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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www.youtube.com/live/uz9k1TS_qAY?feature=share&t=91

 

 

202357일 주일예배

제자의 삶 산상수훈 7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마태복음 58)

 

[들어가는 말]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지난주 한국어로 처음 열린 크레도(CREDO)에 강사로 잘 다녀왔습니다. 크레도는 원래 성공회에서 시작된 것인데, 우리 미국장로교에서도 2006년에 도입하여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크레도에 가면 강사진이 있는데, 전체 프로그램 리더가 한 분 있고, 영성 분야, 소명 분야, 신체 건강 분야, 정신 건강 분야, 재정 분야가 있어서, 이번에는 강사진이 모두 6명이었습니다. 그 외에 코디네이터 미국 분과 반주자로 오신 분을 제가 불러서 강사 팀이 이번에 총 8명이었습니다.

 

그중 강사진과 일대일 대화 시간이 있어서, 참가하신 분들이 원하면 일대일로 대화하도록 사인업을 합니다. 각 분야별로 신청하는데, 다른 분들은 꽉 차서 더 할 시간이 없었지만 저는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과 재정은 인기가 좋아서 꽉 찼지만, 영성 분야는 인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실 목사님들이 영성을 잘 아는데 왜 또 하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나중에 보니까 대여섯 분이 사인을 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분들이 왜 신청을 했나 했더니, 제가 자기소개를 할 때 릴리 안식년 지원금을 받아서 좋은 곳들을 많이 다녀왔다고 했기 때문에 그걸 들어보겠다고 신청한 겁니다. 그러면 따로 30분씩 할 것 없이 모두 함께 모여서 같이 설명회를 하자고 해서 일정이 다 끝난 후에 했습니다.

 

설명을 하다 보니 제가 좋은 데를 많이 다녔는데, 파리의 미술관에서 좋은 그림들을 보면서 이전에는 미술에 하나도 관심이 없었는데 유명한 그림들을 직접 보니까 느껴지는 게 있다고 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의 중심지에 가서도 너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작 다닐 때는 보면서도 뭔지를 잘 몰랐습니다. 여러 군데를 가니까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고 대충 한 채 가니까 그랬습니다.

 

그런데 마침 모두 다녀와서 파리와 이탈리아 미술에 대한 좋은 책이 나와서 읽게 되었고, 그러면서 , 이게 그거였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잘한 것은 뭔지도 모르면서 사진은 다 찍어놓아서 그 책을 읽는 가운데 이게 그거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술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유명한 그림이라도 뭔지를 모릅니다. 아주 잘 알려진 그림은 이게 그거구나 하지만, 그렇지 않은 그림은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그렸더라도 뭔지를 모릅니다. 정말 작품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눈은 따로 있습니다. 그림 전문가와 문외한인 사람이 전시회에 같이 간다면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이 다릅니다. 전문가가 보면 느끼는 게 많은데, 저같이 하나도 미술을 모르는 사람이 가서 보면 뭔가 좋은 것 같긴 한데 뭔지를 모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만의 환경과 역사와 성향에 따라 자기가 볼 수 있는 것만을 보면서 살아갑니다. 미술만 아니라 인생이 다 그렇습니다. 아는 만큼 보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보는 만큼만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 이상 더 무궁무진하게 많이 있는데, 사람이 그것은 모르면서 아는 것만 가지고 이야기하고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결국 자기가 알고 보는 것이 자기 자신이 됩니다.

 

내가 아는 만큼 보이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이는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그 형상대로 직접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외가 있었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의 지도자 몇 명이 하나님을 직접 뵙고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케이스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직접 보면 죽습니다.

 

구약 성경에 많이 나오는 하나님을 뵙는다흑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다라는 표현은 원래 성전에서 만들어놓은 신상을 앙망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상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다라는 의미로 바꾸어 그런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가끔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여다오. 그러면 내가 믿겠다.’ 그런데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마음에 보입니까? 맑은 마음에 하나님이 보입니다.

