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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4일 주일예배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14 ✦
“나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21장 1~7절)
1. 사라를 웃게 하신 하나님
오래 전에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어느 장로님이 있었는데, 일찍 30대에 장로가 되신 분이었습니다. 저희 가정도 아기를 늦게 낳았지만, 그 가정도 아기를 갖지 못해서 포기하고 입양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남편 장로님이 44세, 부인 집사님이 40세가 되어서 드디어 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태어나니까 그 장로님 부부는 얼굴에 웃음이 그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물론 입양한 아이도 항상 아끼고 사랑하셨지만, 아기가 태어난 이후에는 항상 볼 때마다 웃고 다니셨습니다. 마음의 그 기쁨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습니다. 그 일은 그 가정의 기쁨만이 아니라 그 아기의 출생이 온 교회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과 사라가 드디어 아들을 낳게 된 사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이때 100세였고 사라는 90세였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나이였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이 기적이 일어남으로 사라가 웃는 것을 봅니다.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이름을 바꿔주시면서, 사라가 그에게 아들을 낳아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7:16). 그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17:17).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지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또 18장에서 지난 번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장막을 직접 찾아오셔서 그 당시 89세였던 사라가 1년 후에 이삭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뒤에서 그 말씀을 들은 사라도 그것이 믿어지지가 않아 웃었습니다(18:12). 그 웃음은 허탈한 웃음내지 불신의 웃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드디어 이삭이 태어나자 마침내 사라가 진짜로 웃습니다. 이 웃음은 기쁨의 웃음이고 또 믿음의 웃음입니다. 하나님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주셨고, 그렇게 해주신 하나님 때문에 사라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삭이 태어난 이 기적을 통해 우리는 크게 세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신실하신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셨을 때,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과 또 그를 통해 온 세계에 복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12:1-3). 그 후 하나님은 반복적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셨고, 그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이나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 약속의 상속자의 아버지가 될 것이고(15:4), 사라가 그 아들의 어머니가 될 것이며, 또 아들을 낳으면 이삭이라 하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17:19, 18:9-15).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무리 기다려도 안 되니까 과연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인지 의심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결국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는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3년 후 그들은 자기들의 실수를 깨닫고 다시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1-2절)
1절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약속을 절대로 어기지 않으십니다. 100% 지키십니다.
어릴 때 여러분도 부모님이 ‘해줄 게. 사줄 게.’ 했는데 안 사주어서 실망하고 화가 난 경험이 다 있으실 겁니다. 제가 부모가 되고 보니까, 저도 아이를 달래느라고 ‘해줄 게, 사줄 게’ 해놓고는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잊어버리지를 않습니다. 왜 사준다고 해놓고 안 사주느냐고 따지는 것을 보면서, 약속을 꼭 지켜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약속을 하고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지키려고 했지만 능력이 안 되어서 못 지키는 경우, 그리고 하다 보니까 지킬 마음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세례식이 있었는데 세례도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겠다.’라는 약속이고, 교인이 되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살아가겠다.’라는 약속입니다. 직분을 받을 때도 서약을 하는데 그게 다 약속입니다. 직분자로서 최선을 다해 섬기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약속을 해놓고 깨는 적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교회적으로도 그렇고,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약속을 하신 것을 결코 깨지 않으십니다. 지킬 마음도 있으시고, 지킬 능력도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고,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약속들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복을 주겠다는 약속 등 많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해야 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약속들을 많이 주셨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면 복을 제대로 누리지를 못합니다.
가끔 비행기를 탈 때나 호텔에 묵을 때 보면 숨겨진 혜택들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주어야 하고 등등,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몰라서 못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미국에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작은 글씨(fine print)로 적어놓거나 숨겨놓고 못 찾아서 혜택을 못 받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냥 성경 말씀에 그대로 보이도록 다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또 가끔 보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도 아닌데 왜 안 지키시느냐고 엉뚱하게 따지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서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무슨 약속이 있는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삶에 어려움이 생길 때 실망하며 괴로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고 느끼며 의심하기도 합니다.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안 되겠다고 하며 자기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하게 되는데, 바로 그때를 조심해야 합니다.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으로 혹시 잘 풀릴 수는 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문제가 악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지 못할 때에도, 주님은 신실하셔서 약속을 이루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웃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2)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오늘 본문에서 사라가 이삭을 낳은 사건에 대해 말할 때마다, 아브라함의 나이도 같이 언급하는 것을 봅니다. 2절에는 “노년의 아브라함”이라고 하고, 5절에서는 “그의 아들 이삭이 태어날 때에 백 세”라고 하고, 7절에서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아브라함이 아기를 낳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음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민이 있습니다. 분명히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베푸신 것 같이 많은 기적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내 삶에는 이런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고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에는 이렇게 놀라운 기적들과 사건들이 많이 나오는데 내 삶에는 이런 게 별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나는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립니다.
