입니다. ‘너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내가 너를 구원하기를 원한다. 나는 너의 구주이며 주인이다. 너는 나를 주로 받아들이겠느냐? 그렇다면 빨리 내려와라.’

 

이 말씀을 들은 삭개오는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즉시 내려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게 되고, 그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6). 이렇게 예수님을 영접한 삭개오는 자신이 결단한 내용을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8)

 

삭개오는 자기에게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 자기를 영생의 길, 구원의 길로 초대해주신 예수님께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줄 것이고,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다면 네 배나 갚겠다고 다짐합니다. 지금 누구의 것을 속여서 빼앗은 일이 만약에 있다면 그러겠다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자기는 남의 것을 다 빼앗았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빼앗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네 배를 갚겠다는 자기의 결단을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유일한 삶의 목적이었을 것이 무엇입니까? 돈입니다. 그러한 자기 재산의 절반을 내놓은 것입니다. 당시에는 재산의 20%만 내놓아도 아주 관대한 사람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50% 이상을 내놓겠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삭개오는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말로만 아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려 네 배나 갚겠다고 선언합니다.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5:16; 5:7), 착취한 것을 돌려주며 20%만 더 얹어 주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남에게 잘못하고 속였으면 원금에다 20%를 얹어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네 배를 갚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400%를 갚겠다고 하니까, 이것은 그가 철저히 과거의 삶에서 돌이켜 회개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온 사람들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세례만 받을 것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3:8) 하고 외쳤습니다. 삭개오가 한 일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정말 회개했기 때문에, 회개의 증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삭개오의 결단은 예수님께서 돈을 좋아하고 탐욕스런 바리새인들에게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11:41)라고 말씀하신 것에 순종하는 일이 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는 것을 보고 식탁 정결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바리새인들이 비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러한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의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라고 지적하셨습니다(11:39). 그러면서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바리새인들이 물질에 대한 탐욕 속에서 쌓아 둔 재산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탐욕의 죄를 지은 것을 회개하고, 자신들이 탐욕스럽게 축적한 재산을 사용하여 구제함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보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그들이 진정으로 정결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그렇게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삭개오가 바로 그것을 행한 것입니다.

 

지난번 부자 청년 관리에게 예수님께서 너는 돈이 우상이다. 그러니까 그 돈 문제를 해결하고 와라. 그걸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그다음에 와서 나를 따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영생을 얻기를 원한다면 그래야 한다. 지금 너의 진짜 하나님은 돈이다. 돈이라는 우상이다. 그것을 제거하고 진짜로 하나님을 믿는 길을 가라.” 그 얘기를 하신 겁니다. 그러나 그는 심히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지난번에 살펴보았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바로 그 일을 했습니다. 삭개오가 갚겠다고 말하는 액수는 율법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인데도 그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지금 이 말을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선포했기 때문에 무를 수도 없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삭개오는 자신을 낮추었고, 완전히 변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제는 정말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바로 이것입니다. 정말 새것이 되었습니다. 헌 것을 약간 고친 게 아니라 정말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삭개오는 감정에 이끌려서 섣부른 결정을 내릴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가 예수를 보겠다고 나무에 올라갔는데 어떻게 자기 이름까지 아시고 삭개오야부르시며 내려와라. 내가 너의 집에 오늘 머물러야 하겠다.”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막 흥분하고 너무 좋아하고 기뻐하며 감정에 따라 제 것을 다 내놓겠습니다.”라고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는 경제적으로 굉장히 발달한 도시인 여리고의 세리장입니다. 돈 문제에 있어서는 극도로 민감한 사람입니다. 돈에는 도통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몇 센트까지 다 따지는 사람입니다. 정확해야 합니다. 그러한 삭개오가 자기 재산의 반 이상을 바치겠다고 하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이미 그가 변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금 이런 일을 하기 때문에 자기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받고 변화되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마음에 들어오시니까 돈이라는 우상을 포기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동안 평생 자기를 붙들고 있었던 돈, 자기의 생명처럼 아끼던 돈을 예수님 때문에 포기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돈이 나를 살리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나를 살리신다. 나는 예수님을 따라 산다.’ 이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애써 모은 돈이나 권력보다 예수님이 더 귀하시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자기 속에 예수님이 들어오시게 되니까, 이전에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똑같은 고백을 빌립보서 3장에서 하지 않습니까? 이전에 자기가 가졌던 그 좋은 것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최고다. 예수님만 있으면 된다.’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삭개오도 지금 똑같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좋은 것들을 예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을 위해 기꺼이 내놓게 된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었다고 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은 이제 다 쓸데 없고 다 버린다는 게 아니라, 이것을 주님이 원하실 만한 일, 기뻐하실 만한 일을 위해서 쓰겠다는 겁니다. 이전에는 자기가 가진 것을 자기만을 위해 썼는데,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쓰겠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겠다는 겁니다.