 

맑은 호수에 산이 비치는 사진들이 많습니다. 미국 국립공원 같은 곳에 가 보면 산들이 있고 그 아래 호수가 있는데, 맑은 호수에 산이 비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맑은 마음에 하나님이 비치는 것입니다. 마음이나 영이 맑으면 하나님이 보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여다오. 그러면 내가 믿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맑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동기가 불순하기 때문입니다. 맑은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1.   마음의 중요성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 즉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마음은 헬라어로 카르디아’(kardia)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복 있는 사람은 심령(마음)이 가난한 자였는데, 여기서 심령프뉴마’(pneuma) 즉 영입니다. 성령에도 같은 단어를 쓰는데, 바로 그 단어가 심령에 쓰였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청결하다고 할 때는 카르디아라는 다른 단어가 쓰였습니다. 마음은 인간의 지정의가 결합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마음(soul)’입니다. 혼의 영역이 바로 지정의입니다. 알고 느끼고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혼이고, 바로 이것이 여기서 말하는 마음입니다.

 

영이 우리 존재의 중심이라면, 마음은 우리 인격의 중심입니다. 혼을 다른 말로 하면 인격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삶>에서도 배우지만, 구원에도 받은 구원’(영의 구원)이 있고 받는 구원’(혼의 구원)이 있습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마음과 관련이 깊습니다. (인격)과 관련이 깊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마음을 잘 지키라고 경고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4:23)

 

우리가 건강을 열심히 지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하는 분들이 있는데, 당연히 건강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도 지켜야 하고, 가정도 지켜야 하고, 자녀도 지켜야 하고, 재산도 지켜야 하고, 명예도 지켜야 하고, 사업이나 직장도 다 지켜야 하지만, 그보다 가장 먼저 마음을 지키라는 겁니다. 그 모든 것을 다 지키는데 마음을 못 지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사탄은 이 사실을 너무 잘 압니다. 하나님도 아시고 사탄도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을 차지하려고 끊임없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차지하기 위해, 우리 마음이 잘못되게 하기 위해서 사탄이 굉장히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지켜 주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서 마음을 지켜 주십니다. 마음이 가장 중요하고 그곳에서 모든 것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마치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샘과도 같습니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단물이 나오기도 하고 쓴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곳이 바로 마음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저번에 우리가 다윗을 살펴보았을 때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음의 동기와 속사람을 눈여겨보십니다. 사람은 겉으로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꿰뚫어 보며 판단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판단이 옳은 겁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도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훌륭한 신앙인 같았습니다. 그들은 항상 기도했고, 그것도 사람들이 다 보는 시장 같은 데서 기도했습니다. 나중에 산상수훈에 나옵니다. 그들은 율법도 철저히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평가하신 것에 의하면, 그들은 잔과 대접의 겉만 깨끗하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안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며 위선을 떠는 그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습니다. 무덤에 회칠을 해놓으면 하얗게 칠했기 때문에 깨끗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23:25-27). 겉으로만 살짝 덮어놓았지, 속은 완전히 더럽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겉으로 깨끗하게 해놓은 것만 보시는 게 아니라, 속의 더러운 것까지 다 보신다는 겁니다.

 

겉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람 됨됨이의 핵심인 속마음은 더러운 것과 악취로 가득한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겉으로 어떻게 드러나 보이느냐 하는 것보다 중심의 진실함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 참된 신앙의 척도가 됩니다.

 