혹시 지금 내 삶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해줍니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히 약속을 이루어주십니다. 아직 때가 안 되었을 뿐입니다. 조금만 더 인내하며 기다리면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3)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은 정확한 시간에 약속을 이루어주신다
2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의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라고 나옵니다. 하나님은 수차례에 걸쳐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이 이뤄질 것을 확인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마침내 오늘 본문에서 이루어졌고, 약속이 성취된 때는 너무 빠른 때도 늦은 때도 아닌 “하나님의 말씀하신 시기”였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아무 때나 아무렇게 막 태어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아무 시대에나 아무렇게나 대충 오신 것이 아닙니다. 정확한 때에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시간을 계산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정하신 시간에 사라가 임신하게 하시고, 정하신 시간에 이삭이 태어나도록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도 나름대로 시간을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 생각에는 ‘이제 시간이 지났다.’라고 생각하여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방법을 썼고, 그래서 오히려 이스마엘이 태어나면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즉시 응답을 안 해주실 때 아주 힘듭니다. 열심히 기도해도 응답하시지 않을 때 초조해지고 염려가 됩니다. 불안함과 답답함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시간을 계산해보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방법을 씁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을 진짜로 계산해보면 그렇게 오래 기다린 것도 아닙니다. 그냥 조금 기다려보다가 안 되면 그냥 자기가 하는데, 그러나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내 방법을 쓰고 내 방법대로 하게 되면 이스마엘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리면 이삭이 태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불안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안심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정확한 때에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때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때를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릭 워렌(Rick Warren)의 <목적이 이끄는 삶>에 보면 좋은 말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도 우연히 하지 않으시고 절대 실수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왜 이 모든 일을 하셨을까? 왜 우리를 위해서 우주를 만드는 수고를 하셨을까?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가장 귀한 외아들까지도 내어주신 하나님이시라면, 더 이상 아끼실 게 뭐가 있겠습니까? 가장 귀한 것을 내어주었다면 더 이상 아낄 것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우리 삶을 하나님이 책임져주신다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아갈 때 불안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힘들수록 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고 기도하며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정확한 시간에 움직이시며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사라의 간증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3-4절)
아브라함은 아들이 태어나자 즉시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짓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에게 8일 만에 할례를 행합니다. ‘이삭’이라는 이름의 뜻은 ‘웃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불신앙의 웃음을, 이제 믿음과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5-6절)
사라의 이 외침을 보십시오. 이것이 사라의 간증입니다. 불과 1년 전에 하나님이 자신들의 장막에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것을 뒤에서 엿듣고 보였던 그 반응과 얼마나 다릅니까? 그때는 속으로 웃으면서 완전히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라의 웃음은 기쁨과 행복의 웃음입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간증합니다.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7절)
1년 전의 웃음이 불신과 의심에서 나온 웃음이었다면, 지금의 웃음은 하나님의 놀랍고 위대한 능력을 경험한 것에서 나온 웃음입니다. 첫 번째의 웃음이 기가 막혀서 피식 웃은 것이라면, 두 번째 웃음은 마음속에서 터져 나오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서 웃는 웃음입니다.
만약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기가 막혀 피식 웃는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가 기쁨의 웃음을 웃을 수 있도록 두 번째 웃음을 주실 것입니다. 의심과 불신의 웃음에서 큰 기쁨과 감격의 웃음으로 바꾸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가 ‘나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나가는 말]
유명한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개혁을 진행하다가 반대와 비판과 비난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침대에 누워서 ‘이제 다 끝났어.’라고 하며 혼자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지혜로운 그의 아내가 놀랍게도 상복을 입고 방에 들어왔습니다. 보니까 상복을 입었기에 루터가 깜짝 놀라면서 “아니 누가 죽었소?”라고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아내는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내의 황당한 대답에 루터는 “아니,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라고 묻자 루터의 아내가 정색을 하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안 돌아가셨으면 당신이 지금처럼 누워 있을 리가 없겠지요.”
아내의 이 말 한마디가 루터를 흔들어 깨웠다고 합니다. “아, 그렇지! 하나님은 살아 계시지!” 그래서 그는 벌떡 일어나 그가 하던 일을 계속해서 했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종교개혁을 위해 또 기독교 역사에서 크게 쓰임을 받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가장 정확한 때에 최고의 방법으로 나를 이끌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지 상관없이, 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나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을 반드시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