 

이전에는 없어질까 봐 얼마나 벌벌 떨었겠습니까? 건장한 경호원들을 얼마나 많이 고용해서 지키게 했겠습니까?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세리를 그렇게 싫어하고 세리장은 완전히 미워하는데, 언제 습격해서 자기를 죽이거나 자기 돈을 빼앗아 갈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엄청난 경호 업체를 고용해서 지키고 그랬을 텐데, 이제는 하나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이러한 삭개오의 선언에 대하여,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9)

 

쉽게 말해서, 삭개오가 구원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구원받은 것은 선한 일을 자기가 하겠다고, 네 배로 갚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이 자기를 찾으시고 부르신 그 은혜로운 부르심에 그가 즉시 나무에서 내려와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수님이 삭개오야, 내려와라. 내가 오늘 밤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하실 때 아닙니다. 딴 집을 알아보세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더 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즉시 내려와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이전에는 자기만을 위해 살며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던 이것을, 이제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일에, 또 자기가 잘못한 것을 갚는 일에 쓰겠다는 것, 즉 주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을 위해 쓰겠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그 이상으로 자기가 하겠다고 하면서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가 그동안 악랄하게 굴고 등쳐먹고 나쁜 짓을 하며 속여서 빼앗았던 사람들에게 네 배로 갚겠다고 할 때 그 사람들이 삭개오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에이, 원수!.’라고 계속 그러겠습니까? 사실 이게 웬일인가 하며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사실 자기 빼앗긴 줄 알고 이젠 다 틀렸다.’ 하며 포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찾아오더니 네 배로 갚아줍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관계가 회복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경에 안 나왔어도 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삭개오가 눈물을 흘리며 상대방의 손을 붙들고 죄송합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제가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제발 받아주십시오. 용서해주십시오.’라고 할 때, 그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겁니다.

 

삭개오는 이제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돈이 제일 귀했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제일 귀하십니다. 이전에는 자기의 이기적 유익을 위해 사람들을 막 속이면서 이용했지만, 이제는 그들의 유익을 위해 자기에게 손해가 오더라도 감수하면서 관계를 회복합니다.

 

그는 이제 정말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니, 이웃과의 관계도 이제 회복되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실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나가는 말]

 

여러분, 이렇게 예수님을 정말로 믿었다면 삶이 변화되어야 정상입니다. 이렇게 극적으로 변하는 사람도 있고, 조금 천천히 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도는 다를지 몰라도, 예수님을 믿기 전과 믿은 다음이 전혀 변화가 없다면, 정말 믿은 것인지 다시 잘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정말 믿었으면 가치관이 바뀝니다.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이전에 정말 애지중지하고 아끼며 나는 이것 없으면 안 된다.’라고 하던 것들이 , 이것 없어도 살 수 있네.’가 되고, 그 대신 주님이 없으면 안 된다.’로 바뀌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위해 사용하고 내어드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있는 것이 예수 믿은 후의 변화이며 결과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의 삶에는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시면 다른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 비추어 볼 때 어떤 것도 더 중요한 게 없기 때문입니다. 내 돈도, 명예도, 학벌도, 성공도, 심지어 내 기분도, 내 가족도 예수님보다 덜 중요합니다.

 

예수님만 모시고 살면 이전에 어땠다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큰 죄인이었더라도, 아무리 사람들이 혐오하는 기피인물이었더라도, 예수님을 모시고 그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산다면 누구에게나 언제나 새출발이 가능합니다. 주님 앞에서 구원받지 못할 죄인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정말 주님으로 모셔 들인 사람은 이렇게 변화된 모습을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겐 매일 허락하시는 삶이 있습니다. 삶을 허락하시는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 또 이웃과의 관계를 잘 회복하며 사랑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시라도 지금 미루고 있는 관계가 있습니까? 지금 좀 불편한 관계가 있고 저 사람이 좀 불편한데 다음에 하지.’라고 하거나 그냥 이러고 살지.’라고 하는 그런 관계가 혹시 있으십니까? 미루지 마십시오. 후회하게 될지 모릅니다. ‘내가 다음에 하지.’라고 한다면, 다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허락하실 때 허락하고 계실 때 빨리 회복해야 합니다.

 

매일의 순간 속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실 놀라운 은혜를 기대하며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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