이 시대에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머리에 있는 지식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여기며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교회에서 어릴 때부터 자란 사람일수록 어릴 때부터 성경 말씀을 듣고 자랐기 때문에 별 의심은 없습니다. 저처럼 모태신앙이거나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신 분들은 어릴 때부터 말씀을 듣고 자랐기 때문에 그렇게 거부감이나 의심이 없으실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시고 다시 오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도신경으로도 매주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머리로만 믿는 것일 수가 있다는 겁니다. 부인하거나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머리로만 동의하는 것일 수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올바른 진리를 깨닫고 생명의 말씀에 뿌리를 내려 예수를 바르게 믿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머리로만 믿으면 안 되고 마음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지성주의는 곤란합니다. 교회가, 기독교가 요즘 계속 욕먹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반지성주의입니다. 무조건 믿슙니다. 할렐루야, 아멘!’만 하지, 과학을 부정하고 상식을 부정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결코 반지성주의가 아닙니다. 머리로도 믿어야 합니다. 머리로도 이해가 되도록 성경공부도 하고 연구도 해야 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진화와 창조입니다. 교회에서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배웁니다. 그런데 학교에 가면 뭘 배웁니까? 진화론에 기초한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 등을 배웁니다. 교회에 오면 귀찮으니까 믿는다고 해주고, 학교에 가면 그런 공부를 합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고, 머리가 좀 커지면 교회를 떠나는 자녀들이 많습니다. 여기도 약간 그렇지만, 한국에는 아주 많습니다.

 

여러분은 진화론을 잘 아십니까? 진화론이라고 하면 일단 거부감이 들고 회피하게 됩니다.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화와 진화론을 정확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 좋은 책들이 도서실에 많이 있습니다. ‘진화무신론적 진화론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경계할 것은 무신론적 진화론이지 진화 그 자체가 아닙니다.

 

초음파 촬영으로 볼 때 하나의 점처럼 아주 작았던 아기가 점점 자라더니 태어나서 작은 아기였다가 점점 자라서 성인이 됩니다. 이런 것도 다 진화의 과정입니다. 이것은 과학적 현상인데 이걸 어떻게 부인합니까? 그런데 이것과 진화론을 헷갈리니까 진화라는 말만 나오면 거부감이 드는 겁니다.

 

여러분, 요즘 유명한 더 글로리같은 게 나왔다고 하면 그런 것만 늘 보지 마시고, 도서실에 가면 좋은 책들이 많으니까 연구 좀 해보십시오. 책 좀 읽어보십시오. 그래야 알지, 반지성주의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머리에만 머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머리에만 머물고 그치면 그보다 더 큰 재앙이 없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머리의 차원만이 아닙니다. 전인격적이어야 합니다. 머리의 한 부분으로만 동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만 동의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격과 존재의 중심인 마음이 핵심입니다. 지정의를 다해서 믿어야 합니다. 마음이 변화되고 새로워지지 않으면 신앙의 이름 아래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요즘 교회에는 다니는데 삶이 안 따라주는 성도들이 많기 때문에 성경 공부를 하면, 뭐 해? 교리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알면 뭐 해? 제대로 살고 행실이 좋아야지.”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꼭 옳은 말은 아닙니다.

 

신앙은 행위 하나에만 달려 있는 게 아닙니다. 겉으로 행동은 얼마든지 좋게 할 수 있습니다. 속으로는 아니면서 겉으로는 좋은 척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속을 다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에 겉으로만 보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식과 감정과 행동 등 모든 것을 합쳐서 우리의 중심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리스도인(크리스천), 예수님의 제자, 성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진짜 성도답게 살고 있는가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아멘하며 여기서 은혜를 받고 눈물로 기도하며 찬양하는 것은 좋습니다.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딱 멈추고 이 교회당을 나가는 순간 안 믿는 사람과 다를 게 별로 없다는 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하면서 은혜 받고 눈물로 기도하고 찬양한 사람이라면 밖에 나가서 살 때도 다른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뭔가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성공하고 뭔가를 이루고 성취하는 것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안 믿는 사람과 별로 다른 것이 없이 그냥 똑같이 살아갑니다.

 

그런 데 관심이 있다는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자꾸 그런 것으로 자신을 평가하려 할 때 만족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외적인 것으로 우리를 평가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고, 중심의 진실함, 마음의 참된 됨됨이를 보십니다.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에 대해 잘 표현한 장면은 다윗이 기름 부음 받는 장면입니다. 사무엘이 가서 소년 다윗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울 때, 그 위대한 선지자인 사무엘조차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첫째 아들, 둘째 아들, 셋째 아들이 올 때 키도 크고 늠름하니까 과연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다음으로 세우신 왕이구나.’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고 판단 기준으로 삼으시는 것은 사람의 됨됨이가 어떠한가, 그 속사람이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장 가치 있게 보시는 마음의 중심을 빠뜨리고 그냥 시대의 조류를 따라 살아간다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이 될 수가 없습니다. 신앙은 마음의 중심이 올바를 때 참된 것이 됩니다.

 

사회에서는 학자들이나 정치가들이나 사회 운동가들이 환경을 바꾸고 법을 바꾸고 질서를 새롭게 함으로써 사회를 바꾸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것을 놓치면 아무리 수고해도 헛수고가 됩니다. 대부분 사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은 환경을 바꾸면, 법 등 외적인 조건을 바꾸면 우리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어디서 타락했습니까? 지상낙원인 에덴동산입니다. 환경이 완벽한 곳입니다. 거기서 죄를 짓고 타락했습니다. 모든 것이 갖춰져 있어서 아무 부족함이 없는 에덴동산에서 죄를 짓고 타락해 버렸습니다.

 

완전한 환경이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닙니다. 문제의 핵심은 마음에 있습니다. 사탄이 뱀으로 와서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다고 꾀니까 하나님과 같아진다면 해보겠다.’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잘못되니까 완벽한 환경 속에서도 그냥 타락해 버린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모든 문제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당신의 제자들은 왜 정결예식을 따라 손을 씻지 않고 마구 먹느냐?’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습니다.

 

“20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7:20-23)

 

지금 제가 빨리 읊었지만 이런 것들이 다 드라마 주제입니다. 드라마를 보십시오. 맨 이런 것들입니다. 악한 생각,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은 모두 드라마에 나오는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재미가 있습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속이 악하니까 악한 것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이 어떤지를 계속 질문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말로 복 있는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뿐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 진실한 사람입니다. 마음의 중심이 진실해서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을 계속 살피다 보면 예수님은 십계명을 예로 들면서 계명을 지킴에 있어 마음의 동기가 중요하다고 선포하십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십계명 중 하나입니다. 당연히 살인하지 말아야 하지만, 마음으로 미워하면 살인과 마찬가지라고 하십니다. ‘간음 행위이전에 마음에서 음욕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맹세보다 마음의 신실성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보복 대신 넓은 아량과 배려를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또한 선별적 이웃 사랑보다 마음으로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2.   청결한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청결한 마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첫째, 청결한 마음은 나누어짐이 없는 진실한 마음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키에르케고르는 청결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청결이란 우리의 의지가 한 대상만을 향하여 드려진 마음이다.” 우리가 마음을 헌신해서 드릴 때도 갈라진 마음이 아니라 나뉨 없이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삶에 어려움이 오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단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게 내버려 두는 것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청결(깨끗함)이란 단 한 가지, 오직 주님만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는 주님도 바라보겠다.’가 아니라, ‘주님만 바라보겠다.’하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최고로 사랑합니다. 아시죠? 그런데 미스김도 사랑하고요 미스리도 사랑해요.’ 이런 게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 아내를 향해서 여보, 나는 당신을 최고로 사랑해. 그런데 미스리도 사랑하고 미스김도 사랑하고 미스박도 사랑해.’라고 하면 이게 사랑입니까? 그것은 청결한 마음이 아닙니다. 오직 내 배우자만 사랑하는 것,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이 청결한 마음, 깨끗한 마음입니다.

 

성경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사람입니다. 온전히 주님만 따랐습니다. 사무엘도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이방 신들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분만 섬겨라.’(삼상 7:3)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야도 가장 악한 왕인 아합이 다스리던 때에 북이스라엘 백성에게 청결한 마음을 가지라고 촉구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왕상 18:21)

 

하나만 따르라는 겁니다. 청결한 마음, 깨끗한 마음은 두 주인을 섬기는 마음이 아닙니다. 오직 한 분, 하나님만 섬기는 마음입니다.

 

 

둘째, 청결한 마음은 주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빌립보서 2). 구체적으로는 교회 내에서 서로 갈등하고 있는 여성 지도자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권면한 것인데, 겸손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 곧 청결한 마음입니다.

 

 

셋째,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청결한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은 연약하여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따라서 늘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나를 죄로 인도할 만한 것을 미리 예방하고 제거하기로 결단하는 것이 청결한 마음의 핵심입니다.

 

오래전 <일대일 제자양육>이라는 공부를 했었는데, 그 책에 재미있는 그림이 나옵니다. 사자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데 거기 머리를 집어넣은 그림입니다. 굶주린 사자가 입을 벌리고 있는데 거기에 머리를 집어넣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대로 삼켜집니다.

 

마치 우리 삶이 그와 비슷하다는 겁니다. ‘주님, 저를 보호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사자의 입에 머리를 집어넣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사자의 이빨로부터 저를 보호해주십시오.’라고 하는 겁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지금 굶주린 사자가 먹을 것을 찾는데 그 앞에 나가놓고는 하나님, 보호해주십시오.’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 죄의 길이 앞에 있는데 죄의 자리에 가놓고는 하나님, 죄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아예 그 자리에 가지를 말아야 합니다. 가면 넘어집니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요셉 같은 사람이 아니면 다 넘어집니다. 우리가 요셉보다 믿음이 좋겠습니까? 그러니까 아예 죄의 자리에 가지 않도록, 죄를 내 주변에서 없애고 내가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것을 미리 제거해놓는 것이 청결한 마음입니다.

 

청소년 시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먹는다고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결단하고는 그 유명한 다니엘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바벨론 한복판에서 성결한 삶을 결단했습니다. 미리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을 제거하고 예방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 그리스도인, 예수님의 제자, 성도는 삶의 목표가 행복해지는 게 아닙니다. 행복이 우리 목표가 아닙니다. 거룩이 목표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이 거룩입니다. 거룩하게 살면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행복을 추구하면 타협하게 되고, 그러면 거룩하게 되지 못하며, 결국은 행복해지지 못합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거룩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의 신앙생활은 의심스럽다.” 여러분, ‘내가 어떻게 해야 거룩해질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며 살아가십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닮을 수 있을까?’ 이게 없이 하는 신앙생활은 진짜 신앙생활인지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4:8)

 

여기서도 두 마음을 품는 것이 성결과 반대 개념으로 나옵니다. 청결한 마음이 곧 성결한 마음인데, 하나님을 늘 가까이하고, 죄를 씻어 버리고, 오직 한마음으로 주님을 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0203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었고 이제야 진정됐습니다. 그래서 이미 WHO(세계보건기구)는 비상사태를 해제했고, 이번 11일부터 미국에서도 비상사태를 해제합니다.

 

코로나19가 우리 삶에 큰 타격을 주고 고통을 주었습니다. 마음대로 어디를 가지도 못하고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이제는 많이 풀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에게 귀한 영적 교훈도 주었습니다. 물질세계이든 영적 세계이든 청결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몸도 청결해야 합니다. 처음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졌을 때 뿌리는 소독약을 많이 샀습니다. 그것을 확보하려고 다들 애썼습니다. 그때 많이 확보한다고 사두었는데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직후 우리는 세 가지를 열심히 했습니다. 열심히 손을 씻었고, 마스크를 열심히 썼고, 또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행했습니다.

 

그때 그렇게 육신적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영적으로 악한 바이러스를 우리 주변에 많이 뿌려 놓았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만큼 자신을 청결하게 하고 있습니까? 그만큼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손을 씻는 것과 더불어 우리는 회개를 통해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마스크를 쓰는 것과 더불어 우리는 기도로 우리 자신을 보호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중요하지만, 세속적인 가치관에 물들지 않도록 잘못된 가치관과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3.   마음의 청결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

 

내 마음이 청결한지 아니면 더러운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실 간단합니다. 내가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사는지 보면 압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내가 주로 시간을 어디에 보내고 있는지 보면 압니다. 꼭 해야 하는 직장 일이나 사업 외에 남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보면 내 마음이 청결한가 아닌가를 어느 정도 점검할 수 있습니다.

 

나는 선한 일에 두는가, 아니면 더러운 일에 두는가?’ 이것을 보십시오. 마음은 생각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마음이 더러우면 온갖 악한 생각이 일어나서 악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반대로 마음이 깨끗하면 선한 생각이 일어나서 선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이는 마음과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마음의 차이입니다.

 

나 자신을 점검해보십시오. 나는 하나님이 보입니까? 그렇다면 마음이 청결한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는 원래 마음이 더러웠는데, 예수님의 보혈로 인하여 마음의 할례를 받아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이미 청결한 마음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음의 청결을 이미 받은 사람으로서, 마음의 청결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마음의 청결을 유지해야 합니까?

 

첫째,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이 수시로 세상의 더러운 것에 오염되기 때문입니다.

 

오염되기가 너무 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은 악한 것으로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재미있고 좋게 보이는 것들 중에도 해로운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알게 모르게 잘못된 가치관을 따르도록 영향을 줍니다.

 

여러분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시는 것은 좋은데, 보실 때 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무슨 메시지를 주는지 간파해야 합니다. 간파하고 봐야지, 모른 채 그냥 보면 거기에 세뇌당합니다. ‘저렇게 살아도 되는 거구나.’ 하고 넘어가는 겁니다.

 

일하거나 운동해서 몸이 온통 땀에 젖었는데, 샤워하기 싫다고 안 한다면 정상이 아닙니다. 더러우면 씻는 것이 정상입니다. 샤워나 목욕은 아주 철저히 하면서 자신의 오염된 마음은 전혀 씻으려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큰 문제입니까? 한국이나 미국 대도시에 방문 가면 찜질방이나 사우나는 열심히 가면서, 주일이 끼었을 때 교회에 가서 예배하지는 않는다면 마음이 얼마나 더러울지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위하여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과 교제하려면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거룩해지기도 하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매일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시편 24편에서 다윗은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 누가 그 거룩한 곳에 들어설 수 있느냐?”라고 질문한 후 대답합니다.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24:4)

 

셋째, 마음의 청결(깨끗함)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기를 원하시지, 더러운 마음으로 살기를 원하시겠습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결국 예수 믿고 구원받은 후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함을 받고 영생을 얻었다면, 매일 주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 받는 구원, 혼의 구원의 과정을 살아가야 합니다. 매일 예수님을 닮기 위해 애쓰며 나아가는 과정을 밟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로 구원받아 천국 가는 것만 생각하고 구원받은 사람다운 성결한 삶을 잊어버리게 되면 믿기는 믿는데 전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않고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의 목적은 거룩합니다. 성결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살전 4:3a)

 

거룩함은 예수님을 닮아서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하셨습니다.

 

 

4.   마음의 청결을 얻는 방법

 

코로나19 치료법 중 혈장 치료 방법이 있었습니다. 감염되었다 나은 사람의 몸에 항체가 형성된 회복 혈장이 생기는데, 그것을 코로나 환자에게 투여하는 방법입니다. 심한 사람들에게는 이 방법을 써서 많이 낫게 했습니다. 피에는 정화하고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정화하는 힘이 있습니다.

 

첫째, 그래서 마음의 청결을 얻는 방법은 무엇보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와 말씀과 예배입니다.

 

이건 정말 기본 중의 기본이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기도와 말씀과 예배를 통하여 마음의 청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기도의 자리, 말씀의 자리, 예배의 자리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읽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가치관에 오염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모이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혼자도 예배할 수 있지만 왜 굳이 같이 모여 예배합니까? 함께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함께 하나가 되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흩어져 있을 때는 개인 예배로 기도와 말씀과 예배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하지 못한 사람은 영적 맹인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나님을 보게 되는 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도 마음으로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자신의 마음을 가꾸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겠습니다.

 

중세의 신학자이자 교부였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죽음을 앞두고 하늘에서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토마스야, 너는 나에 대해 많은 책을 잘 써주었다. 어떤 보상을 원하느냐?” 그때 아퀴나스가 대답했습니다. “주님, 저는 오직 주님뿐입니다(Lord, only you!). 주님 한 분이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실 최고의 복음 하나님 당신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우리 모두 이 복을 누리는,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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